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8구간]
☞ 한무당재-남사봉-어림산-시티재-삼성산-도덕산-봉좌산-이리재 ☜
- 立春孟冬 : 정맥의 품속에 피어난 호국의 얼과 유학의 향기-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8구간[한무당재-이리재]
◆ 일시 : 2006. 2. 3.(금)/4.(토)[무박산행]
◆ 날씨 : 맑음/立春 寒波
◆ 종주경로 : ☞ 한무당재(220m) → 남사봉(470m) → 마치재/927번지방도 → 어림산(510.4m) → 호국봉(384m) → 시티재(195m)/28번국도 → 삼성산(578.2m) → 오룡고개 → 도덕산(703.1m) → 봉좌산(600m)갈림길 → 이리재(290m)/921번지방도 ◀
◆ 시간대별 산행코스 :
△ 04:20 한무당재 출발
△ 04:27 267m
△ 04:45 310m
△ 04:58 임도
△ 05:10 남사봉(470m)
△ 05:18 임도
△ 05:23 390m
△ 05:30 안부
△ 05:42 마치재/927번지방도
△ 06:03 1봉
△ 06:09 2봉(너덜)
△ 06:13 3봉
△ 06:18 4봉/朝鮮孝節閣高金公之墓
△ 06:22 5봉/어림산(510.4m) 정상/뽑혀진 삼각점
△ 06:40 철탑(No.195)
△ 06:46 무명봉
△ 07:00 308m
△ 07:13 묘가 있는 봉우리/직진
△ 07:19 4거리 안부
△ 07:20 무명봉/좌 내리막
△ 07:32 일출
△ 07:36 좌측 철망울타리 시작/잡목의 저항
△ 07:40 능선분기점/좌 내리막
△ 07:43 봉우리 좌 내리막
△ 07:45 안부/철문
△ 07:53 능선분기봉/좌 내리막
△ 08:20 382.9m/돌탑/삼각점
△ 08:24 호국봉(340m) 표목
△ 08:34 안부/송신탑
△ 08:45 시티재/안강휴게소 30분 아침식사 및 휴식
△ 09:15 시티재 출발
△ 09:34 묘가 있는 봉우리
△ 09:35 349.8m/옛 헬기장 공터
△ 09:37 묘가 있는 봉우리/좌 내리막
△ 09:50 363m
△ 09:59 3거리/우측 방향
△ 10:09 능선분기점
△ 10:33 521.5m/삼각점/通政大夫月城李公之墓
△ 10:37 삼성산 갈림길/532m
△ 10:47 삼각점 봉우리
△ 10:52 삼성산(578.2m) 정상표석
△ 11:05 삼성산 갈림길 복귀
△ 11:18 묘/골말안부
△ 11:26 묘가 있는 봉우리/5분 휴식
△ 11:40 368.4m/삼각점(기계470)
△ 11:48 오룡고개/2차선 포장도로
△ 11:51 임도
△ 12:02 쌍묘
△ 12:08 급경사 도덕산 오름길 시작/헉헉
△ 12:42 도덕산 갈림길
△ 12:53 삼각점(기계76) 봉우리
△ 12:55 도덕산(703.1m) 정상/시원한 조망
△ 13:07 도덕산 갈림길 복귀
△ 13:16 570.7m/삼각점
△ 13:20 천장산 갈림길/우 내리막
△ 13:27 좌 개활지
△ 13:30 임도
△ 13:34 무명봉
△ 13:38 무명봉/우 내리막
△ 13:56 능선분기봉/좌 내리막
△ 14:07 무명봉
△ 14:27 614.9m/봉좌산 갈림길/좌 내리막/봉좌산 over pass
△ 14:47 마지막 봉우리
△ 14:55 이리재/921번지방도
△ 17:15 포항 기계면사무소 출발
△ 21:20 서울 강남역 도착
◆ 산행거리 : 25.3km[도상거리] +삼성산, 도덕산 왕복 2.5km
[도상거리 : 25.3km : 박성태,「신산경표」참조]
☞한무당재-4.3km-마치재-1.6km-어림산-7.6km-시티재-3.3km-삼성산분기봉-3.4km-도덕산분기봉-5.1km-이리재 ◀
[GPS실거리 : 28.35km : 사람과 산,「정맥종주지도집」참조]
☞한무당재-2.8km-남사봉-1.5km-마치재-1.6km-어림산-7.4km-시티재-3km-삼성산분기봉(521.5m)-2.8km-오룡고개-4km-도덕산분기봉-4km-봉좌산분기봉(614.9m)-1.25km-이리재◀
◆ 산행시간 : 10시간 35분(휴식 및 삼성산, 도덕산 왕복 포함)
◆ 형태 : 덕칠이 합동산행[서훈식 고문, 허공 대장, 범털 총무, 창암, 밤안개, 천사, 대왕, 윤비, 뚜벅이, 무흠, 탱크, 나푸른솔, 초롱아빠, 흑기사, 서송수, 토끼, 김수영+1, 들꽃, 높은산님팀 땜빵요원 1, 주유천하 : 21명]
-----------------------------------
♥ 山과 詩 ♥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 오세영, “2월” 전문
------------------------------
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8구간의 포인트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8구간은 한무당재(청석재/할미당재)에서 남사봉-어림산-시티재-오룡고개를 지나 이리재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구간의 최고봉은 정맥길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도덕산이 703.1m으로 고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나, 지난 구간의 非山非野지대와는 달리 정맥길 본연의 호젓하고 오지다운 맛을 느껴볼 수 있는 구간으로 기대된다.
