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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위에 다시 선 ‘박키아벨리’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박지원,
그가 교도소 담장 위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출석 요구에 쫓겨 사실상
‘도망자’가 되고 있는 박지원.
과연 그는 검찰이 쳐놓은 덫에 걸려 허무하게 교도소 담장 안으로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고향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키웠던 잡초 같은 생명력과 김대중 스쿨에서
단단히 훈련받으며 축적한 정치적 기지를 발휘해
그의 정치인생에 다시 몰아치고 있는 이 위기의
폭풍을 거뜬히 뚫고 건재를 과시할 것인가?
물론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검찰이 박지원을 포위하기 위해 얼마나 촘촘하게 덫을 깔아 놓았는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박지원은 결코 검찰의 한방에 방어도 못한 채
싱겁게 링 바닥에 다운될 ‘유리턱 인간’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 그는 동교동 사단 안에서 DJ를 가장 빼닮은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DJ가 누구인가!
DJ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의주도한 인간형! 박지원이 ‘천하(天下) 책사’
DJ의 마음을 휘어잡아 동교동에서 수 십년 간 ‘박힌 돌’ 행세를 했던
가신들을 차례로 제치고DJ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강의 참모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두 인물의 용의주도함과 정치적 기지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DJ는 1996년 당시 대변인 박지원의 자서전
‘넥타이를 잘 매는 남자’에 실린 추천사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지칠 줄 모르는 성실함. 놀라운 정치적 순발력’ 박지원 대변인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치인의 최고 덕목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생김새와 언변과 문필력과 판단력이 모두 잘 어우러지면
어느 분야에서든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법인데,
박 대변인이 그런 정치인이다.”
지칠 줄 모르는 성실함과 놀라운 정치적 순발력.
이는 용의주도하게 준비하는 정치적 책략을 의미한다.
자기를 빼닮았다는 소리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박지원과 검찰,
그리고 이명박 정권 간의 게임은 상당히 오랫동안 밀고 당기면서 진행됐다.
보해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당한 게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지금으로부터 1년 5개월 전인 지난해 2월19일.
그 긴 기간 동안 박지원 개입설이 끊임없이 세간에서 거론되는 동안,
주도면밀한 박지원이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을 허송했을 리가 없다.
검찰이 밝힌 대로 박지원이 보해저축은행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게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박지원은 모종의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하고도 남을 인물이다.
그 근거는? 박지원은 그간 저축은행 문제가 시끄러워질 때마다
아주 뜬금없이 들릴 만큼 이명박 정권을 향해 불쑥불쑥 대선자금 문제를 거론해왔다.
왜 그랬는지, 그 숨은 의도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자신을 향해 그물을 치고 있다는 걸 탐지하고 청와대한테 알아들으라고
역공을 폈던 것 아닌가?
호남권 정치 실세들의 저축은행 로비 수뢰설이 끊임없이 나오던 지난해 5월.
청와대에서 박지원의 연루설이 흘러나오자 박지원은 당시 정무수석 정진석 등의 연루 의혹을
직접 실명으로 거론하며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고 대들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쑥 들어가 버렸다.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 이게 무슨 소리?
그리고 청와대는 왜 논란을 이어가지 않았는가?
박지원의 발언 의도를 고작 저축은행 문제 정도로 한정해
청와대와 함께 인당수에 뛰어 들어가려는
물귀신 작전이나 단순히 공포탄을 쏘아 올리는 것으로만 보는 건 DJ와 박지원의 정치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 이들의 정치는 표피적이지 않고 다면적(多面的)이다.
발언의 행간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건드리면 이명박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물어뜯겠는 함의! 그게 무엇?
박지원은 검찰총장 후보자 천성관의 해외여행 신용카드 사용 내역까지 들춰내 낙마시켰다.
비록 몸은 야권에 있지만 여권 실세 못지않은 정보망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
MB 정권의 대선자금 문제를 비롯해
여권이 그간 꽁꽁 숨겨놓은 ‘판도라 상자’를 까겠다는 협박?
당시엔 청와대만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역시 박지원은 이번에 검찰이 출석 요구로 강경대응하자 대선 자금 수사를
강력히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이에 앞서 박지원은 자신의 정치적 순발력과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검찰과 정권을 수세에 몰아넣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정두언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불만을 품고
부결에 참여할 것이라는 낌새를 알아채고 민주당을
전격 동참시킨 것! 박지원의 기지가 그대로 적중!
