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문학과지성사, 1983>
요점 정리
지은이 : 곽재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애상적, 서정적, 감각적, 묘사적, 회상적, 시각적
제재 : 사평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어조 : 고요하고 나직하며 삶의 애환이 드러나는 연민과 아픔을 드러내는 애상적 어조
주제 : 삶의 고단함과 애환, 가난한 사람들의 추억과 아픔,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
특징 : 짧은 행들로 이루어진 이 시는 전체적으로 침묵과 고요함이 녹아 있는 분위기를 띤다. 어조들은 간결하게 간추려짐으로써 침묵을 돕는 나직한 소리들로 이루어진다. 타오르는 불길을 조용히 비춰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는 가난한 삶이 가지는 일상적인 시련과 기다림,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을 한 순간에 응결시키고 있다. 차가움과 따뜻함의 이미지 대조를 통해 시적 대상을 표현했고, 간결하고 절제된 어조로 표현함.
표현 : 이 시를 임철우는 단편 소설 '사평역'으로 소설화하였다. '사평역'은 원시의 분위기와 주제를 유지한 채 시점을 3인칭으로 이동시키고, 전형적인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내용은 인물들의 처지에 따라 현실성 있게 상세화하였다. 단편 소설화된 '사평역에서'의 시는 시각적 이미지와 그 대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쓸쓸한 소멸과 정처 없는 떠돎의 이미지를 담은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
작품 개관 : 이 시는 쓸쓸한 역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추억과 회한을 아름답게 그려 낸 서정시이다. 대부분의 시가 그렇듯이 이 작품도 서사적 구성이 아니라, 쓸쓸한 역사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한 순간의 감정이 시적 상상력을 통한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마치 영화의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이 시는 개관적인 제재들을 마음 속 깊은 상처와 그리움으로 감싸서 독특한 서정적 경지를 만들어 낸다.
시적 화자 : 시적 화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삶의 애환을 서정적인 분위기로 조용하게 그려 낸다.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오래 앓은 기침 소리를 내고 쓴 약 같은 담배 연기를 내뿜지만, 자신의 삶의 무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과거의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현재의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이라는 말로, 현재의 삶의 무게와 고통도 지나가면 그리운 순간들로 변할 것이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출전 : 사평역에서(1983)
내용 연구
막차(기다림의 대상으로, 소멸감의 이미지,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 형성)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막차는 쓸쓸한 간이역의 풍경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더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막차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상이며, 사람들은 고단한 현실에서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막차는 기다리는 대상이기에 사람들을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존재로도 볼 수 있다.) . - 막차를 기다리는 상황 제시
대합실[고단한 현실을 상징]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송이눈이 처음에는 차가운 이미지를 주지만 나중에 눈꽃으로 변하면서 고단한 이들을 위로하는 눈으로 변함]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차가운 이미지로 대합실 밖)마다
톱밥난로[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는 기능]가 지펴지고 있었다(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로 대합실 안/ 시인은 그의 책 '포구 기행'에서 "뒷날 내가 쓴 시, '사평역에서'에 나타나는 톱밥 난로는 사실 회진의 이 건화 다방에 놓여 있던 톱밥난로를 슬쩍 빌려온 것이다. 회진에 건화 다방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미광'이라는 이름을 지닌 또 다른 다방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사이다 잔에 고춧가루를 푼 소주를 거푸 마시고 바다로 나서던 그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하고 적고 있다.) - 간이역 대합실의 풍경
그믐처럼 몇은 졸고(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졸고 있는 모습을 스러져 가는 그믐달이 주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으로 뒤의 시어 '말이 없고, 낯설어 하고, 뼈아픔을 느끼고'도 유사한 표현이다.)