이 구간 정맥길은 한무당재에서 시티재를 지나 삼성산 갈림길까지는 영천시 고경면과 경주시 서면, 안강읍을 가르는 경계가 되고, 이후 도덕산 갈림길까지는 영천시 고경면을 통과하다가 봉좌산 갈림길에 이르러 좌측으로는 영천시 고경면과 우측으로는 경주시 안강읍을 지나 포항시와 경계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정맥길은 이번 구간에서 봉좌산 갈림길을 지나면서 경주시를 벗어나 포항시로 진입하게 된다.
이번 구간에는 산이름이 붙은 산은 어림산(510.4m)이 있을 뿐, 무명봉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정맥길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삼성산(578.2m), 도덕산(703.1m), 봉좌산(600m)이 정맥길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림산은 남사봉과 더불어 새벽어둠 속에 스쳐지나가게 될 것이므로 이 구간 종주시 1시간쯤 더 투자하여 위 3개의 산에 올라 물결치듯 굽이치는 주위의 산세를 눈요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위 산들은 백두대간길의 버리미기재에서 은티마을 구간의 악휘봉과 희양산이 대간길 곁에서 대간길을 지켜보는 것과 같이 정맥길 곁에서 정맥길을 지켜보는 훌륭한 조망대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 기대된다. 정맥을 종주하면서 주어진 루트만을 맹목처럼 통과할 것이 아니라 정맥길 주위의 볼만한 것은 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가야 할 산이 많은데 언제 다시 이곳에 와 보겠는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둘러보자. 대간이나 정맥종주는 단지 스쳐지나가는 통과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悠悠自適하면서 보고 느끼고 누리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산행은 Allegro보다는 Andante, Andante보다는 Adagio 풍이 아닐까? 물론 산을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고 남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이 구간 도상거리가 약 25km정도에 이르고, 위 3개의 산을 다녀오려면 3km에 1시간 정도 과외를 하여야 하므로 산행시간이 11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일보 발간의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산행』에는 이 구간거리가 29.6km, 11시간 1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이는 좀 뻥튀긴 면이 없지 않다.
이번 구간의 중간지점이 시티재이고, 한무당재에서 시티재까지는 5시간 정도면 이를 수 있으므로 안강휴게소가 있는 시티재에서 숨고르기를 하면서 순대를 채우도록 하면 무거운 배낭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한결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다. 특히 오룡고개 이후 도덕산과 봉좌산 갈림길로 가는 길은 고도차가 심한 오르내림이 이어지고 있으므로 체력안배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2. 낙동정맥 제7구간 들머리 : 한무당재로
2006. 2. 3. 금요일 밤 금요무박으로 낙동정맥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주는 구정 귀향으로 산행이 없었던 주였고, 2월 들어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2월에는 1, 3주는 낙동정맥으로, 2주는 영춘지맥으로, 4주는 낙남정맥으로 산줄기 이어가기 일정이 잡혀있다. 앞으로 올 상반기는 이런 형태의 산줄기 이어가기가 계속될 것이다.
봄의 입구라는 입춘을 앞두고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급강하하였다. 2월 4일은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인 立春으로 봄의 문턱으로 접어든다는 절후이지만 오는 봄을 시샘하는지 입춘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立春大吉이 아니라 立春孟冬이다. 그 동안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게 느껴왔던 터라 유난히 춥게 느껴진다. 이런 날 장거리산행을 하려면 보온에 대비한 단단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밤 11시 양재동 서초구민회관에서 버스에 오르자마자 바로 버스는 출발한다. 회사업무 및 감기 등으로 회장님과 몇 분이 빠지고 산행인원은 모두 21명, 서브쓰리 마라토너 김수영님과 친구분이 새로이 우리 팀과 합류하였고, 높은산님팀과 낙동정맥을 종주하고 있는 분이 땜빵차 우리와 같이 산행을 한다. 높은산님팀은 남진을 하여 한무당재까지 내려왔고, 우리는 북진을 하여 한무당재까지 올라갔다. 높은산님팀과 정맥길에서 조우하기를 기대했는데 서로의 일정상 길이 어긋나게 되어 아쉽다.
버스는 출발하자마자 소등, 잠시 엎치락뒤치락하다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새벽 1시경 깨어나 보니 버스는 어둠 속을 뚫고 대구쪽을 달리고 있다. 새벽 2시 20분, 예전에도 들렸던 평사휴게소에서 쉰다. 5시간쯤 산행을 하면 시티재 휴게소에서 식사를 할 수 있으므로 속도 더부룩하고 이곳에서 먹는 것은 단념한다.
2006. 2. 4. 토요일 새벽 3시 50분 버스는 지난 구간 날머리인 한무당재에 도착한다. 무박산행에 길들여지기는 하였지만 추운 새벽에 버스 밖으로 나가기는 싫다. 주섬주섬 행장을 차리고 버스에서 나오니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날씨도 추운데 체조를 생략하고 그냥 산길을 올라갔으면 좋으련만 매서운 흑기사 유격조교의 독촉으로 할 수 없이 배낭을 부려놓고 체조를 한다. 달밤의 체조가 아니라 별밤의 체조다.
체조를 하면서 올려다본 밤하늘은 그야말로 별무리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이 시간에 북두칠성의 국자는 국물을 쏟아내듯 뒤집어져 자리를 잡고 있다. 소시적에는 저런 명징한 별무리들을 보면서 꿈도 많이 꾸었었는데, 이제 세월은 흐르고 흘러 모든 게 一場春夢이고 南柯之夢이다. 되돌아보니 별 거 아닌 세상을 별 거나 있는 듯이 살아왔다.
