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숙소를 나오니 8시였다.
대평리 쪽으로 빠져 하예동으로 가고 싶었으나 일정상 12번 국도를 타기로 했다.
남당에서 상예2동 사이가 남제주군과 서귀포시의 경계
(우리나라는 행정구역경계 지역의 도로가 정비 되지 않은 곳이 많다.)라
도로 정비도 안 되어 있었고 자전거 도로도 없었다.
더구나 일부 구간(약 2km)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걷는데 애를 먹었다.
서귀포 시내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자전거 도로가 넓게 잘 포장 되어 있었고
진귀한 남방의 화초 화단과 고무나무 가로수가 이국적 정취를 풍겼다.
길가의 귤밭에는 시퍼런 귤빛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시계를 보니 1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12번 국도는 훤하게 뚫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음식점 비슷한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소나기 쏟아졌다.
덕분에 한낮의 열기를 피해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배는 더 고프고 다리는 더 아팠다.
지도에 표시된 영보관광농원(제주월드컵경기장 가지 전)을 찾아 갔는데
실제 위치에는 없었다.
마침 길 건너편에 ‘제주가든’이라는 음식점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인데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한 여름 대낮에 문을 열어놓은 음식점은 대부분 친절도 음식의 맛도 빵점이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음식에 맛이 없어 장사가 안 되어 손님이 없거나,
손님을 위하는 마음보다 돈에 더 마음이 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등어 구이(15,000)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쫓기듯 나왔다.
하지만 우연히 서귀포 여고 바로 옆에 있는 ‘베낭길’이라는 오솔길로 접어들면서부터
오전의 고행길과 음식점의 불쾌한 기억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베낭길입구에서 마을길을 빠져 나오면 베낭길 입구에 있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예쁜 계단)
베낭길이라는 작은 펫말을 보고 무장정 들어왔는데,
뜻밖에 횡재를 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환상의 걷기 코스였다.
제주도를 도보여행하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 길을 걸으라고 권하고 싶다.
나무로 깨끗하게 만든 오솔길이 해안의 절벽을 끼고 거의 3, 4 키로 이어졌는데
그 해안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바다 절경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특히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시퍼런 바닷물은 보기만 해도 으시시 추웠다.
예쁜 나무계단 양 옆으로 연녹색의 야생초와 더불어
큼과 작음과 강함과 연함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에서 아름답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예쁜 나무계단과 주변의 경치를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아쉬웠다.
특히 숲 속 오솔길의 사이로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는 멋들어진 해송과
그 해송 가지 사이로 보이는 청(靑)과 녹(綠)의 조화의 극치를 이룬 쪽빛 바다와
깎아지른 듯한 암벽의 기기묘묘한 모양, 그리고
정말 '하늘색 물감 같은 하늘’ 바탕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까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고,
갈 길이 바쁜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일 것이라는 '호언장담'이라도 하고 싶은 곳이었다.
외돌개(지도에는 외돌괴라고 되어 있음) 벼랑길(제주도 사투리로 베랑길)의 절경에 빠져
헤매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체해버렸다.
하는 수 없이 천지연 폭포만 둘러보고 그 근처에서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천지연은 몇 번 와본 곳이라 눈에 익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위를 식혀주었다.
정방폭포까지 보고 싶었으나 그냥 숙소로 들기로 했다.
천지연 주차장 건너편 언덕에는 모텔이 많이 있었다.
남미모텔이란 곳이 깨끗해 보여 들어가니 성수기인데도 방이 많이 비어 있었다.
걸은 거리(25km) : 화순 --> 상예2동 --> 중문 --> 도순동
--> 서귀포여고(해안도로 진입) --> 천지연 폭포
첫댓글 으아... 지금부터 돈 모으고 싶다... 내년에 저 길을 내가 밟기위해...
아 드뎌 사진이 보이네요...기회가 되면 나두 꼭 해봐야지...
이렇게 사진으로만 보아도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절경들을 직접 다녀오신 소진님은 가슴에 얼마나 아름답게 추억이 남아 있을까요...사는동안 좋은 추억 몇조각 남길 수 있는 실천 용기가 부럽습니다....^^
야~~~ 나도 제주도는 한번 가봤는데 그때는 차를 타고 이름난 명소만 갔는데.... 나도 도보여행 하고 싶다. 어디 단체로 여행가는 그런데 없나요 ... 혼자서는 어째...? 겁이 나네 제가 워낙 길눈이 어두워서.... 부럽다 정말 가고 싶다....
중문 주상절리대는 못 들리셧나보네여~
혼자서 다니기는 힘들어요 같이 가는일행이 있어면 같이 가도 되는가요 ...
베낭길 베낭길 꼭 걷고말테야
`청(靑)과 녹(綠)의 조화의 극치를 이룬 쪽빛 바다와... 소진님의` 10여년 전 여행기를 읽으며
무한감동과 작가적 안목과 문장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