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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 속의 전쟁사 원문보기 글쓴이: 삼한일통
작위 | 이름 | 계열 | 친일여부 |
후작 | 이재각(왕족) | 왕족 | 친일 |
이해창(왕족) | 왕족 | 친일 | |
윤택영(순종의 장인, 노론) | 노론 | 친일 | |
박영효(노론, 철종의 사위) | 노론 | 친일 | |
백작 | 민영린( 민비(명성황후) 오빠) | 노론 | 친일 |
송병준( 자칭 노론, 승계 송종헌) | (미상) | 친일 | |
고희경( 중인) | 중인 | 친일 | |
자작 | 이완용( 노론) | 노론 | 친일 |
이기용(<s>노론</s>흥녕군 이창응의 아들. 즉 왕족) | 왕족 | 친일 | |
박제순(노론, 승계 박부양) | 노론 | 친일 | |
조중응(소론, 승계 조대호) | 소론 | 친일 | |
민병석(노론) | 노론 | 친일 | |
이용식( <s>노론</s>, 3.1운동 가담 작위 박탈) 항일계 | 왕족 | 항일계 | |
김윤식(노론, 3.1운동 가담 작위 박탈) 항일계 | 노론 | 항일계 | |
권중현(본관 안동, 한미한 가문 출신) | 자수성가 | 친일 | |
이하영(한미한 가문 출신) | 왕족 | 친일 | |
이근택(<s>노론</s>알다시피 종친, 승계 이창훈) | 왕족 | 친일 | |
임선준(노론, 승계 임선재) | 노론 | 친일 | |
이재곤(<s>노론</s>왕족) | 왕족 | 친일 | |
윤덕영(노론, 순종의 처숙부) | 노론 | 친일 | |
조민희(노론) | 노론 | 친일 | |
이병무(한미한 가문 출신) | 노론 | 친일 | |
이근명(노론, 승계 이충세) | 노론 | 친일 | |
민영규(노론, 승계 민병삼) | 노론 | 친일 | |
민영소(노론, 승계 민충식) | 노론 | 친일 | |
민영휘(본관 여흥, 노론) | 노론 | 친일 | |
김성근(본관 안동, 노론, 승계 김호규) | 노론 | 친일 | |
남작 | 윤용구(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홍순형(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
김석진(본관 안동, 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
한창수(노론) | 노론 | 친일 | |
이근상(본관 전주, 노론, 승계 이장훈) | 왕족 | 친일 | |
조희연(노론, 작위 반납했으나 곧 중추원 고문이 됨) | 노론 | 친일 | |
박제빈(소론, 승계 박서양) | 소론 | 친일 | |
성기운(노론, 승계 성주경) | 노론 | 친일 | |
김춘희(본관 경주, 소론, 승계 김교산) | 소론 | 친일 | |
조동희(노론, 예우 정지) | 노론 | 친일 | |
박기양(소론) | 소론 | 친일 | |
김사준(노론, 의친왕의 장인, 독립운동 가담으로 작위 박탈) | 노론 | 항일계 | |
장석주(평민, 승계 장인원) | 평민 | 친일 | |
민상호(노론) | 노론 | 친일 | |
조동윤(본관 풍양, 노론, 승게 조중구) | 노론 | 친일 | |
최석민(중인, 승계 최정원) | 중인 | 친일 | |
한규설(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항일계 | |
유길준(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
남연철(노론, 승계 남장희) | 노론 | 친일 | |
이건하(본관 전주, 노론, 승계 이완종) | 노론 | 친일 | |
이용태(노론, 승계 이중환) | 노론 | 친일 | |
민영달(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
민영기( 노론) | 노론 | 친일 | |
이종건(노론) | 노론 | 친일 | |
이봉의(소론, 승계 이기원) | 소론 | 친일 | |
윤웅렬(노론, 아들 윤치오가 치안법에 관련되어 작위 박탈) | 노론 | 친일 | |
이근호( 노론, 승계 이동훈) | 노론 | 친일 | |
김가진(노론, 임시정부로 망명) 독립운동 | 노론 | 항일계 | |
