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골집 ◇
'늘 정해 놓고 가는 집'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민속신앙은 전통적으로 귀신이나 자연물을 섬기는 샤머니즘이었다. 이런 무속신앙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미신이라 하여 많은 배척을 받았으나 아직도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지금도 동네마다 대나무에 깃발을 꽂아 놓은 집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무당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표시이다.
옛날에는 가족 중에 병이 들거나 집안에 재앙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굿을 하는 것을 푸닥거리라고 하며, 병이나 재앙의 원인이 되는 살(煞)을 푼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푸닥거리라는 말은 무당이 벌이는 굿이 매우 요란하다 하여 흔히 시끄럽게 법석을 피운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리고 굿을 할 때마다 늘 정해놓고 불러다 쓰는 무당을 단골(당골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했다.
여기서 지금의 단골 손님이나 단골집이니 하는 말들이 비롯했다. 단골은 이 밖에도 호남 지방에서 특히 세습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박일환-
담배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을 때, 쿠바에서 토인들이 피우는 것을 발견한 데서부터 유럽으로 전래되었다고 보통 말하여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 유럽에서 피웠다고 이설(異說)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인류학자 중엔 아시아에서 미국 대륙 쪽으로 전파되었던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영어로 담배를 tabacco(터배코)라 하는데, 가까운 일본에서도 '다바코)'라고 한다. 그 어원에 대해 서인도 제도의 섬 가운데 '타바고(Tabago)'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산토 도밍고 토인이 흡연에 사용하는 담뱃대를 '토바코'라 한 데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멕시코 원주민들의 토어(土語)에서 왔다는 말도 있다.
담배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인조실록」에 나온다. 거기에 "담배는 서기 1616~1617년에 바다를 건너 들어와 이를 복용하는 자가 간혹 있었으나 그다지 성행하진 않더니 1621~1622년에 이르러서는 복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쓰여 있다.
지봉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담바고는 남령초라 하는데 근년에 일본에서 온 것이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장유의 「계곡만필」에는 "담배 피우는 법은 본디 일본에서 온 것이니, 일본 사람은 이를 '담박괴'라 한다."라 하였으며, 전래 민요에는 '담바구'라는 표기도 보인다.
결국 담배는 '토바코'가 일본의 '다바코'를 거치고 그것이 우리 나라로 건너오는 사이 '담바구' 같은 것으로 와전되어 '담배'로 된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민간 어원론적으로는 '단 방구'라는 데서, 즉 '달콤한 방구 같다'는 데서 왔다는 말도 있지만, 역시 어디까지나 민간에서의 얘기일 뿐, '담바구'의 음절이 줄어들면서 '담배'로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출처:<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박갑천-
"대머리"는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대"에는 또 무슨 뜻이 있을까?
"대머리"라 않고 "민머리"라 할 때는 그런 대로 뜻을 알 만해진다. 한자로 "禿山"(독산)이라고 하는 훌러덩 벗겨진 산이 "민둥산"이며(한자의 "禿"자는 "秀"자와 궤를 같이한다!), 여자의 화장하지 않은 소안(素顔)이 "민낯"인 것과 같이, "민"은 본디 앞가지(接頭辭)로서, 아무런 꾸밈새나 덧붙어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대가리"·"민머리"같은 것이 대머리의 뜻으로 됨은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젠 "민머리"쪽은 거의 쓰이고 있지 않은 말이고 "대머리"쪽이 강세(强勢)다(사실은 "민머리"란 말 속에는 벼슬을 못한, 즉 감투를 써 보지 못한 머리라는 뜻도 있었다). "대머리"는 "머리"의 낮춤말인 "대갈머리"쪽에서부터 온 것이나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있긴 하다. "身體髮膚 受之父母"(신체발부 수지부모:몸과 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의 사상에 젖어 있을 때만 해도, 아무리 인공(人工)이 가해지지 않은 현상으로서의 대머리일지언정,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와는 달라져 버린 그 벗어진 현상이 "불효"(不孝)였던 것이요, 그래서 "대갈머리"로 낮춰 쓰다가 된 "대머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이다("대가리"는 중세어에서는 "껍질"이란 뜻이 있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또 한편으로는 "대" 그 자체에서 하나의 뜻을 찾아보는 방향도 있을 것 같다. 크고, 밝고, 드러내 놓는다는 뜻을 지닌 앞가지로서 "대"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없을 것인가 함에서이다. "대낮"이라든지 "대보름", 승부를 마지막으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대매"라는 말 외에도 한번이란 뜻으로 "대번" 할 때의 "대"가 "대머리"의 "대"와 맥을 함께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반드시 그르다 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출처 : <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큰 잔 또는 큰 잔으로 마시는 술'을 가리킨다.
