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개울.
어린 시절, 여름 철에 잦은 폭우가 있을 때면
이 개울은 거의 넘칠만큼이나 큰 물이 흘러내려
가곤 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바위가 우리가 멱을 감고 놀고
물고기를 잡고 놀던 그 개울의 바위입니다.
겨울이면 여기에 동네 아낙네들이 빨랫감을
이고 나와 방망이로 손빨래를 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개울 위에 있는 앞다리에서 바라본 마을회관
마을회관은 여름철 겨울철 노인네들의 쉼터로 활용됩니다.
40~50가구의 마을에 지금은 10여가구만 남아있는
작은 마을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당에서 바라 본 눈내린 집 앞마당.
마당이 높아 마을이 일부가 내려다 보입니다.
앞동산이라고 불렀던 앞산이 보입니다.
어렸을 적, 저 산에서 총놀이, 전쟁놀이, 땔감나무하기,
굴파고 놀기 등등 어린시절의 놀이터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나무를 하지 않아
사람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졌습니다.
눈 내린 앞산
실제 맨 눈으로 바라보면 더 욱 아름답습니다.
과거 이 골목은 친구네가 살던 골목,
친구는 경찰이되어 전주에 살고
부모중 친구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여 집마저
사라지고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은
그 만큼 자식들에 대한 경제교육과 부를 관리하고 키우는
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부자는 3대가 아니라 세기를 달리하면서
물려내려가는게 유럽과 미국의 전통입니다.
그 전통이 유독 동양에서만 사라져 집안의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듯 한데....권문세가라고 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닌
전통을 지키고 부와 권력를 유지했던
집안들입니다.
넓은 공터가 좋은 곳.
명절엔 주차하기 편해서 좋았던 곳
과거 이 길은 지게를 지고 겨우 다닐 수 있었던
폭 50~70센치의 길이였다고 합니다.
이 길을 차가 다닐 수 있게 넓히고 확장한 것이
"새마을 사업"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집들이
지금의 슬레이트가 아닌 "볏집"을 엮어서 덮었던
초가집들이였죠.
그 집들이 모두 슬레이트로 바뀌고
그리고 20~30년이 지나니
그 집들이 다시 조립식이나 벽돌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렸을 적 매일 아침마다 마을의 스피커에서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살 기 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만들세."
라는 노래가 울려퍼졌었던 기억이 닌다.
그 만큼 그 때는 해보자, 잘 살아보자는 의지들이
넘쳐났던 때이다.
가운 데 골목에서 바라본 마을 앞 전경
마을앞
가운데 골목 입구
집터가 텃밭이 된 현장... (류원재, 명수 친구의 밭 )
보안등이 마을을 밝혀주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않는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고향의 모습을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새록 새록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