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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작년 7월 직장 선배부부와 함께 추자올레걷기를 한 후에 제 블로그에 올린 것입니다. 카페 개설을 기념하여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추자올레걷기를 하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로망올림]
앞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30도도 넘는 무더운 여름철에 올레길을 걷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럽다. 숨이 턱턱 막히고 그늘이 있는 곳이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그곳으로 들어가 쉬고 싶어진다. 따라서 요령껏 걸어야 한다.
한낮 와랑와랑한 햇볕 아래서 계속 걷기만 하다가는 피부가 '익어 버리는' 수가 있고, 잘못하다가 일사병이나 열사병에 걸려 큰 고생을 하는 수도 있으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낮 시간을 피해서 아침 일찍 혹은 오후 늦게 걷는 것이 좋다. 낮에는 시원한 그늘이나 에어컨이 나오는 데서 쉬면서 놀거나, 해수욕장이나 용천수가 콸콸 나오는 곳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시원하게 놀면 된다.
이날 서형 부부와 함께 30도가 넘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 추자도 올레길을 걸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이 나타나면, 수시로 그런 곳에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시원한 맥주와 물도 마시고 쉬어가곤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놀멍, 쉬멍, 먹고마시멍 걷는 올레길이 고행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나 자신의 '올레 철학' 이다. 따라서, 나는 올레길을 걷다가 너무 힘이 들거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면, 즉시 중단하고 숙소도 돌아가 쉬거나 쉼터 등을 찾아가 쉬면서 다음을 기약한다.
올레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 다음에 다시 또 걸으면 되지 무엇이 문제인고 하면서 과감하게 중단을 하거나 포기를 한다는 것이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혹은 돌아갈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올레 걷기를 중단하거나 포기를 한다고 해서, 내 인생에 '금'이 가거나 '밥줄'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전혀 아니니까. ^^
▲ 신양리로 넘어가는 올레길 위에 만들어 놓은 쉼터 의자와 저 멀리 보이는 묵리 마을 모습
▲ 묵리에서 하추자도로 넘어가는 산길을 지나 신양항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이 길은 개장식 때의 길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해서 만들어 놓은 길인데, 과거 묵리에서 신양2리로 가는 '완전' 콘크리트 포장길보다는 걷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산길을 새로 개척해서 만든, 하추자도 신양항쪽으로 돌아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시간상으로 개장식 때보다 약간 더 걸린 것 같았다. 어쨌든 추자도 올레지기인 김정일님의 노고가 듬뿍 들어가 있음을 뚜렷하게 느끼면서 걸은 올레길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 하추자도 신양항의 모습.
여기 하추자도 신양항으로 한일카페리 3호가 들어오고 나가는데, 이곳은 상추자도와 달리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없다. 따라서 추자도 올레길을 걷다가 중간에 먹을 '식사용 음식'은 핑크돌핀호가 드나드는 상추자도 음식점이나 식당 등에서 미리 먹거나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여기 신양항 근처에도 가게는 있기 때문에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사먹을 수는 있다. 신양항 이후 걷는 도중에 가게가 없기 때문에 상추자도로 계속 걸어가기 전에 여기에서 간식 등을 '마지막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모진이 몽돌 해안으로 가는 도중에 반사경을 보면서 셀프 사진 찰칵~~ ^^
▲ 모진이 몽돌 해안으로 가는 길목 입구 사진. 위 사진(2010. 6. 26. 개장식)과 아래 사진(2013. 7. 23)을 비교해 보세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
이렇게 지난 날 사진과 비교해 보면서 그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도 '보물 찾기' 하는 것처럼 쏠쏠한 맛이 있다. ^^
▲ 모진이 몽돌 해안으로 가는 본래 의미의 '올레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쌍의 다정한 '바퀴벌레' 같은 서형 부부. 이러한 사진을 뒤에서 홀로 '외롭게' 걸어가면서 찍고 있는 나 로망의 모습이 여기 사진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
혼자서 올레길을 걷다가 혹은 여행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이 나 로망에게 '백만 스물 두번째'씩이나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질문 하나.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는 것 같은데) 왜 혼자서 여행을 다니세요?"
