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식 역의 장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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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이소룡 2세대라 부르는 장태식은 이 작품의 출발점이자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씨앗이 된 게 바로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무림일기>(KBS2 인간극장)였고, 영화 속 화자인 김c가 들려주는 ‘고수를 찾아가는 이야기’의 경험담도 태식의 것이니 말이다. 그의 인생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추석 때 TV로 본 <용쟁호투>가 그를 사로잡은 이후 그는 ‘절권도의 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고등학교 때 고향인 남원에서 전주로 전학을 가서 자취를 하면서 길이 열렸다. 이소룡의 무술과 권투가 가장 가깝단 얘기를 주워듣고는 권투장으로 달려갔다(태껸을 함께하게 된 것은 한국적인 무술을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도 이소룡을 따라 갔다. 워싱턴 주립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를 본받아 전북대 철학과로 갔다(그는 출연한 고수들 가운데 가장 깊은 눈매를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정상으로 보지 않아요.” 왜 아니겠는가. 이런 열렬한 이소룡 키드는 영화 속에나 가능한 것 아닐까. 심지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둔 것도 같고, 서른둘에 영화 데뷔를 한 것도 같다.
아내에게 서른둘까지 결과물이 없으면 ‘영화를 찍는 무술가’의 꿈을 접겠다는 약속을 천만다행으로 지켜냈다. 스스로 쓴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를 하겠다며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폐간된 무술잡지에서 그를 <인간극장>과 연결시켜주지 않았다면 그 꿈을 이루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맨발로 칼날같이 날카로운 눈밭을 뒹굴어야 했고, 속옷과 외투도 입지 않은 채 싸움장면을 찍어야 했다. 작품의 무술감독까지 겸하느라 부담이 2배였다. 합을 짜고 자기 장면도 찍느라 자신의 첫 연기를 모니터링할 짬도 얻지 못했다. 점심도 못 먹는 바쁜 일정을 버텨내느라, 그리고 산골짜기의 추위와 싸우느라 통 입에 대지도 않는 술을 자기 전에 두잔씩 마셔야 겨우 몸이 녹았다. “마시마로와 싸우는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내 액션이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였는데 몰랐나요?” 카메라 앞에 선 그에게 뒤늦게 이소룡의 포즈를 제안했다. 직전의 포즈보다 더 힘차고 진지한 자세가 나왔다. 앞으로 내뻗은 발이 힘차다.
살인미소 역의 유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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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이름에 오해가 있다. 유지훈의 역할 이름인 살인미소는, 그가 살인미소를 가졌단 뜻이 아니라 “나? 살인미수야”라는 말을 할 수 없어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살인미소의 직업은 조직폭력배 중간보스다. 무림고수 거칠마루를 찾아가는 8명의 무술인 중 하나인 살인미소는 “늬들은 도장에서 허공에다 주먹질하고, 난 뒷골목에서 살려고 주먹질하고. 도장, 도장, 하지마. 신물이 난다. 써먹지도 못할 거 뭐하러 하냐고!”라는 뼈저린 말을 남긴다. 이 대사는 감독과 작가가 함께 쓴 것이긴 해도, 그는 그것이 “무술하는 사람들은 다 느끼는 딜레마일 것”이라고 한다.
180cm가 넘는 키에 좋은 덩치를 가진 그는 몸이 허약해 무술을 시작했다. 주종목(이라는 말을 쓰면 그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하면 전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며 시종일관 지나치게 겸손해했지만)은 태권도, 합기도 그리고 유도다. 지금은 절권도에 한창 몰입해 있고, 무에타이와 복싱, 아마추어 레슬링과 브라질리언 유술도 배우는 중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액션은 되게 멋있잖아요. 근데 실제는 처절해요. 비참하고, 바닥도 기어야 하고. 실제로 보면 사람들이 실망을 많이 해요. 제가 하는 무술은 그런 거예요. 비주얼한 게 아니죠.” 그러니까 이런 거 있잖아요, 라며 두팔을 조금 움직여 보이는데, 빠르다. 실망스럽기는커녕 절도있는 움직임이 멋있어 보인다.
경호학과를 나와 경호원으로 일하다가 주인공인 장태식과의 인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 그는 첫 장편영화 작업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드러냈다. “저는 상대적으로 액션보다 연기에 치우친 캐릭터인데, 의욕이 너무 앞서서 처음부터 감정적으로 폭발하니까 나중엔 힘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많이 아쉬워요.” 기타 연주를 곧잘 해서 중·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했었다는 그는 “쟤는 섬세한 줄 알았는데 운동만 하네”라는 얘길 들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무술은 악기 연주나 그림 그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배우를 꿈꾸는 섬세한 무술인이 씩 웃으며 말한다. 웃는 얼굴을 보니, 역할 이름이 꽤 어울리는 듯도 하다.
빅보스 사장님~~~ ㅋ 가명 권민기 ...
모히칸 역의 권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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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대로라면 대사도 더 많았는데 실없는 소릴 너무 많이 해서 다 잘렸어요. (웃음) 아쉬운 것보다 내가 연기가 부족하니까….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첫 숟갈이니까 연기를 더 배워서 다음엔 더 많은 대사를 따보도록 하겠습니다.” 모히칸 역의 권민기는 유난히 까만 자위가 큰 두눈을 잘 깜박이지도 않고 말했다. 그 눈 때문인지, 인터뷰를 마치고 다 같이 들른 밥집의 아주머니가 “무슨 총각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하며 공기밥 4개를 서비스로 갖다주신다. 그는 조용하다.
<거칠마루>의 모히칸은 자기 존재를 별로 드러내지 않는 숨은 고수다. 현 우슈 국가대표이자 한국우슈챔피언이기도 한 그에게 몇년이나 챔피언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묻자, “2진 생활을 오래 했어요”라는 대답부터 돌아온다. 고3 때 첫 대회에 출전해 4등을 했고 그뒤로도 늘 2등, 3등께에 머물러 있었다. 97년 전국대회에서 대학부 장권 1위를 한 것이 첫 챔피언 타이틀. 2년 전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던 날 처음 눈물을 흘렸다. 그 전해엔, 다 따논 금메달을 심판의 판정 번복으로 빼앗겼다. 집에도 못 가고 제주도 바닷가에서 엄청 울었더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마을금고에 저금해놓은 세뱃돈 1만원을 찾아 학원을 등록해 배우기 시작한 우슈다. 가난했고, 부모님은 엄해서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석달 배우고 한참을 쉬다 중학교에 입학해 방학 때 또다시 세뱃돈으로 학원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고2 때. 대회 출전만 하고 그만두려던 운동이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게 됐다.
최근 고향에 ‘권민기 우슈클럽’을 개장한 그는 동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 중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대표팀 마무리하고, 클럽은 천천히 후배들에게 물려주면서 내가 도전해볼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요.” 그건 배우의 길이다. 교수님 소개로 <거칠마루>에 출연하게 된 그는 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소망을 조용히 밝히며, 미대를 가고 싶었더라는 어릴 적 꿈을 함께 털어놓았다. “체육관을 어떻게 만들지 구상도 할 겸 유럽에 시장조사를 갔었거든요. 프랑스에 코치로도 잠깐 있었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하루종일 이렇게 멍하니 앉아서 그림만 보고 왔어요.” 그는 음악의 템포와 회화의 선과 색감에서 우슈에 관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까맣고 큰 눈동자가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수 있을 것처럼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