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씨 집안의 가장인 소구의 아버지는 누나들이 글공부 안 하는 것은 별로 신
경 쓰지 않았지만, 소구의 형과 소구 둘이 글공부를 안 하는 것을 알면 당장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 때까지 매로 다스렸다. 문관의 집에서 태어
난 남자아이는 당연히 글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여자아이는 그저 읽고 쓸
줄 알고 장부를 정리할 줄 알면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남자
아이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소구 역시 억지로라도 글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훌륭한(?) 벼슬아치가 되어서 백성들의 위에 군림하
고 뺏기는 위치가 아닌 뺏는 위치에 서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
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또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몽사몽간의 소구의
머리 속을 맴돌면서 수그러지는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려고 필사적인 소구였지
만 잠의 마수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으--졸면 안 되는데-----. 졸--면---.'
필사적인 의지로 졸음을 참고 며칠 전 간신히 땐 천자문 다음으로 보게 된,
자신의 앞에 놓인 소학(小學)이라는 책을 쳐다보던 소구는 책을 읽으려고 했지
만 몸이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항상 졸고 있는 상태인 소구는 벌을 받을 때
도 일단 책은 가지고 가서 펼쳐 놓아야 했기에 벌을 받고 있는 중이긴 했지만
바닥에 책자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한글자라도 더 머리 속에 집어넣
지 않으면 용돈은 줄고, 매는 늘어날 것이다.
소구의 감기고 있는 두 눈에 글자가 둘로 보였다 하나로 보였다를 반복하더
니 점점 흐려졌다. 결국 소구라는 이름의 현령의 막내아들은 그대로 잠 속에
빠져들었다.
책이라는 것이 보이면 더욱 더 잠에 잘 빠져드는 소구였다. 소구에게 있어서
책은 수면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문학사라고 불리는 선비는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비록 돈이 없어 탐관이라 알려진 방종대의 자식들을 가르치
는 일을 떠맡게 되었지만 그에게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예로부터 군자의 삼락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중에는 제자를 받아들여 가르치
는 일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 군자라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제자를 받아들여 즐
겁게 지금까지 쌓은 학문을 가르칠 꿈에 부풀었던 문학사는 방씨 집안의 자제
들을 만나고서는 군자의 삼락중 하나인 제자를 가르치는 즐거움은 포기한 상태
였다.
우선 현령의 장남인 방종구라는 열 여섯 살 난 아이는 정말 무지하게 열심히
글공부를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문학사는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지금은 아니었
다. 열심히 학문을 배우는 이유가 단지 과거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만 공부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그가 기뻐할 수 있겠는가? 학문을 단지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배우는 것임을 알기에 문학사는 이 방씨 집안의 장남을
결코 좋아 할 수 없었다. 이 아이 역시 나중에 그 아비처럼 탐관이 될 것이
뻔한 것이다. 그 자신이 또 한 명의 탐관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는 이 방씨 집안의 장남 방종구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는 것이다.
둘째인 딸 방화련이라는 여자아이는 글공부보다 무술에 심취해 있는 상태였
다. 글자는 그저 보고 읽고 쓸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였
다. 물론 여자니 과거에 나갈 정도의 지식을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이 학문인 이유는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절과 교양을 쌓는 것은 양가집 규수의 덕목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가 사
내처럼 남장을 하고 길거리의 불량배에 불과한 무리들, 그것도 대부분 관아의
아전들과 빌붙어서 기생하는 흑도의 무리들에게 권장술을 배우는 광경을 목격
한 터였다. 조신한 양가집 규수가 할 행동은 결코 아니었기에 이 아이 또한 문
학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셋째 딸 방수련이라는 아이는 보기 드물게 예쁜 얼굴을 한 아이였다. 이제
열살 밖에 안된 아이였지만 모르긴 몰라도 자라면 엄청나게 예쁜 미인이 될 것
은 분명했다. 거기에 시와 그림에 뛰어났고 쓰는 서체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리는 것은 징그러운 뱀이나 개구리 쥐 같은 것이고, 글자를 쓰면 욕
설과 낙서가 대부분이었다. 거기다 불과 열살 밖에 안된 아이가 천박한 기녀처
럼 진한 화장을 하고 온갖 패물들로 몸을 감싸는 광경은 결코 보기 좋은 광경
일 수는 없는 것이다. 더 더욱이 머리속에 있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더 자신이
예쁘게 보일까하는 한가지 생각뿐인 아이였다. 머리는 텅텅 비고 얼굴만 예쁜
아이를 학자인 문학사로서는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가집 규수다운
면모를 여러모로 보여주고 있는 아이였지만 반쪽자리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아
이 또한 등봉현의 거유 문학사에게는 차지 않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너무나
영악한 것이다. 평생 잘 먹고 잘 살려면 부자이면서 권력도 있는 그런 집안으
로 시집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모름지기 그러려면 여자로서의 자신
의 값이 비싸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열살 밖에 안된 어린
여자아이의 생각이었기에 이 아이의 얼굴이 예쁜 만큼 더 보기 싫은 아이였다.
그래서 이 아이 또한 문학사로서는 싫어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 방씨 집안의 막내인 방소구를 바라보며 문 학사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혼나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불
과 일곱 살 밖에 안 되는 꼬마는 꿋꿋하게 초지일관 밥 먹을 시간을 제외하고
는 잠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도 매로도 다스리고 조용조용 아이를
타이르며 글공부를 해야 사람의 도리를 할 수 있다는 그런 말도 해주었다. 유
일하게 이 방씨 집안에서 이 아이만이 순수한 아이였다. 그가 말로 설득하면
말귀를 알아듣고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아이는
체질이 문제였다. 완전 두 손 두 발 다 든 문학사는 소구가 잠들면 그런가보다
하고 이제 넘어가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나마 그가 여기 온지 이
제 석달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천자문을 땐 것만도 다행한 일이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 모두들 이제 그만 나가봐도 좋다."
