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세월과 더불어 성장하고, 사회와 함께 발전한다. 육체가 발육함에 따라 지능이 발달하고,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의식이 발전하는 것이다. 사람이 언제 어디서 살던지 그 성장과정은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으며, 그 발전단계는 원시인, 야만인, 문명인이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차차 지혜가 깨이고, 세상이 밝아져서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을 소유한 문명인이 되는 것은 옳게 자라서 발전하는 것이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철이 들지 않고, 세상일이 캄캄하거나 또는 속이 트이지 못하고 꽉 막히어 외고집만 부리는 것은 전혀 피지를 못하고 오그라진 미개인인 것이다.
유교는 인간의 성장과정에 따라서 발전해야 되는 단계를 설정하고 사회의 공동적 행사로 규정하였는 바 곧 통과의례이다.
통과의례의 의미는 사람에게 망망한 인생행로에 있어서 보편적 기준을 등대처럼 우뚝하게 세워준다는데 있고, 천차만별의 인생영역을 하나로 통합하여 마음과 몸이 서로 교통하여 왕래하게 하는 데 있다.
통과의례의 보편적 절도와 통일적 조화에 의하여 인간은 앞날에 대한 확실성을 가짐과 동시에 사회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므로 이에 인생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민중유교는 통과의례의 이와 같이 유익한 기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허례허식적인 기왕의 번문욕례를 삭제한 다음 고상하면서도 간결한 현대가정의례를 새롭게 연구하는 바이다.
유교의 전통적인 통과의례
유교의 전통적인 통과의례로는 관혼상제(冠婚喪祭)가 있는데 곧 성년식(成年式), 결혼식, 장례식, 그리고 제사(祭祀)이다.
이것은 모두 혈연공동체생활을 기초로 하는 가족중심의 인생보장제도로써 가족의 의무감과 은혜의식으로 맺어진 집안의 중대한 행사이다. 아들 딸의 성장을 어버이가 책임지고, 아버지 어머니의 돌아간 뒤(死後)를 남은 자녀가 보장하는 것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한계를 공동적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자손을 생산하므로써 무한한 번영을 누리게 하였고, 인생의 평범한 생활의 의미를 조상을 받들어 그 정신을 이어 받음으로써 지극히 보람찬 길을 개척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손을 두는 것은 조상의 생명줄을 만세에 이어 가는 혈통 보존이요, 사람이 살아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자기 사명을 완수하여 조상님께 은혜를 갚고, 자손에게 음덕(蔭德)을 남기고자 함이다.
성년식
성년식은 아들 딸이 자라서 15~20세가 되면 좋은날을 받아서 어른의 옷을 입히는 의식으로 어른으로 인생을 새출발하도록 깨우치고, 또한 아울러 어른으로 공식인정하여 주는 것이다.
인간의 떳떳함은 자주역량에 있다. 그러나 어리고 유치한 사람을 홀로 서게 하는 것은 사람을 버리는 행위이므로 어버이는 자녀를 양육하여 자립역량을 가질 때까지 보호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람의 자주역량은 건강한 신체와 총명한 재질을 타고 날수록 많은 까닭에 유교에서는 태교(胎敎)에서부터 비상한 노력을 시작한다. 정상적인 신체와 특출난 재능을 갖추면 일단 건전한 인생을 약속할 수 있지만 불구아나 박약아는 벌써 그것만으로도 안타까움을 면할 수 없는 것인즉, 그로 인하여 그 가족은 일정한 짐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람은 가르치기에 달렸고, 사람이 성장함에는 열번 되는 것이니 아들 딸이 허약할수록 더욱 잘 먹이고, 어리석을수록 더욱 열심히 가르쳐서 스스로 깨달아 위 아래를 분별하고 앞뒤를 가리면 자립하도록 풀어 주어야 되는 것이다. 만일 성년이 되었는데도 품안에 품고 있으려고 놓아주지 아니하는 부모는 인간을 속박하는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 딸이 자라서 성년이 되면 성인(成人)으로 자립하게 하는 것이 천하의 공통적인 관례(冠禮)가 되었으므로 이에 성년식을 거행하여 독립자주인격으로써 스스로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마련하여 주고 힘차게 격려하여 주었던 것이다.
성인(成人)이란 자기구원(自己救援)의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타인구제(他人救濟)의 능력도 있다는 뜻인 즉 공동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됨은 물론 공동사회에서의 일정한 자기역할을 수행할 책무도 있는 까닭에 배필을 골라서 결혼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성년식을 거행한 사람의 제 일차적인 사명은 스스로 배필을 찾아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는 것이다. 인생을 혼자 살지 않고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살려는 사람은 그 인생설계도 부부가 함께 정해야 하는 까닭에 먼저 결혼부터 한 다음에 서로의 뜻을 물어서 앞날을 설계한다. 요즈음 자기의 평생계획을 모두 세워 놓고는 자기가 가는 길에 말없이 순종할 배필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너무 독선적인 이기주의라고 할 것이다.
