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약2:1
사람은 보이는 대로 사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좋아 보이면 세상에 자리를 펴고 살고, 하늘이 좋아 보이면 하늘에 수놓고 삽니다. 보이는 게 하나 뿐이라면 그것만 보고 살지만, 이것도 보이고 저것도 보이면 이것과 저것을 오가며 향방없이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발딛고 뭘 보며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관계하는 존재로 만드셨는데 죄는 모든 관계를 깨뜨렸습니다.
People seem to live as they are seen. If the world looks good, we make our homes there; if the sky looks good, we embroider ourselves in the sky. If there were only one thing to see, I would live by that alone, but when I see this and that, I sometimes drift aimlessly between them. That is why it is important to know where to set your feet and what to see: God made humans beings of relationship, but sin has broken all relationships.
-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모든 피조물과 인간과의 관계가 재다 죄 때문에 깨지고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죄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실상을 차별이라는 단어로 압축시킵니다. 실로 죄악이 넘쳐나는 이 세대에는 학력, 빈부, 지역, 나이, 외모, 남녀......, 이 모든 것이 차별의 이유가 됩니다.(1) 그러나 40대는 미모의 평준화가, 50대는 지성의 평준화가, 60대는 물질의 평준화가, 70대는 정신의 평준화가, 80대는 목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The relationships between God and humans, between humans and one another, and between all creatures and humans have been broken and severed because of sin. The Apostle James sums up the reality of the society in which these sinners live in the word “discrimination.” In this generation, overflowing with sin, everything education, wealth, region, age, appearance, and gender becomes a reason for discrimination. (1) However, it is said that in one’s 40s, beauty is leveled; in the 50s, intelligence; in the 60s, material wealth; in the 70s, spirit; and in the 80s, even life itself.
-
문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러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시어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하게 하셨는데 마치 제 돈 주고 구원을 산 것처럼, 졸업장으로 구원의 자격을 얻은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2-5). 내가 사람을 차별하는지 몰랐는데 최근에 지인에게 메일 한통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본의 아니게 내게 이로운 사람만을 가까이 두려고 한 것을 회개합니다.
The problem is that this kind of discrimination is happening even within the church community. God chose the poor in the world to be rich in faith and to inherit the kingdom He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yet they act as if they bought salvation with their own money or obtained the qualification of salvation through a diploma (2-5). I didn't realize I was discriminating against people, but I was shocked when I recently received an email from an acquaintance. I repent for having unintentionally tried to keep only those who are good to me close.
-
인간들은 서로를 구분 지으려는 악한 생각으로 늘 상대방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근거로 차별하며 살아갑니다(4). 성령께서는 그러한 나의 못된 본성을 아시고 판단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본성을 거슬려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상대방을 보는 일에 도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15:7).”
Driven by the evil desire to distinguish themselves, humans constantly judge others and live by discriminating based on those judgments (4). The Holy Spirit knows of my wicked nature and makes me stop judging. And they are challenged to view others with the heart and mind of Christ, defying that very nature. "Therefore, just as Christ received us and gave himself over to God for our sake, so you also should receive one another (Romans 15:7)."
-
우리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용납하면 하나님께서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서로 용납하는 일을 연습시키신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를 보면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자신의 세계가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최선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우주를 섭리하십니다. 특별히 창조의 절정이자 최고의 걸작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마음껏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I believe that the Holy Spirit practices mutual acceptance because, through our acceptance of one another in relationships, God is glorified. He says not to despise the poor. God governs the universe so that the world He created reveals its best form in each of its place. Especially, the saints, the climax and greatest masterpiece of creation, desire to fully reveal God’s amazing handiwork.
-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획일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마음대로 가치를 매기고 서로 경쟁 구도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존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서로의 관계를 망가뜨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빌2:3) 여겨야겠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덕을 세워 주는(살5:11) 사랑의 공동체 말입니다.
However, people, regardless of God's will, set uniform standards, assign values arbitrarily, and create a structure of competition among themselves. We must not forget that this diminishes the value of existence and damages our relationships."In nothing should we engage in quarrels or boast, but rather, with humility, consider others above ourselves (Philippians 2:3). It is a community of love that encourages one another and builds up each other (Salvation According to God 5:11).
-
우리는 연약하여 누구라도 넘어지거나 실족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반응은 비난하고 깔아뭉개고 짓밟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긍휼이 여기고 일으켜 주며 격려자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을 존귀기 여기시니 성도가 그들을 괄시한다면 비방하는 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안에서 나와 다른 지체의 모습을 밀어내지 말아야겠습니다.
We are weak; anyone can stumble or fall. At this time, what God desires is not to condemn, crush, or trample, but to show mercy, lift them up, and encourage them. Since God honors those who are overlooked by the world, if a believer despises them, they are siding with the slanderers and oppressors. We must not push aside the appearance of others that is different from ourselves within the community.
-
행한 대로 거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랑과 긍휼의 원리로 내 이웃을 대하면 나도 하나님께 그런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세상의 기준을 전복시키신 하나님, 사랑의 법을 거스르는 세상의 판단 기준, 인간은 왜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서열화하는가? 긍휼은 단순한 동정인가, 아니면 차별의 질서를 뒤집는 신앙적 실천인가?
You will reap what you sow. If I treat my neighbor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love and mercy as God does, I will receive such judgment from Him. God who does not judge by appearance, who subverts the standards of the world, and whose standards of judgment go against the law of love why do humans fail to accept the existence of others as they are and rank them by their own standards? Is mercy merely human pity, or is it a faith-based practice that overturns the order of discrimination?