예나 지금이나 나의 꿈 중에 하나는 아내와 함께 다정하게 올레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거나 여행을 함께 다니는 것인데, 아내는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하는 여행이나 등산이 힘들어서 싫대나 뭐라나 했기 때문에 내가 일찌감치 포기했다.
한편, 아내는 우리 부부의 유일한 '분신'인 딸내미 하고 지내는(노는) 재미에 포~옥 빠져서(!) 남편인 나 자신이 여행을 하거나 말거나 놀거나 말거나 내팽개친(?!) 것 같고.
그나마 가지말라고 막지 않는 것을 나는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막는다고 해도 혼자서 얼마든지 여행을 다닐 나 로망이지만. ^^), 혼자서 혹은 이렇게 서형 부부와 함께라도 다니면서 인생을 즐겨야지 어떡하겠나? '따로 또같이' 대략, 적당히 맞추어 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부부가 바로 우리 모습인 것이다.
아내가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친한 동료나 후배들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것이라고 놀리곤 한다.) 나 자신이 무지 자유로워서 좋지만, 한편 늘 허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어휴~ 내 팔자야~" 하면서도 열심히 혼자서 잘 놀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와 함께 여행도 다니면서, 신나고 재미있게 놀면서 살 수 있을거야!' 하는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서. ^^
▲ 모진이 몽돌 해안에 설치한 천막 사진. 위 사진(2010. 6. 26. 개장식)과 아래 사진(2013. 7. 23)을 비교해 보세요. 무엇이 다를까요?
위 사진은 올레꾼들의 점심 식사를 위해 설치한 천막이고, 아래 사진은 여름철 여기 몽돌 해안으로 놀러온 여행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설치한 천막이다. 해안 입구 오른쪽에 있는 야자나무가 부러진 것을 보니 여기에도 태풍의 피해가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 모진이 몽돌 해안 그늘막 쉼터에서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는 서형 부부
이날 그 시각 여기 몽돌이 해안을 찾아온 사람은 우리 일행들 뿐이었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 이전이었기 때문에 인적이 드믈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땀도 식히면서 묵리 가게에서 사온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그냥 가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여기 가게에서 냉커피와 생수도 '일부러' 사서 마셨다. 올레꾼으로서 현지인에게 자그마한 '보탬'을 주자는 의미에서. ^^
▲ 차량통행금지 알림판이 설치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개장식 때의 올레코스였는데, 지금은 이길 바로 전에 김정일님이 수고를 하여 아래(↓) 사진처럼 산을 관통하는 새로운 올레길을 냈다.
▲ 모진이 몽돌 해안 가기 전 왼쪽으로 새로 낸 황경한 묘소로 가는 길
과거에 사람들이 다녔던 길을 새로 찾아서(?) 이렇게 업그레이드한 올레길을 냈다. 풀밭길이고 그늘진 산길이어서 콘크리트 길을 걷는 것보다 한결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는데, 이곳도 추자도 올레지기인 김정일님의 노고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길이다.
▲ 황경한 묘소로 가는, 새로 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서명숙 이사장님 일행(위. 2012. 8. 18. 올레 이어걷기 행사 전날)과 서형 부부(아래. 2013. 7. 23). 여기에서 자라고 있는 야자나무도 태풍 피해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8월 19일(토)에 실시했던 추자도 올레 이어걷기에 참석하기 위해, 그 전날(8. 18. 금) 직장 일을 오전 중에 일찍 끝낸 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추자도로 가는 배(오후 2시에 떠나는 한일카페리 3호)를 탔다.
