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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5:13
문 걸어 잠근 홀로 교회는 없습니다. '나 홀로 교회'도 없고 '우리 끼리 교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교회고 누구에게라도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함께'가 되고 '서로'가 됩니다. '누구만의 교회'가 아니라 '서로의 교회'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공주야!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의 지식과 지혜의 한계, 실행 능력과 예측 능력의 한계를 인정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믿음의 반응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믿음의 기도’를 제시 한다.
There is no church locked with the door. There is no 'holistic church,' and there is no "church of our own." Anyone united with Christ is the church, and to whom they are the church. In Christ, the Church becomes “together” and “one” with one another. What must be done to become 'each other's church,' not 'whose church'. Princess! When faced with an exam, what kind of response of faith can one show by acknowledging the limits of our knowledge and wisdom, as well as our ability to act and predict? In concluding this letter, the author presents the "Prayer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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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도가 우리를 살리고 또 공동체의 다른 지체를 살릴 수 있는가? 고난당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시험 당했을 때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시험당한 지체를 위하여 나의 문제인 듯 기도로 협력해야 한다. 즐거운 일, 성취와 성공처럼 보이는 일을 만날 때 찬양해야 한다. 고난뿐 아니라 찬양의 상황도 시험이 될 수 있다. 내가 찬양받기를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시게 해야 한다.
How can prayer save us and also save other members of our community? You must pray for those who are suffering. When we are tested, we should pray to God for wisdom in faith and cooperate in prayer for those being tested, as if it were our own problem. We should praise when we encounter things that seem joyful, fulfilling, and successful. Not only hardship, but situations of praise can also be a test. Do not expect to be praised; let God be pra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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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하여 장로들을 청하라고 한다. 공동체 전체의 대표로서 공동체의 기도를 요청하라는 뜻도 되고, 병의 원인을 영적으로 잘 분별할 수 있는 리더를 요청하라는 뜻도 될 것이다. 사실 누가 기도하는 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기도가 응답된 것은 악한 시대에 엘리야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드린 믿음의 기도였고 의인의 기도였기 때문이다.
Call upon the elders for those who are in suffering. This means either requesting a representative for the entire community to pray, or calling for a leader who can spiritually discern the cause of the illness. In fact, what is more important than who is praying is that the prayer is of faith. Elia, who shared our temperament, answered God’s prayer because it was a prayer of faith and a prayer of the righteous, offered so that God’s will might be fulfilled in these evi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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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하나님“께 후히 드린 기도였기에 하나님은 그 응답을 통해 당신의 의를 이루신 것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셨기에 정욕으로 미혹에 이끌린 지체를 돌아서게 하는 일은 공동체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다. 이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이며, 허다한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이다. 이렇듯 갖가지 시험을 잘 인내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고생명의 면류관의 복에 참여하는 일은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Because it was a prayer generously offered to God for the wisdom to discern the times, God fulfilled His righteousness through its response. Because God gave us through the Word of truth, it is an important mission for the community to turn away members who have been led astray by lust. This is the work of saving His soul from death through the body of Jesus, and it is the forgiveness of countless sins. Enduring all these trials to become a complete person of God and share in the blessing of the crown of life cannot be don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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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공동체가 함께 하나 되어 협력할 때 가능하다. 세상의 사랑을 압도할 만큼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생명을 잉태하고 살리고 또 생명을 살아내게 한다. 나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할 수 있는가?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움직이는 능력인가, 아니면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게 하는 실천인가? 공동체의 구원은 기도만으로 가능한가? 서로의 구원을 위해 어깨동무할 누군가가 눈에 보이는가?