-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1)
차별의 예(2-4)
a.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2
b.약한 차별의 구체적인 예:3-4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가난한 자들(5-7)
a.차별은 최고의 법을 범하는 것:8-11
b.심판을 생각하며 긍휼을 행하라:12-13
-
내 형제들아(1a)
영광의 주(1b)
곧 우리 주(1c)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1d)
믿음을(1e)
너희가 가졌으니(1f)
사람을 차별하여(1g)
대하지 말라(1h)
-
만일 너희 회당에(2a)
금가락지를 끼고(2b)
아름다운 옷을(2c)
입은 사람이(2d)
들어오고(2e)
또 남루한 옷을 입은(2f)
가난한 사람이(2g)
들어올 때에(2h)
-
너희가(3a)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3b)
눈여겨보고 말하되(3c)
여기 좋은 자리에(3d)
앉으소서. 하고(3e)
-또 가난한 자에게(3f)
말하되 너는(3g)
거기 서 있든지(3h)
내 발등상 아래에(3i)
앉으라 하면(3j)
-
너희끼리(4a)
서로 차별하며(4b)
악한 생각으로(4c)
판단하는 자가 (4d)
되는 것이 아니냐(4e)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5a)
들을 지어다(5b)
하나님이(5c)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5d)
택 하사(5e)
믿음에(5f)
부요하게 하시고(5g)
또 자기를(5h)
사랑하는 자들에게(5i)
약속하신 나라를(5j)
상속으로 받게 하지(5k)
아니하셨느냐(5l)
-
너희는 도리어(6a)
가난한 자를(6b)
업신여겼도다(6c)
부자는 너희를(6d)
억압하며(6e)
법정으로 끌고 가지(6f)
아니하느냐(6g)
-
그들은(7a)
너희에게 대하여(7b)
일컫는 바(7c)
그 아름다운 이름을(7d)
비방하지 아니하느냐(7e)
-
너희가 만일(8a)
성경에 기록된 대로(8b)
네 이웃 사랑하기를(8c)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8d)
최고의 법을 지키면(8e)
잘하는 것이거니와(8f)
-
만일 너희가(9a)
사람을(9b)
차별하여 대하면(9c)
죄를 짓는 것이니(9d)
율법이 너희를(9e)
범법자로 정죄하리라(9f)
-
누구든지(10a)
온 율법을 지키다가(10b)
그 하나를 범하면(10c)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10d)
-
간음하지 말라 하신(11a)
이가(11b)
또한 살인하지 말라(11c)
하신 즉(11d)
네가 비록(11e)
간음하지 아니하여도(11f)
살인하면(11g)
율법을(11h)
범한 자가 되느니라(11i)
-
너희는(12a)
자유의 율법대로(12b)
심판 받을 자처럼(12c)
말도 하고(12d)
행하기도 하라(12e)
-
긍휼을(13a)
행하지 아니하는(13b)
자에게는(13c)
긍휼 없는(13d)
심판이 있으리라(13e)
긍휼은(13f)
심판을 이기고(13g)
자랑하느니라(13h)
-
차별, 어디서 생겨난 믿음인가?_Where Does the Belief of Discrimination Come From
차별, 뭘 얻으려는 태도인가?_Discrimination: What are you trying to gain
차별, 어떤 심판이 기다리는가?_Discrimination: What Judgment Awaits
-
영광의 주 예수님을 믿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이여 찬양을 받으소서. 세상에 대하여 가난한 자를 택하시고 믿음에 부요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외모로 판단하고 부자 되려고 난리 브루스를 치고 있는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이웃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며 내 소유를 다 팔아 그 나라를 살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Praise be to God, who has allowed us to believe in the glorious Lord Jesus. Praise God, who chose the poor and made them rich in faith regarding the world. Help me abandon the greed that drives me to judge others by their looks and strive for wealth, show mercy to my neighbors, and sell all I have so they may live.
2026.10.18.sun.Clay
신학 비평//
인간은 타인을 바라보면서도 정작 타인 그 자체를 보지 못한다. 부와 학력, 외모와 지위를 통해 상대의 가치를 판단한다. 라캉의 관점에서 보면 타인은 나의 욕망과 사회적 상징질서를 통해 해석되는 존재다. 따라서 차별은 단순한 개인의 편견을 넘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치의 서열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야고보는 금가락지를 낀 부자와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자를 대비시키며 신앙 공동체의 위선을 폭로한다.
-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형제라고 고백하면서 실제로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별한다. 문제는 차이를 인식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차이를 인간의 존엄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데 있다.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얼굴은 나의 판단보다 먼저 윤리적 책임을 요구한다. 야고보의 긍휼 역시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가난한 자에게 빼앗긴 자리를 돌려주고, 배제된 사람을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라는 실천적 요구다.
-
그러나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가난한 자를 존중하는 이유가 단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신앙은 또 다른 선택과 배제의 논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야고보가 말하는 최고의 법, 곧 이웃 사랑은 가난과 부유함이라는 구분마저 넘어 인간을 동등한 존엄의 존재로 대하라는 요청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는 선언은 판단 자체의 폐지가 아니라 판단의 권력이 긍휼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
잘못을 분별하되 인간의 존재까지 정죄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유의 율법이 지향하는 윤리다. 공주야! 신앙의 성숙은 얼마나 많은 진리를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존엄하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차별이 타인을 내 기준에 종속시키는 폭력이라면, 긍휼은 그 기준의 절대성을 내려놓는 결단이다. 결국 야고보가 묻는 것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에 앞서, 나는 누구를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