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눅9:57-62) 07.12.9 주일낮 설교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과 하나님이 버리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사람인가? 그 차입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 불행합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하여 꿈꾸며 사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비젼이 있고 기쁨이 있어요..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62절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님을 보니까 죽은 자도 살리고, 병든자도 손을 얹어 기도하기만 하면 치료받고, 바다의 고기도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게 하시고,,, 이렇게 큰 기적과 능력을 행하시니까 야~~예수님을 따라가면 뭔가 생기겠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한자리 얻지 않을까? 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는 제자의 길이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다...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도다“ 새들도 짐승들도 제집이 다 있는데 예수님은 잠잘 집도 없었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자신이 누을 집한칸도 없을 정도로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따라가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 좇아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문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사명의 쟁기, 말씀의 쟁기를 붙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소가 밭을 갈 때는 앞만 보고 쟁기를 끌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논이나 밭을 제대로 갈수가 있어요.
중국에 가서 보면 봄에 농사철이 되면 소들이 쟁기를 매고 논을 갈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의 머리 옆에다가 이렇게 옆을 막아놓았어요... 그 걸을 왜 막아 놓는냐? 소들이 밭을 갈때 옆에도 보지 말고 뒤도 보지 말고 오직 앞만 보고 가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거나 옆을 보고서는 밭을 바르게 갈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온전히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자꾸 세상적인 생각에 파뭍혀 살면 주님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됩니다.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과거에 향수에 빠져 사는 사람입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옛날에 선보았던 그 여자 그 남자가 더 좋았는데...... --아 옛날이여....그런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은 어떻게 행복할 수 가 있겠어요...
지난 과거를 통해 교훈을 받는 것은 좋지만은 --과거에 매여서 사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무라성을 멸망하실 때에 롯의 가정을 구원하려고 작정하셨어요.. 롯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나오너라.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소돔과 고무라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그런데 롯의 아내가 소돔에 두고 온 재물과 집들이 생각나서 뒤를 돌아보다가 망합니다. 소금기둥이 되엇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비참한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길을 갈 때에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가야 되는데--도리어 그들은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애굽에서 생활할 때가 좋았는데... 애굽에서 고기 가마에서 고기를 먹고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몸은 가나안을 행해 가고 있지만 마음은 몸은 애굽에 가야 있어요...결국 그들은 애굽을 잊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 현실의 삶을 감사할 수 있어야 되요...구원받은 것도 감사하고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오늘의 삶에 감사할 수없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잇어요? 과거에 매여 사람은 오늘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과거에 매여 꿈과 비젼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쓰시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종종 ‘과거에 매여서 사는 사람있어요“ 옛날에 신앙생활할때가 좋았다... 그때가 좋았지 라고 과거만 그리워하는 사람은 신앙생활 잘할 수가 없어요.
과거에 발목을 잡혀 사는 사람은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하나님 악속을 붙잡고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입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성에 성주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주는 말하기를 포도주잔에 포도주를 가득 채우고 동네 한 바뀌를 돌아오되 만약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목이 달아나게 될 것이다.. 너는 포두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죽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청년 포주도 잔을 들고 초긴장을 하면서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고 한 바뀌를 돌아서 성주 앞에 왔습니다. 성주가 이 청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 마을을 돌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너는 거리에서 장사꾼들의 소리와 노래하는 소리를 못 들었는냐?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방울의 술도 흘리지 않는가? 여기에만 정신을 쏱는랴 아무것도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습니다.
그때서야 성주가 웃으면서 이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정한 폿대를 행해서 집중해서 한눈을 팔지 않는다면 너를 둘려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면 그때서야 너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폿대를 정하고 그 폿대를 행햐야 최선을 다해서 전진 한다면 모든 장애물과 어두움을 물러가고 하나님이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한국에 있는 사형수 63명의 사람을 집중 취재하고 분석하엿습니다. 과연 이 사형수들은 범행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였고 범행한 이유가 무엇이였는가? 그것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63명의 사형수 중에 다같이 일치되는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일정한 수입원(직장)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또 단란한 가정을 가진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63명의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이 사회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았고 부자들에 대한 증오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47.6% 30명은 빛를 갚기 위해서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남의 물건을 훔치려다가 살인을 저질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0.2% 19명은 복수심 때문에 살인을 저질렸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사형수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여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 지향적인 퇴보하고 미래 지향적인 사람은 진보하게 됩니다.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현실에 불평이 많습니다. 늘 불만투성입니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사람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늘 감사가 더 많습니다. 늘 긍정적으로 삷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거 사슬을 미련을 끊어버리고 미래의 꿈과 비젼을 가지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고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과거에 향수에 매여 사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과거에 상처에 매여 사는 사람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픈 과거의 상처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밝은 미래가 없다. 지나간 아픈 상처를 자꾸 기억하고 아픈 상처에 매어 산다고 하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그 가족들도 불행해 집니다.
어느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자매님이 보라색 쉬텨의 옷을 입고 왔습니다. 목사님이 인사하며..자매님 정말 옷이 예쁘십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집에 있는데 그 자매님에게 전화가 왔어요...목사님이 오늘 낮에 저를 보고 예쁘다고 하신 저의가 무엇입니까? 목사님이 황당해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예쁘다고 하는 말도 순수하게 받아드리지 못하고 조차도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 자매님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과거에 어떤 사람에게 받는 아픈 상처 때문에 그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하면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와 증오를 때문에 오늘도 신경질 적이고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바라기를 우리는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의 보혈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자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캘리포리니주에 스탠포드 라는 사람은 아들이 이탈리아에 유학을 보냄... 불행하게도 이 아들은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이 스탬포드 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비통과 슬픔으로 남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과거에 지녔던 꿈과 희망은 무너졌다. 죽은 아들은 우리의 희망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들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우리의 자식처름 여기며 살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우리나라 돈으로 220억으로 스탬포드 대학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스탬포드 대학은 이 부부에 의해서 세워지게 됩니다. 자기 아들을 잃고 그 아픔과 상처 때문에 미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더 아름다운 미래가 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대학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아픔과 상처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 때문에 미래를 포기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 딛고 일어나서 미래를 행해 거룩한 꿈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쓰시는 것입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으로 알려진 오프라 윈프라는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많은 아픔과 고통을 받은 것은 불행이 아니라 사명이다” 왜냐 하면 내가 이렇게 아픔을 겪으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햇습니다.
본문 62절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을 따라 갈수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다 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힘차게 출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갑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히게 됩니다. 요셉은 인생 밑바닥 생활을 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그는 세상 벼랑 끝에 매달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여 극적으로 애굽을 다스리는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재수가 좋아서 아니라... 요셉이 말히기를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세워주셨다“ 요셉은 과거의 상처에 매여 살지 않았습니다. 형님과 보디발의 아내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도 갖지 않앗습니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고 형님과 보디발을 사용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정금처름 사용하시려고 여기까지 나를 연단시키셨구나! 이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과거에 매여서 분노와 증오 속에 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과거에 상처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미래를 향해서 결단하고 거룩한 꿈과 비젼을 가지고 전진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 아침에 우리는 손에 쟁기를 잡고 앞만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전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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