새누리당은 부패 불감 정당이라는 낙인이 깊이 찍히게 만들고,
검찰을 향해선 자신을 겨냥해 출석 요구서를 보낼 명분을 희석시켜 버리는데 성공!
적(敵)을 기습해 일거에 무력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명줄을 따버리는 ‘순간 포착’의 실력,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DJ의 대(代)를 이어, 정치9단의 위상을 확실히 굳히는 순간이었다.
이런 박지원의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공격에 혼비백산하는 새누리당! 박지원은
‘정치9급’의 새누리당을 향해 혼자 낄낄거렸을지도 모른다.
뭐? 이 정도의 정치적 상상력과 실전 능력을 갖고 정권 재창출 한다고?
박지원은 치밀한 인간이다.
DJ 장례식 때 관을 들고 갈 동교동계 인사의 명단도
자신이 미리 만들어 부인 이희호의 승낙을 받아 밀어붙였다.
‘올드 동교동계’는 모두 빼버리고.
따라서 앞으로 대선 정국에서 검찰과 박지원,
박지원과 정권 간에 펼쳐지게 될 ‘게임 제2라운드’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것임이 틀림없다.
박지원의 용의주도하게 준비하는 정치적 기지,
그의 단단한 정치력에 대해 결코 의도적으로 인색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검찰이 박지원과의 정면대결에서 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한명숙을 건드렸다가 무죄 판결을 받게 함으로써
다시 금배지 달고 재기하게 만든 검찰의 실력과
결기를 회상해보면 오히려 박지원의 개가로
종지부를 찍거나 흐지부지 종결될 가능성을 점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박지원의 책략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김대중 밑에서 훈련된 것인가,
아니면 타고 난 것이거나 스스로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 모두 맞는 말이다.
김대중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을 강조했다.
원칙에 대해서는 서생과 같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상인과 같이 현실에 입각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DJ 스스로 자신이 ‘마키아벨리스트’임을 고백한 정치철학!
바로 박지원이 그렇다. ‘박키아벨리’!
이를 이번 박지원과 검찰 간의 게임에 구체적으로 대입해 본다면,
박지원은 예컨대 대선자금 문제라는 원칙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듯이 집착하며 달라붙고,
물밑에서는 검찰과 정권을 상대로
‘빅딜’을 모색하는 마키아벨리적 해법을 찾게 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는 한가지만을 정답이라고 믿는 모범생이 하기에는 버거운 직업이다.
내공이 고목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축적되지 않은 사람은 생존하고 성공할 수 없다.
퇴기(退妓)의 화장 지운 얼굴에 남겨진 깊은 주름살처럼!
악랄하기도 해야 한다. 바로 박지원의 인생과 정치가 그걸 말해준다.
그는 인생 역정에서부터 DJ와 판박이라 할 만큼 온통 미스테리였고 불운했다.
박지원은 정치입문도 DJ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심지어 학력에 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사상 문제가 시비거리가 되는 것도 똑같다.
박지원은 아버지가 좌익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왜?
“내가 워낙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는 어머니는 물론
우리 형제들의 삶에 줄곧 적잖은 영향을 끼치셨다.
아버지는 이른바 ‘좌익 운동가’였던 것이다.”
박지원은 아버지가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에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단지, “1948년 여순 반란 사건 시절에 갑자기 돌아가셨던 것이다.…
남겨진 자식들에게 좌익 운동가의 아들이란
별로 달갑지 않은 멍에만 남겨놓으시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순 반란 사건에 돌아가셨다?
이런 정신적 시련이 인간의 내공을 키운다.
나는 박지원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이념’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2010년 7월26일 문화일보 시론에 '형의 도리‘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의 정계은퇴를
강력히 촉구하는 칼럼을 썼다.
그런데? 그 다음날, 원내대표 박지원이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내가 쓴 칼럼을 허공에 흔들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의도가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박지원은 이상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난 (당신하고) 이념이 다르다.”