3. 어둠 속의 남사봉(南莎峰, 470m)과 어림산(御臨山, 510.4m)
새벽 4시 20분 한무당재 도로 옆 계단을 따라 오르막을 오른다. 걸기작거리는 전선줄 같은 것을 넘어 본격 산길로 들어서니 기온의 급강하로 땅바닥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굳어있다. 강원도쪽에 눈이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이곳에는 눈의 흔적은 없다. 길은 잘 나있고 잡목의 저항도 없는 편한 길이다.
한무당재에서 7분쯤 올라서니 267m로 추정되는 봉우리에 이르고, 좌측으로 청석골 마을의 불빛이 들어온다. 어두운 밤이고 숲 속이라 정확한 현재위치 파악이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 내려선 후 오르막을 오른 봉우리가 310m쯤으로 생각된다. 추운 날씨로 안경에 서리가 끼여 이를 닦아내느라 지체하다보니 후미로 빠지고 본의 아니게 흑기사 후미대장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
310m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다 보니 넓은 공터와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둔덕을 올라 숲길로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남사봉(471m)이다. 남사봉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같은 것은 없고 새벽 5시 10분으로 여전히 어둠 속이라 보이는 것도 없다. 날이 밝아도 숲으로 인해 조망은 그리 시원하지 않을 듯 하다.
남사봉(南莎峰)은 남쪽 자락에 있는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南莎里)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을이 남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남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은 어림산(御臨山, 510m)과 인내산(534m)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아늑하고 산세가 수려하여 世居之地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박정희 전대통령도 생전에 은퇴하면 이곳에서 살고 싶어 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그만큼 이곳이 산세나 지세가 명당자리라는 뜻일 것이나 야밤이라 남사리 마을을 조망하지도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간다.
천도교의 창시자 수운 최재우도 이 동네 출신이다. 동학혁명이 주로 백두대간의 서쪽에서만 봉기하고, 동학혁명의 불꽃이 백두대간을 넘지 못했으나 경상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경주쪽에서만 동학의 불꽃이 타올랐던 것은 바로 최재우가 이곳 경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조석필, 『태백산맥은 없다』155면). 경주국립공원 구미산 기슭에는 최재우가 포교활동을 하고 용담유사를 저술한 곳인 용담정이 있고, 용담정 입구에 최재우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남사봉에서 길의 방향을 좌측으로 확 틀어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안경알이 급강하한 기온으로 얼어붙어 시계제로가 되면서 일행들을 앞서 보내고 어쩔 수 없이 후미로 빠진다. 남사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면 임도를 만나고, 다시 오른 봉우리에서 안부로 내려선다. 숲길 오르막을 오르면 어떤 묘가 있는 봉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마치재이다. 어쩌다보니 나와 흑기사후미대장과 나푸른솔님 등 셋이서 최후미가 되었다.
마치재(馬齒)는 황수탕으로 유명한 덕정리 청석(靑石)마을과 경주시 현곡면의 남사리로 연결하는 고개로서 927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이곳의 지형이 말의 이빨과 비슷하다고 하여 마치, 말티재 또는 馬峴이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마치재 도로 좌측의 영천군 표지판이 있는 곳의 들머리로 올라 산길을 오르는데 우리가 내려온 봉우리에서 불빛이 빤짝이는 것이 보인다. 혹시 우리와 다른 팀인지 선두 중의 일부가 알바를 하여 뒤쫓아 오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아니하여 흑기사님이 “덕칠!”을 외쳐보았으나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고 다른 일행으로 알고 그냥 진행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림산을 오르는 길이다. 어림산까지는 5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1,500산을 순례중인 김정길님의 표찰이 달려있는데 1봉에서 5봉 정상까지 25분이 걸리는 것으로 적혀 있는데 나는 19분이 걸렸다. 1봉에서 6분쯤 가면 너덜봉우리인 2봉이 나오고, 그 다음 봉우리에서 5분쯤 진행하면 어떤 거창한 비석과 묘가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이쪽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비석의 비문을 랜턴으로 비춰보니 흐릿하기는 하지만 ‘朝鮮孝節閣高金公之墓’로 되어 있는데 중간의 ‘閣’자는 마모되어 정확하지는 않다. 사진을 찍어봤는데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通政大夫 벼슬을 한 사람으로 孝節이라는 시호를 받은 사람의 묘 같은데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한다. 通政大夫라면 당상관 벼슬로 오늘날의 사무관이나 서기관쯤 되는 공무원이다. 낙남정맥이나 낙동정맥을 종주하면서 만나는 묘들을 보면서 제대로 비석을 세운 묘를 보지 못했다. 이곳의 대부분 묘지는 봉분 앞의 상석에 누구의 묘라는 사실을 새겨 넣는 정도였다.
이곳에서 다시 5분쯤 진행하면 어림산(510.4m) 정상이다. 정상석은 없고 김정길님의 어림산 표찰이 달려있다. 삼각점 덩어리는 뽑혀져 뒹굴고 있다. 어림산은 신라시대에 임금님이 둘러보았다 해서 어림산(御臨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구라가 전해져 오는데 어두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옛날 임금님이 이런 산을 둘러보기에는 ‘어림없는’ 산으로 보인다.
지도를 보니 도덕산 동쪽에 ‘어래산’이 보여 이 산도 혹시 임금님과 관련이 있는 산인가 했더니 어래산은 임금님 ‘御’와는 관계없는 ‘물고기’ ‘魚來山’이다. 웬 산에 물고기라니? 어래산은 도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면 우뚝 솟은 산이다.
