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메달 확보에 실패한 다른 종목들도 있지만, 유독 야구만 연일 뭐처럼 까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야구 팬들마저 옹호는 커녕 앞장서서 비난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된 상태인데, 야구를 잘 보지 않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꽤 오랫동안 국내 야구를 본 사람으로서 어설프게나마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0. 들어가기 앞서
국내 프로야구계에서 이번 올림픽은 상당히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축구와 달리 야구는 군면제를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오직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뿐)가 매우 적기 때문에, 어젠다 2020의 도입으로 13년만에 다시 열린 올림픽 야구는 중요성이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따라서 엔트리 선정에서부터 선수고 구단이고 팬덤이고 할 것없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외부에선 절실함(..)이 안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특히나 미필 선수들 입장에선 절실하다 못해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가득이나 경찰청 야구단이 해체되면서 군문제 해결이 어려워진 현재, 언제 다시 야구가 올림픽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1. 올림픽 시작 전부터 등 돌리기 시작한 민심
(1)국대 최종 엔트리 선발
일단, 발단은 국가대표팀 최종 엔트리 선발 과정에서부터 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 말하자면, 현재 야구 국가대표팀은 전임 감독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기술위원회가 대표팀 운용의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구조였지만, 전대 감독인 선동렬 때부터 해서 현재는 대부분의 권한은 감독에게 집중된 상태입니다. 즉,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 선발은 오롯이 감독이 전권을 쥔 일이라는 겁니다.
최종 엔트리 발표는 지난 6월 16일에 나왔는데, 이를 확인한 국내 야구 팬덤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비상식적인 부분이 한두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내야수 중 2루수와 3루수 같은 경우,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던 선수들인 정은원(2루수, 한화), 최정(3루수, SSG) 대신 이들보다 한참 못한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 : 대체선수에 비해 몇 승을 더 기여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기록 중인 선수들(2루수: 최주환, 박민우, 3루수: 허경민, 황재균)로 선정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최종 엔트리 발표 즈음해서 각 포지션 별로 선정된 두 명의 선수들 WAR를 합산해도 포지션 1위인 정은원이나 최정의 WAR를 넘지 못 합니다;;;
투수에서도 리그 구원투수 WAR 1위인 강재민(한화)을 선정하지 않아서, 한화의 수베로 감독이 납득이 안 된다는 인터뷰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아래 표에서 강재민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다 선발 투수입니다.)
이에 대한 해명도 걸작인데 "짧게 짧게 잘라 막으면서 경기를 운영할까 생각하고 있다(김경문 감독이 밝힌 추신수·강재민 제외 이유는?[일문일답] (naver.com))" 입니다. 즉, 강재민의 연투능력을 믿을 수 없다 라고 한 것이죠. 하지만 이때, 대표팀 투수진은 10명 중 (평소 연투를 할 일이 거의 없는)선발 투수만 6명을 뽑은 상태였습니다. 리그 1위 구원투수의 연투 능력은 믿을 수 없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보기도 어려운 선발투수들의 연투능력은 믿는 놀라운 야구안이라 하겠습니다.
강재민의 실력 폄하를 하던 게 잘 먹히지 않자 ["투수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사이드암으로 갈 지, 우완으로 갈 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팀 별 안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만약 강재민을 택했다면 특정 팀에서는 대표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을 수 있었다.(야구 대표팀 안타깝게 탈락한 25번째 선수는? : 야구·MLB : 스포츠 : 뉴스 : 한겨레 (hani.co.kr))]같은 해괴한 변명까지 늘어놓으면서 불만은 차츰 커졌습니다.
