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현령이 집무실에서 혼자 차를 마시고 있는 동안 문 앞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인, 소인 나문탁입니다."
"나 이방, 무슨 일이냐?"
"대인을 만나려고 소림사의 장로인 정각 대사께서 오셨습니다."
"뭐?!"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방종대는 찻잔을 엎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소리쳤다.
등봉현 안에는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소림사라는 절이 있다는 것을 방종대 역
시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설마 그 절에서도 가장 유명한 중이 자신을 찾아오
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어서 이곳으로 모시어라! 아니다 내가 직접 마중을 나가겠다!"
방종대는 급하게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소리치고 관아의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방 현령이 정각이라는 유명한 고승을 만나기 위해 부산을 떠는 동안 그의 집
에 있는 하녀 중 한 명은 방씨 집안의 막내를 깨우는 무척이나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다.
방씨 집안의 열 다섯 살 난 하녀 취하는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침상으로 조
심조심 다가갔다. 이 방씨 집안의 소악마를 깨우는 일은 하녀들에게 목숨을 거
는 일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취하는 바로 어제 저녁부터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것은 좋은 일이 결코 아니었다. 바로 방 소구라는 이름의 소악마(小惡魔)를 시
중드는 일을 도맡게 된 탓이었다. 청소도 부엌일도 빨래도 모두 하지 않게 되
었지만 취하는 슬펐다. 어제 저녁에 취앵이 대신에 막내의 시중을 맡으라는 말
에 기절한 취하였다. 아침이 되었을 때 취하는 자신의 몸이 막내 도련님의 방
에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짐도 이 방으로 모두 옮겨져 있었고,
이제부터 그녀는 막내 도련님의 방에서 살면서 이 악마 같은 도련님을 시중들
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오늘 제일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악마의 잠을 깨우는 일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그녀는 침상 옆으로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가며 다가갔다.
자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평화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취하의 마음
은 그것을 보면서 공포로 얼어 붙어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침상을 향해
다가갈 때마다 취하는 지옥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
혔다. 취하의 머리 속에서는 소구 도련님의 잠을 깨운다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
지른 다른 하인 하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팔이 부러져서 언제나 팔을 붕대로 묶고 다니는 이팔 아저씨, 며칠 전까지
부엌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취앵이의 시퍼렇게 멍들었던 눈, 그리고 반년 전에
소구 도련님의 시중을 들어주다 아직까지 다리를 절룩이며 살고 있는 동갑내기
하인인 아삼의 모습이 차례로 취하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마침내 취하는 소구의 침상 옆에 도달한 것이다.
취하의 입에서 모기가 날아다닐 때 나는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
다.
" 도련님, 일어나세요."
목소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침상 옆에서 도망쳐 벽에 바짝 붙어 서서 취하는
숨을 죽이고 침상 위를 바라보았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취하
였다.
그녀는 곧 있으면 튀어나올 소구 도련님의 고함을 기다렸지만 침상 위의 도
련님에게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용기를 낸 취
하는 소구 도련님의 침상 곁으로 살금살금 발소리마저 죽여가며 다시 다가갔
다. 다행히도 소구 도련님은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는 소구라는 이름의 악마를 깨워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그녀는 입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소구 도련님, 일어나세요."
이번에는 참새가 짹 하는 소리 정도의 엄청나게 큰 소리로 말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방씨 집안의 막내 도령은 깨어날 생각을 안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아침식사 시간이 흘러가고 점심시간 마저 흘러갔다.
다행스러운 일은 깨워도 안 일어나면 그냥 놔두라고 한 것이었지만, 아침 점
심 다 굶었다는 것을 알면 이 무식한 꼬마 도령은 취하를 두들겨 팰 것이 분명
했다. 비록 일곱 살에 불과한 도련님이었지만 힘이 장사라는 것을 모르는 방씨
집안의 하인과 하녀는 없었다.
취하는 없는 용기를 쥐어 짜내 진짜 용감하게 소구의 몸을 흔들면서 말했다.
" 도련님, 도련님 일어나세요."
소구는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서서히 정신이 들어오
고 있었다. 흐릿한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신을 깨우는 하녀의 얼굴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이 훤하게 밝았다는 것과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자신
이 식사시간을 넘겼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소구는 침상의 옆에서 잔뜩 겁먹은 얼굴로 서 있는 하
녀의 얼굴을 보면서 시각을 물었다.