4. 護國園을 아시나요? : 호국봉(護國峰, 340m)
새벽어둠 속에 남사봉과 어림산은 그냥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6시 30분이 지나가면서 아직 일출시간은 1시간 정도 남아있지만 주위의 산들이 실루엣을 그리며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림산에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서 진행하다 보니 송전철탑을 지나고 이어 한 봉우리로 오른다.
야수골에서 평지말로 이어지는 골이 있는 4거리 안부에서 오르막을 올라 계속 이어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 고도차가 크지 않아 별 부담이 없는 트레킹구간이다. 사방의 산줄기들은 어둠을 벗어나 뚜렷한 형체를 그리고 있고, 낙엽이 잔뜩 깔린 호젓한 참나무 숲길을 걷는다. 마침 잠시 쉬면서 반대방향에서 진행해오는 홀로 정맥꾼을 만나 앞에 몇 명쯤 지나가는 것을 봤는지 물으니 6명이 지나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중위부대 대부분은 알바를 했다는 이야기다.
여러 개의 야트막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보니 숲 사이로 동쪽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시간은 7시 32분이다. 거친 잡목들의 태클을 받으며 진행하다 보니 좌측으로 사유지 경계철망 울타리를 접하여 진행한다. 표지기가 곳곳에 달려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지 아닌지는 한눈에 알 수 있어 정맥 마루금을 놓칠 우려는 할 필요가 없다. 망개나무인지 명감나무인지 한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는 모습도 본다. 좌측으로 고경저수지의 모습이 들어오는 것이 시티재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경기도 지방에서 청미래덩굴이라 부르면서 공식적으로 채택된 이름이며, 황해도와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라 하고, 호남지방에서는 ‘명감나무’ 또는 ‘맹감나무’라 부른다. 요즘 꽃가게에서 꽃꽂이 재료로 많이 사용되며 멍개나무, 망개나무라고 흔히 부른다고 한다.-탱크님의 설명
능선분기봉에서 정맥길이 급히 좌측으로 꺾여 내려서다가 다시 한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을 내려서니 좌측으로 철문이 있고, 오르막을 올라 묘1기가 있는 능선분기봉서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봉우리 하나를 지나 또 한 봉우리의 좌측 사면을 돌고 오르니 세우다 만 돌탑이 있는 382.9m봉이다. 삼각점은 돌탑 한가운데 있다.
382.9m봉에서 나푸른솔님과 흑기사님
좌측으로 무학산(舞鶴山, 440m)의 자태가 들어온다. 그런데 산경표상에는 무학산이 정맥길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실제 무학산은 정맥길에서 비켜나 있다. 산경표가 잘못된 것인지, 내가 정맥길이 아닌 곳으로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맥길에 산다운 산이 없어 옆에 있는 산이름을 적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382.9m에서 조금만 진행하면 호국봉(340m) 표지말뚝이 세워진 봉우리와 조우한다. 말뚝 한 켠에도 영천호국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봉우리로서 뚜렷하지 않은 이 봉우리를 국립영천호국원 뒷산 봉우리라고 ‘호국봉’ 말뚝을 박아놓고 이 봉우리를 호국봉으로 부르는 모양이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이 봉우리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 봉우리 이름을 호국봉으로 부르다보면 호국봉으로 굳어질 것이고, 정맥지도에도 호국봉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 봉우리 좌측 숲 사이로 영천호국원의 현충탑과 영천대첩비가 보인다.
호국봉(340m) 표지목
영천대첩은 6ㆍ25전쟁 당시 다부동전투와 안강전투, 형산강전투와 함께 낙동강 방어선의 마지막 보루였던 영천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을 섬멸하여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의 교두보였던 영천을 탈환,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수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이 땅 이곳에서 피를 뿌려 몸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내었다. 이곳 정맥의 품에 호국의 얼이 살아 숨쉰다.
이 나라는 건국과 6ㆍ25전쟁, 월남전 등을 통해 수많은 젊은 영령들이 산화하였고, 그 영령들이 묻혀있는 곳이 바로 국립묘지이다. 2006. 1. 27.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국립묘지를 1. 국립서울현충원(동작동) 2. 국립대전현충원(대전시 유성구) 3. 국립4·19민주묘지(수유리) 4. 국립3·15민주묘지(마산시 구암동) 5. 국립5·18민주묘지(광주시 망월동) 6. 국립호국원(경북 영천의 영천호국원과 전북 임실의 임실호국원이 있다)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묘지를 관리하기 위해서 국립묘지관리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현충원을 관리하는 관리사무소는 국방부장관 소속이고, 나머지는 국가보훈처장 소속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현충원의 관할권을 가져가려고 하고 있으나 국방부가 내놓지 않을 기세다. 종래의 국립묘지령에 의하면 국립현충원이 국립묘지관리소로 되어 있어(顯忠園이 아니라 顯忠院이었다) 국립묘지에 참배를 가는 것인지, 국립현충원에 참배를 가는 것인지 헷갈리게 되어 있었으나, 새로운 법의 제정으로 이제는 현충원이 국립묘지의 일종으로 확실하게 정리되었다.