그런데 마침 나처럼 하루 먼저 같은 배를 타고 추자도로 들어가던 서명숙 이사장님 일행을 운 좋게 만나서, 이날 오후 늦도록 추자도 올레지기인 김정일님이 새로낸 여기 몽돌 해안 올레 코스를 포함하여 예초리 기정길까지 함께 걸었다. 이틀 동안 서 이사장님 일행과 이어걷기에 참여한 올레꾼들과 함께 올레길도 걷고 물놀이도 하면서 놀다가 돌아온 것이다.
▲ 다산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와 그녀의 남편인 황사영 사이에 태어난 아들 황경한이 잠들어 있는 묘소로 가는 길과 그가 묻혀 있는 묘소
며칠 전에 시인이자 대학교 부총장으로 있는 내 친구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남편과 외동딸을 남겨둔 채, 60도 안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것이다. 과거에 맹장 수술을 한 부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뱃속 창자와 달라붙었고, 운이 없게도 그 부분이 곪는 바람에 복막염으로 진행되었다고 했다.
배가 살살 아파와서 집에서 가까운 국내 최고라는 강남에 있는 병원을 찾아갔지만, 의사들이 검사만 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병실도 얻지 못한 채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한 사이에 증상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친구가 다니고 있는 직장 대학병원으로 옮겨 가서 검사를 다시 한 후에 뒤늦은 수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람도 없이 급성 패혈증으로 번지는 바람에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친구는 아내의 특이 체질에 대해 (몸에 맹장염과 같은 염증이 생기더라도 백혈구의 숫치가 늘어나지도 않고 열도 올라가지 않는 체질이라고 했다.) 대학병원 담당 의사에게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진단을 하면서 질병 원인을 찾았지만,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결국 아내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라고 했다.
나는 황경한의 아버지인 황사영 가족 및 그 일가 친척이 겪은 삶과 죽음, 그리고 아버지와 친구 아내의 삶과 죽음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결과 (살아있기 때문에 아직 죽음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 자신의 노력이나 자유 의지와는 별도로 결국은 '모종의 타고난(!?) 운명 혹은 팔자'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우리 인간들의 삶과 죽음이 '정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 글에서 가끔 언급하지만, '운7 기3'을 말하는 이른바 명리학자(점쟁이)들의 '삶의 논리'가 옳지 않나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이러한 운7 기3 인생관을 남들이 터무니 없는 미신이라고 하더라도, 한편 나도 불행하게(!) '평균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기(자신의 노력과 의지의 발휘)의 요소가 '무려' 30%씩이나 작용한다고 하니까, 죽는 날까지 나 자신의 이성적 판단능력과 직관 그리고 감성을 총동원하여(!) 나름 '몸부림치면서' 열심히, 신나게, 재미있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죽음은 '천지신명'에게 맡기고.
'사랑을 찾기까지'(친구가 과거에 낸 시집 이름이다.) 열심히 살아왔고 그 사랑을 찾았지만, 결국 그러한 사랑과 영원히 이별하게 된 내 친구 아내이자 열매의 엄마인 박인숙님의 명복을 빈다.
"친구야! 힘내고 꿋꿋하게 지내길 바라네. 일단 산 사람은 계속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맘이 허전하거나 심심하거나 허심탄회 하게 술 마시고 싶으면 연락하기 바라네. 늘 함께 해 온 우리 '여수파 멤버' (30여 년 전부터 이 친구의 고향인 여수로 수시로 놀러 다녔던 우리 친구들)가 언제라도 달려감세"
사랑에 관하여
눈을 어깨 가득 지고 서 있는
겨울나무 숲길을 걸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눈 위에 선명하게 남겨진 자국들.
그 발자국을 바라보며
받아들임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눈은 나의 몸무게만큼의 깊이로,
신발 크기만큼의 넓이로
신발 모양 그대로의 무늬로
나를 포근하게 받아들였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런 것,
자신의 가슴에
그의 깊이를
그의 넓이를
그리고 그의 선명한 무늬를 남기는 것.
