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부동산전문가 상당수가 ‘하향 안정’을 점쳤다. 강도 높은 세금규제 때문에 다주택 보유자가 내놓는 매물이 늘어나면서강남권도 ‘안정’ 기조를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정부측 전망은 더욱 확고했다. 하지만 추석 이후 시장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을 필두로 수도권 곳곳에서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연구소, 부동산 매매 현장 등에선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광열 재경부 정책조정총괄과장‘연말 이후 상황 달라질 것’‘8·31종합대책’으로 대표되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중대 기로에 섰다. 당초 정부는 내년 1월 양도소득세 중과세 시행을 앞두고 올 하반기부터 집값 하향 안정을 자신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최근 시장불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부 내 부동산 관련 정책 조율을 담당하는 유광열 재경부 정책조정총괄과장은 “그동안 강남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오름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보유세 강화 등 투기억제 기반이 마련된 만큼 아직 일희일비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집값 불안의 요인으로 계절적 요인, 판교 낙첨자들의 실망수요, 월세 전환으로 전세 물량이 감소하면서 나타난 전셋값 상승과 이로 인한 전세 수요자들의 매수세 전환 등을 꼽았다. 유과장은 “올해 민간 건설사들의 주택공급이 부진했던 것도 한 요인”이라며 “내년 초부터 주택공급이 정상화되는 만큼 지나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과거 20년간의 집값 추이는 10월까지 오르다 11월 들어서면서 하락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나온 가장 최근 통계치인 지난 9월 상승률만 보더라도 과거 20년 평균 상승률을 아직 밑돌고 있다. 11월 하락 내지 안정세 전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분석이라는 것이다. 유과장은 집값 안정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컸던 탓에 시장의 ‘작은’ 동요도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1월1일부터 양도세가 중과세된다”며 “정책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일관성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졸속추진 논란을 빚고 있는 신도시 건설과 관련, “8·31대책에 포함돼 있던 내용을 구체화한 것으로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며 “점진적인 택지확보를 통해 공급확대가 계속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jang@kbizweek.com지규현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내년 집값 물가상승률 수준’대한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 지규현 책임연구원은 “향후 집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종 규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집값을 밀어올리고 있다”며 “정부에서 공급확대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공급까지는 시간이 걸려 선언적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는 “비강남 지역의 집값 상승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강북지역의 재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가속도가 붙을수록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개발을 통해 주거환경이 그만큼 개선되기 때문이다. 지연구원이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각종 개발계획이 집값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연구원은 최근의 전세가격 오름세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 초 집값 급등으로 버블 우려까지 나왔지만, 그동안 잠잠하던 전세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이미 올라간 집값을 지지하는 심리적 방어막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 급락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운 셈이다.
지연구원은 보유세 강화 등 세금효과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그는 “12월께 계절적 요인과 겹쳐 집값 하락세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주택 보유자들이 늘어난 세금부담을 생각만큼 크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알짜’ 지역 주택 보유자들은 상당기간 처분을 미루고 버틸 여지도 있다.
하지만 지연구원은 내년 집값 상승률은 대체로 물가상승률 수준에서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집값이 크게 하락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급등할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다. 지연구원은 “인기 지역도 4~5% 상승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부동산세 강화, 실거래가 과세 등으로 과거처럼 투기수요 급증이 쉽지 않고, 은행권도 주택담보대출에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skjang@kbizweek.com
김성일 서울 대치동 토마토공인 사장‘내년 호재 많아 상승기류 탈 것’“강남사람들은 더 이상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책과 반대로 가면 돈을 번다고 생각하죠. 결국 시장의 불신을 어떻게 회복시키느냐가 부동산 정책의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서울 대치동에서 3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LBA센트레빌 토마토공인 김성일 사장은 집값 불안의 원인을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에서 찾았다.
