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호르에서 라왈핀디로 대우 고속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숙소는 칼리지 춐의 "파퓰러 인"이었습니다.
다음날 탁실라 답사를 가서 박물관 구경하고 나온 부분까지 입니다.
7일차 (7월 23일 라호르 → 라왈핀디 이동)
06: 40 기상
어젯밤 11시 30분이 되어도 박선생이 돌아오질 않았다. 무사히 비행기를 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든다. 집안 어른의 건강도 쾌차하길 빈다.
기상해서 옥상의 탁자 주변에 앉아 한국, 일본인들이 잡담을 나눈다. 어제의 여행자의 여행담도 즐겁게 들었고 정년퇴직한 후 5월부터 10달간을 계획하고 여행중인 일본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여행지에서 어떤 나라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정도는 나도 안다. 근데 이 일본인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관련된 항의 시위를 “정치적 사건”이라면서 껄껄거린다. 상당히 기분이 나빳다.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가 그들 눈에는 정치적 사건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건 역사적 문제이고 민족성에 관련된 문제로 보인다.
암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식사도 걸렀다. 별로 생각도 없다.
08: 05 리갈 인터넷 인 출발
럭샤를 55루피에 잡아타고 대우 터미널로 갔다. 어제 라호르 아리랑에서 블루 스카이님이 대우터미널에 전화하여 예약을 해주신 관계로 30분 전까지만 가면된다고 하였으나 리갈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어서 그냥 나왔다. 근데 럭샤에 “대우”라고 말하니까 잘 모르던데 “다에우(그냥 소리나는대로 읽었다)”라니까 알아듣는다. 도대체 어느나라 발음인지 잘 모르겠다.
08: 20 대우 버스 터미널 도착
휴게실은 비교적 깨끗하고 사람들도 깨끗해 보였다. 터미널 부근에서 마땅히 식사를 할곳을 찾지 못해 휴게소내 매점에서 짜이와 에그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에세담배를 파인이라고 팔아서(디스도 같은 이름이다.) 한갑에 25루피씩 주고 10갑을 샀다. 시간이 남아서 대우버스 시간표를 들여다 보았다.
< 라호르 출발 기준 - 요금은 럭셔리//슈퍼 럭셔리>
라왈핀디 : 럭셔리 380루피// 슈퍼 럭셔리 450루피 (4시간 30분 소요)
※ 핀디 ---> 라호르 구간은 04: 30 ~ 02 : 30분까지 운행하고 출발 간격은 보통 30분 내외)
뮬탄 : 350루피//430루피 (5시간 15분 소요)
페샤와르 : 520루피//600루피 (6시간 15분)
※ 라호르 ---> 스왓 (밍고라를 말함)
스왓이라고 할 때는 사실상 직통이라기 보다는 직행으로 이해하실 것. 페샤와르에서 밍고라사이의 중요 도시는 거의 들리는 것 같으니 경유지를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08 : 00 출발 → 18:00 도착// 11:00 → 21:00// 20:00 → 06:00// 01:00 → 11:00
02: 00 → 12:00
< 라왈핀디 출발 기준 - 요금 구분은 동일 >
뮬탄 520루피// 없음
페샤와르 170루피//없음
머리 100루피//없음
09:30 버스 예약표 끊음
10시 출발이라 30분전에 매표 창구로 가서 자기 이름을 말하면(우리는 대개 성만 말하면 된다.) 예약자 명단을 확인 후 표를 준다. 표를 끊은 후 바깥에 나가서 안해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다행히 연결이 되었다. 안부를 전하고 집안일을 잠깐 상의하였다. 3분 정도 통화한 것 같은데 225루피를 달라고 한다. 드럽게 비싸다.
09 : 50 버스 승차
버스를 승차하는데 이건 뭐 LA공항으로 입국하는 수준이다. 짐마다 TAG를 붙이고 버스 입구에서 검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경비원이 차 안에 들어와 승객과 버스 안을 캠코더로 일일이 찍는다. 머~ 승객 입장에서야 안전을 고려한 것이니 이 동네에서는 불만이 없다.