커다란 탄환을 멀리 내쏘는 화기(火器)를 뜻하는 대포에서 크다는 뜻을 빌려와서 다른 뜻으로 쓰게 된 것이다. 크다는 것을 강조해서 왕대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관례나 혼인을 하고 나서 동무들에게 한턱 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자가 관례를 치르면 그 동안 땋아서 늘어뜨리고 다니던 머리를 틀어서 상투를 올리게 되고, 혼인을 하면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를 올려 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총각, 처녀가 모두 어른이 되는데, 이 때 땋은 머리를 묶고 있던 댕기를 풀게 된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박일환-
'못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 산골로 돌아다니며 새우젓을 파는 새우젓 장수의 등짐은 반드시 두 개의 젓통으로 되어 있었다. 대개 양철통인데, 그 하나는 다른 하나에 비겨 녹슬고 낡아 있게 마련이다. 그 녹슨 통을 덤통이라 한다. 덤통에 비하여 겉보기에도 나은 통을 알통이라고 불렀다.
알통에 담은 젓갈은 새우가 형태를 지닌 상품이고, 덤통에 담은 젓갈은 새우의 형태가 이지러진 약간의 하품과 젓국물이 듬뿍 들어 있다. 정상적인 거래는 알통젓으로 하고, 덤통젓은 덤으로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돈으로 산 젓갈을 알젓이라 하고, 덤으로 얻은 젓갈을 덤거리라 했다. 이로부터 시원찮고 뼈대없이 구는 사람을 '덤통에서 나온 놈' 또는 '덤거리'라고 빗대어 나타내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박일환-
도깨비의 어원은 박은용의 목도자(木都자)와 돗가비의 합성어가 있다.
목도자(木都자)에 나오는 "두두리(豆豆里)"는 절구질 할 때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농경사회의 방아작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도깨비 내용이 삽입된 방이설화나 도깨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메밀묵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돗가비"설은 "돗+가비"의 합성어로 돗은 『불(火)』이나 『종자(種子)』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고 "아비"는 아버지의 의미로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의 통계로 볼 때 성인 남자로 이해된다. 이들 용어는 돗+가비>도ㅅ가비>도까비>도깨비 와 돗+가비>도ㅅ가비>도비>도채비 이다.
위의 예로보면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도깨비는 『복(福)』을 가져다 주는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토착 신격중에 하나로 전승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도깨비담에서 묘사되고 있는 도깨비의 형체는 대부분이 『도깨비불』로 상징된다. 『도깨비 불』을 본 사람이 많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불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가 있다. 일반적인 불빛은 밝은색인데 도깨비불은 파란불빛을 지니고 있다고 제보자들은 인식하고 있으며 아무런 불의 색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가 둘이 되기도 하고 둘이 하나가 되고 여러개로 분리되거나 합쳐지는 등의 변화를 보아면서 도깨비불의 신비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도깨비와 직접 대면하는 이야기의 경우 형체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특이한 체형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들어 "키가 팔대장 같은 넘",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놈", "장승만한 놈", "팔대상같은 놈"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도깨비는 남성이며 이들은 총각이나 젊은 계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깨비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도깨비의 냄새에 대한 것이다.
흔히 뿔이 두 개 달린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이고 우리 도깨비는 뿔이 달려 있지 않다거니 한 개 뿐이라거니 하는등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 는 실정이다.
*출처 : <한국의 도깨비>
'무덤가에 둘러서 심은 소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래는 원래 소나 염소 따위의 고삐가 자유로이 돌 게 하기 위하여 굴레 또는 목사리와 고삐와의 사이에 단 고리 비슷한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다가 그 모양에 빗대어 둥근 물건의 주위나 둘레를 가리키는 뜻도 함께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무덤을 둘러싸고 둥글 게 늘어 선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같은 이치로 생긴 말 중에 둥근 방석을 뜻하는 도래방석이 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박일환-
'은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선조 임금이 임진왜란을 맞아 피난하던 도중에 처음 보는 생선을 먹었는데 그 맛이 별미였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니 '묵'이라고 하므로, 그 이르이 맛에 비해 너무 보잘 것 없다 하여 그 자리에서 '은어(銀魚)'라고 고치도록 했다.
나중에 궁중에 들어와 '은어' 생각이 나서 다시 청하여 먹었으나 예전과 달리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가 "(은어를) 도로 묵이라고 해라"하고 일렀다고 한다.
이런 유래로 인해 '도로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발음이 변해 '도루묵'이 되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흔히 '말짱 도루묵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라는 뜻의 부사로 쓰이는 말이다.