정낙용(노론, 승게 정두화) | 노론 | 친일 | |
민종묵(본관 여흥,북인, 승게 민규현) | 북인 | 친일 | |
이재극( <s>노론</s>) | 왕족 | 친일 | |
이윤용(<s>노론</s>) | 왕족 | 친일 | |
이정로(노론, 승계 이능세) | 노론 | 친일 | |
김영철(본관 광산, 노론, 승계 김영수) | 노론 | 친일 | |
이용원(노론, 승계 이원호) | 노론 | 친일 | |
김종한(노론) | 노론 | 친일 | |
조정구(본관 풍양, 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
김학진( 노론, 승계 김덕한) | 노론 | 친일 | |
박용대(북인) | 북인 | 친일 | |
조경호(노론, 작위 거부) | 노론 | 소극적 거부 | |
김사철(노론) | 노론 | 친일 | |
김병익(노론, 손자 김홍진이 사상범으로 작위 박탈) | 노론 | 친일 | |
정한조(본관 동래, 소론, 승계 정천모) | 소론 | 친일 | |
이주영(본관 경주, 소론, 승게 이규환) | 소론 | 친일 | |
민형식( 노론) | 노론 | 친일 | |
이항구(노론) | 노론 | 친일 |
노론 | 49 | 친일 | 61 | 노론이면서 친일 | 39 |
왕족 | 10 | 항일계 | 5 | ||
소론 | 7 | 소극적 거부 | 7 | ||
북인 | 2 | 합 | 73 | ||
중인 | 2 | ||||
평민 | 1 | ||||
자수성가 | 1 | ||||
미상 | 1 | ||||
합 | 73 |
실질적으로 노론인 사람은 49명(이덕일은 56명의 노론으로 주장)이며,
당시 작위받은 사람중에서 왕족으로 분류된 사람은 이덕일씨는 '노론'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마치 조선왕족은 노론이고 결국 덕일이형이 좋아하는 정조도 노론, 고종의 친인척도 노론, 대원군의 일가도 노론이 된다는건가? 하는 황당한 생각조차 느끼게 됬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분류하니 노론이면서 친일한 사람은 39명정도.
그런데 노론이 많기는 많은데 애초에 당파자체를 두고 친일정파로 분류하기에는 반례가 너무 많다.
뭐 이딴건 넘어가고
이기용의 행적 중에 특이할 것을 꼽는다면..
고종이 세상을 떠난 1919년 1월 21일 하루전인
1월 20일
태왕 전하의 병이 깊어 종척과 귀족 등을 소견하다
종척(宗戚)과 귀족(貴族) 등을 인견(引見)하였다. 태왕 전하(太王殿下)의 환후가 심중하였기 때문에 문후(問候)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자작(子爵) 이기용(李埼鎔), 이완용(李完鎔)에게 별입직(別入直)하도록 명하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고종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종을 독살했다는 용의자 中 1명이 되어버린 경우나
의친왕의 자식 상당수를 양자로 들인 점이 있다.
그리고 계동궁의 현재 사손은 의친왕의 아들인 이광(李鑛)이 이기용의 양자로 들어가 계동궁의 대를 잇고 있다고 한다.
이런 스토리를 정리하자면
이기용은 흥선대원군의 큰 형님인 흥녕군(興寧君)이창응(李昌應)의 장손.
고종에게는 종질이 되며 병합때는 왕족으로서 작위를 받고 해방후에는 반민특위에 검거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이다.
많은 의친왕계의 자식들이 이기용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고 계동궁의 종주는
이기용 사후로는 의친왕의 아들 中 1명인 이광(李鑛)이 이기용의 양자로 들어가 계동궁의 대를 잇고 있다.
그래서 자칭 길운여왕이라는 분이 이기용의 땅을 찾거나 혹은 의친왕계의 무엇을 주장하거나 하는건 매우매우 근본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분은 작년에 땅찾는거 패소한것 같은데 사실 매우 근본없는 짓이다.
끝.
첫댓글 종친회에서도 개 뻘짓으로 취급하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