호국봉에서 10여분 내려가면 안부상에 한국통신 프리텔 송신탑이 있다. 이 송신탑 시설이 있는 뒤편 숲으로 들어가 소나무 숲 내리막을 요리조리 내려가면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 28번국도가 지나는 시티재가 안전에 전개된다. 차가 씽씽 달릴 것으로 예상했던 편도3차로의 산업도로 같은 대로에 교통량도 거의 없고, 휴게소의 주유소는 폐쇄되었고 주차장도 썰렁하다. 수로를 따라 내려가 옹벽 밑으로 내려선 다음 도로를 횡단하여 중앙분리대를 타고 넘는다. 지나는 차가 거의 없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썰렁한 시티재 안강휴게소
5. 영천과 포항을 잇는 고개 : 시티재 휴게소의 명암
한무당재에서 시티재까지 13.5km를 오는데 4시간 25분이 걸렸다. 아마도 선두는 4시간 이내에 도착했을 것이다. 편도 3차로의 28번 국도를 횡단하여 갓길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어떤 항일인물 비석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올라 안강휴게소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완전히 허허벌판이다. 넓은 주차장에 차들이 없다. 아니 인간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주유소는 문을 닫았고, 중간의 여관을 겸한 휴게소 건물도 네온간판이 떨어져나간 채로 문을 닫았다. 임시 할인마트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밥도 싸오지 않았는데 혹시 식당이 문을 닫았으면 조졌다고 생각하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그나마 장사를 하고 있어서 안도했다. 그러나 식당 안은 우리 일행 이외에는 사람들이 없다. 어쩌면 이 식당도 얼마 없어 문을 닫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도만 보고 고속도로 휴게소마냥 붐빌 것으로 알고 왔는데 왜 이런고?
이곳 시티재의 휴게소 동네가 썰렁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개통된 대구-포항간 고속국도 때문이다. 교통량의 많은 부분을 고속도로에 빼앗기면서 이곳 도로는 한산해지고 덩달아 주유소나 휴게소도 썰렁해진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시 빼재(신풍령)의 휴게소 등 여러 곳의 주유소와 휴게소가 폐허화된 것을 본 적이 있다. 한반도 모양의 남북평화통일기념비 앞에서 흑기사님의 사진을 박아준다. 그런데 사진을 박기는 잘하는데 빼는 것은 신통치 않아 제대로 사진을 전해 줄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에 기존의 국도와의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대뽀(無鐵砲 ; むてっぽう)’로 고속도로가 확충되면서 중복투자 내지는 과잉투자 논란이 일고 있는데 시티재를 통과하는 28번국도도 그런 신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SOC라고 하는 사회간접자본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지명서비스에 의하면 시티재는 해발 300m의 안강읍 강교에서 영천군 고경으로 넘어가는 험준한 고개로서 식량과 상품을 운반하는 마소의 등에 실린 시티다발의 이름을 따서 시티재라 한다고 하는데 ‘시티’가 무엇이지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고산자의 대동여지도를 보니 이 고개이름이 ‘馬耳峴’으로 되어 있다. 어쨌든 이 고개가 말과 관련이 깊은 고개임은 틀림이 없다.
식당 안에는 선두들이 이미 도착하여 식사를 마친 상태이고, 같이 도착한 창암선생님과 나푸른솔님, 흑기사님이 함께 국밥을 시켜놓고 먹는 사이에 알바를 한 후미도 도착하였다. 지난 구간에서 선두와 합류하였다가 알바를 하였던 중종대왕님은 이번에는 중위그룹과 합류하였다가 알바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대왕님 가는 길엔 알바가 있다!’ 그런데 남들이 하는 알바는 왜 그리 재미있지?
김수영님과 다른 한분이 가사령까지 2개 구간을 한꺼번에 이어가기 위하여 먼저 출발한다고 하는데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후미가 식사를 마치기 전에 우리팀 선두도 출발한다고 하여 나도 꼽사리끼어 출발하기로 한다. 중간에 삼성산이나 도덕산을 갔다 오려면 시간을 좀 벌어두지 않으면 안된다.
시티재 출발을 앞두고 : 휴게소 식당 우측 뒷편
6. 聖人이 따로 없다! : 삼성산(三聖山, 578.2m)
오전 9시 15분 선두를 따라 시티재를 출발한다. 휴게소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우리는 편한대로 휴게소 식당 우측의 들머리로 오른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면서 후미로 빠진다. 슬슬 쉬엄쉬엄 20분 가까이 오르다 보니 묘가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 나온다. 좌측으로도 표지기가 보이는 곳이 아마도 휴게소 좌측으로 올라오는 길일 것이다.
이곳에서 바로 오르막을 오르면 옛 헬기장 터로 보이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349.8m로 추정한다. 지도상에는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는데 삼각점이 눈에 띠지 아니하여 긴가 민가 한다. 이곳에서 2분 정도 진행한 곳에 있는 봉우리에서 좌측 내리막을 내려섰다가 오른 봉우리를 363m봉으로 추정한다.
이곳에서 내려섰다가 솔숲 오르막을 오르면 3거리 지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표지기를 따라 우측길로 방향을 잡는다. 처음에는 이곳이 삼성산 갈림길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지도를 보니 갈 길이 더 남았다. 약간 내리막인 듯한 솔 숲길을 내려섰다가 한 봉우리 우측사면을 따르다보니 능선분기점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매서운 바람 소리뿐 텅 빈 숲길을 걷다보니 나도 텅 비워진 느낌을 갖는다. 나도 세상도 모든 게 단순하다. 정맥길을 걷는 맛이다. 완만하던 길이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바뀌면서 숨을 헉헉거린다. 해발 고도 500m도 되지 않은 봉우리가 꽤 힘들게 느껴진다. 오르막 중간에 좌측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묘를 지나 계속 급피치를 올리며 오른 봉우리가 521.5m봉이다.
