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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국화인 튤립축제의 현장 4월 이스탄불에는 화창한 봄을 알리는 튤립축제가 한창이다.
그럼 튤립에 대해서 알아보자.
터키공화국의 나라꽃은 야생 튤립으로 학명은 튤립과 실베스트리스이고 과명은 백합과이다. 튤립의 원산지는 이란, 터키, 코카서스 지방으로 이 꽃은 후에 이들 지방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터키의 나라꽃은 외래 식물이 아니라 우리처럼 자생 식물이다. 나라꽃인 튤립은 우리 나라의 무궁화처럼 신성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카페트나 유리 자기 등의 무늬로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터키인들이 튤립을 만나게 된 것은 18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 사람들은 국화보다는 국기를 더 경건하게 생각하고 애국심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터키 국기는 높은 곳이면 어디든지 휘날리고 있다. 시내에도 큰 건물마다 국기를 게양하는 곳이 많고, 높은 산 언덕 구릉에는 대부분 빨간색 바탕의 터키 국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터키 국민들은 국기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화에 대한 터키인들의 생각은 우리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오스만 제국은 1683년 오스트리아 비인에 대한 제2차 침공에 실패하자 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국 자격으로 평화 협상을 갖게 되었다. 이때 맺어진 조약이 유명한 1699년의 카를로비츠 조약이다. 천하 무적의 오스만 제국이 약해진 모습을 최초로 당시 4대 강국인 독이, 베네치아, 폴란드, 러시아에 보여주었다. 두 차례에 걸친 비인 침공의 실패와 자존심 구기는 카롤로비츠 조약 이후에 오스만 조정은 제국 내부의 약점을 찾아내고 보완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찾아낸 오스만 제국의 약점이란 서양에 대한 군사력의 열세였다. 이리하여 오스만 제국의 개혁은 당연히 군사 부문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그 모델은 오스만 제국의 전통적 동맹국의 프랑스였다. 그 때는 프랑스가 서양 문명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와의 협력은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의 군사 기술과 문화를 배우려는 열정으로 18세기 초기는 비교적 평화가 유지되었고, 또한 튤립 재배에 광적인 열정이 일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를 보통 튤립 시대(랄레 데브리)라 부른다. 튤립은 오스만 제국의 사회적 변화 및 개혁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오스만 엘리트들은 프랑스인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스만 조정과 이스탄불의 상류층들은 파리에 있는 궁전을 모텔 삼아 건물 주변에 정원을 만들고 동상이나 분수대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을 모방하여 경쟁하듯이 정원에 튤립을 심었다. 튤립은 터키에서 봄이 완연하게 왔음을 알리는 꽃이다. 2008년 올해가 제3회 이스탄불 국제 튤립축제기간으로 바로 오늘부터 4월5일~4월13일까지 이스탄불 전역에서 화려하게 활짝 핀 튤립을 볼 수 있다. 자~ 그럼 튤립축제의 현장으로 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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