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439호]
베끼다
정한용
아기는 엄마를 베낀다
엄 마 해봐, 음~ 마~, 아기가 엄마를 베낄 때
엄마는 아기를 벗긴다
우리들은 베끼고 벗기면서 서로 닮는다. 거미줄을 베껴 방탄복을 만들고, 나뭇잎을 벗겨 태양전지판을 만든다. 달팽이를 베껴 접착제를 만들고, 나비날개를 벗겨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든다. '자기야, 날 벗겨봐' 애인들은 밤마다 서로를 베낀다. 뜨겁게 엉킨 몸 위로, 자박자박 천 년이 흘러가고, 중세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제국의 시대로 넘어간다. 간혹 혁명이 일고, 가끔은 미래로 밀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리없이 감춘다.
내가 너를 은밀히 베끼는 사이
너도 나를 살포시 벗긴다, 불륜의 뜨거운 밤
표절의 공범이 된다.
- 《시와문화》 2014 겨울
*
벗기다 베끼다 벗겨먹다 베껴먹다... 저도 한 때 이 유사음을 가지고 뻔하지만 펀(fun)한 시 한 편 써볼까 했더랬는데, 아뿔싸 정한용 시인께서 먼저 쓰셨으니, 이제 뒤늦게 써서 발표한다면 제가 정한용 시인을 베낀 꼴...베껴먹은 꼴이 되는 것이겠지요...^^
기실, 생명이란 유전자가 DNA를 베껴서 다음 세대, 다음 세대로 자기를 보전하는 것이니... 베끼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겠다 싶기도 하구요.... 시인의 말처럼 과학과 기술의 진보라는 것도 그렇고, 역사의 진보 혹은 진화란 것도 알고 보면 벗기고 베끼면서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봄인가 봅니다.
- '자기야, 날 벗겨봐' 애인들은 밤마다 서로를 베낀다
유독 이 문장 앞에 오래 서성거리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자꾸 뜨거워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래요. 봄날이라 그런가 봅니다.
2015. 3. 16.
강원도개발공사 대외협력팀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학생일 때, 리포트를 많이 베꼈거든요.
글씨 잘 쓴 애는 에이 플러스
글씨 못쓴 애는 씨 마이너스 그랬거든요.
베끼는 것도 잘 베껴야 하고 벗기는 것도 잘 벗겨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