버스는 36석인데 우리나라 우등고속과 구조가 비슷하다. 이윽고 10시에 버스는 칼같이 출발하였고 (그 점이 파키스탄에서 매우 이례적이라 호감을 산다고 한다.) 잠시 후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휴게소란다. 휴게소도 비교적 깨끗하고 넓었으나 음료수 이외에는 우리가 특별히 사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환타 작은 것이 20루피) 화장실에 다녀와서 버스에 오르니 잠든 사이에 샌드위치1개, 쿠키 2개가 든 종이 박스를 꽂아놓았다. 먹을만하였다. 고속버스에는 마치 스튜어디스같은 안내양들이 타고 있으면서 손님들의 요구시 언제라도 음료수와 생수를 제공해주었다. 고속도로는 왕복 6차선인데 우리나라 대우 건설이 건설하였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도로의 곡선이라든가 바닥 상태는 거의 우리나라와 같았다.
14: 17 고속도로 톨게이트 통과
14: 28 라왈핀디의 대우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내려서 바로 훈자로 가기위해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갔더니 거기는 주로 페샤와르나 스왓 밸리 방면 버스터미널이었다. 길 건너편으로 갔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말하길 “피르바다이(PIRWADAIH를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표기대로 피르와다이다라 발음하였는데 별 상관없이 알아 먹었다.)로 가야한다고 했다.
14:40 대우 터미널 건너편의 로터리에 있는 일반 버스터미널 출발
할수없이 피르와다히를 간다는 스즈키를 타고 출발하였다. (5루피/1인)
14: 55 버스 터미널 도착
여기라고 차장이 말해준 곳에 내렸는데도 길기트나 훈자가는 버스는 없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길기트가는 버스터미널로 이동하였다.(2킬로 정도 거리라고 한다.)
다른 택시 기사들이 50루피 달라는 걸 웬 친절한 사람이 끼어들어 길기트가는 버스는 여기가 아니라면서 적극 흥정해줘서 30루피만 주기로 합의하였다. 우리가 출발하니 웃으면서 손가지 흔들어주는 센스....
그러나 도착한 버스스탠드에는 이미 오늘 출발하는 에어컨 버스의 좌석은 매진되었다. 할 수없이 예비용으로 생각해 두었던 코스 변경을 하였다. 일단 내일은 탁실라를 구경하고 모레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버스 매표소에 모레 15: 30에 훈자가는 에어컨 버스표를 2장 예약하였다. 훈자까지 직접갈꺼냐고 해서 아하! 직통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다고 하였다. (훈자까지는 725루피/1인)
버스표를 예약한 후에 보니 우리가 타는 버스는 파키스탄 국영버스인 natco가 아니라 silk route라는 일반 버스였다. 그러나 직접 버스를 보았는데 오히려 더 나은듯한 느낌이어서 망설이지는 않았다.
15: 28 피르 와다히 출발
터미널을 나와 파퓰러 인으로 가기위해 럭샤와 교섭을 한다. 문제는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거리감각이 없어서 얼마가 적절한 가격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일단 럭샤 기사에게 물어보니 우리를 위아래로 쓰~윽 훝어보더니 70루피를 부른다. 간격을 두고 답변하는걸 보아서는 분명 바가지인 것 같아 40루피에 가자고 하였더니 즉시 50루피로 내려간다. 40루피 아니면 않간다고 등을 돌리려니까 알았다고 한다. 일단은 파퓰러 인이 이사를 했다고해서 예전의 리알콱 춐이 아닌 것 확실한데 어딘지는 몰라 컬리지 로드로 가자고 하였다. 무슨 공동묘지를 지나 쓰레기가 양쪽에 함부로 쌓여있는 냇가 다리를 지나고 무슨 시장도 지나 칼리지 로드에 도착했다.
15 : 45 칼리지 로드 도착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일단 조금 더 가보자고 하니 조금 더 가서 큰길로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않보이기에 일단은 내렸다. 이 부근 어디인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않보인다. 마침 세련된(전통복장이 아니라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무스를 바른) 젊은이 둘이 지나가기에 칼리지로드 - 리알콱 춐 - 파퓰러 인 이 세단어만 가지고 물어보니 자료집 뒷면에 우루두 어로 뭐라 적으면서 다리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가다가 사람들에게 방금 써준 글을 보여주라고 한다. 내 짐작에 거기에는 “ 이 어리버리한 인간들에게 칼라지 로드의 파퓰러 인 호텔 좀 갈쳐주쇼”라고 쓴 것 같다.