그리웠던 순간(현재와는 상반된 아름답고 따뜻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과거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톱밥 한 줌을 난로 속에 던져 주는 장면이다. 현재는 외로움과 고단함에 지친 차가운 계절이다. 그러기에 시적 화자는 밝고 따뜻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이고 묘사적인 장면으로 시적 화자는 따뜻한 정이 흐르는 인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기서 톱밥은 '눈물'로 발전함) - 대합실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반응
내면 깊숙이 할 말(살아온 내력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 바닥(세파를 헤쳐온 차가운 이미지)을 불빛(따뜻한 이미지) 속에 적셔두고('손바닥'의 푸른 빛은 난롯불의 붉은 색과 대조를 이루면서, '적셔 두고'와 어울려 슬픔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난롯가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통해 삶의 애환과 고달픔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했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체념의 모습) - 대합실 사람들의 내면 - 침묵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현실에 대한 깨달음의 인식보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한 두름(조기 따위의 물고기를 짚으로 한 줄에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한 두름의 굴비와 한 광주리의 사과는 정성스럽게 준비했기에 애착이 가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러운 것은 아닌 선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착잡한 기분]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고통스러운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것)
모두들 알고 있었다(한 두름 - 알고 있었다 : 화자는 삶이란 술에 취한 듯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기에, 그나마 위안을 받으러 말없이 떠나는 귀향길처럼 주어진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은 화자뿐만 아니라 대합실에 있는 모든 사람도 같이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것을 이심전심으로 교감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삶이란 지친 영혼이 안식처가 되는 고향에 가는 듯한 마음으로 현실의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시는 많은 것을 짧은 언어로 간단 명료하게 표현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 가난한 사람들의 인고의 삶의 자세, 무욕의 자세를 보여주는 부분) - 사람들이 침묵하는 이유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대합실 안의 사람들의 힘겹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기침 소리'와 '쓴 약'으로 암시한 감각적 표현)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기침 소리, 담배 연기와 상반되는 따뜻하고,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창밖에 하염없이 눈 내리는 풍경이 고요하면서도 막연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의성어를 통해 표현한 말이다.)
그래[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투] 지금은 모두들
눈꽃[자연의 조건 없는 자비를 상징]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대합실에 있는 사람들이 눈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삶의 애환을 감내하는 모습을 '싸륵싸륵' 눈 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자연의 소리와 삶의 정서를 어울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눈꽃의 위안을 통한 삶의 애환 감내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설원' 즉, 눈 덮인 들판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낯설음'과 '뼈아픔' 같은 인생의 쓰라림과 슬픔이 이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역설적 표현의 의미는, 인생이 절망적이고 아픔만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님을 의미] [일부에서는 설원을 눈에 덮여 있는 벌판으로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찬 세계로 해석하기도 함 / 궁극적으로는 지나고 나면 삶의 고달픔도 그리움으로 변할 것이라는 의미도 있음]
단풍잎 같은(지나가는 열차의 차창의 불빛을 '단풍잎'이 매달린 채 흩날리는 모습으로 묘사한 직유법으로 표현) 몇 잎의 차창을 달고 (현재의 고통과 상념들이 내일이면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는 의미)
밤열차(고단한 인생 역정)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이리저리 흩어지는 삶의 역정, 삶에 대한 막막함으로 볼 수 있다. 그 기차를 탄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 물음은 어떤 안정도 약속하지 않는 고달픈 삶에 대한 탄식으로 볼 수 있다 /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보는 이들도 있음)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과거에 대한 회상을 기억해 내며,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를 객관화)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서글픈 삶에 눈물짓는 화자, 서글픈 인생에 대한 시적 화자의 동류 의식의 표현으로 '8행'의 '톱밥'을 주관화한 표현, 同病相憐, 인간애 / 서글픔을 극복하려는 행위 / 삶에 대한 애상적 태도의 극복) - 인생 역정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반응
이 시의 부제를 붙인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치는 서정적 초상화(어느 시골역에서 만난 사람들을 모습을 공감적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므로)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나
나는 어떤 상황인가? : 사평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림
詩의 배경을 말해보자. : 눈이 내리는 늦은 밤, 추운 겨울
시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 졸고, 쿨럭이고, 말이 없고, 낯설어 하고, 뼈아픔을 느끼고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떻다고 짐작이 가는가? : 어렵고 힘겨워 보인다.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 톱밥 난로, 눈꽃
화자의 태도는? : 눈물을 던져줌으로 공감하고 위로가 되고자 한다.
시어의 비극적 이미지 : 쓸쓸한 소멸과 정처 없는 떠돎의 이미지를 지닌 것으로 '막차'가 지니는 소멸감과 '눈시린 유리창', '청색의 손 바닥' 과 같은 차가운 이미지는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러한 분위기는 '단풍잎'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삶이란 단풍잎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갈 수밖에 없는 것임을 노래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는 어떤 기분인가? : 부대끼는 현실을 벗어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설레임. 정겨웠던 옛날을 생각한다.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는 어떤 의미일까? : 현재의 고통과 상념들이 내일이면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
1. 이 시에 드러나는 '시간'의 특성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톱밥난로에 불을 지피는 순간으로 모인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나타난 시구를 찾아보자.