왜 DJ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데
박지원을 적임자로 삼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2000년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과 북한의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간에
3월23일 베이징에서 이뤄진 제2차 특사 접촉 결과를
기다리는 자신의 초조한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때는 봄날, 나는 제비가 박씨를 물고 돌아오듯
박 장관이 좋은 소식을 물고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4월8일 제3차 접촉,
DJ는 “ 박 장관이 마침내 박씨를 물고 나타났다”고 감격했다.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 것.
박지원이 1983년 봄 미국으로 망명 온 DJ를 처음 만난 지
꼭 17년 만에 김대중의 명실상부한 제2인자로 자리를 굳히는 순간이었다.
박지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회의원을 꿈꾸었다.
그러나 좌익 운동가의 아들로서는 대한민국에서 공부도, 돈 버는 것도,
정치가의 꿈을 키우는 것 모두 성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가발 장사로 크게 성공하자 돈을 쥔 박지원은
다시 정치가의 꿈을 충전해 정계입문을 위한 긴 여정에 돌입한다.
38살에 뉴욕 한인회장 선거에서 당선된다.
바로 그 시절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미국 방문에 앞서
선발대격으로 뉴욕에 온 동생 전경환과 관계를 트고
전두환 방미 환영위원장을 맡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다.
정치적 행운이 오는 것 같았다.
박지원은 귀국해 전경환의 민정당 전국구의원을 노렸으나
해외교포라는 결격 사유에 걸려 실패하자
다시 미국에 온 DJ를 향해 전격 U턴해 완전히 딴 세계에서 정계진출을 모색한다.
변신의 달인!
당시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던 독립신문의
주필인 김경재씨(전 민주당 국회의원)의 소개로 DJ를 만났고,
DJ를 재정적으로 크게 도왔다.
DJ는 나중에 “그때의 감사함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박지원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
어느 정도 ‘정치적 다중인격자’인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
그가 DJ의 심복으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상도동의 김영삼 진영과도
깊숙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 1984년엔 YS로부터 특보 자리를 제의받았고,
4년 후인 1988년 총선에서는 통일민주당의 전국구 13번을 제의 받았지만
본인의 주장으로는 거절했다는 것. ‘정치적 여우’!
박지원은 결국 3수 끝에 1992년 50의 나이에 전국구로 금배지를 달게 된다.
뉴욕 한인회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딴 뒤
12년 간 오로지 정치가가 되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게 박지원! 이게 ‘박키아벨리’의 지칠 줄 모르는 근성!
박지원은 동교동계에 굴러온 돌로 들어가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성,
정치적 기지를 DJ로부터 인정받으면서
한명 한명씩 DJ 가신들을 제쳐가며 동교동 벙커에서
DJ와 독대할 수 있는 위치로까지 성장한다.
마침내 1998년 DJ의 집권.
박지원은 청와대로 들어가 침대에 누어있는 DJ에게도 거리낌없이
직보할 수 있는 청와대 ‘왕수석’→문화관광부 장관→청와대비서실장을 지내며
권력의 정점에 선다.
그러나 DJ에게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박씨’를 물어다 준 박지원이 나중에 바로 그것 때문에
교도소에 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DJ와 자신이 이회창한테 정권을 넘겨주면
반드시 정치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그토록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노무현이
정작 집권하자 대북송금 특검으로 비수를 꼽았다.
정치적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박지원.
감옥에서 나와 또 동교동계를 제치고 DJ 비서실장으로 복귀했지만
민주당에서도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나서야 복귀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정상 탈환을 위한 그의 시도는 중단되지 않았다.
원내대표를 두 번이나 지내는 기록을!
박지원, 또 교도소의 담장 위에 올라섰다. 파란만장이다.
박지원 개인으로서는 일생일대의 시련이라고 할지는 모르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번 박지원과 검찰의 게임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드라마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니면 ‘거악(巨惡)은 영원하다’는 가설을 다시 진실로 입증할 것인가를!
검찰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다.
거악을 꺾지 못해 무릎을 꿇게 되면 공권력으로서 더 이상 존재하게 할 이유가 없다.
검찰도 기로에 섰고, 박지원도 기로에 섰다.
그는 올해 꼭 70살이다. 한 ‘정치적 인간’의 욕망은 과연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가 될 것인지 지켜보겠다.
윤창중 :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윤창중 : 칼럼세상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cjyoon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