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3.4~ 3.7 애초에는 '77세 喜壽 기념 여행' 이라고 불렀지만 6.25를 겪은 우리 세대라서 초등학교 입학, 졸업상황이 달라진 경우가 많아 누구는 이미 희수를 지냈고 누구는 아직도 희수에 이르지 않은 친구들도 있다고 하여 아예 '사대부고 입학 60주년 기념여행' 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한 총무의 의견에 따라서 그렇게 부르기로 하였다 (* 졸업 60 주년이 아님) 사대부고를 입학한 것은 우리들 모두가 공통년도 이니까... 오끼나와(沖繩) 를 여행지로 택한 것은 아마도 긴 여행이 아니라서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해외 여행기분은 낼 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상인원에서 몇명이 개인사정으로 포기하고 30명(남;10 여;20)이 즐거운 여행을 다녀왔다. 오끼나와 라 하면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미군의 상륙으로 인한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고 일본의 패망후 미군의 기지가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동아시아를 지키는 큰 보루역할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곳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오끼나와라는 곳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우리 나라와 비슷한 상황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동병상련의 느낌도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이순신같은 장군이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와 같은 저항없이 상황에 순종하며 평화를 지켜나간 듯한 그들이 태도가 좀 경의롭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끼나와 땅에는 나름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가 있고 명나라 , 고려와도 교류하던 류큐(琉球)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일본을 통일한 희데요시는 일찌기 중국을 복속시키겠다는 야망으로 조선과 류큐를 먼저 입조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 우리나라를 침공해와 임진왜란이 일어났고(1592) 그 즈음 류큐왕국도 우리와 같은 상황으로 일본의 침략을 받아 (1591년) 그 후 1606년 일본의 지배를 받는 반속국의 처지가 된다. 우리 조선은 중국대륙으로 향하는, 류큐왕국은 인도차이나로 향하는 관문이었다는 공통 요인으로인해 똑같이 일본의 야욕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홍길동전의 실 모델인 홍길동 일행이 이상국(율도국)을 실현코자 갔던 곳이 이곳 류큐 섬이었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학설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가이드는 거기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류큐왕국의 고성 수리성(首里城 슈리죠) 둘러보기 '守禮之邦' 예의를 지키는 고을 이라는 글대로 이 나라는 '동방예의지국'라는 자긍심을 가졌던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서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왕궁의 건물들은 오끼나와 전쟁시 몇군데 제외하곤 완전 파괴된 후 다시 복원되었으며 최근에야 (1992.11.)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한다. 왕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거치는 문들은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지그재그 방향으로 나 있다.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쉽도록 배치한것이라 한다. 이 궁궐 중에서 파괴되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 남아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몇곳이 있다.
본전건물 왕궁 내부는 신발을 벗어 들고 다니며 둘러본다. 왕이나 신하의 복장이 중국풍이다 류큐 원주민 복장을 한 안내원 나하 시 국제거리
건물 앞에는 양쪽에 '시사' 라고 하는 사자모습의 전설속의 동물을 수호신으로 앉혀놓았다. 시청앞이나 왕궁, 상점, 가정집등에 이 동물을 수호신으로 앉혀 놓았다 숫놈은 입을 벌리고 있고 암놈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이 상점은 과자집으로 이곳에서 오끼나와 특산품 자색 고구마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사먹어 보라 해서 사먹었다. 한 개에 300엔 하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고구마라 별 향기는 없었지만 그리 달지 않고 부드러웠다. 번화가라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주택가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거의 어렵다.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 학생, 젊은이등... 류큐왕국은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완전 폐지되고 1879년 일본의 행정구역인 오키나와 현으로 분류되어 일본통치총재를 임명하고 완전 일본국이 되어버린다. 1940년 태평양전쟁 말기,오끼나와는 연합군과 일본군의 마지막 격전지였고 일본군의 저항은 그야말로로 필사적이었다 일본군은 정면대결을 포기하고 인류역사상 최악의 만행을 자행하게 된다 주민들을 이용해 몸에 폭탄을 두르고 적에게 뛰어들게 떠밀었고 전쟁말기 일본군이 늘 그랬듯이 군인들과 주민에게는 투항대신 자결을 강요.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이곳 땅은 초토와 되어 왕궁이며 건물들은 완전 파괴 되어 1945년 이곳은 일본국이 아닌 미군이 통치하는 자치령이 된다. 원폭의 투하로 전쟁은 끝났고 전범국이 되어 미군정의 지배를 받던 일본인은 철저히 복종하여 전범국 중 예외적으로 미국의 호감과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때마침 한국전쟁이 발발, 일본은 미국의 군수보급기지 역할을 하며 단번에 국력을 회복해 나가기 시작. 그들은 한국전쟁 덕에 다른 전범국들이 겪었던 처벌을 면했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오끼나와는 미군의 고등 판무관 관할하의 자치령으로 일본이 아닌 독립국으로 관리되고 있었지만 미군 전투사령부의 대체지로 아무 권리도 없는 오끼나와를 제안했고 오끼나와에 주둔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시에 또 한번 이곳은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1972년 베트남 전쟁패배후 미국은 이곳의 주권을 일본으로 반환한다. 현재는 일본 주둔 미군의 75%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미군을 주둔시켜주는 대가를 다 받으며 군사 외교 경제적이익을 누리면서도 오키나와주민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오키나와 주민이라 하면 우리민족을 조센징이라고 차별했듯이 미개인 인듯이 차별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현실이다. 아직도 오키나와 원주민중에는 미군의 완전철수와 주권회복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어 주민간의 갈등이 있는 곳이다. 3월초 날씨는 우리나라 4월초 날씨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이 좀 강하게 불었지만 차가운 바람은 아니다. 비가 자주 내리는 고장이라지만 우리 여행기간중에는 딱 하루 그것도 오전중에만 비가 내렸고 내내 좋은 날씨의 연속이라 복받은 우리 팀이란 소리를 들었다.