[이 시는 위 친구가 얼마 전에 펴낸 시집에 실린 시인데, 그의 아내는 시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시집이 나온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친구는 이 시집을 아내의 관에 함께 넣어서 화장을 한 후에, 내 고향 용인에 있는 천주교 공원 묘소 납골당에 안치를 했다. 가끔씩 친구와 함께,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 나라로 간 그의 아내가 잠들어 있는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가 명복을 빌어드려야 하겠다.]
▲ 황경한 묘소에서 내려다 본, 어린 황경한을 내려놓은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예초리 갯바위 (화살표 부분).
▲ 황경한이 추자도에 오게 된 사연의 글과 묘역 표지석.
묘역 표지석에는 황경한(黃景漢)이 아니라 황경헌(黃景憲)으로 되어 있는데, 두 이름을 모두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정확히' 조사를 해서 어느 하나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묘소로 가는 길 위에 설치된 안내 표지판에 황경한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천주교의 공식 입장은 황경한(黃景漢)인 것 같다.
▲ '모정의 쉼터'에서 쉬면서, '황경한의 눈물'로 명명한 샘터에서 물도 마시면서, 산딸기도 따 먹으면서 신대산 전망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 물놀이를 하다 가려고 바닷가를 살펴보고 있는 서형
황경한 묘소에서 신대산 전망대로 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인데, 중간에 이러한 바닷가가 있다. 서형이 날씨도 더운데 여기에서 물놀이를 하다 가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여기는 물놀이 하기에는 여러모로 적당하지 않으니까 그냥 지나치자고 했고, 저 앞에 있는 신대산 전망대가 경치도 좋고 쉬기도 좋으니까 거기까지 가서 놀멍, 쉬멍 하자고 했다.
▲ 신대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추자도에 딸린 부속섬들. 위 왼쪽부터 염섬, 수령섬, 추포도, 횡간도, 흑검도 등이 보인다.
2010년 6월 개장식 행사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 경치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작년과 올해 추자도에 갔을 때는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주변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가운데 사진에서 보이는 횡간도는 행정선이 다니고 있는데, 작년 올레이어걷기를 할 때 김정일님이 모터보트로 태워다 주어서 거기에서 서명숙 이사장님 일행과 함께 짧은 시간이지만, 물놀이도 하고 구경도 하고 놀다가 왔다. 횡간도 바다는 사람의 손때가 거의 묻지 않았기 때문에 오분작이나 고동 등이 엄청 많았다.
▲ 횡간도를 향해 모터보트를 운전하여 가고 있는 김정일님 (2012. 8. 18)
▲ 김정일님의 모터보트를 타고 가서 횡간도에서 잠깐 물놀이를 하고 올 수 있었다. (2012. 8. 18)
언젠가 여름철에 여러 사람들과 추자도에 놀러갈 기회가 있다면, 김정일님에게 부탁을 드려서 (당연히 비용을 계산해 드려야지요. ^^) 횡간도로 건너가 물놀이도 하면서 한나절 실컷 놀다가 오려고 맘을 먹고 있다. 물론 물놀이 도구와 먹고 마실 것을 제대로 챙겨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아~ 그 날이 언제 오려나~ *^-^* 희~망~
▲ '호랑이 바위' (내가 보기에는 '쥐'가 엎드려있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가 보이는 신대산 전망터에서 쉬고 있는 서형 부부. 멀리 떠나가고 있는 배는 제주항으로 가고 있는 핑크돌핀호다.
예초리 기정길로 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올가가면 추자도에 딸린 부속섬들을 일렬로 바라볼 수 있는 신대산 전망대가 나오고,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내려오면 여기 전망터가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귀찮고 힘들어서 혹은 몰라서 신대산 전망대나 전망터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전망대나 전망터는 그 주변에서 경치를 구경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이니까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언제 또 다시 와서 그런 멋진 경치를 구경할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으니까.
나는 여행을 다닐 때나 놀러 다닐 때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다닌다.
"이번 여행이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구경도 하고, 실컷 먹고 마시면서, 놀면서 즐기자. '카르페 디엠'의 정신으로!"
