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고 놀라운 사랑
주일 아침, 일찍 하 집사님이 나왔다.
신년 첫 예배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폭설로 36시간 운전하고 피로감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택시 부제 해제로 현장이 전쟁터라
식사 시간을 놓칠 때가 많은 어려운 시기다.
사모하는 심령으로 ‘목사님, 먼저 기도해 주세요.’
집사님 부탁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하길 간구했다.
그날따라 영상 담당자가 안 나왔다.
그가 치질 수술한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영상 없는 찬양을 어른들이 따라 부르지 못하자
‘아는 찬송으로 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특송에 모두 은혜받은 자리라 감사드렸다.
예배 후 공동의회로 모였다.
신 장로님의 교회 재정 결산과 금년 예산을 보고했다.
교회의 묵은 부채(8천 4백만 원) 상환 위해
목회자 사례비를 매년 10만 원 감액 건을 다뤘다.
오히려 증액 의견이 나왔지만 고사하고 선교 지출을 늘렸다.
작은 교회! 헌금할 분도 없는 것 같은데 재정이
원만하게 집행되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입을 모았다.
마음을 쏟아 내신 성도들이 감사할 뿐이다.
금년에도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한 만큼
교회 재정을 꾸려 나갈 계획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성현 형제가 머물다 간 자리가 컸다.
행복한 만남이라 아직 여운이 남았다.
5월 입대하여 군 생활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길 기도하며 기다리리라.
김 권사님 부부가 20년 만에 돌아온 일도 꿈만 같았다.
남편과 예배 자리 채움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이었다.
개척 초기 함께 일하며 10년간 헌신한 수고를 마음에 새겼다.
노년에 함께 하고픈 마음에 연어처럼 회귀하셨다.
은퇴 장로님 내외가 다녀가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과찬을 남기셨다.
또 신 장로님 간병하신 분이 송구영신 예배부터 나오셨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말없이 장로님을 살핀 헌신은
흑암을 헤집는 빛이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생이었다.
광고 시간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성도들의 축하가 뜨거웠다.
장로님 식구들이 어머니 추모 관으로 갔다.
난 두암동 코스 차량 운행하고 돌아온 길에서 하 집사님 전화를 받았다.
‘목사님, 영락공원에서 내려갑니다. 점심 좀 사 주세요.’
반가운 소식에 모시고 싶은 식당 위치를 문자로 보냈다.
아내와 함께 가며 능이버섯 백숙을 시켰다.
뜨거운 국물에 속을 풀었다.
새로 나온 분을 볼 때 장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스쳤다. ‘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좋은 만남과 좋은 관계 속에
일상을 부담 없이 나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학생 시절 함평에서 신앙생활한 경험에 마음이 쏠렸다.
그동안의 과정을 나누며 서로의 알림이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 집사님은 식사 마치는 자리에서 항상 청하신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일어나시게요.’
끝판 기도하고 밥값은 국물 맛도 안 본 사람이
먼저 내고 사라졌다는 말에 깜놀했다.
근처 찻집이 없어 병원 로비에서 주문하여 마셨다.
만남이 무르익는 성숙한 해가 되길 바라며 나섰다.
도중에 치질 수술한 권찰 아파트 문고리에 야채 죽을 걸어 뒀다.
부드러운 죽 먹고 대변 수월하게 보라고 전화했는데 건강한 목소리였다.
‘목사님, 연차 쓰고 한 수술인데 생각보다 관리가 힘드네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요 쉬면서 회복 잘 해요.’
김행순 집사님의 카랑카랑한 소리도 들렸다.
‘우진아! 목사님, 다녀가셨나 보다!
죽 사다 놨어. 어서 먹어!’
새해 독서 결심이 작심삼일, 용두사미로 흐르지 않기 위해
두 권의 책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을 찾았다.
읽는 즐거움이 컸다.
집중한 탓에 변비로 마음이 주름졌지만
장석주 작가의 책 끝자락에서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 시를 건졌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선배 장로님의 보이지 않은 사랑의 손길에 늦은 안부를 물었다.
늘 반기는 목소리에 ‘장로님! 해마다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면목 없습니다.’ ‘
아니야, 할 수 있어 보낸 거여.
다 기도해 준 덕분에 잘 지내구먼.
전화 고맙네..
오늘 새해 첫 주일이라 대표 기도로 섬겼어.
일 년에 두 차례 맡았는데
한 번은 교회 설립 주일에 기도 당번이라 감사하네.
은퇴 장로로 이런 대접받은 것, 동문들의 기도 덕이라 생각하네.
나도 매일 새벽에 기도하며 이 목사의 성실한 목회 자랑하고 있어.’
가슴 찡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기울어진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45년간 한결같은 섬김을 배운다.
존경받은 분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목사 장로 간 싸움이 잦은 때, 모범적인 선한 관계는 감동이었다.
선배 장로님 덕에 어르신들 명절 사과 선물을 미리 주문하여 어제 받았다.
아내와 함께 가정으로 배달하는 기쁨을 누렸다.
밤에 비가 내려 운전과 주차가 불편해 다섯 시간이 걸렸다.
선물에 대한 인사를 내가 받아 멋 적었지만
때마다 흘려보낸 주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랍다.
2023. 1. 7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