구한말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고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엄격한 가정의 윤리 도덕을 어그러뜨렸을 때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그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도모지(塗貌紙)'라는 사형(私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자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고 물을묻힌 조선 종이, 즉 창호지를 얼굴에 몇 겹이고 착착 발라 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가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도무지'는 이런 끔찍한 형벌에서 비롯하여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로 '도모지→도무지'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박일환-
'독수리과에 딸린 새'
독수리의 독은 '털 빠진 독(禿)'을 쓴다. 독수리의 생김새는 매나 수리와 비슷하고 뒷머리가 벗거져 살이 비치고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솜털이 있다. 따라서 '머리가 벗어진 수리'라는 뜻으로 만든 말임을 알 수 있다.
돈은 돌고 돈다. 그래서 돈이라 했다던가. 그러나 그 말의 생겨남에서 보자면 "돌고 도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刀-刀環"설이 그것이다.(金柄夏 교수의 논문 「삼국시대의 刀選好 사상」 및 曺秉順 씨의 "돈 이야기"=「동아일보」, 93. 9. 20 등).
그에 의할 때 중국에서는 "刀"가 "錢"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명도전(明刀錢:중국 전국 시대 燕나라에서 사용되던 화폐로서 우리의 고대 무덤에서도 많이 출토됨)이 유통된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刀"자를 꺼리지 않고 왕비의 이름(신라 법 흥왕비는 巴刀, 진흥왕비는 思刀 등)에까지 썼다는 것이다. 그 "刀"가 어느 때부터 "돈"으로 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刀"와 "도환"(刀環)이 혼용되다가 "도환→돈"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도환은 "칼고리"라는 뜻으로서 명도전처럼 고리가 달린 "도전"을 가리키며 나중에 동전의 고리(구멍)로서 그 흔적을 남긴다고도 덧붙이고 있다.
"도전"은 생긴 모습이 칼과 같기 때문에 그 이름이 생겼다(漢書 : 食貨志下). 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명도전도 바로 그 칼 모양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전", "도환" 외에 도포(刀布)라고도 했다. "刀"는 물론 돈의 꼴이 칼과 같아서였지만 "布"는 그 옛 글자의 꼴이 칼과 같아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하에 "분포"(分布)되어 유행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렸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 할 때 이 "도포"의 "布"는 "돌고 도는 돈"이라는 이름의 원류를 생각게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기문(記文)·출토지·모양 등에 따라 이름도 여러 가지인데 "刀"라는 돈 이름에 삼자도(三字刀)네 안양도(安陽刀)네 하는 것이 있듯이 "布"라는 돈 이름에도 안양포(安陽布)·평양포(平陽布)…… 하는 것들이 있다. 「관자」(管子) 등에 의할 때 주옥(珠玉)을 상폐(上弊), 황금을 중폐(中幣)라고 하는 데 비해 "도포"는 하폐(下幣)로 치고 있다.
지룡(地龍)에서 "지렁이"라는 말이 나왔고 백채(白寀)에서 "배추"라는 말이 나왔듯이 돈 또한 도환(刀環)에서 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돈의 생태로 보자면 역시 돌고 도는 돈에서 왔다는 쪽이 더 그럴싸해진다.
*출처 : <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을 뜻한다.
아는 것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일정한 주소가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자신의 기술이나 물건을 파는 것을 '돌팔이(돌다+팔다)'라 했다. 돌팔이 무당, 돌팔이 의사, 돌팔이 장님 등의 말이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 않는데 '돌팔이'가 쓰인 예로 '돌팔이 글방'이란 것이 있다. 조그만 아이들을 모아 자격도 별로 없는 사람이 가르치는 글방을 말하며, 본디는 '돈팔이 글방'이었다고 한다. '돈팔이'란 학문이나 기술을 본분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사실은 '돈벌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유에서 '돌팔이'는 가짜나 엉터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거지가 돈이나 물건을 구걸하는 일'을 뜻한다.
한자말인 동령(動鈴)에서 온 말이다. 원래 불가에서 법요(法要)를 행할 때 놋쇠로 만든 방울인 요령을 흔드는데 이것을 동령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중이 쌀 같은 것을 얻으려고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며 문전에서 방울을 흔들기도 했다. 지금은 방울대신 목탁을 두드리지만 동냥이라는 말은 이렇듯 중이 집집마다 곡식을 얻으러 다니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한편 '가을 중 싸대 듯'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가을이 되면 농민들이 곡식을 수확하게 되고, 그러면 중들은 때맞춰 시주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는 데서,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 되었다. 동냥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동냥아치'라고 부른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동동주'는 '동두+주'에서 온 말이다. 17세기말에 간행된 <역어유해>에 의하면 주자(술을 짜 내거나 거르는 틀)에서 갓 떠낸 술을 '고조목술'이라 했는데, 이를 한자어로 '동두주(銅頭酒)'라 하였다. 그런데 '고조목술'은 없어지고, 한자어인 '동두주'가 음운변화를 겪어서 오늘날 '동동주'가 된 것이다.
