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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19
눈이 침침하여 책 보기가 성가시니 노안입니다. 보이는 게 흐릿하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쌓아둔 책이 한보따리인데, 미간을 찌쁘려가며 겨우 한 바닥을 읽습니다. 내가 '보려는 것'을 못 보니 답답하지만 내게 '보여 주시려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 그게 더 답답한 일입니다. “유혹은 욕망과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몸과 마음의 움직임 그리고 생각을 따르려는 경향과 어떤 원칙 사이에 머뭇거리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My eyes are blurry, making it hard to read books; I have presbyopia. It's quite uncomfortable because everything is blurry. I have a whole stack of books, but furrowing my brow, I barely manage to read a single page. It is frustrating that I cannot see what I want to see, but even more frustrating that I cannot see what you are trying to show me. "Lust is closely related to desire. I am still hesitating, unable to decide between the tendency to follow my body and mind’s movements and thoughts and a certain princ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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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것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을 받는다 함은 갈등 상황에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편해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심지어 하나님조차 자신의 편의에 따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믿으려고 합니다. 맥컬로우는 이것을 “안전한 신에 대한 환상” 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다루기 쉬운 곳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리려고 한다”고 해요.
The reason we cannot make a decision in such a conflict is that we cannot easily give up any of them. To be tempted means to be in a state of conflict. Because humans naturally tend to seek comfort, they even try to believe according to their own convenience and beliefs, even of God. McCallough calls this a "fantasy of a safe god." In other words, they say, "We are trying to bring God down to a place that is easy for us to ha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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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것이 “이방신들은 골치 아픈 신보다도 더 마음에 맞고 숭배하기 쉬운 신으로 하나님을 재구성하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을 유혹하는 가장 큰 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유혹의 근원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유혹의 본질이 욕망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남을 자극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또 처음부터 자신의 욕망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He says this stems from an intention to reconstruct God as a god more appealing and easier to worship than troublesome gods. This is the greatest enemy of faith. Since Christians cannot live isolated from society, it is impossible to live completely free from the source of temptation, but if one understands that the essence of temptation lies in desire, it is important not to do things that provoke others, and it is also desirable to remain unexposed to one’s own desires from the out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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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은 끊임없는 신앙훈련 밖에 없습니다. (하찮아진 하나님, 도날드W.멕컬로우, 대한기독교서회)“ 세상을 상대할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는데서 나온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안다고 절로 힘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안다는 거 자체가 간단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봐야 진짜 알게 되는 게 더 많지 않던가?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고 어떻게 상대하고 있는 지를 잘 알려 줍니다.
However, the only way to control desire that lasts until death is through constant spiritual discipline. (God, which has become insignificant, Donald W.McColough, The Korean Christian Literature Society: "Where does the strength to face the world come from? It should be believed that it comes from knowing myself, knowing the world, and knowing God, who created the world. However, knowing does not automatically give you strength. Because knowing is not a simple matter in itself. Aren't there more things you only truly learn by living? Only God’s Word clearly tells us what we are confronting and how we are confront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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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을 듣는 것이 세상을 이기고 나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정보나 조언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겸비한 마음으로 받아야할 것입니다. 그래야 잘 들립니다. 말씀은 죽은 정보가 아니라 산 인격이기 때문에 청종과 순종과 실천으로 그 말씀에 참여하지 않으면 말씀의 참뜻과 의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토 달지 않고 순종할 때 진리가 주는 자유 함이 찾아오며, 주께서 동행하는 복이 내 동선을 따라 임할 것입니다.
Hearing those words is the way to overcome the world and protect myself. But that is not merely information or advice; it is an order. We should receive it with a meek heart and a humble mind. That's how it sounds better. Because the Word is not dead information but a living personality, one cannot understand its true meaning and intention without participating in it through listening, obeying, and putting it into practice. When we obey without complaint, the freedom that the truth provides will come, and the blessing of the Lord’s presence will follow our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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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것도 없이 시험을 이기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절제된 말과 약자를 돌보는 실천적인 섬김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거룩한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율법을 알고 고백하는 것보다, 환란 중에 있는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율법을 실행하는 것이 참된 경건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받는 조건-경청과 온유, 말씀의 요구-실천, 말씀 순종의 결과-경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에 맞게 해석하고 있는가? 나는 시련 속에서도 말씀을 의지하여 새로워지고 있는가?