It is possible when God, His Word, the Holy Spirit, and the community unite and work together. A community united in love that surpasses all love in the world, loving God, conceives life, gives it life, and sustains it. Can I pray that it does not rain? Is a prayer of faith a power that moves God’s will, or an act that draws us to those in suffering? Is the salvation of the community possible through prayer alone? Do you see someone who would link arms with you for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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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권면(13-18)
a.고난당할 때와 기쁠 때:13
b.병자를 위한 중보기도와 엘리야의 예:14-18
진리를 떠난 형제를 돌아오게 하라(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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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13a)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13b)
저는 기도할 것이요(13c)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13d)
저는 찬송할 찌니라(1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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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14a)
병든 자가 있느냐(14b)
저는(14c)
교회의 장로들을(14d)
청할 것이요(14e)
그들은(14f)
주의 이름으로(14g)
기름을 바르며(14h)
위하여(14i)
기도할 찌니라(1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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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는(15a)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15b)
주께서(15c)
저를 일으키시리라(15d)
혹시 죄를(15e)
범하였을 찌라도(15f)
사하심을 얻으리라(1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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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너희 죄를(16a)
서로 고하며(16b)
병 낫기를 위하여(16c)
서로 기도하라(16d)
의인의 간구는(16e)
역사하는(16f)
힘이 많으니라(1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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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17a)
우리와 성정이(17b)
같은 사람이로되(17c)
저가(17d)
비 오지 않기를(17e)
간절히 기도한즉(17f)
삼년 육 개월 동안(17g)
땅에 비가 아니 오고(1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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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도한즉(18a)
하늘이 비를 주고(18b)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1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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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아(19a)
너희 중에(19b)
미혹하여(19c)
진리를 떠난 자를(19d)
누가 돌아서게 하면(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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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알 것은(20a)
죄인을(20b)
미혹한 길에서(20c)
돌아서게 하는 자가(20d)
그 영혼을(20e)
사망에서 구원하며(20f)
허다한 죄를(20g)
덮을 것이니라(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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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찬양으로 시험에 맞서라_Face the test with prayer and praise.
믿음의 기도로 시험에 맞서라_Face the test with a prayer of faith.
시험에 빠진 자를 건져내라_Take out those who fail the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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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어두운 공동체의 현실을 통해 우리의 죄를 깨닫습니다. 밀씀 실천과 함께 믿음의 기도가 하늘의 지혜를 따라 시험을 이기는 길이라고 하셨으니 엘리야의 기도를 배워서 의인의 간구를 하게 하옵소서. 오 주님 믿음으로 기도하면 죄를 사해 주시고 일으켜 주마하였사오니 바라기는 한국교회의 모든 포스트 모던이즘이 말씀운동으로 바뀌어서 개혁신앙의 본질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병상 가운데 있는 환우들의 아픈 곳을 만져주옵소서. 고난당한 자들과 함께 찬양의 기도를 드리며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살아나게 하시옵소서.
Lord, through the reality of our dark community, we realize our sins. As you said that prayer of faith, together with the practice of humility, is the way to overcome trials by following heavenly wisdom, let us learn Elijah’s prayer and make our prayers righteous. Oh Lord, by faith I have prayed that You have forgiven and raised me up; I pray that all postmodernism in the Korean church will be transformed into a movement of the Word and restore the essence of Reformed faith. Touch the aches of the patients in the center of the bed. Raise a prayer of praise with those who are suffering, and revive them once again through the word of truth.
2026.10.25.sun. Clay
신학 비평//
기도는 어떻게 생명을 살리는가? 야고보는 고난당하는 자에게 기도를, 즐거워하는 자에게 찬양을, 병든 자에게 공동체의 돌봄을 요청한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는 관계로 드러난다.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처럼 신앙의 책임은 고통받는 이웃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본문에는 신학적 긴장이 존재한다. 야고보는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일으킨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간절히 기도하고도 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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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치유받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것인가? 그렇게 해석한다면 기도는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 된다. 기도의 응답을 치유의 결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한 진리를 떠난 형제를 돌아오게 하라는 권면은 자칫 타인의 양심을 지배하는 종교적 권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공동체가 진리의 소유자를 자처하는 순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와 강제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진리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일이 아니라 그의 존엄을 지키며 함께 진리를 찾는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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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가 반복하는 핵심은 '서로'라는 말이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기도하며, 길을 잃은 사람을 다시 돌아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능력을 과시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결국 교회는 같은 교리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집합을 넘어,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고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공동체여야 한다. 기도가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히려 참된 기도는 사랑을 행동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