일단 가르쳐 준대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알고 보니 시냇물 다리가 아니라 지하 차도 위의 차도였음) 오른쪽으로 꺽어서 조금 걷다가 서있던 사람에게 보여주니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란다.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가게사람에게 그 우루두어 글씨를 보여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서 마침 매직와인 부부가 찍어둔 파퓰러 인의 새로운 건물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어딘지 알겠다고 한다.(이 사람은 호텔을 안게 아니라 그 사거리 코너의 가게를 알고 있었다.) 고맙게도 자기가 직접 앞장서서 길을 나선다. 우리도 따라갔다. 골목길을 요리조리 돌아서 칼리지 로드에 도착했다. 알고보니 아까 럭샤 기사가 여기가 아니냐고 물어보았던 첫 번째 선 곳이었다. 4거리(즉, 칼리지 춐이라고 한다.)에서 안내해준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사진 속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역시~ IT 강국의 자부심과 열심히 자료 올려준 앞선 여행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특히 매진와인 부부에게 감사를 ^-^
근데 들어가는 출입문이 너무 옹색하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유리문을 여니 급경사로 계단이 있다. 카운터는 2층에 있었다. A/C를 찾으니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Fan 더블 룸으로 정했다. 하루에 350루피였다. 숙박계를 적는데 여권과 비자 복사본이 필요하다고 한다. 주었더니 얼마 않되어 가져온다. 우리에게 배당된 방은 거리쪽으로 창문이 난 123호였다. 그나마 바람이 들어오는 창쪽이라 조금 나았고 리갈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일단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점심을 먹기위해 지형 정찰겸 거리로 나갔다. 라호르보다는 낫지만 더운건 거기서 거기였다. 호텔을 나와 위쪽으로 걸어가서 신장 판티엔을 찾았는데 문을 닫았다. 이 부근은 온통 중국제품 그것도 실크와 같은 옷감가게들이 몰려잇는 곳이다. 가끔씩 회족들도 보인다. 주변의 먹거리를 찾았으나 의외로 식당이 없어서 허탕을 쳤다. 이럴 중 알았으면 사다르 바자르 부근에 있는 Al - azam 호텔로 갈걸 그랬나 보다. 바자르 부근에는 이런저런 먹을거라도 있을텐데.... 다시 오던 길을 내려오는데 여기는 밤에 걸어다닐 때 무척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인도는 하수도 위에 있는데 곳곳에 하수도를 덮은 시멘트 뚜껑이 열려있다. 자칫하면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차도로 가자니 이건 차선이 좁아 서로 뒤엉켜 아주 복잡하다.
길을 내려와 4거리에서 아까 우리가 갔던 큰 길쪽으로 걸어보니 이쪽은 새, 금붕어와 같은 관상용 동물을 파는 곳이 밀집해 있다. 4거리에서 반대편은 오토바이 부속품 전문 상가인 모양이다. 한마디로 따분한 곳이다. 심심해서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18: 40 저녁 식사
우선 배가 고프기에 호텔에 식사를 부탁하니 된다고 한다. 야채 볶음밥(1그릇에 45루피였다. 근데 파키스탄에서는 쌀밥이 원래 고급 식사라서 다른 것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을 2개 시켰더니 한 40분 정도되어서 방으로 식사가 왔다. 볶음밥의 쌀이 현지 쌀이 아닌 중국에서 가져온 듯한데 우리 입맛에는 이게 훨씬 나았다.
20 : 00 카운터에서 정보정리
식사 후 심심해서 카운터로 내려왔더니 아이들, 어른들 할 것없이 예전 홍콩 르와르 영화를 60년대 우리나라 영화의 대사 읆듯이 하는 파키스탄 영화를 보았다. 나는 웃긴다. 내용은 모르지만 암튼 말투, 액션이 웃긴다. 잠깐 같이 보다가 심심해서 정보 노트를 들춰보았는데 시간이 좀 흐른 것들이 많다. 예전에는 라왈핀디 파퓰러 인에 가면 정보가 그득하다고 했는데 옛말인가보다. 그나마 노트가 꽉차고 떨렁거려서 주인에게 새로운 노트가 없느냐고 하였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얼른 종업원시켜서 새노트를 하나 사왔다. 하릴없어서 노트에 카라치~ 라왈핀디까지의 여행정보와 각 도시의 숙소주변 및 관광지 주변을 못그리는 솜씨로 약도를 그렸다. 다 하고나니까 22시가 다되었다.
정보노트를 다 적고나서 주인에세 내일 탁실라를 타려고 하는데 varan버스는 어디서 타느냐고 하니 바란버스는 없어졌다고 한다. 왜? 그랬더니 라왈핀디는 구시가지라 도로가 대부분 좁은데 버스가 손님 오르내릴때 정차하면 교통체증이 심해서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적어도 핀디는 바란 버스가 없다고 봐야한다. 이슬라마바드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럼 탁실라는 어떻게 가야하느냐고 하니까 럭샤를 타고 사다르 바자르에 가서 미니버스를 타라고 한다.