이끌어주기 : 서정시는 서사적 구조를 갖기보다는 대체로 한 장면을 중점적으로 노래하는 무시간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시에서 귀착된 한 순간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시에서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이나 대상들이 원래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 자리에 모인다. 시인이 고요하게 침잠하여 사색하는 창조의 순간, 그것은 새로운 서정적 이미지로 다시 태어난다. 학생들이 이 시에서 새롭게 창조된 서정적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2) (1)에서 찾은 부분은 시속의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지 말해보자.
이끌어주기 : 시는 소설과 달리 이야기의 부분적인 사건들이 시간의 객관적인 흐름과는 상관없이 전개된다. '사평역에서'처럼 시는 창조된 서정적 순간이거나, 혹은 구체적인 차원이 사라진 채 상상적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이다. 이 시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시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며, 그것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는 구절로 잘 형상화된다. 시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감당해 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시적 화자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 지도 생각해 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게 하고, 그 중에서도 그리운 것, 불꽃처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추억하게 만들어 준다.
2. 막차를 기다리는 심정과 상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쓰기를 시도해 보자.
(1) 자신의 체험 속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떠올려 보고 새로운 시적 상황을 구성해보자.
이끌어주기 : 막차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떠할지 상상하도록 한다. 문학적인 표현 자체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시의 심정과 상황을 잘 기억해 낼 수 있도록 하고, 그때의 이미지를 잘 포착해 낼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늦은 시간, 환승역인 신도림 역이다. 밖은 한밤중이어도 역은 대낮처럼 밝다. 켜 놓은 조명으로 언제나 대낮 같은 이곳에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술을 한 잔 걸쳤는지 두 뺨이 불그레한 중년의 아저씨, 야근을 했는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직장인, 여행을 갔다 오는지 커다란 배낭을 둘러맨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년, 커다란 보퉁이를 손에 들고 계신 구부정한 모습의 할머니……
이들은 각자의 짐을 들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전광판에 '열차가 전 역을 출발하였습니다.'라는 글씨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열차를 탈 채비를 하느라 역 안은 다소 술렁이게 될 것이다. 전철이 저만치서 오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안내 방송이 나오며 전철이 들어서면 사람들의 눈은 한 순간 반짝일 것이다. 이들은 오늘도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익숙한 일상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막차'의 의미를 강조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심정을 드러낼 만한 이미지나 단어를 구상한 후, 그와 관련된 구절을 써 보자.
이끌어주기 : 이 시에서 '막차'라는 시어가 갖는 이미지가 어떠한지를 고려하면서 시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시적 이미지에 맞는 단어들을 나열해 본 후 이를 통해 구절을 구성해 보도록 한다. 이때 비슷한 이미지에 매몰되지 말고 참신한 표현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낮도 밤도 없이
햇빛도 흙도 없이
기다리는 역에서
피곤에 지친 막차는
숨가쁘게 달려 온다.
"힘들었지? 집에가자."
고된 하루를 보낸 사람들
어깨를 정겹게 토닥이며
자신의 문을 열어 준다
이해와 감상
시의 화자는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시행에서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여행은 조금은 쓸쓸하고 우울한 편이다. 이 시를 모티브로 하여 시인의 친구인 소설가 임철우는 비슷한 제목의 단편을 쓴 바 있는데, 그 소설에서 1인칭의 화자가 수배중인 운동권 대학생이었음을 참고하면 이 시를 재미있게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어쨌든 그가 어두운 분위기의 여행을 하고 있음은, 제 7·8행의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라는 서정적 표현에 의해 뚜렷이 드러난다. 이 표현은 사실 이 시의 분위기에 주춧돌을 이루는데, 마지막에는 약간 변주되어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에서 한번 더 나타난다. 조용히 지난 일을 떠올리며 톱밥난로에 톱밥을 던져주는 젊은 남자, 이 장면은 이 시가 이룩한 하나의 서정적 성취의 중심에 있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붉게 타오르는 불씨를 삶의 핵심적 정력으로, 그 위에 던져져 작고 아름다운 불꽃으로 연소하는 톱밥을 시간 위에 꽃 피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로 바꿔 읽을 수 있게 된다.
특급열차는 서지 않는 변방의 간이역. 그 역사의 바깥을 채우며 내려 쌓이는 눈. 막차를 기다리는, 삶에 지친 사람들. 그 사람들 가운데 지펴진 난로. 이와 같은 극적 공간에서 시인은 시적 경구를 생산해 내는데, 그것은 `산다는 것은 때론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는 아름다운 구절이다. 과연 조용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실체를 느끼게 될 법도 하다. 이 시는 우리에게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응시의 시간을 환기한다. 설사 그 여행이 강요된 것이며 도피의 몫이라 할지라도.