▲ 신대산에서 예초리로 넘어가는 기정길(절벽길)을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2013. 7. 23)
▲ 석양 무렵 예초리 기정길에서, 서 이사장님 일행과 함께 쉬면서 경치도 감상하면서 한방 찰칵~. 가름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신 오 실장님도 올레이어걷기 행사를 도와주기 위해, 제주도에서 승합차를 배에 실어 가지고 추자도로 들어오셔서 함께 어울렸다. (2012. 8. 18)
여기 예초리 기정길은 추자도올레 개장식에 맞추어서 김정일님을 비롯한 추자면 분들이 수고를 하여 새로 개척한 길이라고 하는데, 올레길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던 길이라고 한다. 신대산으로 올라가는,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길이 있어서 그 길을 이용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멋진 길을 새로 내느라고 고생을 한 분들의 노고를 다시금 생각하면서 걸었다.
▲ 예초리에 있는 엄바위 장승이 나무에서 돌로 이렇게 바뀌었다. (왼쪽 나무장승 2010. 6. 26, 오른쪽 돌장승 2013. 7. 23 촬영)
▲ 학교가는 샛길을 지나 돈대산 정상을 향하여 꼬닥꼬닥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예초리에는 학교가 없기 때문에 예초리 학생들은 10리도 넘는 신양리에 있는 학교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치 내 고향 사람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등하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름길(샛길)을 찾아서 다녔을 것이고, 세월이 지나 그 샛길을 올레길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이 길을 다녔던 옛 사람들은 나중에 이 길이 추자도 명품 올레길로 재탄생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 돈대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하추자도 신양항
▲ 돈대산 정상에서 기념 사진 찰칵~
추자교 건너 묵리로 가는 산길 입구에서 오후 1시경에 출발하여 놀멍, 쉬멍 5시간 정도 걸려 오후 6시경에 돈대산 정상에 도달했다. 이날 있는 것은 시간뿐이니까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올레길을 걸을 때의 참맛은 그야말로 시간을 천천히 '죽이면서', 걷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털퍼덕 주저앉아 놀멍, 쉬멍, 먹고마시멍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올레길을 열심히 걷다보니까 마치 나를 위해 제주올레가 만들어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올레길을 만들고 지켜온 많은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한편, 6년째 열심히 올레길을 걷다보니까 어느덧 자타가 인정하는 '올레폐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고, 그 결과 * 같은 세상을 헤쳐나가는 '맷집'도 상당히 기를 수 있었다. '질기게 버틴 놈이 결국 이긴다.'는 말도 있으니까, 일단 참을성을 키워가면서 고래 힘줄처럼 질기게 오래 버티면서 살고 볼 일이다. 물론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도 당연히 많겠지만.
▲ 돈대산 정상을 내려와 묵리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정수장을 향하여 고고씽~
이날 올레걷기는 여기 정수장에서 끝났다. 이때 시각이 오후 6시 30분. 정수장에서 추자교로 걸어가고 있는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까 우리 일행이 여기쯤 왔을 거라고 생각을 한 김정일님이 봉고차로 마중 나왔기 때문이다. '장사 한두 번 해보나?' 하는 표정으로 회심의 미소를 띠고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면서 휴대폰을 때린 것이다. ^^
▲ 농어회와 농어매운탕으로 한 저녁 식사
나와 서형 부부는 김정일님의 봉고차로 편안하게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에, 김정일님이 잡아온 농어로 요리한 농어회와 매운탕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쓸개술과 함께. 서형 아내는 이 쓸개술을 마시고 상태가 약간 안 좋은 허리가 좋아졌대나 뭐라나 하면서 다음 날 저녁 식사 때도 또 그 술을 요청해서 마셨다. 아마도 서형 부부는 추자도에서의 밤이 즐거웠을 것이다. 밤에 내 옆구리는 비록 허전했지만. ^^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정일님과 숙이님, 고맙습니다."