Needless to say, those who overcome the test are godly. It is revealed through measured speech, practical care for the vulnerable, and a holy life unadorned by the secular. Isn't true godliness not practicing the law by loving our neighbors in the midst of tribulation, rather than merely knowing and confessing the law? Conditions for receiving the Word listening and gentleness; demands of the Word practicing; results of obeying the Word godliness. Are we listening to God’s Word, or are we interpreting it to fit our own desires? Am I being renewed by relying on the Word even amid t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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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할 것과 더디 할 것(19-20)
온유함으로 받을 말씀(21)
행할 말씀(22-25)
a.행하는 자가 되라:22
b.잊어버리지 말라:23-24
c.실천하는 자가 되라:25
행함으로 나타나는 경건(26-27)
a.혀를 통제함:26
b.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의 예: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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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형제들아(19a)
너희가 알지니(19b)
사람마다(19c)
듣기는 속히 하고(19d)
말하기는 더디 하며(19e)
성내기도 더디 하라(1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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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성내는 것이(20a)
하나님의 의를(20b)
이루지 못함이라(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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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21a)
모든 더러운 것과(21b)
넘치는 악을(21c)
내버리고(21d)
너희 영혼을(21e)
능히 구원할 바(21f)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21g)
온유함으로 받으라(2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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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22a)
말씀을(22b)
행하는 자가 되고(22c)
듣기만 하여(22d)
자신을 속이는 자가(22e)
되지 말라(2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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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23a)
말씀을 듣고(23b)
행하지 아니하면(23c)
그는(23d)
거울로 자기의(23e)
생긴 얼굴을(23f)
보는 사람과 같아서(2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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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을 보고 가서(24a)
그 모습이(24b)
어떠했는지를(24c)
곧 잊어버리거니와(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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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하는(25a)
온전한 율법을(25b)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25c)
듣고(25d)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25e)
실천하는 자니(25f)
이 사람은(25g)
그 행하는 일에(25h)
복을 받으리라(2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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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스스로(26a)
경건하다 생각하며(26b)
자기 혀를(26c)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26d)
자기 마음을 속이면(26e)
이 사람의 경건은(26f)
헛것이라(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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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앞에서(27a)
정결하고(27b)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27c)
곧 고아와 과부를(27d)
그 환난 중에 돌보고(27e)
또 자기를 지켜(27f)
세속에 물들지(27g)
아니하는 그것이니라(2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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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심긴 말씀_Words Planted in the Heart_
거울에 새겨진 얼굴_Face Engraved in the Mirror_
이웃에 깃들인 경건_Patriarchal Devotion in the Neighboring Communit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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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지혜를 구하는 기도와 함께 말씀 청종은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또한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오니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도전 앞에 순종으로 화답하게 하옵소서.
Lord, listening to Your word, along with prayer seeking wisdom, is the way to overcome temptation. Also, if one deceives their own heart, this person's piety is in vain; help them respond in obedience to the challenge to look upon orphans and widows in their time of trouble and not let themselves be corrupted by the world.
2026.10.17.sat.Clay
신학 비평//
눈이 침침해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의 욕망에 가려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다루기 쉬운 하나님을 만들어 낸다. 맥컬로우가 지적한 '안전한 신에 대한 환상'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향한 믿음일 수 있다. 야고보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와 성내기는 더디 하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경청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유보하고 타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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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성찰하기보다 판단하기를 서두른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조차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더욱 날카로운 비판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자신을 속인다는 선언이다. 야고보에게 신앙의 위기는 무지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경건의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그 지식이 자신의 불순종을 은폐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참된 경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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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실천에서 그 답을 찾는다. 여기서 신앙은 관념에서 현실로, 고백에서 책임으로 이동한다. 다만 순종을 무조건적인 사고의 중단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말씀에 대한 참된 순종은 자기 욕망을 비판하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동적인 결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야고보가 묻는 것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알고 있는 진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가이다. 말씀을 듣고도 달라지지 않는 신앙, 그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자기기만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