"지금 시각이 몇 시야?"
"미시(오후 2시경)가 다 되었습니다. 도련님."
방소구는 얼굴을 찡그렸다. 수업시간에 늦어도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엔 아버지한테 엄청 혼날 것이라는 생각이 눈에 선했다.
너무 늦게까지 잔 것이다. 모처럼 원 없이 잤다는 생각에 소구는 식사시간을
넘겨서 자신의 잠을 깨운 무식한 일을 저지른 하녀를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
다.
그래서 그날 일단 취하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늦게까지 잤다는
생각에 소구의 마음은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좀 일찍 깨우지 그랬어?"
"나리하고 마님께서 아침에 저한테 이르시길 도련님이 주무시고 싶을 때까지
주무시게 깨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방소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처음 보는 자신의 하녀를 쳐다보았다.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방소구는 엄청 불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글공부 시간에 빠져도 좋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방소구는 하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불안해졌다. 평소에 바라 마지
않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평소와 다른 이런 일들이 벌어지자 것이 불안해지지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일곱 살에 불과한 나이였고 하루
종일 잠 속에 머무르는 아이였지만, 방소구는 결코 멍청한 아이가 아니었다.
"지금 도련님을 깨운 것은 자더라도 식사는 하시고 주무시라고요."
하녀의 입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말하면서 하녀는 침
상 옆의 탁자 위에 놓인 음식들을 가리켰다.
" 뭐? 식사하고 또 자도 된다는 말이야?"
소구는 놀라 되물었다. 이런 일은 한번도 없던 일이라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
어가고 소구의 귀로 하녀의 확실한 대답이 들려왔다.
"네."
어머니에게 부탁한대로 맨 날 울기만 하는 기분 나쁜 취앵이는 부엌으로 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녀를 보내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소구는 그러고 보
니 이 하녀의 이름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너 이름이 뭐야?"
"저는 취하인데요."
"취하? 너 오늘부터 내 하녀 된 거 맞지?"
"네. 오늘부터 도련님의 시중은 제가 들기로 했는데요."
다른 하인들이나 하녀들과 마찬가지로 이 하녀도 자신을 잔뜩 겁먹은 얼굴로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방소구의 머리 속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침상에서 그대로 일어나면서
방소구는 말했다.
"옷."
취하는 잠시 멍청히 서 있다 곧바로 소구의 잠옷을 벗기고 청색의 비단옷을
소구에게 입혀주었다.
식탁에 앉으면서 소구는 말했다.
"그렇게 안절부절 하지 말고 이리와 앉아. 때리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
아. 난 여자 애를 때릴 정도로 몰상식하지 않다고---."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막내 도련님을 바라보고 있던 취하는 자신이 다른 하인
과 하녀들로부터 들은 말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겁먹은 얼굴에서 무언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바뀐 취하는 조심스럽게 밥을
먹고 있는 막내 도련님의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면서 음식을 씹어먹으면서 소구는 생각했다.
'소구야, 내일 다른 하녀를 보내주마. 그런데 이 하녀마저 쫓아내면 네 시중
을 들어줄 하녀는 없으니 그리 알아라.'
어제 저녁에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소구는 눈앞에 앉아 있는
하녀를 바라보았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겼고, 말도 잘 들을 것 같아서 일단
은 안심이 되었다. 지금은 이 하녀를 구슬려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
는지 알아야 할 때였다.
기분 나쁘다고 두들겨 패고 욕하고 하는 일은 이 하녀에게 하지 말아야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소구는 물었다.
"취하야, 오늘 집에 누가 온대?"
"소림사에서 아주 유명한 고승이 오신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모두들 집안을
청소하고 다시 단장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난 그냥 내 방에서 잠이나 자면서 말썽 일으키지 말라고 계속 자라고 하는
건가-----?"
"저한테 물어보셔도 전 몰라요."
잠시동안 방 안에 정적이 감돌고 묵묵히 식사를 계속하던 소구의 입에서 심
통에 찬 말이 흘러나왔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네세요...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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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ㄳ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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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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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