결혼식
결혼식은 성씨가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평생을 함께 살기로 약속하는 의식이니 인륜(人倫)의 대사(大事)로써 인간을 생산하는 시작이요, 행복을 창출하는 근원이다.
인류의 번창이 이로부터 시작하고, 인간의 만복(萬福)이 이로부터 비롯한다. 두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합쳐 생명을 창조하고, 행복을 경영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고귀한 것으로 인생을 꽃피우고 열매맺는 과업의 초석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재산이 있든지 없든지, 기술이 있거나 없거나 육신이 멀쩡하면 제짝을 찾아서 찬물 한 그릇을 떠넣고라도 정절을 맹세하고 결혼을 해야 되는 것이다.
하물며 어버이로써 아들 딸의 결혼을 어찌 걱정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혼은 성인(成人)들의 행사이다. 성인이 하는 일에 아무리 부모라도 간섭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나 스스로 선택하여 결정할 것이요, 강요나 유혹에 의하여 어리숙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여서는 절대로 않된다.
그러므로 유교에서는 남자는 25세, 여자는 23세가 넘으면 부모의 동의(同意)없이도 결혼을 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맹자'는 말하기를 혼인에 부모의 승락을 받는 것은 작은 예절이요, 결혼은 인간의 중대한 일이니 순임금은 아버지의 승락이 없이 결혼하였다라고 하여 결혼의 중대성과 자유선택 불가피성을 밝혔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책임은 일단 성년식으로써 끝나는 것이지만 그러나 자녀가 성년식을 거행했다고 해서 어른의 일을 완벽하고 충실하게 처리하는 것은 아니므로 결혼식까지는 부득이 자문에 응하고 모르는 것은 깨우쳐 돕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책무는 자녀의 결혼식을 주관하여 원만하게 결혼식을 마치고, 그 폐백을 받으며 앞일을 부탁하므로써 완전히 책임을 면한다고 할 것이다.
장례식
장례식은 사람이 이승의 생애를 마치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 자손이 환자를 큰방으로 모시고 임종(臨終)하여 편안히 숨을 거두게 보살핌과 동시에 돌아가시면 3일동안 최고의 슬픔과 공경으로 주검을 받들고, 엄숙한 장례식을 거행하여 깨끗한 땅속에 고이 묻어서 안장하는 의식이다.
모름지기 장례식은 인간이 마지막 가는 길을 가장 성스럽고 엄숙하게하여 인간이 마지막 가는 길을 가장 성스럽고 엄숙하게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밝히고 또한 평생의 공적을 기리고 새기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의 한 평생이 모두 끝나는 것이므로 살아서의 업적을 빠짐없이 그리고 완전하게 정리해서 공인하여 죽은이로 하여금 남은 원한이나 미련이 없도록 하여야 된다.
살았으면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모이면 흩어지는 것이 정해진 이치다. 유교는 죽은이 섬기기를 산사람 같이 받들어서 생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흩어진 주검의 얼 넋을 모아 이음으로써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것이다.
자손이 있으면 뒤끝이 살아 있는 것이요, 얼넋을 남겼으면 허무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죽은이를 죽었다고 보는 것은 어질지 못하고 죽은이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장례식은 최대의 인간성과 지식이 필요한 바, 슬픔속에서 기쁨을 창출하고, 말이 끊어진 곳에서 영원히 썩지 아니 하는 말을 엮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인생살이를 여기에서 심판하여 역사적 사실로 공인하고, 평생의 진실을 보배같이 아름다운 글월로 엮어서 표창하는 것이다.
인생의 장엄한 종결 앞에 죽은 혼령은 아무 미련이 없이 이승을 후련하게 떠나 저승에서 만년의 명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잘 마무리 하는 사람은 살아서 해야만 될 일을 서둘러 완수하고 뒷근심이 없도록 하는 것인 즉, 30살이면 자립하고, 40살이면 소신있게 살고, 50살이면 사명을 완수하고, 60살이면 후계자를 양성하고, 70살이면 모든 일에서 은퇴하여 초연히 인생을 즐기면서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다.
