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가든작전이 발지전투에 공헌했다는 내용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마켓가든작전이 성공했다면 발지전투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마켓가든작전의 실패원인과 발지전투의 발생원인은 동일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독일군이었지만
연합군의 길어진 종심축에 반격을 원하던 히틀러의 생각에 의해서
남은 주력 대부분이 그 지역으로 집결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발지전투가 마지막 반격이 됩니다.
그리고 미군이 발지전투를 대단했던 전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연합군의 의표를 찌른 히틀러의 작전 또한 대단했다는 반증이 되며
실제로 발지전투의 초반양상은 연합군에 혼란을 일으키면서
전선에 쐐기를 박는 것에는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합군의 제공권을 방해하기 위해
악천후 속에서 실시한 작전은 독일군의 기동력까지도 방해했으며
바스토뉴와 같은 미군의 전설적인 선전 등은
그것을 더욱 가중시키고 쐐기를 더욱 깊숙히 밀어넣어서
전선을 분단시킬 능력이 고갈된 독일군이 패퇴하는 원인이 됩니다.
독일군 참모들이 권고했던 대로 지크프리드선까지 철수해서 방어전을 치른다면,
전세를 만회시킬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온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1차대전의 후반부가 되풀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의 독일군의 능력은 히틀러의 구상을 따라갈 수 없는 상태였으나
발지전투는 히틀러 입장에서는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작전이었다고 봅니다.
서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해서 프랑스 해안선을 확보하고,
다시 동부전선의 방어에 치중해서
2차대전 초중반부의 재연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를 마지막 카드였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인 전세를 역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무장공비님이 이미 지적하셨던 대로
히틑러로서는 앉아서 서서히 목을 죄이는 것 보다는
헛점을 찌를 수 있는 마지막 카운트 펀치를 원했던 것입니다.
차라리 무모한 공세의 예를 들라면
동부전선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던 소련군에 대한
독일군의 반격시도인 쿠르스크 전투를 들고싶습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의 독일군의 실패와 피해는
독일에게 결정적으로 회생불능의 타격을 주었습니다.
마켓가든작전을 입안한 것은 몽고메리지만
작전실행을 수락한 것은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입니다.
아이젠하워 또한 이작전을 실현가능한 작전으로 보고있었고
무엇보다도 노르망디상륙 이후 영국에서 재충전 중이었던
3개 공수사단이라는 즉시 동원가능한 전력이 확보되어 있었으며,
아이젠하워는 공수부대 예찬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군과 연합군의 제대로 된 모든 참모들은
독일군이 지크프리드선까지 후퇴해서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정보들이 입수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독일군이 연합군의 네덜란드쪽 주공방향은
지형을 이용해서 최대한으로 방어하면서
프랑스쪽 주공방향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전선의 불균형을 조금은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만에 하나 잘못되서 프랑스쪽 보급선이 분단되기라도 하면
프랑스 쪽의 기갑부대는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었고
히틀러의 생각 또한 그러했습니다.
몽고메리는 패튼과의 전공다툼을 만회하고 싶어했던 의도가 있었지만
당시의 상황은 넓게 분산되던 전선을 축소시켜야만 할 필요가 있었고
아이젠하워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선의 축소를 통한 전력의 집중이란 명제는 전략의 기본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몽고메리는 자신의 책에서 위의 생각을 밝히고 있지만
정작 전선을 축소해야 되는 이유인 독일군의 반격능력은
이미 소개했던 글에서 처럼 고려하고 있지 않았으며
독일군은 반격능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연합군 수뇌부의 전반적인 생각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부터 였고
독일군의 능력은 동부전선에서 대부분이 소모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방어로 투입된 독일군이
서부전선쪽에 독일군이 동원할 수 있었던 전력의 전부였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안이한 생각과 안햄지역의 독일군 전력에 대한 정확하고 세밀하지 못했던 정보력은
사상최대 규모의 공수부대작전이라는 마켓가든작전이
좀 더 철저하게 준비되지 못하게 만들어서 처절한 결과가 나오게 합니다.
결과론적으로 마켓가든작전의 실패로 인해서
네덜란드 주공방면이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한 채 전선의 형태로 굳어졌으며
쾌속전진을 하던 프랑스방면의 주공과는 거리상으로 괴리되어버리고
독일군이 그 틈을 이용해서 아르덴느 겨울공세를 감행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 궁금한 점은
마켓가든작전에 대항해서 독일군이 보여준 전력에도 불구하고
장기전 혹은 독일군의 반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으며
후에 발지전투의 상황이 나오는가가 더 의문스럽습니다.
마켓가든작전에서 독일군이 보여준 능력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발휘되었다면
얼마 전에 어느분이 적은 글에서처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2년여간이나 세심하게 계획되고 연습된 것이었음에도
막상 실전에서의 상륙작전은 초반상륙을 제외하고,
후속부대나 보금물자들의 상륙은 대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음을 볼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가설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계획과는 달리 어설프지만 성공적으로 수행되면서
해안가를 방어하던 독일군을 물리칠 수 있게되고
연합군은 독일군의 전력에 대해서 더욱 더 안이한 생각을 하게 한 것 같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지역 점령에 필요한 다리들을 확보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활용한다는 생각은
발지전투에서의 독일군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내용들은 이미 올렸던 글에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독일군은 이전의 2차대전 초기의 낫질작전에서도
독일군의 조공방향이었던 네덜란드 방면에서의 진격을 위해서
이지역의 다리와 요새 등의 중요거점을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장악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시기에 있었던 독일군 공수부대의 가장 뛰어난 전과는
벨기에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던 에방에말 요새를
공수부대 100여명이 글라이더를 이용해서 요새에 강습한 후
6명 전사, 20명이 부상을 입고 1000여명의 요새수비병력을 항복시킨 것입니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다리의 확보라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었고
상황을 바꿔서 패튼이 몽고메리의 지역을 담당했다고 하더라도
패튼도 다른 뾰족한 대안없이 결국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상부의 명령까지 무시하면서 독자적인 작전을 펼쳤었던 패튼의 전력을 보면
패튼은 다리확보를 위한 더 과격한 작전을 구상해냈을지도 모릅니다.
마켓가든작전은 발상자체가 한심하고 불필요했던 작전이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군 전력에 대한 안이한 판단에서 벗어나서
좀 더 완벽한 작전을 만들어서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마켓가든작전은 필요한 작전이었고 꼭 성공시켜야 하는 작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전차에 대한 항공정찰사진이나
레지스탕스의 정보를 무시하지 말고
의심되는 지역에 미국이 자랑하는 전략폭격을 몇 번 실시하고
다시 항공정찰을 하는 등의 정보확인작업이 아쉽습니다.
1944년의 서부전선에서는
디데이가 6월6일, 마켓가든작전은 9월17일, 발지전투는 12월16일에 발생하면서
이전 상황을 바꾸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는 등의 큼직한 사건들이
3개월마다 생겼던 것은 특이한 점입니다.
첫댓글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연합군 사령부측에서도 전쟁을 빨리 끝네고 각자의 전공을 내세워 정관계에 진출하기 위해 막바지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무시한채 작전을 밀어붙인 과오가 제일 크다고 봅니다 정말 이작전이 성공 했다면 좀더 많은 사람들을 구했을지 않을가 싶네요
그런 관점에서는 몽고메리는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냉정, 침착, 꼼꼼의 대명사였던 몽고메리였는데 공명심에 눈이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