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을 알아보던 A씨는 공인중개사로부터 주변 원룸에 비해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집을 소개받았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이 건물이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 있긴 하지만 다세대주택과 명칭만 다를 뿐, 다른 불이익은 없을 거라고 설명하는데요.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임대계약을 체결한 A씨. 주민센터에서도 문제없이 전입신고까지 마쳤습니다.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해도 문제 없는 걸까요?
◇ 근린생활시설이란?
현행 건축법은 용도별 건축물의 종류를 크게 29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중 근린생활시설은 통상 주택지 또는 그 인근에 입지해 주민들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말합니다.
근린생활시설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제1종과 제2종으로 다시 구분됩니다. 제1종 근린생활시설은 주민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시설들입니다. 소매점, 휴게음식점, 제과점, 미용실, 목욕탕, 세탁소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제2종 근린생활시설은 제1종보다 큰 규모의 시설이나 취미생활·편의생활 관련 시설들입니다. 공연장이나 종교집회장 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처럼 법적으로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이 아닙니다. 주택은 구성원이 장기간 독립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된 건축물의 전부 또는 일부 및 그 부속토지를 뜻합니다. 아울러 취사시설이나 바닥난방과 같은 주거시설을 필수로 요하는데요. 근린생활시설은 각종 생활 편의시설의 용도로 사용 승인된 건물이라 원칙적으로 주거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건축주는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불법 개조한 뒤 임대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취사시설을 갖추고 난방 보일러를 설치하는 건데요. A씨 사례처럼 말이죠.
건축주는 엄연히 근린생활시설로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을 불법 개조하는 걸까요? 개발이익을 높이기 위해 이런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린생활시설은 일반 주택에 비해 주차면적 확보나 층수 제한 등 건축 제한이 덜한데요.
현행 서울시 부설주차장 설치기준을 보면 근린생활시설은 시설 면적 134m²당 1대의 주차장을 설치해야 하지만 다가구 주택이나 공동주택의 경우는 면적 기준에 따라 가구당 최소 0.5대 이상의 주차장을 설치할 의무가 있습니다.
층수제한의 경우 건축법상 다가구주택은 3층 이하, 다세대 주택 및 연립주택은 4층 이하로 규정돼 있는 반면 근린생활시설은 별도로 층수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불법 개조시 이행강제금 부과
등기상 근린생활시설인 건축물에 자리한 상가나 사무실 내에 허가 없이 취사시설을 설치한 뒤 이를 주택으로 속여 타인에게 매매하거나 임대하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 경기도에선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용도 불법 변경한 사례가 737곳이나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불법 개조한 근린생활시설이 일반 다세대 주택과 내·외부 생김새가 비슷해 건축물 유형을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선 부동산 등기부등본상의 건축 용도, 시설 제한 등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등기부등본 용도란에 '근린생활시설'이 아니라 '단독주택 및 ○종 근린시설'이라고 쓰여 있어 혼란을 느꼈다는 분들도 많은데요. 건축물의 일부가 근린시설로 허가가 난 경우입니다. 이처럼 정확히 어느 부분이 근린생활시설인지 확인이 어려울 땐 건축물대장을 열람하는 게 좋습니다.
건축물대장은 위치, 면적, 구조, 용도, 층수 등 건축물에 관한 사항을 자세히 표시하고 있어 해당 건축물의 용도를 면밀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람도 간편합니다. 건축물대장은 정부24 사이트에서 누구나 무료로 발급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에 용도변경 신청 또는 신고를 하면 됩니다.
용도변경이란 건축물대장상의 건축물의 용도를 사용하고자 하는 건축물의 용도로 변경하는 행위를 말하는데요. 건축기준이 약한 시설군에 속하는 건축물의 용도를 상위군 시설에 해당하는 용도로 변경한다면 허가, 상위군 시설에 속하는 건축물의 용도를 하위군에 해당하는 용도로 변경하는 경우에는 신고 대상입니다.
이때 상위군으로의 용도 변경은 쉽지 않습니다. 상위군으로 용도 변경을 원할 때 단순 신고에 그치지 않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요. 무분별한 건축용도 변경을 막아 난개발을 막고 시설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용도 변경 때 수선이나 설계 변경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허가나 신고없이 무단으로 용도를 변경하면 이는 불법건축물에 해당합니다. 구청이나 행정관청 단속에 발각되면 위법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는데요. 최초로 건축을 한 사람이 아닌 적발된 시점의 보유자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됩니다. (건축법 제80조 제1항 제2호)
이행강제금 처분을 받았는데도 불법 개조 건물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다시 한번 이행강제금 부과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최대 시가 표준액의 50%까지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행강제금 부과 횟수는 연면적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연면적 85m²이하 주택은 5회까지만 이행강제금을 물릴 수 있지만 이를 초과하는 주택이나 상가의 경우 불법건축물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시 합법적인 범위 안으로 원상복구할 때까지 매년 부과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행강제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관할 구청에서 재산을 압류해 공매 신청을 하게 됩니다.
◇주택인 줄 알았는데 근린생활시설이라면?
위 A씨 사례처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와중에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의도적으로 특정 건물이 근린생활시설인 것을 알리지 않고 마치 원룸인 것처럼 설명했다면 어떨까요?
해당 공인중개사는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A씨는 이와 관련해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중개 의뢰인에게 중개대상물에 관해 정확하고 성실하게 확인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나아가 중개대상물의 종류·소재지·지번·지목·면적·용도·구조 및 건축연도 등 중개대상물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도 고지해야 합니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 제1항) 만일 이러한 의무를 위반했다면 공인중개사 자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거래 당사자에게 발생한 재산상의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매매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해당 건물이 불법 개조가 이뤄진 근린생활시설이라는 걸 모르고 매입했다면 억울한 마음이 들 텐데요. 이런 경우, 계약을 물릴 수는 없을까요?
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공인중개사가 매수인에게 위법한 건축물이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고지한 경우에는 매수인이 불법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약에 응했다고 판단됩니다. 매수인은 당연히 계약해제나 취소, 손해배상 등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반면 공인중개사나 매도인이 불법건축물이나 현행법 위반사실을 일부러 속이고 매매계약을 체결했다면 매수인은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매매계약 자체를 해제·취소하거나 매매계약은 유지하되 위반건축물 부분 철거비용 및 이행강제금 납부금액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겁니다.
매수인은 매입한 건물이 불법건축물임을 알지 못하고 거래했기 때문에 착오나 사기에 의한 매매계약 취소를 주장할 수 있는데요. 우리 민법은 법률행위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수인이 불법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매매계약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가능합니다.
공인중개사나 매도인이 불법건축물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수인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거나 속이는 행위를 사기에 의한 매매계약 취소의 원인행위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다만 매도인이 매수인을 고의적으로 기망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미 산 건물은 어쩔 수 없으니 계약은 유효한 채로 두고 철거비용 및 이행강제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습니다. 매수인은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설명의무 위반에 관해, 매도인에게는 사기 혐의 등이 인정된다는 전제 하에 각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