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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4:1
툭하면 주소를 묻는 것은 주소를 모르면 해결 할 수 없어서 일 것입니다. 주소를 넣어야 택배를 보낼 수 있어요. 주소 확인이 돼야 잘못된 택배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싸움/다툼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주소를 알아야 다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싸움이 난 이 주소, 그 지번을 찾아가 봅시다. 공주야! 우리의 말과 행실,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 우리가 욕망하는 바는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반영하며, 우리가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The fact that they keep asking for the address is likely because they can't solve the problem without it. You need to enter the address to send the package. You must verify the address to receive a returned incorrect package. To resolve a quarrel, you must know where the fight or dispute originated. Let's go to this address, this lot number, where the fight is. Princess! Our words and deeds, the way we relate to one another, and what we desire reveal where we belong. It reflects who our master is and shows whom we are loyal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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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은 각각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는가? 정욕이 유혹에 넘어져 죄를 짓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시작이었다.(1:14-15)그 정욕은 땅에 속한 지혜에 미혹되어 싸움과 다툼을 만들어 낸다. 시기하고 살인한다. 그러고도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기도하지 않든지,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욕을 따라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기도를 하니 응답될 리 없다.
How do God's people and the people of the world come to live different lives? It was the beginning of lust succumbing to temptation, committing sin, and ultimately leading to death. (1:14-15) That lust is deceived by earthly wisdom, creating conflict and strife. They envy and kill. And you will gain nothing. Such people either do not pray at all, or if they do, they do so not seeking God's wisdom but turning Him into an idol according to their own desires, so there is no way they will receive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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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에 이끌려 사는 자는 영적으로 간음한 자들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세상의 벗이 되어 살게 된다. 이들이 세상 지혜, 귀신의 지혜를 따라 시험에 넘어지는 자들이다. 성령의 시기하실 만큼 간절한 사랑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런 교만함은 마침내 심판을 불러 온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히 하늘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임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벗이 될까? 무엇이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겸손한 삶인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Those who live driven by lust are spiritually unclean, becoming enemies of God and living as friends of the world. They are those who fall into temptation by following the wisdom of the world and the wisdom of demons. It is to turn away from love so desperately that it is stained by the Holy Spirit, and such pride ultimately brings about judgment. God’s grace comes to those who humbly seek the wisdom of heaven. How do we become friends of God? What is a humble life that follows the wisdom of heaven? It is to submit to God and draw near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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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기뻐하고 좋아할 일에 우리는 애통하고 슬퍼하고 울어야 한다. 주님을 높이고 나를 낮추어야 한다. 그러면 사탄이 물러가고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 오실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선택할 때 그분이 우리를 부활시킬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듯이 형제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악이다. 판단은 하나님이 율법을 따라 하실 것이니, 내가 임의로 판단하면 스스로 율법의 입법자와 재판관을 자처하는 것이 된다.
We must mourn, grieve, and weep over what makes the world rejoice and feel good. We must exalt the Lord and humble ourselves. Then Satan will retreat, and the Lord will come to us. The Lord will exalt us. When we choose the cross, He will raise us. Just as one should not discriminate against others based on appearance, judging one's siblings by one's own standards is evil. God will judge according to the law; if I judge arbitrarily, I thereby become a self-appointed lawgiver and ju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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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고도 하나님의 벗이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승리합시다'의 구호는 진리에서 난 것인가, 정욕에서 난 것인가? 두 종류의 지혜가 만들어낸 두 종류의 소속은 각각 무엇인가? 인간의 다툼은 서로 다른 생각에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진리라고 믿는 데서 시작되는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조차 권력욕으로 변질될 수 있지 않은가?