▲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어제처럼 화창했다. 옥상으로 올라가 주변을 바라보니 마음까지 상쾌했다. 오늘은 시간이 널널했다. 상추자도 올레길은 짧으니까 2시간 정도면 다 걸을 수 있겠고, 올레길을 걸은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사 한 후에 쉬다가, 오후에 물놀이를 하면서 쉬엄쉬엄 놀기로 했다.
▲ 최영 사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와 천연 잔디 운동장으로 되어 있는 추자초등학교. 부럽당~~
아침 식사 후 10시 30분 경부터 걷기 시작했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의 많은 학교 운동장이 천연 잔디로 되어 있는데, 맨땅에서 딩구는 육지 학생들에 비하면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사계절 따뜻한 날씨가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최영 사당을 지나 봉글레산 정상 쉼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날씨가 몹시 더웠지만, 하늘은 맑고 깨끗하여 시야가 아주 좋았다.
▲ 봉글레산으로 가는 도중에 바라본 양식장 모습.
여기와 예초리에 양식장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참치 치어를, 예초리에서는 멍게(우렁쉥이)를 양식한다고 한다. 이곳 양식장은 태풍 등의 피해를 덜 입는 섬 사이 움푹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남해안의 양식장과는 사뭇 다르다.
▲ 봉글레산 정상 쉼터에서 쉬면서 마시고 있는 서형 부부 (위칸. 2013. 7. 23) & 서 이사장님과 올레걷기 이음단 (아래칸. 2012. 8. 19)
틈만 나면 쉬멍, 마시멍 하는 이러한 모습이 올레걷기의 '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올레걷기의 '진수'는 걷는 것 그 자체보다도 걷는 도중에 쉬면서, 마시면서, 노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글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 '꼴리는대로' 걷거나 놀거나 하면 될 것이다. 걷는 사람의 '자유'니까. ^^
▲ 봉글레산을 내려와 순효각으로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위칸. 2013. 7. 23)와 올레걷기 이음단(아래칸. 2012. 8. 19)
▲ 박씨 처사각(사당)으로 걸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위칸. 2013. 7. 23)와 올레걷기 이음단(아래칸. 2012. 8. 19)
이렇게 사진을 비교하면서 추억을 음미하는 맛도 쏠쏠하다. 걸었던 시기도 다르고, 사람들도 다르고, 따라서 느낌도 조금씩 다르다.
▲ 추자 등대 (모델은 서형과 서 이사장님. ㅋㅋㅋ)와 나바론 절벽 (위칸. 2013. 7. 23., 아래칸. 2012. 8. 19)
과거에는 나바론 절벽 쪽은 생략하고 그냥 추자 등대로 갔지만, 이번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제대로 나바론 절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영화 '나바론'에 나오는 절벽보다는 확실히 규모가 작고 초라했다. ㅋ~
▲ 추자 등대에서 내려다 본 추자교와 정수장 모습.
같은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데 날씨 상황에 따라 차이가 뚜렷하게 난다. 위칸 사진은 2013. 7. 23. 오후 12시 37분 경에, 아래칸 사진은 2012. 8. 19. 오후 12시 30분 경에 찍은 사진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는 것도 쏠쏠하고. ^^
▲ 추자 등대를 내려와 바랑케길 쉼터에서 쉬면서 먹고 마시고 하고 있는 서형 부부 (위칸. 2013. 7. 23)와 올레걷기 이음단(아래칸. 2012. 8. 19)
▲ 추자교 쪽로 넘어가고 있는 서형 부부 (왼쪽. 2013. 7. 23)와 올레걷기 이음단(오른쪽. 2012. 8. 19). 안전을 위해 줄이 새로 만들어졌다.
작년 올레이어걷기 때는 여기에서 이음단과 헤어진 후에, 서 이사장님 일행 몇몇 분과 물놀이를 하면서 놀다가 오후에 핑크돌핀호를 타고 제주항으로 돌아갔다.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서.
