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티예에서는 여유로움 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유로움을 느끼려면 비수기의 한적함이 있어야 하고 숙소비가 저렴해야 하는데, 8월의 페티예는 사람으로 바글거리고 숙소비가 가장 비쌌다.
페티예에 도착하면 보통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율루데니즈 라는 에메랄드빛 해변이 있는 곳에 숙소를 정하는데, 8월 최고 성수기에 혼자인 나는 그냥 페티예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로 했다. 율루데니즈의 대부분의 숙소들이 더블룸만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페티예에서 돌무쉬(미니버스)를 타고 처음 찾아간 숙소는 Ferah 팬션이다. 론리 플래닛에 첫번째로 나온 숙소였고, 도미토리가 있기 때문에 찾아갔다. 도미토리가 18YTL 또는 10유로 라고 한다. 런드리를 물어보니 세탁기 한 번 돌리는데 무조건 15YTL 이라고 해서 기겁을 하고 말았다. 정오에 체크 아웃이라 차를 마시며, 정오까지 빈자리가 나길 기다리다가 방명록을 읽게 되었다. 도미토리가 무척 더운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면 모기가 들어오고, 창문을 닫으면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 없다고 씌여 있었다. 게다가 정오까지 기다렸지만, 체크 아웃한 사람이 없어 자리가 없다고 한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무거운 배낭을 들춰매고 (저의 시커먼 배낭 몬스터 아시죠? ^^) 밖으로 나왔다. 50미터 정도 서쪽으로 걸으니 Duygu 팬션 이라는 곳이 나왔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질비질 나는 날씨에 무거운 배낭, 그리고 밤새 버스를 탔고 아침도 걸렀기에 나는 무척 지쳐 있었다. 그냥 Duygu 팬션에 빈 자리가 있으면 묵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곳은 개인욕실이 있는 더블룸 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작은 수영장도 있고, 수퍼도 가깝고, 깨끗하고 아담해서 에어콘 딸린 더블룸을 혼자 쓰기로 했다. 돈을 밝힐 것 같은 주인 남자는 50YTL를 요구했지만, 곧 45YTL로 깎아주었다. 45리라면 25유로다.
주인 남자는 나의 국적을 물었고, 내가 한국인 이라는걸 알게 되자 곧바로 헥토르? 라고 물어왔다. 헥토르는 터키를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율루데니즈에 여행사를 갖고 있으면서, 한국인들에게만 패러글라이딩과 1일 보트 투어를 묶어서 80달러에 해주고 있는 터키인이다. 많은 한국 여행자들이 페티예 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헥토르에게 연락해 헥토르가 보내준 차에 타고, 헥토르의 소개로 숙소를 정하고, 헥토르의 여행사에서 패러글라이딩과 보트 투어를 하고, 심지어는 공항에 갈때도 헥토르의 차를 이용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한국인들이 왜그리 헥토르에게 의지하고, 헥토르를 찾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묵었던 Duygu 팬션에는 나 말고도 한국인 여행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는 헥토르 소개로 이곳에 묵었다고 한다. 헥토르가 소개했기에 숙박비를 조금이나마 할인받았다고 생각하는 그가 묵는 방은 선풍기가 있는 더블룸으로 40리라 라고 했다. 헥토르의 소개로 묵게 된 그는 선풍기방 40리라. 내 발로 찾아가서 묵게 된 나는 에어콘방 45리라. 그가 무엇을 할인받았다는건지 의아하기만 하다. 물론 패러글라이딩과 보트 투어는 헥토르네 여행사가 다른 여행사보다 조금 싼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출발은 해발 1,000미터쯤에서 했지만, 바람을 타고 2,000미터까지 올라갔다. 처음에는 내 몸이 뜨는게 신났지만, 5분쯤 지나자 속이 울렁거려왔다. 율루데니즈의 투명한 블루라군이 아름다웠지만, 멀미 기운이 심해 나는 계속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러다 뒤에 앉은 가이드에게 울부짖고 말았다. Let me down, please!!!
다음 날에는 1일 보트 투어를 했다. 3일간 15개의 섬을 도는 보트 투어도 있지만, 수영을 잘 못하고 일행도 없는 나에게는 너무 지루할 것 같아 1일만 하기로 했다. 오전 11시쯤 출발해서 네 개의 섬을 돌고 오후 6시에 돌아오는 투어이다. 율루데니즈에서 출발한 보트는 근처의 바다 빛깔이 아름다운 섬에 배를 정박해놓고, 한 시간 가량 자유시간을 준다. 사람들은 신이 나서 수영을 하고 다이빙을 한다. 이곳의 물빛은 그리스 에게해 섬보다 더 맑고 투명하다. 나는 배를 타기 전, 편의점에서 잔뜩 사갖고 간 캔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이 물에서 노는 모습을 구경한다. 가끔은 나도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들어가기도 한다. 배영으로 물에 떠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바다는 무섭다. 터키의 지중해는 아름다웠지만, 그래도 나는 물가 싼 동남 아시아의 해변에서 늘어지는게 훨씬 더 좋다.
헥토르에게 패러글라이딩과 보트 투어비로 80달러를 주자, 내가 직접 헥토르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물고 있는 Duygu 팬션 주인이 대신 전화를 해주었기 때문에 그에게 줄 커미션으로 10달러를 더 주어야한다고 말한다. 전화 한 번으로는 너무 큰 커미션이었지만, 순순히 내주었다.
그러나 숙소에 돌아와 주인과 얘기할 때는 말이 달랐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즉, 자신의 사비를 들여 헥토르에게 대신 전화해 주었다며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닌가. 헥토르에게 너를 위한 커미션 10달러를 주었어. 라고 말했더니 팬션 주인 남자는 그런 일은 모른다고 말한다. 성수기, 돈에 환장한 사람들.
첫댓글 사람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면 정말 머물고 싶지 않죠...근데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더한거 같아요.....
저도 헥토르한테 했었는데..^^;;; 안할려고 해도 한국인은 무조건 그쪽으로 연결시켜주더라구여..ㅡ.ㅡ;;; 그래도 저희는 나름 친절하고 좋았던것 같은데..^^;;
진짜 물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