춥지 않은 고장이라 가로수도 열대 식물들로 싱싱했고 식물원과 파인애플 농장은 많은 꽃들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동남식물 낙원 입구
민속촌에서 민속춤 관람. 뛰어다니며 북을 치는데 박력과 역동감이 상당하다. 공연중 사진 찍지 말라해서 몰래 찍느라고 제대로 못 찍었다.
민속촌에서는 공예품인 유리 공예품, 염색직물 제품, 수공예품, 이곳에 아주 많다는 뱀으로 담근 뱀술등을 팔았다. 가이드가 뱀술을 절대 사지 말라고 했다. 민속촌의 원주민들의 집
오키나와의 산토리니 라고 일컫는 바닷가의 하얀 건물 들(우미카지 테라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카페촌이다. 셋째 날 오리온 맥주공장 견학이 일정에 있었지만 여동들 대부분 반대해서 그만 두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고 아침부터 공장시설을 둘러본다는 것도 힘들거니와 아침부터 맥주 시식을 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아쉬워한 남동들도 있었겠지만 워낙 우리 14회남동들은 착해서?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파인애플 농장 견학 이 차를 타고 올라가 정상에서 걸어내려오며 꽃들을 구경 파인애플 묘목 매점에서는 이 곳의 파인애플 로 만든 술(파인애플와인) 음료, 파이, 과자등을 시식,구매할수 있다. 츄라우미 해양수족관과 돌고래 쇼 관람.(츄라우미 란 말은아름다운 바다라는 뜻) 고래상어와 작은 물고기들이 함께 유영하고 있는 파노라마같은 수족관. 커다란 고래 상어와 만타(담요)가오리가 있다고 했는데 만타가오리는 요즘 일시적으로 휴식상태라 안 보인다.
돌고래 쇼 공연(수조가 바다에 붙어 있어 바닷물 끌어들이기가 쉽겠다)
석회석동굴 돌 고드름과 석순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생성되어 있는, 규모가 큰 석회암 동굴이다. 동굴속에서 냇물이 흐르고 지금도 생성되고 있는 돌고드름의 끝 부분을 확인할수도 있다 고드름 끝의 희끗희끗한 점들이 현재도 생성되고 있는 고드름부분이다. 만좌모(萬座毛) 코끼리 바위, 부부바위 바닷가에 코끼리 형상의 바위위로 만명이 앉을 수 있을 만한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류큐왕조시대의 가요에서도 불려지던 곳 우리 나라 바다에도 이런 코끼리 바위는 많다. 부부바위. 신성시 한다는 의미로 삼줄을 둘렀다. 이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부부가 평생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으니 신중하게 생각해서 사진을 찍으라는 가이드가 유모러스한 설명. (황혼이혼을 꿈꾸는 동기들은 이 곳에서 사진촬영을 하지 않았을 걸?) 수학여행온 고등학교 학생들 올릴 사진이 너무 많지만 50장 까지만 가능하다해 올렸다 다시 지우기도 했습니다. 리찬이 올린 화려한 사진들로 자세히 보시기 바라며 나는 사진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찍어 올린 사진들의 질이 나쁘지만 설명을 위한 사진이니 그리 아시고 이해바랍니다. 3박 4일의 여행이 좋은 날씨 속에서 사고 없이 즐겁게 끝난것에 감사하고, 이런 즐거운 여행을 계획하고 진행시켜준 운영팀에 감사드립니다. 호텔도 아주 훌륭했고 음식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우리동기들만의 여행은 일반 여행사 따라 가는 여행보다 늘 고급스럽고 편안한 여행이 됩니다. 자주 자주 계획해 주어서 우리같은 해외여행기회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여행의 기회를 갖게 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길게 올리려니 줄 맞추기도 어렵고 사진 배열도 엉망.. 죄송합니다.
|
첫댓글 여행기 자세히 적느라 수고많았어 . 미군이 점령 사용한지 33년. 오끼나와 원주민은 일본한테 당하고 또미국한테....'
신문도 TV도 안보니 뉴스안듣고 집안일에서 해방, 머리식히기 좋은 기회였고 친구들 더 가까히 보고 몰랐던 성격도 알게된계기.
관광가이드가. 우리 버스 운전하는분 이름이 타지마상이라 한국관광객이 안타서 이름을 바꿨다고.
우리 얼마나 더 다닐수있을까.....하루하루 소중한 시간들이 화살같이 지나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