▲ 딸기도 따먹고 걷다보니까 어느덧 추자교에 도착했다.
최영 사당에서부터 여기 추자교까지 그야말로 '농땡이'를 치면서 꼬닥꼬닥 걸으멍, 쉬멍, 마시멍 하다보니까 무려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꼬닥꼬닥 올레걷기'는 내 체질.ㅋ~~
올레걷기를 마치고 숙소로 걸어가고 있는 도중에, 예초기로 올레길 풀을 제거하다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돌아가고 있는 김정일님을 만나서 봉고차를 타고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잠시 샤워도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숙이표 특제 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 식사 후 우리들은 스노쿨링 장비를 챙겨가지고 물놀이를 하러갔다.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서 놀려고 했는데, 해파리가 얼쩡거려서 추자교 근처에 있는 추자소방서 앞 바다에서 놀기로 했다. 올레길을 걸은 후 숙소로 되돌아갈 때, 다른 사람들이 거기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소방서 앞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먹으멍, 마시멍
맥주와 안주를 챙겨가지고 바닷가에서 1시간 정도 놀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되돌아왔다. 버스비는 1인당 700원 도합 2,100원인데, 100원짜리 잔돈이 없고 만원짜리와 천원짜리 2장만 있다고 하니까 기사분이 천원짜리 2장만 받고 100원을 깎아주었다. 이런 횡재가 있나 하면서 기분이 '째졌다'. ㅋ~~
▲ 숙이님이 차려주신 저녁 식사. 함께 숙소를 이용한 옆 가족분들이 먹어보라고 어제 저녁에 먹었던 농어회까지 주셔서 함께 또 먹고 마셨다. 술도 따라 드리면서.
추자도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숙이님이 음식솜씨를 발휘하여 배말볶음과 삼겹살 그리고 말린 장어구이를 해주셔서 맥주와 소주와 쓸개주와 함께 와창창 때려 먹었다. '먹을 복'을 만끽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제주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아침 식사를 한 후에 김정일님의 봉고차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묵은 다른 가족 손님들과 함께 하추자도 신양항으로 가서 11시에 출발하는 한일카페리 3호를 타고 제주항으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부터 시작되는 여름방학 올레걷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묶었던 가족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신양항으로 넘어갔다.
제주항으로 돌아갈 때 김정일님이 멸치액젓과 과실주를 선물로 챙겨주셨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음에 또 놀러오겠다고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 김정일님과 작별 사진을 찍으며
"2박 3일 동안 덕분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다 갑니다. 물놀이를 하다가 그냥 두고 빠뜨리고 온 손목시계를 찾아주신 것도 감사하구요. 물론 올레길도 잘 걸었구요.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일님과 숙이님."
이상으로 추자도 올레 여행기를 마치고, 시간이 나는대로 여름방학 올레걷기 여행기를 차근차근 쓰도록 하겠다.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긴 글 읽어주셔셔 고맙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계속 내려다 보다가 목디스크에 걸려서 왼쪽 손에 '전기'가 찌릿찌릿 하게 오고 있네요. 이른바 컴퓨터 증후군에 걸린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친척분이 하는 한의원에 다니면서 목디스크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지요.
목디스크를 치료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추자도 올레 여행기를 완성하여 로망이 서울에서 올렸습니다. ^^
2013년 9월 4일(수) 밤 2시
첫댓글 와.... 로망님 작년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서 선생님도 그립네요.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안부 전해 주세요. 안 그래도 로망님의 규슈올레 후기를 보고 부러웠습니다.
이제 봄이 슬슬 목전에 다가오니 예초 작업을 할 걸 생각하니 벌써 걱정이 앞서네요... 숙이 누나한테 알랑거려서 돼지고기로 체력을 다져 놔야 겠습니다..ㅋㅋ 여름에 오시면 보트 타고 신나게 물놀이로 모시겠습니당.
결국 이번에 추자도 클린올레 행사에 참여할 때 말씀대로 보트를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8월에 또 놀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뵙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