There is no way to become a friend of God while infringing upon His authority. Is the slogan 'Let's win' born from truth or from lust? What are the two kinds of belonging created by the two kinds of wisdom? Do human conflicts stem from differing thoughts, or from believing one's own desires to be the truth? Can even zeal for God be corrupted by a desire for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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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욕심으로 성도 간에 다투지 말라(1-3)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4-10)
a.원리와 설명:4-6
b.결론적 설명:7-10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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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1a)
싸움이 어디로(1b)
다툼이 어디로(1c)
좇아 나느뇨(1d)
너희 지체 중에서(1e)
싸우는 정욕으로(1f)
좇아 난 것이 아니냐(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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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욕심을 내어도(2a)
얻지 못하고(2b)
살인하며 시기하여도(2c)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2d)
너희가 다투고(2e)
싸우는 도다(2f)
너희가 얻지 못함은(2g)
구하지 아니함이요(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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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여도(3a)
받지 못함은(3b)
정욕으로 쓰려고(3c)
잘못 구함이니라(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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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는 여자들이여(4a)
세상과 벗된 것이(4b)
하나님의 원수임을(4c)
알지 못하느뇨(4d)
그런즉 누구든지(4e)
세상과 벗이 되고자(4f)
하는 자는(4g)
스스로 하나님과(4h)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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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5a)
하나님이 우리 속에(5b)
거하게 하신(5c)
성령이 시기하기까지(5d)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5e)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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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6a)
주시나니(6b)
그러므로 일렀으되(6c)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6d)
물리치시고(6e)
겸손한 자에게(6f)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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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는(7a)
하나님께 순복할 찌어다(7b)
마귀를 대적하라(7c)
그리하면(7d)
너희를 피하리라(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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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8a)
그리하면(8b)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8c)
죄인들아(8d)
손을 깨끗이 하라(8e)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8f)
마음을 성결케 하라(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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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며 애통하며(9a)
울찌어다(9b)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9c)
너희 즐거움을(9d)
근심으로 바꿀 찌어다(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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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앞에서 낮추라(10a)
그리하면(10b)
주께서(10c)
너희를 높이시리라(1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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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11a)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11b)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11c)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11d)
곧 율법을 비방하고(11e)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11f)
네가 만일(11g)
율법을 판단하면(11h)
율법의 준행 자가 아니요(11i)
재판자로다(1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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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자와 재판 자는(12a)
오직 하나이시니(12b)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12c)
멸하기도 하시느니라(12e)
너는 누구관대(12f)
이웃을 판단하느냐(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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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을 일으키는 정욕_a quarrelsome lust
세상의 벗이 되는 정욕_lust to be a friend to the world
하나님의 벗이 되는 삶_A life of being God's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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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시기하시기 까지 사랑하시는 나의 주님 찬양을 받으소서. 내가 두 마음을 품어 세상을 사랑할 때 속절없이 마음 상하시는 주의 마음을 보았사오니 날마다 기도로 나를 지켜 하나님께 순복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기도를 빌어 욕심을 구하지 않게 하실 뿐 만 아니라 주를 가까이 하고 마음을 성결케 지켜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 안에서 구석구석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My Lord, whom I love even to the point of jealousy of the Holy Spirit, receive my praise. When I loved the world with two hearts, I saw Your heart become sorrowful without mercy; protect me daily through prayer and lead me to submit to You, God. Not only will You prevent us from seeking greed through prayer, but help us draw near to You and keep our hearts pure. And may the kingdom of God dwell in every corner of me.
2026.10.22.thu. Clay
신학 비평//
야고보는 싸움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지 않고 우리 안에서 충돌하는 욕망에서 찾는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리와 정의,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까지 동원한다. 문제는 욕망 자체보다 그것을 절대화하여 타인을 지배하려는 태도에 있다. 라캉의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것을 원하고, 타인의 인정까지 요구한다. 그러므로 다툼은 단순히 무엇을 소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욕망이 관철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투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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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가 지적한 잘못된 기도 역시 하나님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종교적 자기기만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신학적 긴장이 있다. 모든 갈등을 개인의 정욕으로 환원한다면 불의에 저항하는 정당한 투쟁까지 죄악으로 규정할 위험이 있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이 보여 주듯, 화평이 언제나 침묵과 타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고보가 비판하는 것은 정의를 위한 저항 자체가 아니라 시기와 탐욕으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다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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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세상과 벗됨'을 세상 사람들과의 단절로 해석해서도 곤란하다. 야고보가 경계하는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탐욕과 차별, 권력의 논리를 신앙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웃을 배척한다면 오히려 하나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이웃 사랑을 훼손하는 모순에 빠진다. 다툼의 주소를 찾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추적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욕망이 어떻게 정의의 얼굴로 위장하는지 살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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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타인의 불의까지 내 욕망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자기 성찰과 부당한 현실에 대한 비판은 함께 가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내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일을 멈추고, 타인의 존엄 앞에서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성찰하는 것이다. 다툼의 진짜 주소는 언제나 상대방의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가장 열심히 찾는다고 믿는 바로 내 마음속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