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었음에도 잠 못 자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도 있었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앉아 있는 노승은 오늘 낮에 들은 소식에 자신의 마음도
저 바람에 흔들리는 등잔 불 같다고 느껴졌다.
부처를 섬기는 승려로서 부동의 마음을 지녀야 함에도 수십 년 쌓은 불심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결국 자신의 제자를 야심한 시각에 불러낸 것이
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제자를 바라보는 노승의 입에서는 힘겹게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이 일은 정말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가장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를 불러서 이런 일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었다.
" 평아, 네가 좀 가야 될 것 같구나."
"언제까지입니까?"
"감옥에서 풀려날 때까지 만이다. 그 이후는 그 아이의 운에 달린 것이고
---. 내 비록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했다고 하나 죽은 누이의 부탁을 차마
저버릴 수가 없구나---."
나직한 한숨과 탄식을 터트리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부를 바라보는 평이라 불
린 제자의 마음 또한 편할 수가 없었다. 한없이 존경하는 사부, 제자인 자신뿐
만 아니라 정파인 모두가 존경하고, 사파나 마도인들 조차 존경하는 사부의 얼
굴에 근심을 드리우게 한 그자를 생각하면 그 스스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염려 마십시오. 사부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접어두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양평은 이미 등소군이라는 자에 대한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등봉현 일대에
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소림사에서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피하
고 싶은 일이었지만,, 사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을 할 사람은 양평 자신
뿐이었다. 다른 소림의 제자들에게 이 일이 알려진다면 사부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사부의 제자가 된 것을 그는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열심히 수련을 쌓
은 덕분에 무림에서 금룡(金龍)이라는 멋진 별호를 얻기도 한 그였다. 그래서
그 역시 한없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런 일은 결코 하고 싶은 것이 아니
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부의 일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심기
인 사부의 심기를 더 어지럽힐 수는 없는 것이다. 청정무구한 삶을 살아온 사
부가 속세의 일에 휘말린 것이다. 평이라 불린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부
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일뿐이었다.
"어서 가 보거라."
하나의 늙은 목소리와 또 다른 젊은 목소리가 오간 곳은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少林寺)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은 선방 안이었다.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소림사의 밤하늘 위로 솟구치고, 등봉현의 관청이 있
는 곳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갔다.
자시(子時)가 넘은 시간이었다.
늦은 밤까지 켜져 있던 집들의 불도 다 꺼지고 거리는 어둠 속에 들어갈 때
밤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깡!"
하는 징 소리가 나면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조심, 문 조심-----!"
길게 말을 끌면서 징을 치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야경꾼의 구성진 목소리가
밤의 고요를 깨트리고 골목 안에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소리치고 있는 야경꾼이 무색하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사람들
이 있었다. 바로 그의 머리 위로 지붕 사이를 뛰어 넘어 가는 누군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암만 그렇게 떠들어대도 털릴 놈은 털리고 불날 집은 불나더라. 자기 머리
위에 있는 사람도 못 보는 놈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
고 그 징 치면서 돌아다니는 야경꾼의 뒤에 어깨에 창을 걸치고 천천히 걸어가
는 두 포졸이 있었다.
두 포졸 중 한 명은 말상의 얼굴에 꽤나 큰 키를 가지고 있는 왕종이었고,
또 한명은 짜리몽땅한 키에 뚱뚱한 배를 가지고 있는 양순이었다. 그래서 그들
이 같이 있을 때는 다른 포졸들이 그들을 뚱뚱이와 홀쭉이로 불렀지만 홀쭉이
왕종은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왕종에게는 그것이 아주 싫은 별명이었지
만, 그의 발이 크다는 것을 그 자신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은 방종대라는 현령이 등봉현에 부임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왕발아, 좀 참아. 앞으로 두 골목만 더 돌면 교대라구."
"이놈아, 너도 밤새도록 개봉 땅까지 뛰어갔다 와 바---, 아직까지 다리가
후들거린다구."
생각 같아서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모두가 잠든 한 밤중이었다.