문학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자 언제 졸았냐는 듯이 눈을 뜬 세 아이
의 입에서 즐겁다는 목소리로 인사가 흘러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스승님."
그러나 팔고문을 만들고 있는 방씨 집안의 장남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스승님, 저는 아직 팔고문을 다 만들지 못했으니 이따 다 만들고 나면 틀
린 부분을 알려 주십시오."
언제나 그렇지만 공부하는 시간은 하염없이 졸립지만 끝나는 시간만은 정신
이 번뜩 나는 아이들이었지만, 과거시험을 보고 높은 관직에 오르려고 열을 내
고 있는 장남만은 아니었다.
보기 싫은 이 아이와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고 싶은 문학사는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종구야. 그것은 내일 확인해 줄 터이니 이만 물러가거
라."
문학사의 입에서는 조금은 짜증이 배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종구라는 이
름을 갖고 있는 방씨집안의 장남은 글선생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바로 알
아 챌 수 있었다. 모름지기 벼슬아치의 첫 번째 조건은 눈치라고 할 수 있었
고, 그런 면에 있어서도 방종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럼 내일 만들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스승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냐. 너도 이제 그만 네 방으로 물러가도록 하거라."
"예."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나머지 세 아이는 벌써 후원을 벗어나고 있었
다.
이제부터 아이들에게는 놀 수 있는 즐거운 자유시간이고, 이 악동들이 풀려
나는 시간이 그 때부터는 방씨 집안의 하인과 하녀들에게는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 시각 그 네 아이들의 아버지인 방종대는 관아의 재판을 집행하고 있었다.
공명정대(公明正大)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법정의 판결을 내리는 자리에 있
는 방종대라는 이름의 현령은 묵묵히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두 남자와
그들의 옆에 서 있는 변론을 맡은 자들을 한꺼번에 쳐다보다 옆으로 시선을 돌
렸다.
이방 나한탁이 턱에 난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양쪽의 원고이자 피고인자를
쳐다보더니 옆에 변론을 맡고 있던 두 사람을 바라본 다음 다시 판결을 내릴
현령 방종대를 쳐다보았다.
" 잠시 휴정한다!"
이방의 눈치를 받은 방종대는 재빨리 휴정을 선포하고 자신이 혼자 있는 집
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방 나한탁의 뒤를 따라 두 명의 변호인들이 따라갔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동안 노닥거리다 재판장으로 들어서면서 자신이 앉는
자리 바로 위에 공명정대(公明正大)라고 쓰여진 현판을 바라보며 방종대는 속
으로 생각했다.
'흐흐, 공명정대가 아니라 다승소패(多勝少敗)지---. 많이 바치는 쪽은 이기
고 적게 받치는 쪽은 질 것이니 양쪽에서 받치는 돈이 최소한 천냥 이상은 될
게야---, 암 그렇고 말고.'
그렇게 흐뭇한 상상을 하면서 자리에 앉은 방종대의 입에서는 뚱뚱한 배만큼
이나 묵지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개정(開廷)!"
방종대가 소리 친 직후에 이방 나한탁이 탁자 밑으로 두 자루의 주머니를 건
네주면서 속삭였다.
" 대인, 이가장(李家莊)에서는 천 이백냥을, 등소군의 집에서 들어온 것은
천냥입니다요."
그가 앉은자리 옆에 다가온 염소 수염의 이방 나한탁은 서로 맞고소를 한 두
사람이 제출한 고소장과 함께 두 개의 주머니를 방종대의 소매 속에 보이지 않
게 찔러 넣으면서 그렇게 속삭였다.
방종대는 자신의 앞에 놓인 두 장의 소장을 유심히 살펴보는 척하면서 사실
은 그가 앉아 있는 자리의 탁자 밑으로 두 자루의 돈주머니의 무게를 비교해
보았다. 내용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무거운
돈주머니를 내밀었느냐는 것이었다.
방종대는 등봉현에서 가장 부자라고 소문난 이가장(李家莊)과 뒷골목 건달패
우두머리인 엄소군이 받친 돈주머니를 비교해보았다. 돈도 이가장 쪽에서 더
많이 받쳤고 아무래도 건달 편을 들어주기에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특이
나 이곳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는 그로서는 이 지역의 대지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었다.
"이제 판정을 내리겠다!"
그렇게 소리치면서 방종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판정은 숨소리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방종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맛에 관직을 산 거야---, 돈도 장사 할 때 보다 많이 들어오고---.'
본래 장사아치였던 방종대는 관직 역시 하나의 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
다. 뇌물을 받치고 벼슬아치의 길에 올라선 방종대의 좌우명은 한가지였다.
<긁을 수 있을 때 최대한 긁는다>
그가 이곳에 부임하고 나서 벌어진 송사 중 가장 큰 송사였다. 단순히 폭행
상해라는 죄목의 송사가 벌써 두 달이나 질질 끈 것은 그 두 사람이 이 등봉현
에서 가장 돈 많은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엄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고, 등소군은 지금 즉시 감옥에 가두어라! 추후
다시 재심하여 형량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판결을 내린 방종대는 흐뭇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이곳에 새로 산 자
신의 집으로 퇴청했다. 재판이 길어지면 길수록 아전들과 포졸들 그리고 방종
대 본인에게 떨어지는 것이 많은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재판을 벌이는 두 사람
은 등봉현에서 가장 돈 많은 자들이었기에 재판은 될수록 질질 끌면 끌수록 주
머니는 더욱 두둑해질 것이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독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즐감합니다.
다승소패라...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탐관오리였군요?... ㅋ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