그는 “그동안 정부 말만 믿고 매수를 주저하던 투자자들이 대거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집값 상승이 촉발됐다”면서 “집 사기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서둘러 매입하자는 무주택자들의 생각이 주택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남 집값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의 경우 9월 말 8억5,00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추석연휴가 지나면서 10억~11억원대로 급상승했다.
김 사장은 8·31, 3·31대책에 대해서도 “거래만을 위축시켰을 뿐 가격 하락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강남권은 심리적인 가격 지지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2~3년 전 수준으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마냥 떨어질 바에는 아예 팔지 않겠다’는 기류가 강남권 전반에 흐르고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신도시 개발도 따지고 보면 수급불안이 집값 불안의 원인이라는 것을 정부가 인정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래서인지 강남 주민들은 수급불안이 계속되면 언젠가 재건축 규제가 풀릴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양도세, 보유세 중과세 등은 매수의지를 꺾는 데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되레 가중된 세금은 매매, 전셋값으로 전이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때문에 김사장은 상승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로 그는 △판교신도시 청약 탈락자들의 향배 △저금리 기조 △희소성 등을 꼽았다. 그는 “결국 타이밍과 폭의 문제인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강남권에 대한 희소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서민주택 공급과 강남 집값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분리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내년에는 대통령선거도 있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면서 “규제 위주 주택정책은 한계에 다다른 만큼 공급 확대를 통한 수급 안정으로 정책의 초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남 불패 신화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무작정 틀어잡기 보다는 수요를 유도시킬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alsong@kbizweek.com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대표‘극약 처방 아니면 잡기 힘들어’“극약처방 아니곤 들불을 막을 방법이 없다.”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부동산 정책 카드가 이미 동이 난 상태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집값을 단시간에 잡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의 집값 상승 움직임은 여느 때의 자연스러운 사이클과는 거리가 있음은 물론, 80년대 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단행했던 ‘분양가 동결’과 같은 극약처방 정도가 아니곤 손조차 쓸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는 이야기다.
김사장은 그 원인을 ‘공급대책의 부재’에서 찾았다.
“원래 수요·공급 대책이 함께 제시돼 시장을 균형 있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수요 대응책만 줄기차게 나왔어요. 정부는 투기지역 가수요만 잡으면 부동산 문제가 해결된다고 장담했었죠. 이번 신도시 추가 조성 발표는 그 판단이 잘못됐음을 자인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급대책을 급조한다는 건 불난 데 부채질하는 역할만 할 뿐이에요.”그는 실수요층의 심리적 불안감도 중요한 요인으로 언급했다. 이 역시 수요 억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집값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판교신도시와 은평뉴타운 청약을 준비했던 이들이 나날이 오르는 분양가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사자’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랜기간 고민하다 움직이는 것이어서 쉽게 가라앉기 힘들다고 봤다.
“실수요층의 다급해진 심리를 빨리 달래기는 힘들 겁니다. 무주택자들의 스트레스는 가중될 수밖에 없죠. 결국 정책이 이런 부작용을 만든 겁니다. 후분양제를 통한 분양가 인하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아요. 강제로 내린다 하더라도 입주 후 시세에 반영될 것이라고 보는 쪽이 더 많습니다.”결국 공급이 눈에 띄게 늘기 전까지는 집값 불안이 계속 될 것이란 게 김사장의 의견이다. 그는 특히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시장 전면에 나설 게 아니라 간접 조정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강남권 공급 확대’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인천 검단 등은 수요자가 원하는 입지가 아니다”면서 “강남권 인접 그린벨트를 풀어 분양가 얼마에, 언제까지, 얼마나 공급하겠다고 명료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문제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강남을 원하는 수요가 갈 수 있는 곳에 신도시를 마련해야 집값 안정은 물론 강남 가격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sjpark@kbizweek.com김경철 동부건설 주택사업부 상무‘재건축 규제가 도미노 상승 불러’재건축·재개발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김경철 동부건설 상무는 최근의 집값 급등 현상이 “강남 재건축 규제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애초 강남권 공급 확대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함에도 재건축 수요를 ‘가수요, 투기수요’라 규정하고 오히려 집중 규제한 탓에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강남발 집값 상승’이 판교신도시를 찍고 분당, 용인을 돌아 강북에까지 이르렀다는 게 김상무의 설명이다.