22: 30 취침
그럭저럭 잠이 들었다.
8일차 (7월 24일 일요일) 탁실라 1일투어
※ taxilra에 대한 개요
파키스탄 펀자브주(州) 북서부 이슬라마바드 북쪽에 있는 고대 인도의 도시. 산스크리트로 탁샤실라, 한역(漢譯)으로는 특차시리(特叉尸利)․득차시라(得叉始羅) 등으로 적는다.
이곳은 BC 6세기에 페르시아 아케메니아 제국의 7번째 통치구였다.
BC 4세기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침입을 받아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었고 BC 3세기 중반에는 마우리아왕조의 통치 아래 들어가면서 불교가 전파되었다., 마우리아왕조 때는 아소카왕의 왕자 쿠나라가 통치하였다고도 한다.
BC 2세기 무렵에는 그리스문명, 1세기에는 쿠샨왕조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탁실라의 찬란한 문화는 AD 455년경 화이트 훈즈의 침략에 따른 약탈과 방화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였다. 지금도 쥴리앙에 가서 볼 수 있는 불에 탄 나무 창 유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1912~34년까지 영국 고고학자 J.마셜이 지휘한 인도 고고국(考古局)이 이곳에서 도성터․절터 등 많은 유적을 발굴하였다.
도성터는 빌리 마운드․시르카프 유적지가 발굴되어 마우리아왕조에서 쿠샨왕조에 이르는 서북 인도의 편년(編年)과 동서문화 교류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불교 절터로는 아소카왕이 세운 달마라지카불탑․자우리안 등이 발굴되었고, 출토된 불상 및 공예품 등은 탁실라 박물관에 소장되어 간다라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06: 00 기상
상대적으로 샤워물도 라호르에 비하면 조금 시원하다.
07: 00 숙소 출발
07: 05 럭샤타고 출발
칼리지 춐에서는 택시나 럭샤가 보이질 않아 곧장 내려가는 길을 따라 큰 길로 나가 럭샤를 잡았다. 사다르 바자르까지는 20루피달라고 한다.
07 : 11 사다르 바자르 도착
여기가 사다르 바자르라고 내려준다. 근데 시장 분위기가 아니다. 다행히 부근에 버스들이 몇 대 서 있기에 가서 탁실라 가느냐고 하니까 않간다고 한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하니까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나중에 생각하니까 우리가 내린 곳은 알 아잠 호텔 부근의 인터넷 카페 근처였다. 일단은 길가 코너의 제과점에 들어가 아침거리를 샀다. 샌드위치2개, 작은 빵 4개를 샀는데 100루피 달라고한다. 비싼 기분이지만 아직도 그런 종류의 체감물가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07: 35
아무튼 제과점에서 나와서부터는 헤매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보는데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되는데 적당히 손짓해버리거나 자기 추측대로 알려주다보니까 엄청 헤맸다. 다행히 어떤 대학생을 만나 물어보니 제대로 가르쳐 주는데 걸어서 상당히 먼 거리였다. 일단은 대학생을 따라가다가 문 연 식당이 있기에 들어가서 아침 요기부터 하기로 하였다. 짜이 2잔, 짜파티 1, 달 1그릇, 에그 후라이 2개를 합쳐서 41루피 나왔다. 또다시 비싸다는 느낌이었다.
07: 50 탁실라가는 미니버스 모인 곳 도착
모였다고 표현했지만 2, 3대가 있는거고 손님이 차는 대로 출발하는 임시 정류장 같은 곳이다.
여기찾기가 무지 애매하니까 찾아갈려면 이렇게 하면된다. 일단 사다르 바자르의(아래쪽 - 약간의 완만한 경사를 가진 내려가는 도로를 따라 한참 걸었다. 10분쯤?) F․G Junior public School옆 5거리로 가면된다.(그 옆은 무슨 경찰 안전교육 시키는 기관이 학교처럼 있다) 그 5거리에 봉고차들이 있다.
07: 58 출발
손님이 다 차자 출발하였다. 탁실라 차비는 15루피/1인였다. 아까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준 대학생이 맨뒤에 앉아서 빙긋이 웃는다.
08: 30 탁실라 도착
고속도로 비슷한 길을 최대한의 스피드로 달린다.