이게 왜 말이 안 되는 변명인가 하면, 1명만 국대에 선발된 팀은 SSG, 롯데, 한화 3개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SSG에선 처음부터 투수가 차출되지 않았으니 제외하고, 언급한 사이드암(강재민)을 대신한 우완이라면 박세웅(롯데)입니다. 즉, 박세웅을 발탁하느라 강재민을 뽑지 않았다는 소리죠. 하지만 박세웅은 선발 투수이기에 강재민과 포지션이 겹치지 않습니다. 더구나 박세웅과 포지션이 겹치면서 시즌 성적이 뒤쳐지는 김민우(한화) 대신 강재민을 발탁했다면 해결되었을 문제이기에, 이 변명은 롯데와 한화를 갈라치기 하려는 수작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김민우는 박세웅이나 강재민과 달리 이미 팔꿈치 수술로 군 면제 판정을 받은 선수라서, 김민우 대신 미필인 강재민을 발탁한다 한들, 한화 팬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선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미 이 시점부터 배제당했다고 느낀 한화팬와 SSG(구 SK)팬들의 여론은 슬슬 요동치기 시작했으나, 이는 시작의 끝은 커녕 시작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코로나 확산 사태로 시작부터 박살난 여론
사실 이렇게 민심이 악화된 근본적인 배경을 찾자면 역시 올림픽 직전에 터진 코로나 확산 사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사건 전개과정 자체는 올림픽 대표팀과 큰 연관이 없다보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리그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KBO는 정말 마지못해 미미한 징계만을 부여했고, 구단들의 자체 징계도 냉정하게 중징계라곤 말할 수 없는 수위였습니다. 당연하게도 여론은 짜게 식어버렸죠.
금메달로 속죄? 꿈도 꾸지 마라 (naver.com) 같이 노골적으로 야구계를 비난하는 기사가 상당한 지지를 받는 등 올림픽 시작 전부터 야구에 대한 여론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즉, 야구로 보답하겠다 같은 헛소리로 무마할 단계는 지난지 오래였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야구가 까이는 것은 이미 확정적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3)대체선발 발탁
코로나 확산 관련자 중 국가대표가 두명(NC의 박민우, 키움의 한현희) 있었는데, 이들이 대표팀에서 자진 하차하고 대체 멤버를 뽑는 과정에서 불길은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2루수인 박민우(NC)가 빠진 자리에는 2루수가 아닌, 투수인 김진욱(롯데)이, 불펜 투수인 한현희(키움) 대신 오승환(삼성)이 선정되었습니다.
김진욱은 올해 6월부터 구원 투수로 전환을 한 선수입니다. 선발이던 시기보단 나아졌다지만, 고작해야 한달 남짓 동안의 성적으로 평가하기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김진욱의 발탁에 롯데 팬덤에서 놀랐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오승환 같은 경우는 한국 야구계의 전설적인 마무리이긴 합니다만, 올해 나이가 마흔입니다. 당연히 전성기의 구속이나 구위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거기에 이미 삼성에서만 4명을 차출해간 상황에서 또다시 차출한 것이니, 과거에 변명으로 써먹은 팀 별 안배(...)조차 지키지 못한 발탁이었습니다.
24인 엔트리 중 투수 10명(그 중 6명이 선발투수)은 부족한 감이 없던 것은 아니니 2루수 대신 구원 투수를 선정한 것까진 그나마 이해 가능한 영역이었습니다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또다시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던 강재민을 애써 배제했다는 것입니다.
엔트리 24명 중 주축 선수를 무려 5명이나 착출당한 삼성 측도 꽤나 불만이 심했지만, 대체 선발에서까지 패싱당했다고 본 한화 팬덤의 민심은 이날을 기점으로 폭발해버렸고, 아예 대놓고 노메달을 기원하기 시작했습니다.
2. 사실상 모든 문제를 예견했던 평가전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은 당연하게도 경기력 파악 등을 위해 평가전을 치르기로 합니다. 평가전은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3경기를 가졌습니다. 상대팀은 각각 상무 피닉스, 엘지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였으며 경기는 모두 고척 돔구장에서 이뤄졌습니다.
결과만 놓고보면 엘지와의 무승부를 제외하곤 모두 승리를 거뒀습니다만, 내용을 뜯어보면 몇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리 많은 이들이 주목하진 않았지만, 이게 실전에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생각하면 후덜덜할 뿐입니다.
