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3-06-21
http://www.vop.co.kr/A00000647322.html
잘 나가던 영훈학원이 위기에 처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손자가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도 모자라 성적을 조작하여 입학하고 기부금까지 내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성적 조작 가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교감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32년째 영훈학원 이사장인 김하주씨가 곧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어 형사 처벌 위기에 놓였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학교 폐교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제 영훈학원 사태의 결말은 전 국민의 관심 사안이 되어버렸다.
1965년 설립부터 2013년 폐교 위기에 이르기까지의 영훈학원의 민낯을 몇 개의 중요한 키워드를 통하여 살펴보자.
키워드1 “친일파”:제1호 국제중 설립자는 친일파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10여년간의 조사 연구 끝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나라를 팔아먹은 박제순 등 을사오적과 이완용 등 경술국적과 함께 대표적 친일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민족문제연구소
if(!(getVOPAddCookie())) { document.write('\\'); }
이 중 관료로 분류된 친일 인사 명단에 일제 강점기 당진군수와 예산군수 등을 역임한 김영훈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가 바로 영훈학원의 설립자이다. 이승만 정권에서 서울시 초대교육감을 지낸 그는 196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영훈학원을 설립했고, 1985년 사망 때까지 영훈초·중·고교 교장을 번갈아 맡은 ‘종신 교장’이었다. 지금도 영훈학원 교내에는 친일파 논란 당사자인 김영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현 김하주 이사장은 설립자 김씨의 아들인데 1981년에 취임한 이후 32년 째 이사장이다. 친일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 설립한 영훈중이 2008년 대한민국 1호 국제중이 되었다. 당시, 영훈학원은 자체 수입이 거의 없어 법정전입금마저 학생 등록금으로 내고 있었다. 초중고를 합하여 겨우 1년에 몇백만원 정도의 전입금밖에 내지 못하는 부실사학이었다.
당시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국제중 설립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더 많았다. 귀족학교 논란에서부터 시작하여 하필 친일파 논란의 중심 학교가 국제중으로 지정되는 것에 대해서 당시 많은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2013년 현실이 되어 우리 교육계를 강타했다.
키워드2 “사립학교법”:학교 폐쇄 협박 사학법인협의회 회장
영훈학원을 설명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사학법이다. 사학법 개정을 둘러싸고 교육계와 정치권의 대립이 한참이던 2004년과 2005년 사학단체들의 집단 행동이 줄을 이었는데, 그 중심에 김하주 이사장이 있었다.
사학법 개정을 둘러싸고 교육계와 정치권의 대립이 한참이던 2004년과 2005년 사학단체들의 집단 행동이 줄을 이었는데, 그 중심에 김하주 이사장이 있었다.ⓒ민중의소리 자료사진
if(!(getVOPAddCookie())) { document.write('\\'); }
2004년 11월 7일 한국사학법인협의회 등은 ‘사립학교법교육법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교육자 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김하주 영훈 이사장은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해체하라 전교조", "사학법 개악 결사 저지" 등이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으며, “우리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자진해 학교를 폐쇄하기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을 재확인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12월 17일에도 "전국 사학실질경영인 긴급대책 회의"라는 이름으로 700여명의 사학실세들이 서울 63빌딩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명의로 "사학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신입생 배정을 거부할 것"을 결의했다.
이 결의를 주도한 사립중고법인협의회 김하주 회장은 "우리의 학교를 탈취하려는 음모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최후의 무기인 학교폐쇄라도 내세워 싸우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학교 폐쇄(폐교)를 다시 언급했다.
이에 앞서, 2004년 11월 6일 시민단체 회원들은 사학법인협의회의 막가파식 행동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이 단체 회장인 김하주씨가 이사장인 영훈학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시작되기도 전에 교장과 직원들이 몰려나와 마이크를 뺏고, 전원을 뽑고, 피켓과 현수막을 뺏으려고 하여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폐쇄를 협박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제주도의 사학법인협의회 소속 학교들이 신입생 배정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사학법인들은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입생 배정 거부는 물론 학교 폐쇄까지 서슴치 않겠다는 협박했고, 그 단체의 대표가 바로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이었다. 최근 국제중 입시비리 문제로 쏟아지는 학교 설립 취소 요구에는 눈도 꿈쩍 않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2005년 사학법이 개정된 후에도 사학법인들과 한나라당(당시 박근혜 대표)는 거리 투쟁에 나섰고 결국 사학법이 재개정되고 말았다. 당시 사학법인연합회 한나라당의 가장 큰 우군 중 하나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영훈학원은 사학법 개정으로 의무화된 이사회 회의록 공개, 신규 교사 인사위원회 심의 통한 공개 채용 등 최소한의 의무 사항도 지키지 않고 있었음이 최근 감사 결과 드러났다. 물론, 학교교비 횡령과 공사 비리와 같은 전통적인 사학비리도 빠지지 않았다.
키워드3 “이명박”:대통령 당선 공신 뉴라이트 단체 발기인
친일파 논란에, 부실사학으로 알려진 영훈중학교가 2008년 대한민국 제1호 국제중으로 인가를 받았다. 어떻게 국제중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의 대답은 세 번째 키워드인 “이명박”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하주 이사장은 우리나라 사학계를 대변하는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 회장을 모두 지낸 거물이다. 그는 전두환 정권 때인 1983년부터 민주평통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았다.