그래서 왕종은 조용히 말했지만, 뱉어내는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왕발이 그것이 왕종이 싫어하는 그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왕발이라는 별명
으로 인해 안해도 될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 왕종의 팔자였다. 현령의 심부름
은 거의 대부분 왕발이 왕종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단지 발이 빠르다는 이유
만으로---. 그리고 이틀 전에는 밤을 새서 개봉 땅 까지 뛰어갔다 와야만 했던
것이다.
" 그래 그래, 네 심정 내가 안다. 조금만 참어라."
"아무래도 안되겠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구."
그렇게 말하면서 길가의 담장 아래 처마 밑으로 들어간 왕종은 품에서 연초
를 꺼내어 물었다.
" 두 골목만 가면 관아가 나오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래. 조금만 쉬었
다 가자구."
그렇게 말하면서 양순 역시 밤이슬을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가 연초를 꺼내
물었다.
'틱 틱' 하는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터지고 두 개의 곰방대에 불이 붙었
다.
둘은 나란히 처마 밑에 앉아서 묵묵히 연초만 빨아댔다. 그리고 시선은 밤하
늘에 반짝이는 별들에게 고정시켰다.
나이 사십이 넘도록 말단 포졸에 머무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쌓인 말은
많지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침묵한 채 연초만 빨아대며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휙'
왕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 이봐, 왕발이 왜 그래?"
옆에 앉아서 연초를 빨던 양순이 곰방대를 입에서 때고 연기를 동그란 모양
으로 만들어 내뿜으면서 물었다.
" 아--아닐세. 무언가 커다란 야조(夜鳥)가 지나갔나 보이---. 어서 한 바퀴
돌고 다시 마작판이나 끼어들자구."
"자네, 순찰이 끝나고 나서 바로 등가 놈 도박장으로 갈 생각인가?"
"글세---, 지금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자네 벌써 이달 월급 다 날리지 않았나? 잘못하면 건너 마을 정가처럼 마누
라까지 잃어버리는 수가 있어."
"크크크, 그 도박장 주인이 지금 감옥 안에 있다네. 내 외상 빚은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지."
음흉하게 웃으며 말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양순은 고개를 내저으며 물었다.
" 그 등가 놈한테 자네도 돈 받았나?"
"돈 대신 내 빚을 탕감해주었네."
"그럼 그만 하라고. 잘못 되면 정가처럼 마누라하고 자식들하고 다 노비로
팔려 가는 수가 있어. 자네도 그 꼴 나고 싶어서 그래?"
"에이, 설마----?"
"그 설마가 사람 잡는 거야. 이놈아 너처럼 그 정가 놈도 한판만 더 해야지
한판만 더해야지 하다가 쪽박 찬 거 잘 아는 놈이 왜 그러냐?"
"그래, 어차피 그 도박판이 사기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 내 실력으로 거
기서 한 몫 볼리도 없고---"
"잘 생각했네. 관아로 돌아가면 안에서 마작판 벌어졌을 거야. 그런 판에서
노는 거야 다 동료들이니 잃어도 한턱 냈다고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그래, 지금 한참 벌어지고 있겠구먼."
"어서 가자구. 판 끝나기 전에 우리도 조금은 놀아야지."
곰방대에서 재를 털어 내며 두 포졸은 다시 순찰을 돌기 시작하고 지붕 위에
납작 엎드린 채 숨어서 포졸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양평은 고개를
흔들었다.
"포졸들과 불량배들이 한통속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게로구나---."
오늘 낮에 관청 근처에 살고 있는 소림의 속자제자들을 통해 등소군이라는
자가 어떤 자 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터였다.
사부의 조카라는 등소군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자는 한마디로 천하의
불한당이요 난봉꾼이었다. 게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어처구니없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은 뒤에는 보호는커녕 스스로 등소군을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놈 때문에 사부의 청정(淸淨)이 깨어지고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이 양평을 너무나 열 받게 했다. 그러나 이미 사부의 명은 떨어졌고 그놈을 보
호해야 하는 것은 양평의 책임이었다. 등봉현 일대에서 가장 큰 호족인 이가장
에서 등소군을 죽이려고 살수를 고용했다는 소문마저 파다한 상태였다.
지붕 위에서 멀어져 가는 두 포졸을 바라보던 양평의 입에서는 한마디가 흘
러나왔다.
"콱 뒈져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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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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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입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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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또 어디 행차하셨나봐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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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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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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