이 봉우리에는 삼각점(489 재설, 78.8, 건설부)이 있고 通政大夫月城李氏의 묘가 있다. 어림산 직전의 묘처럼 거창한 비석이 세워져 있고, 望柱石 두개가 좌우로 세워져 있는 것이 꽤 지체가 있는 인물(지체가 있어봐야 당상관, 잘해야 오늘날의 사무관이나 서기관급 공무원이다)이 묻혀있는 무덤으로 보이나,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와서 이곳에 묘를 만든 망자의 후손들은 벌초와 관리로 고생깨나 할 것 같다.
未嘗不 묘의 봉분은 잔디도 없고 흙덩어리뿐이니 후손이 고달플 뿐만 아니라 망자의 영혼도 고달프게 구천을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陰宅發福을 기원하는 후손들의 마음이야 가상하지만, 내가 대간과 정맥종주를 하면서 실감한 것은 앞으로는 묘지문화도 바꿔야 할 것이라는 강한 심증이 든다.
521.5m봉에서 참암 화백님과 함께
그런데 언제 올라왔는지 대왕님이 이 봉우리로 올라와 나와 청암 화백님의 사진을 박아준다. 521.5m봉에서 완만한 오름길을 가다보면 능선에서 쭉 뻗어 가면 삼성산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내려서는 분기점이 나온다. 삼성산 갈림길이다. 다들 삼성산으로 가는 것을 꺼리지만 나홀로 배낭을 벗어놓고 대표로 삼성산을 가보기로 한다.
삼성산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10분쯤 낙엽이 수북한 호젓한 오르막을 오르내리면 삼각점(818재설, 78. 8. 건설부)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주위의 나무들을 벌채해놓아 제법 조망이 좋은 편이다. 우뚝 솟은 도덕산과 자옥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내려가려고 하다가 높은산님의 산행기에서 삼성산 표석을 본 기억이 있어 계속 직진해보니 근사한 소나무와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나 삼성산(591m) 정상임을 알려주는 고경면 청년회의 안내판과 어떤 산악회의 정상 표석이 세워져 있는 바위 덩어리가 있는 곳에 이른다. 삼성산 갈림길에서 삼성산까지는 15분 정도가 소요되고, 거리는 700-800m쯤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된 게 삼각점 봉우리와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는 봉우리가 다르게 되어 있다.
삼성산 정성표석
삼성산은 옛날 이 산에 3父子가 살고 있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초근목피로서 연명하여 가면서도 聖人의 도를 잘 베푼다고 하여 이 삼부자를 보고 성인이라 하고 이 산을 삼성산이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국토지리정보원). 그러고 보면 聖人이 거창하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슈바이처도 될 수 있고, 테라사 수녀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張三李四, 匹夫匹婦 누구나 착하고 선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욕망과 집착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는 범인들이 착하고 선하기는 쉽지 않다.
지도를 보니 삼성산 갈림길에서 삼성산-자옥산(569.9m)-도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경주와 영천의 군계와 일치하고 정맥길이어야 할 것 같으나,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따라 삼성산과 자옥산 사이에 있는 성산저수지 물길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삼성산 갈림길에서 도덕산갈 림길까지의 정맥길이 좌측으로 영천시 임고면 오룡리 내부를 관통하여 오룡고개를 지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간이나 정맥길이 도계나 군계와 일치하지는 않는 구간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망은 삼성산 정상에서보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봉우리가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맥길로 복귀한다. 삼각점 봉우리를 지나 정맥길로 돌아가는데 탱크님이 혼자 배낭을 짊어진 채로 삼성산쪽으로 오고 있다. 나는 꾀만 늘어 배낭을 부려두고 왔는데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생각하는데 탱크님은 이 길이 정맥길인줄 알고 표지기를 따라 그냥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탱크님은 나를 만나지 못했으면 자옥산으로 직행하든지 삼성산 표석을 보고 통한의 알바를 할 뻔 했다.
삼성산으로 가는 길에도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는데 아마도 이는 삼성산-자옥산-도덕산-봉좌산으로 이어지는 경주시계 표지기들이다. 아마도 이 코스는 훌륭한 종주코스가 될 것 같다. 상산저수지 물길이 아니라면 나도 경주시계를 따라 삼성산에서 자옥산을 거쳐 도덕산으로 이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쨌든 탱크님과 길동무가 되어 삼성산 갈림길로 복귀하여 3거리에서 사면을 타고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간다. 이곳에서 13분쯤 요리조리 내려가니 묘가 있는 골말 안부에 이르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묘가 있는 봉우리에서 탱크님과 5분쯤 쉰다. 이 봉우리가 지도상의 407m로 추정된다. 웬일인지 탱크님은 쉬면서도 흑기사님이나 초롱아빠가 같이 있으면 몰라도 홀로는 꼬바리를 하지 않는다는 당찬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470m에서 10여분 더 진행하면 삼각점(기계470)이 있는 368.4m봉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맥길이 우측으로 휘면서 솔숲 속으로 들어가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오룡고개 직전의 묘가 있는 곳에서 흑기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오룡고개를 지난다. 오룡고개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7. 정맥의 품속에 피어난 회재(晦齋)의 얼 : 도덕산(道德山, 703.1m)
후미로 쳐진 주제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바로 오룡고개 도로를 지나 좌측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의 뒷길을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이어서 밭이 나온다. 다시 좌측으로 솔숲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니 앞에 도덕산이 위압적으로 떡 버티고 있다.
부부의 묘로 보이는 쌍묘를 지나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런데 도덕산 갈림길까지 오르는 길은 이번 구간의 클라이맥스라 할 정도로 급경사의 된비알이다. 30여분을 줄창 올라야 하는데 나의 발끝에 지남철이 붙어있는 것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르막이 버겁다. 창암 선생님도 연신 쉬면서 오름길을 이어가고 있다.