2007년 18대 대선 당시 이명박의 외곽 선거캠프로 불렸던 뉴라이트 단체인 ‘선진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1월에는 보수시민단체들의 ‘시민사회단체 신년인사회’에도 뉴라이트전국연합 의장 김진홍 목사,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과 참가했는데, 한나라당 정몽준·전여옥, 오세훈 서울시장 등도 함께 했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김하주 이사장이 뉴라이트 단체인 '선진화싱크탱크'와 '선진화NGO네트워크'라는 단체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법정전입금도 못 내는 영세사학인 영훈중이 국제중으로 선정된 것은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 공신 역할을 했던 뉴라이트 단체 활동에 대한 보은이자 권력형 특혜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제1호 국제중의 당사자가 된 영훈학원은 2012년까지 승승장구했다. 그 최고 정점이 2012년 12월 대통령 직속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에서 평화통일 기반조성과 국민통합에 기여한 공로로 김하주 이사장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것이다.
모란장은 무궁화훈장 다음의 2등급 훈장으로 과거 문화훈장 대통령장과 같은 것이라 한다. 귀족학교 비판을 받고 있는 국제중 이사장이 어떻게 국민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삼성의 손자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합격시키는 등 입학비리가 발생한 학교 수장이 이런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비판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국제중 지정과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뉴라이트 단체에 참가하여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세운 공을 인정받은 것을 빼면 설명이 쉽지 않아 보인다.
키워드4 “박근혜”:대선 캠프 위원 출신을 교장 영입
박근혜 현 대통령과 김하주 영훈 이사장의 직접적인 인연은 2004~2006년 사립학교법 개정 국면에서였을 것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며 장외 투쟁을 이끈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대표였고, 김하주 이사장은 학교 폐교와 신입생 배정 거부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사학법인협의회의 회장이었다. 영훈학원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사학법 이후에도 또 있었다.
2013년 현재 영훈학원 핵심 3인ⓒ김행수
if(!(getVOPAddCookie())) { document.write('\\'); }
2012년까지 승승장구하던 영훈학원에 2013년 삼성발 위기가 닥치자 영훈은 ‘권력 줄대기’를 선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영훈학원이 지난 해 12월 갑작스럽게 서울교육청 공무원 감사관 등을 지낸 관료를 영훈중 교장으로 영입했다. 정동식 영훈중 교장은 교사자격증도 없고, 단 1년의 교사 경험도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판이 일었다.
이외에도 법인 감사, 행정실장 등에도 잇따라 서울교육청 출신 인사 5명이 영입되었는데 감사 무마 또는 예산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 교육청 출신만으로는 모자랐던지 지난 3월 또 한명의 외부 인사가 영훈학원에 영입되었는데, 바로 영훈고 교장 황영남이다. 그는 인천 삼량중고와 서울 세종고의 교장을 역임하고, 한국교총의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낸 인물로 영훈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영남 교장은 19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의 외곽 선거 캠프로 구성한 ‘국민행복추진위원회’(단장 김종인)의 행복교육추진단 추진위원이었다. 이 캠프가 교육공약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대통령인수위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초대 교육비서로 현 정권 교육계 실세 중의 한 명으로 불리는 김재춘 영남대 교수도 황 교장과 함께 캠프 위원으로 활동했다.
마치 김하주 이사장이 2007년 18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 후보의 외곽 캠프인 ‘선진화 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여 활동한 후 최초 국제중으로 승인 받고, 국민훈장 모란장까지 받으면서 승승장구한 것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김하주 이사장이 위기 상황에서 사학법인에게 가장 큰 권력기관인 서울교육청과 청와대에 줄을 대어 사태를 해결하려고 친 권력 체제를 구축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영훈학원, 권력 줄서기의 끝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상임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과 문용린 서울교육감은 모두 영훈사태에 대해서 연신 사과 발언을 쏟아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국제중 설립 취소까지 갈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이승만 정권의 눈에 들어 초대 서울교육감을 지낸 인사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학교가 영훈학원이다. 2000년대 사학법 개정 국면에서는 사학법인연합회와 초중고사학법인협의회의 회장으로 사학법 개정을 가로 막는 대열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 현재 김하주 이사장인데 설립자의 아들이다.
그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으로 불린 뉴라이트 단체인 선진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하여 당선에 힘을 보탠 후 2008년 대한민국 1호 국제중으로 승인받았으며, 2012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삼성발 입시비리 사태와 성적 조작, 그리고 교감의 자살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 이사장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이다. 부정 입학 알선 대가로 거액을 받아 구속된 행정실장이 ‘윗선에서 시킨 일’로 진술하여 칼날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설립부터 몰락 위기까지 영훈학원의 영욕의 세월은 일제, 이승만, 이명박, 박근혜 등 권력과의 관계를 빼면 설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영훈학원의 최후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검찰 수사 결과가 결정적인 변수로 떠올랐다. 영욕의 영훈 반세기, 그 끝은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