이 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으로 곽재구 시인의 등단작이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알뜰하게 사람사는 얘기를 서정적인 필치로 엮어내고 있는 이 시는 1980년대의 한국 서정시가 도달한 한 정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해설: 이희중]
이해와 감상1
이미지는 때로 실재보다 뚜렷하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기억된 이미지란 많은 경우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사평역. 곽재구 시인의 시로, 임철우의 소설로 기억되는 사평역의 이미지는 너무도 선명하다. 시와 소설을 읽은 이들에게 사평역은 간이역의 한 상징으로 남는다.
원작을 바탕으로 두 번 만들어져 방영된 TV 문학관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1985년 12월 '사평역'과 1996년 5월 '길 위의 날들')
그러나 사평역은 없다. 흔히 있는 일처럼 승객이 줄어들어 폐쇄된 것도 아니다. 애당초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는 기차역이 없었다. 시인의 상상력이 사평역을 만들고 다시 그것이 소설을 낳은 것. 요컨데 사평역은 상상의 자식인 것이다. 그러나 그 상상은 현실의 소산이고 바로 그 현실의 치열함이 사평역을 오늘까지 살아 있게 만든다.
남평역.
문학작품과 드라마 속 '사평역'의 배경은 전남 나주시 남평읍의 남평역이다. 그러므로 남평역을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상상에서 현실을 찾아가는 일, 아니면 현실에서 상상을 찾는 여정이다. 남평역장은 역 구내에서 사진을 찍는 문제로 승강이를 하는 게 가장 고역이라고 한다. 철도청의 사전 허가가 없으면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는 것. 광주역에서 통일호 기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역. 가을밤의 남평역은 적막하다. 어두운 역사(驛舍) 앞마당에는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 다닌다.
푸른 어둠 속에 싸여 있는 남평역, 곽재구 시 '사평역에서' 등장하는 톱밥난로는 없었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얼음꽃이 피어도 톱밥 한줌을 던져줄 녹슨 난로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저기 어딘가 "쓴 약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 낡은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난로 주위에 모여 있을 것만 같은 남평역.
세월은 흐른다. 이 작은 역에도 세월은 흐른다. 세월은 바람으로 와서 이 작은 목조 역사(驛舍)를 따라 늘어선 소나무들에 그림자를 남기고 다음 세월을 기다리며 소리없이 저 드들강을 바라보고 있다. 해마다 승객이 줄어드니 언젠가 남평역도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남평역은 없어져도 사평역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사평역이 남아 있으면 남평역도 살아있을 것이 아닌가.(출처 : http://acspoem.com.ne.kr/tr001.html)
이해와 감상2
간이역(簡易驛)은 일반 역과는 달리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으로 일반적인 역과는 다른 주변부의 공간이다. 또한 이것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많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름 없는 이들의 오르고 내림, 또한 떠나고 만나는 장소로 등장하는 간이역인 사평역은 원래 광주의 남평역에서 시적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간이역의 쓸쓸한 대합실 풍경을 배경으로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추억과 회한을 서정적 필치로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초라한 역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그 속에 등장하는 평범한 인물들의 고단한 삶을 동류적인 태도에서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평역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올렸다. 실제 '와이키키'라는 곳은 화려하다. 화려하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그 공간을 제목에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현실적으로는 와이키키가 주는 환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와이키키'라는 공간은 어린 시절 가졌던 장미빛 꿈과 어른이 되었을 때 맞닥뜨린 현실로 간이역인 '사평역'과 같은 곳이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이 이제는 더 이상 꿈이 아닌 고단한 현실이 되어있음을 발견할 때, 꿈과 사랑을 나눴던 친구들과 더 이상 그 순수했던 시절을 공유할 수 없음을 목격할 때 밀려드는 쓸쓸함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사평역에서'의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와 같은 것처럼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비틀즈를 꿈꾸던 주인공이 지방 나이트클럽 밤무대 밴드로 궁상맞게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 고단함 속에서도 또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 보이는 이들에게 또 다른 출구를 다시 찾아냄으로써 '희망'의 끈을 잡는 것처럼 '사평역에서'의 고단한 이들에게도 '그리웠던 순간'이 있었고, 그 그리웠던 순간들이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던 것처럼 또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처럼 인생 역정을 기대와 설레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3류 인생과도 같은 고단한 삶을 받아들이고, 가슴속에 따뜻한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힘겨운 삶을 이겨나가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시적 화자는 '한 줌의 톱밥을 던져 불을 지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3
이 시는 삶의 애환을 비극적인 서정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시어들은 쓸쓸한 소멸과 정처 없는 떠돎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막차'가 주는 소멸감, '눈시린 유리창', '청색의 손바닥'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에 실려 삶의 행로가 단풍잎처럼 흩어져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의 화자와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다. 밤늦게 막차를 기다리며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에 지친 군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피곤에 지쳐 조는 모습, 감기에 걸려 쿨룩거리는 모습, 침묵하는 모습들에서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깊은 응시 속에서 통찰하게 된다.