“강남 집값이 평당 3,000만원이 넘어서고 판교신도시 분양 전후해 분당, 용인 집값이 평당 2,000만원에 육박하게 되니 상대적으로 강북 집값이 싸게 느껴지지요. 아무리 강북이라고 해도 경기도보다 집값이 싼 게 말이 되냐는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강남 집값 역시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오르니, ‘고평가’가 아니라 ‘정상가’라고 보는 쪽이 많아졌어요. 강북 집값이 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강남 재건축을 억압해 가격이 오르고, 결국 그렇게 형성된 가격이 기준이 돼 서울 수도권 전역으로 퍼지는 양상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가격이나 선호도 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던 강북 중소형 아파트들은 신도시 낙첨자와 쌍춘년 전세 수요까지 더해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김상무는 이슈가 되고 있는 분양가에 대해서는 “땅값이 많이 오르는 데 상승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2년 전만 하더라도 강북에서 평당 1,000만원 넘는 땅이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뉴타운, 재정비촉진지구 등으로 평당 2,000만원에 육박하는 땅이 수두룩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선 토지 매입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 분양가를 낮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분양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게 땅값입니다. 은평뉴타운 분양가가 생각보다 높게 책정된 것도 강북 땅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실수요자들도 빨리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이고요. 그동안 정부정책을 믿고 집 살 시기를 기다린 수요가 적지 않았지만 땅값 오름세에 고분양가 논란을 보면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김상무는 이런 환경 변화 때문에 집값 강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중대형 평형을 많이 지으면서 상대적으로 중소형이 부족해진 점을 감안, 강북 중소형의 강세를 내다봤다.
반면 지방 분양시장에 대해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은 아직까지 공급과잉 여파로 미분양, 중도금 연체 등이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 “건설사 입장에선 진퇴양난의 상태”라고 밝혔다.
sjpark@kbizweek.com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공급가격 인하로 안정유도해야’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주택시장 불안요인을 저금리 기조와 택지지구 아파트 분양가 때문으로 진단했다.
“물론 강남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도 금리를 6%대로 올린 뒤에야 부동산시장이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놓고 정부 정책의 성공, 실패를 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그러면서도 그는 수도권 택지지구에서 분양된 아파트들의 분양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주택시장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판교신도시 2차분이 평당 1,800만원에 분양됐고 은평뉴타운도 당초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분양가가 결정됐습니다. 물론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자 후분양제를 전격 도입했지만 수도권과 강북의 집값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호재였습니다.”지금까지는 수요공급 불안에 따른 강남발 집값상승이 전반적인 분위기였다면 이번 상승기조는 비강남권에서 촉발시킨 것이 차이라는 것이다.
김소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잠실5단지 용도지구 전환 발언과 같이 지자체와 중앙정부간 정책 조율 실패가 시장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지역 실정과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총량 계획은 국지적으로 과잉공급, 과소공급의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주택시장을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선 공급확대보다 공급단가 인하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이 사업자 역할 비중을 줄이고 시장조정자나 위기관리자 역할 비중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100만호를 건설할 계획인 국민임대주택 사업도 점검해 실효성과 앞으로의 추진 계획을 다시 설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이밖에도 김소장은 △상향식 주택정책 체계로의 전환 △중장기 개발 계획 수립 △도시 개발사업에 민간 참여를 대폭 확대시키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다발적인 택지개발사업은 개발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주택이 활황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대선 등 호재도 있지만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과 국내수출 위축, 북핵위기 등 거시경제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 만큼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습니다.”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