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438호]
당신
유하
오늘밤 나는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
라고 쓰다가, 너무 엄살 같아서 지운다
하지만 고통이여, 무심한 대지에서 칭얼대는 억새풀
마침내 푸른빛을 얻어내듯, 내 엄살이 없었다면
넌 아마 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와
내 삶의 엄살인 당신,
난 오늘밤, 우주의 거대한 엄살인 별빛을 보며
피마자는 왜 제 몸을 쥐어짜 기름이 되는지
호박잎은 왜 넓은 가슴인지를 생각한다
입술을 달싹여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그만두는 밑둥만 남은 팽나무 하나
얼마나 많은 엄살의 강을 건넌 것일까
- 『세상의 모든 저녁』(민음사, 1993)
*
누군가에게 유하는 영화 감독이지요...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소위 강남 3부작이라 하는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누군가에게 유하는 시인으로 더 기억되기도 하지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세상의 모든 저녁』,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누군가의 가슴에 여전히 꽂혀 있는 그의 시집들이지요.
실은 춘천의 몇몇이 모여 춘천 출신 故진이정 시인에 대한 모종의 일을 꾸미다보니 자연스럽게 유하 시인이 거론되었던 건데요... 무작정 유하 시인을 만나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데요(연락처도 모르고 만날 방법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덕분에 정말 오랜 만에 그의 시집을 꺼내 읽었더랬는데요... 덕분에 오래 된 그의 시 한 편 띄우는 건데요... 「당신」입니다.^^
그럼, 시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읽으셨나요? 그럼 묻지요. 과연 시속의 화자(아마도 시인 자신이겠지요. 아닐 수도 있겠지만...)가 "내 삶의 엄살"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당신"은 과연 누구일까요?
1. 짝사랑
2. 옛사랑
3. 애인
4. 남편 혹은 아내
5. 정부(情夫) 혹은 정부(情婦)
6. 기타
네 정답은...... 당신이 선택한 바로 그게 정답이 되겠습니다.^^ 6개 전부를 선택했는데 그건 어떠냐구요? 물론 그것도 정답입니다.^^
저요?
저는 "내 삶의 엄살인 당신"과 20년 동안 살고 있네요. 앞으로도 쭈욱 엄살을 부리면서 늙어갈 전망이구요.^^
문득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 시의 독자들, 내 시편지의 독자들
또한 내 삶의 엄살인 당신들이 아닐런지...
2015. 3. 9.
강원도개발공사 대외협력팀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옛 시도 다시 꺼내시니 좋네요
봄이 햇살에게 엄살 부리는 오후
시는 삶의 엄살이며 신음소리입니다.
아니 그 근원은 고통 때문이겠지요.
시인, 당신은 킹왕짱 엄살쟁이! ^^*
이거 저거 엄살을 부리고 싶은 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