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V8zRlXnbcc?si=W-iBfTyh9AKPzTbz
Prokofiev - Piano sonata n°2 - Richter Moscow 1966
에밀 길렐스(Emil Gilels 1916년10월19일~1985년10월14일)
에밀 길렐스는 1916년 10월 19일 우크라이나 지방 오데사에서 평범한 회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누나의 손에 이끌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며, 13살 때 최초의 공개 리사이틀을 가진다. 1933년 전소련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부닌의 할아버지인 명교수 겐리프 네이가우스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리히터, 로스트로포비치 등과 함께 수학했다.
1936년에는 빈 콩쿠르에서 야포크 플리어에 이어 2등을 차지했는데, 이때 이미 뉴욕 타임즈로부터 "그의 이름은 천둥처럼 울려 퍼질 것이다."는 예언과도 같은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 예측대로 길렐스의 기량은 나날이 발전하여 1938년 이자이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1944년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초연하는 영광도 안았다. 이어 1945년에는 바인베르트의 피아노 오중주의 초연에 참여했고, 레닌 상도 수여받는다. 1951년 이탈리아를 방문했고, 1954년에는 파리 데뷔를 했으며 이윽고 1955년에는 2차 대전 후 소련 연주자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 때 길렐스가 환호하는 청중들을 향해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어 감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라는 피아니스트가 있는데, 그가 나보다 천 배는 더 낫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리히터와 함께 구소련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의 레퍼토리는 광범위해서 바흐, 스카를라티 등 바로크 음악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고전파 음악, 쇼팽, 슈만, 리스트 등 낭만파 음악, 생상스, 드뷔시 등 프랑스 음악, 차이코프스키, 스크리아빈,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음악을 완벽히 소화했으며, 나아가 규범이 될 만한 명연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강철같은 타건을 자랑했던 그도 1985년 10월 14일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앞서 길렐스의 리히터에 대한 언급을 소개했지만 사실 이 두 사람은 한 살 터울의 동향으로 함께 수학한 친구 사이였고, 나중에는 늘 비교되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길렐스가 그랬던 것처럼 리히터도 훗날 "내가 베토벤 황제 협주곡을 녹음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길렐스가 했기 때문"이라는 말로 그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자료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8U0eiitQtag?si=XhFziIDBLFJ9ML7Y
Emil Gilels plays Prokofiev Sonata No. 2 in D minor Op.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