지그재그도 아니고 그냥 직진 오르막인데 도저히 한숨에 오르지 못하고 흑기사님과 탱크님을 추월시킨 후 혼자 잠시 쉬면서 우유 팩 하나를 마시고 심신을 충전하여 다시 오른다. 좌측으로는 정맥길에 어울리지 않은 너덜지대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정맥길 중 제일 헉헉거리고 숨을 몰아쉬며 오른 길 같다. 중간에 잠시 쉬었지만 35분을 직진 오르막에 매달린 후에야 도덕산 갈림길에 이르고 긴 숨을 내쉰다.
도덕산 분기점에서 정맥길은 좌측능선이나 도덕산으로 가보기 위하여 다시 배낭을 부려놓고 귤 2개만 포켓에 넣고 우측능선을 따른다. 성벽 같은 바위를 지나 순탄한 오름길을 가다보니 일단의 산꾼들이 내려오고 있고, 범털총무도 내려오고 있다. 분기점에서 10여분만에 삼각점(기계76, 78재설)이 있는 봉우리에 이르고, 삼성산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는 정상표지석이 없어 직진하니 바로 훌륭한 전망바위가 있는 도덕산 정상이다.
도덕산 정상표석과 함께-흑기사 후미대장
도덕산 정상에서 흑기사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맞아준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삼성산 보다 낮다. 동쪽으로 앞에 댐이 있는 옥산지 건너 어래산이 턱 버티고 있고, 옥산서원이 있는 옥산리 마을동네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덕산은 자옥산과 더불어 동방五賢(이황, 조광조, 이언적, 정여창, 김굉필)의 한 사람인 조선조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관계가 깊은 산이다. 산 이름도 옛날에는 이 산을 ‘도독산’이라고 하였는데 회재 이언적 선생이 이 산에서 공부하여 성공하였다고 하여 후인들이 ‘도덕산’으로 부르는 산이다(국토지리정보원).
도덕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어래산과 삼성산 사이의 옥산서원이 있는 마을
도덕산 기슭의 옥산리에는 이언적 선생의 뜻을 기리는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 제154호)이 있고, 이언적이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집에 지은 사랑채인 독락당(獨樂堂, 보물 제413호)도 있다. 이언적의 호는 주희의 호가 ‘회암(晦菴 ; 어두운 집)’인 것을 따라 ‘회재(晦齋 ; 어두운 집)’로 지었다. 주희의 이 호는 “땅 속은 어둡지만, 그곳에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가 밝은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獨樂堂은 이언적의 어두운 집에서 나왔다.
‘獨樂堂’이란 글자 그대로 ‘홀로 즐기는 집’이라는 뜻인데 독락당 하면 조정권의 시 ‘독락당’이 떠오른다.
獨樂堂 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조정권, “독락당” 전문
독락당의 달을 대하는 누각은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그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없다. 독락당의 주인은 세속과의 거리를 둔 채 自尊과 自游의 공간에서 어떠한 유혹도 물리치고 달을 벗 삼아 홀로 즐길 수 있는 자유인이다. 법정 스님과 같은 분도 독락당을 지어놓고 홀로 사는 사람이 아닐까? 나에게는 홀로 즐길 수 있는 내면의 집이 있는가? 그냥 세파에 휘둘리면서 시류에 영합하며 줏대 없이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나도 인생말년에 나만의 독락당을 짓고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즐기며 살고 싶다.
이언적은 안강 인근의 강동면 양동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서애 류성룡을 배출한 풍산류씨의 집성촌인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와 여강이씨가 어울려 사는 집성촌으로 古宅들이 보존되어 있다. 도덕산 정상에서 양동마을까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양동마을은 마을 뒷산(설창산)에서 ‘勿’(물) 자형 네 줄기로 갈라져 나온 언덕과 골짜기마다 한옥들이 넓게 펼쳐진 안강평야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있다.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계승되어 소위 영남학파의 선구가 된다. 그러고 보면 정맥을 품고 조선유학이 발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유학이라는 것이 쓸데없이 조상제사나 지내고 부모나 잘 모시는 고리타분한 명리학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조선은 조선대로의 이념과 윤리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유학이었다. 요새 보기에는 웃기지도 않는 예송논쟁도 지금보기에는 한심한 일일지라도 당시로서는 주자학의 명분을 중시하는 논리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8. 鳳凰이 앉아있는 산 : 봉좌산(鳳座山, 600m) Over Pass
도덕산에서 돌아와 도덕산 갈림길로 복귀하여 이리재 방향으로 간다. 직진하여 호젓한 길을 가다가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참나무 숲이다. 나의 그림자가 가는 길 앞에 늘어서는데 그림자 벗을 하여 가는 길이다.
도덕산 갈림길에서 10여분 만에 이른 봉우리답지 않은 봉우리에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570.7m봉이다. 삼각점의 글자는 너무 마모되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와 좌측길로 진행하다가 천장산 갈림길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이어지는 능선이 사면을 타고 가면서 좌측에 개활지를 만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참나무 숲 봉우리에서 내려서면 임도와 조우하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진행하면 좌측 들머리에 표지기들이 걸려있다. 숲으로 진입하여 오른 봉우리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에서 우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한 봉우리의 사면을 좌우측으로 우회하여 낙엽길을 내려갔다가 오르막을 올라 봉우리의 좌측길으로 진행하는데 한 봉우리 앞에 길이 두 군데로 나있고 표지기도 양쪽에 다 걸려있다.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르려고 하는데 반대방향에서 오는 정맥꾼들이 좌측사면을 따라오고 있어 좌측사면을 따라 진행한다.