'그리웠던 순간'과 현재는 상반된다. 그리웠던 때는 따뜻함이 있었던 시절이며, 현재는 외로움과 수고로움에 지친 차가운 계절이다. 과거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톱밥 한줌을 난로 속에 던져 주는 화자의 태도는 인간애(人間愛)에서 연유한다. 그러므로 화자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주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삶에는 그러한 인간애, 달리 말하면 행복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삶이란 그대로 술 취한 듯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굴비와 사과를 초라하게 들고 떠나는 고향, 고향으로 가는 마음이 기쁨에 들떠 있어야 하는데도 이 시에서의 고향은 지친 영혼의 쉼터로서 그려진다. 서글픈 삶의 여정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기 위해 말없이 떠나는 고향길,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고달픈 모습.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력은 이처럼 고단한 것이다. 삶이란 기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낯설고 고통스런 세상이 설원이라면, 그 속을 쓸쓸히 달리는 기차는 우리의 인생 역정이다. 그 인생은 물론 단풍잎과 같이 작고 초라하며 쓸쓸하다. 그런 삶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나약한 군상들과 화자는 결국 같은 존재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슬픈 모습에 눈물을 짓는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서글프고 고단한 것이다.(출처 : 송승환, '한국 현대시 제대로 읽기')
심화 자료
곽재구
1954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했으며,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시단에 등단했으며, '5월시'동인으로 활동했다. 제10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고, 제9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사평역에서』(창작과비평사, 1983), 『전장포 아리랑』(민음사, 1985), 『한국의 연인들』(전예원, 1986), 『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 1990) 등이 있다. 그의 시에는 역사의 현장에 몸 붙이고 사는 젊은 가슴의 함성이 배어 있고, 이 시대의 진정한 화해와 사랑을 위한 기도가 담겨 있다.
임철우의 '사평역' 소설 읽기
임철우의 '사평역'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바탕으로 하여 서사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다. 기침하는 농부와 그의 아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중년 사내, 시위 때문에 제적 당한 대학생, 창녀, 행상꾼 아낙네 둘, 미친 여자 등을 주요 인물로 하여 침울하고 어두운 삶의 면면들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원작 시의 서정성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데, 눈 내리는 간이역, 톱밥 난로 주위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모습, 등장 인물들의 정감 어린 태도와 따뜻한 시선이 소설의 서정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은행나무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시적 화자는? : 너,우리 등으로 미루어 '나'정도로 볼 수 있다
듣는 이는 누구인가? : 너
'너'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 : 은행나무
화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 보도 위를 걸어가다 아름다운 은행나무에 넋이 빠져 바라보고 있다.
이 시 속에서 화자가 서 있는 보도는 어떤 풍경인가 ? : 노오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있고 보도에 깊은 사랑의 연서 같은 은행잎들이 깔려 있다.
화자가 바라 보는 은행나무는 어떤 모습인가? : 노란 은행잎들을 우산깃 같은 모습으로 무수히 달려 있고 몇 개의 도롱이집들도 달려 있다.
은행 나무와 은행잎들은 화자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가 ? : 금빛 찬란한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바라보는 이마저 추억에 물들게 하고,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말)이 생각나게 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뒤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말과 관련된 화자의 말을 찾으면 ? :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뒤덮으리라'고 한 러시아 문호의 말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라고 한 톨스토이의 말이다. 어떤 뜻인가 ? : 세상이 아무리 추악하고 더러워 도저히 구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한 그런 것들은 결국 아름다움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화자는 어째서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와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일까 ? : 은행 나무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그렇다면 화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 : 희망, 아름다움이 가져올 희망, 희망적인 미래
그렇다면 화자는 지금 어떤 처지에 있다는 말이고 화자가 사는 현실은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 : 절망적인 상황,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부정적 현실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을 찾는다면 ? : 벗은 가지 위 ~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그럼 지금까지의 상황을 '누가 어째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는 식으로 정리해 보자. : 화자는 길을 가다 우연히 무척 아름다운 은행나무와 은행잎 깔린 보도를 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한 세상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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