도착한 곳은 육교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오가는 버스들이 서는 정류장 비슷한 곳이다. 암튼 버스 엄청많고 페샤와르, 만쉐르 방면으로 오가는 버스들이다. 버스 몰려있는 곳에서 위쪽에 릭샤들이 몰려있었다. 함께 버스에 탔던 중년의 남자가 어딜가느냐기에 탁실라 박물관간다고 하였더니 선한 표정으로 웃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한다. 럭샤에 가서 흥정을 하더니 우리보고 타라고 한다. 우리와 그 중년남자만 타고 출발
08 : 35 탁실라 버스 정류장 출발
럭샤 서있던 곳에서 앞쪽으로 쭉 가다가 고가도로 밑을 우회전하여 가는데 시장을 통과한다.
08 : 52 탁실라 박물관 도착
박물관 300m쯤 전이 탁실라 기차역이다. 그 앞에서 중년 남자가 내리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선 슈퍼에 들어가 시원한 사과 쥬스를 사와서는 좋은 구경하고 가라면서 차비도 함께 지불해 버렸다. 아마도 그 기차역 역무원인 것 같았다. 고맙다고 크게 손을 흔들었더니 뒤돌아보면서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길을 간다.
08: 52 박물관 입장
박물관에 들어갔더니 말로만 듣던 그 간다라 불상의 최고 작품들이 우릴 반긴다. 마침 사람들이 없어서 서양인 2명과 우리뿐이다. 아마도 그 박물관의 청소 및 관리를 맡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어니ㅏ라에서 왔느냐고 하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입구 바로 왼쪽의 테라코타를 가리키면서 마야부인의 흰코끼리 태몽 장면과 출산 장면을 설명하는척 한다. 내가 사진 찍어도 괜챦냐고 하였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얼른 찍으라면서 유물들이 전시된 전시실 유리창을 깨끗이 닦는다. 아마도 잘 찍으라는 뜻일게다. 이주형 교수의 <간다라>를 읽으면서 얼마나 보고싶었던 유물들인가? 우리도 눈치껏 사진들을 찍으면서 다녔다. 박물관 1층의 왼쪽 전시실을 돌아 건너편의 오른쪽 전시실로 들어가니 때마침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20명이 조금 못되게 단체로 들어온다. 그러니 그 관리인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언젠가 어느 교수의 간다라 유적지 답사기를 읽다보니 탁실라와 페샤와르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씩 쥐어주고 사진을 찍었다는 글을 본적이 잇어서 오른쪽 전시실 구석으로 가서 얼마주면 되느냐하니까 ‘50’이라고 한다. 나는 50루피로 알아듣고 너무 싼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50루피? 하였더니 50달러랜다. 내가 웃으면서 달러를 갖고 있지 않고 루피밖에 없다라고 말한 후 300루피를 쥐어주었다. (즉, 5달러 준셈이다.) 좀 난감해하는데 사람들이 들어 올 기미를 보이니까 얼른 주머니에 돈을 넣는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오기에 어디에서 주관한거냐니까 혜초 여행사에서 왔다고 한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라호르에서 kkh를 타고 쿤자랩을 넘어 중국 서안까지 간다고 한다. 그래도 보신관광이나 매춘 관광다니는 속이 썩은 관광객들에 비해 훨씬 아름답고 멋지게 보였다. 우리보고 배낭여행을 하는 입장에서 파키스탄 한달 경비를 얼마정도 쓸거냐고 묻기에 대략 인천 출발/도착까지 총 150만원 잡고 왔다고 하니까 놀란다. 자기들은 거의 379만원 정도 내고 개인 경비는 별도로 챙겨왔다고 한다. 뭐! 그런거 아닌가? 대신 좋은 숙식과 머리아프게 코스찾아 헤맬 일도 없으니 그 값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 그러나 어쨌든 내겐 너무 많은 돈이다. 그들과 헤어져 오른쪽 전시실에서도 적당히 사진을 찍고 (그래도 넘 급하게 찍었고 특히 유리창에 반사되는 형광등과 물체들의 모습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그 후로도 여러 곳에서.... 나중에 모니터링하였는데 흔들리거나, 형광등이나 다른 물체가 유리창에 투영되어 유물이 제대로 않찍힌게 상당히 많아서 좀 서운했다.) 나왔다.
나와서 매점에 가서 거의 얼어있는 생수(大 30루피)를 산 후 간다라 유적지 화보집(600루피// 탁실라 유적지 화보집은 360루피)을 하나 산후 정문으로 나왔다.
|
첫댓글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