인생이 짧으면 짧을수록 시간을 아껴서 쓰고, 인생이 길면 길수록 많은 공덕을 쌓을지니,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자포자기하여 허송세월하는 것이다. 만일 한 평생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하면서 자녀도 두지 않고, 벌어놓은 재산도 없고, 쌓은 공덕도 없다면 그 죽음이야말로 전혀 기쁨이 없는 슬픔덩어리요, 말을 할 수 없는 공허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에서는 이러한 불행을 방지하기 위하여 양자(養子)를 허락하고, 근검절약하면서 관과 장지를 미리 준비하게 하며, 죽기전에 유언을 남기고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공덕을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은 자손이 주관하는 것이므로 그 모든 책임도 또한 자손에게 있는 것이다. 성년식과 결혼식이 어버이의 책임을 다 하는 일이라면 장례식과 제사는 또한 자손의 도리를 다하는 길이다.
집안에 어른의 훌륭함과 용렬함이 모두 자손의 됨됨이에 따라서 나타나고 반증되는 것이므로 상주(喪主)가 되어 장례식을 거행하는 자세와 절도를 보면 저절로 판명되는 것이니, 바야흐로 상주가 된 사람은 큰 일을 당하여 정신을 잃지 말고 힘써 처음부터 끝까지 예절을 물어서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제사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忌日)이나 명절에 자손이 모여서 젯상을 차리고, 얼틀을 모시면서 옛날을 추모하고, 그 은덕에 보답하는 예식이다.
조상의 얼넋이는 제사를 통하여 더욱 뚜렷하게 되고, 자손의 정성은 제사를 통하여 더욱 깊어지나니 조상과 자손이 이로써 정신을 하나로 통일하므로써 생명의 뿌리를 튼튼하고 윤기나게 하는 것이다.
튼튼하고 깊은 조상의 뿌리를 확인함은 곧 자손에게 안정감과 발전의지를 주고, 끝내 잊지 못하는 공동체 의식과 혈통보존의 책임감을 알게 하므로써 무한한 활력과 용기를 솟게 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백절불굴하는 용기의 샘으로서의 제사의식은 결코 비굴하거나 허황한 방법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귀신을 모독하고 사람을 미혹(迷惑)하게 한다면 어디에서 참다운 용기가 솟아나올 것인가?
가장 떳떳하고 정직한 인간의 자세로써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바르게 공경하여야만 인생의 본의에 벗어나지 아니하고,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것이니, 바로 여기에 천하공통의 제사법도가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것이다.
천하공통의 제사절차에 의한 제사는 모든 사람이 잘 거행할 수 있는 평이하고 간결한 것임을 뜻한다. 만일 제사절차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 특수층이나 특별히 한정된 사람들의 전유물로 한다면 이것은 벌써 천하공통으로 행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이다.
이에 유교는 자손이면 누구든지 조상의 제사를 조건없이 그리고 부담없이 지낼 수 있는 평이한 행사, 간결한 의식으로 만들어서 일상생활과 함께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유교에서의 통과의례는 만인이 모두 거치고 행하는 일상적인 것임을 이해하고 일상생활의 연장으로 편입하여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였던 것이니, 조금도 신기괴벽한 논리를 전개한 일이 없다.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효도와 충성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효도와 충성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조상을 받드는 진실이 있는 것인 즉 비록 살아서의 행동을 돌아가신 어버이가 알지 못한다고 하여도 자기가 죽은 다음에는 부모와 조상님을 찾아가서, 그 동안의 소식을 아뢰지 아니할 수 없다고까지 생각하여서 몸을 고이 보전하려고 하고, 부모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는 의식은 제사가 사람에게 삶의 용기를 주고 있다는 실증인 것이다.
자손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어버이가 보호하고, 조상이 죽은 뒤에는 자손이 기리는 네가지 통과의례는 인생행로에서 대단히 중대한 책임이요 도리다. 이것을 완수하였을 때, 그 사람은 일단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볼 수 있고, 이 일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 사람은 일단 인간적으로 실패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평생 살았는데도 어린애를 면하지 못하고, 짝을 찾아 결혼하여 가정도 꾸미지 못하며 부모 조상의 죽음에 임종도 못하고 제사도 잊었다면 그 인생의 존재가치를 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으리라. 이것이 민중유교인이 가장 두려워할 점일 것이다.
만일 사람이 어떠한 시대 어떠한 사회에 살던지 이상 네 가지 통과의례를 존중하여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또한 집안에 여러가지 기쁜 일이 있는 것이다. 자녀를 생산한 기쁨인 백일맞이, 돌맞이, 회갑, 회혼식(回婚式) 등으로부터 생일, 입학, 합격, 승진, 성공 등등의 행사때마다 집안의 경사로 받아들여서 그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친지들까지도 함께 치하하고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평범한 생활속에 무한한 정신을 담고, 씩씩한 노력 위에 빛나는 영광을 얻는 유교인의 한평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생일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유교의 인생이 상부상조를 원칙으로하여 인생의 목표를 지극히 높은데다 세우면서도 가장 가깝고 쉬운 일로부터 먼저 추진하여 성취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