나중에 확인하여 보니 직진하여 오르막을 타면 589m봉으로 가는 분기봉으로 가는 길이다. 처음에는 이 길로 가야 봉좌산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좌 사면을 따라 진행하여 오른 봉우리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장거리가 주특기인 탱크님이 저벅저벅 앞서 나가고 나와 창안선생님만 후미로 천천히 쫓아간다.
하도 지쳐서 오르막 중간에 쉬면서 창암선생님과 보온병의 온수를 나누어 마시고 아무리 생각해도 봉좌산 갈림길을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우측에서 나푸른솔님이 부시럭거리며 나타난다. 나푸른솔님이 봉좌산 갈림길을 지났다고 하여 그런가 보다 하고 오르막을 치고 오른 분기봉이 실제로는 봉좌산 분기점인데도 그냥 이리재로 가는 좌측 내리막길로 내려서고 말았다. 봉좌산(鳳座山)은 이름 그대로 봉황이 앉아있는 산이데 조망이 좋은 봉좌산을 over pass한 것이 아쉽다.
봉좌산 갈림길을 지나면서 정맥길은 우측에서 경주에서 포항으로 접어든다. 봉좌산 갈림길에서 이리재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대구-포항 고속국도가 눈에 들어오나 교통량은 많은 편이 아니다. 솔숲 내리막을 편하게 내려오다 보니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 쭉 밑으로 떨어져 내려가니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이리재이다.
이 고개를 ‘이리재’ 또는 ‘이리고개’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 고개에 '여우'나 ‘이리’들이 출몰하는 험한 고개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의 옛 지명이 ‘이동’으로, 이동 골짜기가 이리골로 불려져 현재 이리재로 불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도를 보니 봉계리에 상이동, 하이동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9. 날머리 : 이리재
오후 2시 55분 이리재 도착, 시티재에서 이리재까까지 15.25km를 오는데 5시간 40분이 걸렸다. 삼성산과 도덕산 왕복을 포함하여 2.5km 정도를 포함하면 그런대로 진행하였고, 새벽에 한무당재에서 이리재까지는 휴식 포함하여 10시간 35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먼저 온 일행들이 도로 건너 옹벽 아래 옹기종기 줄을 지어 앉아 쭈그리고 있는 모습들이 이태의 남부군에 나오는 빨치산들이 이를 잡는 모습 같기도 하고, 공공근로 나온 근로자들 모습 같기도 하여 참으로 가관이다. 우리들의 버스를 도착하지 아니하여 술도 못 마시고 빨치산 패잔병들과 같은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이다.
이리재 군상 : 빨치산 패잔병 아니면 공공취로사업장 투입을 앞두고?
흑기사님과 탱크님은 내가 봉좌산으로 올 줄 알고 다방까지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내려온 것을 알고 허둥대다가 길을 약간 잘못 든 것 같고, 결국 우리들의 버스에는 40여분 늦게 탑승하였다. 버스는 바로 포항시 기계면사무소 앞의 한 식당으로 이동하여 범털표 동동주와 홍어, 머리고기 등의 먹거리로 마무리 회식을 하고 오후 5시 15분 포항을 출발한다. 중간에 천안3거리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밤 9시 20분 서울 강남역 도착, 일정 마무리.
10. 아! 벌써 2월!!
2006년도 1월을 과거로 흘려보내고 벌써 2월이다. 시인 오세영의 시처럼 2월처럼 ‘벌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달은 없을 것이다. 지난 1월은 정맥길 3번 행차로 저 멀리 후딱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눈앞에 보인다. 쓸데없이 나잇살은 처먹어가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은 없으니, 이 가는 세월의 흐름을 어이 감당할꼬!
나이가 들어가면 실존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생이란 어차피 Sein zum Tode(죽음으로의 존재)임을 실감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죽음을 향해 치닫는 존재가 아닌가? 이 세상사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생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대부분 준비 없이 죽음을 맞는다. 말기 암 환자들도 삶을 정리하면서 품위 있게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고통스런 항암제에 매달리면서 혼수상태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준비하면 삶을 대하는 자세도 겸손해질 것이고, 마음도 평화로울 것이다. 죽음은 악(惡)이나 벌(罰)이 아니라 오랜 여행이나 소풍놀이에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여행이나 소풍놀이를 즐길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이제 나도 어영부영 인생 5학년에 들어섰으니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조급하거나 서둘 일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 천천히 충분히 누리고 즐기면 된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 하면서 살 일은 없다.
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세 당장 냉큼 선뜻 후딱 싸게
잽싸게 속히 즉각 곧 곧장 바로 이내 퍼뜩 급히
붐비지 않는데도 붐비는 말들
언젠가부터 사랑할 시간은 너무 적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흩어지는 사람들처럼
너무 짧은 만남에 씨 맺지 못하고 꽃만 피워 시든다
고속 초고속 급행 빠름 재빠름 날쌤 날램 순식간
바쁘지 않은데도 바쁜 말들
느릿느릿 걸을 시간은 이제 없다
고속도로 위를 내닫는 사람들처럼
시작과 끝만 있을 뿐
경치와 나뭇잎의 자잘한 숨소리는 없다
뜨거운 햇살 속에 등 구부린 농부도 없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의 세상
생략된 그물 위로 붐비는 말들
재빨리 날쌔게 얼른 금세 당장 냉큼 선뜻
- 조 현 명, “빨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