(1) 투수진: 투수진은 우려가 많았지만, 일단 결과만 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평가전 3경기 통틀어 3점만을 실점했습니다.
단, 박세웅(롯데)이 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만(3이닝 40구, 3피안타 3볼넷, 2실점(1자책)), 설마하니 이것만 보고 감독이 대뜸 추격조로 박아버릴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 못 했습니다.
그외 특기할 점이 있다면 선발들을 3이닝씩 기용했습니다. 대부분 점검 차원에서 으레 하듯 3이닝씩 올린 것이라고 생각했고, 강재민 발탁 논란 당시 했던 변명(짧게 짧게 잘라 막으면서 경기를 운영할까 생각하고 있다)을 떠올린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전에 들어가니...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 회에 따로 적겠습니다.
(2) 야수 포지션 문제: 대체선발 과정을 거치면서 유일한 2루수가 된 최주환을 엘지전 단 한경기에서만 2루수로 출장시켰습니다. 이것도 당시 최주환이 햄스트링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 된 터이니, 단순한 배려 내지는 만약의 상황을 위한 대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주환이 2루수로 선발 출전한 것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3) 타선: 타자들의 타격감이 전체적으로 저조했습니다. 특히 포수인 양의지가 매우 안 좋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경기에 4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1할대 타율과 한경기 4삼진이라는 끔찍한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수비라도 좋았다면 덜 까였겠지만 수비 역시 송구, 블로킹 모두 치명적인 실수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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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시작 전 이야기만 썼는데도 꽤나 분량이 되는군요 ㄷㄷ
첫댓글 ... 운용이 안 나왔는데도 이리 장문이라니. 선발도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운용이 더 문제였다고 보는 입장에서 다음 글이 기대가 되네요.
스텍..
이번 야구 대표팀은 파면 팔수록 해괴하네요...
팀타율 1위 팀에서 타자를 한명도 안뽑음
김경문 개인감정 가득한 선발이었다고밖에는....
읽는 내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이정도였다고? 최정 거르고 황재균이었다고?
선발만 가지고도 이렇게 두드려팰수 있구나… 대회 운용이나 선수 기용 들어가면 ㅋㅋ
군면제용 미필 선수단인가? No
해외파 거르더라도 최고의 선수진인가? No
수비 포지션 분담이 잘 되었나? No
타자 역할 분담이 잘 되었나? No
선수기용도 나오는 놈만 나오고
이럴거면 왜 뽑았는지 모를 선수도 있고
투수 운용도 역할 구분이 1도 없고
조상우 왜 연투?
박세웅 왜 쉼?
최주환 안쓸거면 왜 뽑음?
믿을 투수 없어서 원태인 최원준 3이닝따리 할거면 이의리는 왜 길게 던지고?
다 까여야 맞지만 특히 최정은 왜 안 뽑았는지?? 선발라인업에 좌타 7명인거 보고 어질어질;;
@사이좋은원수 야수 13명 중 좌타가 9명인데 7명이면 적게 낸 겁니다만? ㄲㄲ
@우주존엄깻잎파닭 구와악
최정…안치홍… 그립습니다
한화팬입니다. 복잡미묘합니다. 응원은 했는데 지고나니 더 억울한 기분인건 어쩔수 없나봅니다.
다음번에 언급해주실것 같긴 한데, 일본전 양의지 4삼진 당할동안 교체 없던것과 조상우 멘탈 나간거 티비 중계로도 훤히 보이는데 교체없던건 진짜 두고두고 이해가지 않았던 운용입니다.
일본전은 거의 공포의 총합이었죠. 아예 그 경기만 따로 적을까 합니다.
선수 선발과정이 워낙 노답이여서 안그래도 선발진도 좋은편이아닌데 거기에 장타까지 부족한건 뭘로 감당할려고했는지 이해가안됬...
아주 재밌게 빡치네요. 감사합니다. 한화팬으로써 아주 부끄럽게도 협회가 고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