'잘못 건드려 스스로 재앙을 사다'는 뜻이다.
원래 흙이나 나무를 잘못 다루다가 지신(地神), 목신(木神)의 노여움을 입어 재앙을 당한다는 뜻의 민속 용어였던 것이 일반적인 뜻으로 확대되었다. 동티는 동토(動土)라는 한자말이 변해서 된 말이다.
'분에 넘치는 엉뚱한 희망을 가짐, 또는 자기보다 썩 나은 사람과 혼인하려다 실패하고 마침내 비슷한 사람끼리 혼인을 하게 됨'이라는 뜻의 말이다.
『순오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두더지가 혼인을 하려고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하늘에게 청혼하자 하늘은 일월(日月)이 없으면 내 덕을 나타냄이 없으리라 했다. 일월에게 가 구하니 일월은 또 구름이 나를 가리니 구름이 내 위에 있다 하였다. 구름에게 가 구했더니 구름은 바람이 있어 나를 흩어지게 하니 바람이 내 위에 있다 하였다. 바람에게 갔더니 구름은 흩어지게 할 수 있으나 밭 가운데에 있는 돌부처만은 넘어뜨리지 못한다 하였다.
석불에게 가 구하니 석불은 말하기를 내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나 오직 두더지가 내 발을 뚫으면 내가 넘어지기 때문에 그가 나보다 나으리라 했다. 이에 두더지가 이르기를 천하에 높은 것이 나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고 같은 두더지에게 청혼을 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두더지 혼인'이라는 말이 생겼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줄을 길 게 달아 우물 물을 긷는 기구'이다.
낮은 곳에 있는 물을 언덕진 높은 곳의 논이나 밭에 퍼붓는 기구를 두레라고 한다. 가벼운 오동나무와 그 밖의 나무로 위는 넓게 퍼지고 밑바닥은 몹시 좁게 네 귀퉁이를 만들어 네 귀퉁이 위쪽에 줄을 매달고는 양쪽에서 노 젓는 것처럼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물을 품는다. 두레박은 바로 이 '두레'와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줄을 달아 맨 것을 두레박이라고 하며, 대나 나무로 긴 자루를 해 단 것을 타래박이라고 한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다섯 손가락을 가리키는 곁말'이다.
젓가락 한 쌍을 '매'라고 한다. 그래서 젓가락 두 매와 한 짝을 합치면 다섯이 된다. 옛날에 흔히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던 버릇으로부터 손가락과 젓가락을 서로 용도의 유사성에 빗대어 재미있게 나타낸 곁말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겉으로는 어리석은 체하면서도 남 몰래 엉큼한 짓을 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매우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이 선비는 글공부에만 매달리고 살림은 오로지 아내가 맡아서 꾸려 나갔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이들 부부는 훗날을 바라보며 가난의 어려움을 이겨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선비가 밖에 나갔다 돌아와서 방문을 열자 아내가 무언가를 입에 넣으려다가 황급히 엉덩이 뒤쪽으로 감추는 것이 보였다. 선비는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음식을 감춰 두고 혼자 먹고 있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면서 엉덩이 뒤로 감춘 것이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당황한 아내는 호박씨가 하나 떨어져 있기에 그것이라도 까먹으려고 집어서 입에 넣다 보니까 빈 쭉정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눈물과 함께 용서를 구하고, 선비는 그런 아내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함께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이야기로부터 남 몰래 엉큼한 일을 하는 것을 일러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고 하게 되었다. 이야기 자체는 눈물 겨운 내용을 담고 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야기의 내용과 거기에서 비롯된 말이 따로 떨어져 쓰이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들키다'의 뜻이다.
들통은 옆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쇠붙이나 또는 법랑으로 만든 그릇을 말한다. 들통을 들어내면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드러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등신은 한자말 그대로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신상(神像)을 말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는 귀신과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광목이 처음 나타났을 때, 너무 넓어서 "이건 사람이 못 짜, 등신이 짜지"라고 하시던 기억이 난다. - 문익환 『죽음을 살자』202쪽). 그러다가 차차 어리석고 줏대 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딴따라" 또는 "딴따라패" 같은 말이 사전에는 올라 있는 것 같지 않다(근자에 나온 일부 사전에는 올라 있음). 가령, "(대중) 음악인을 낮추어 일컫는 말" 같은 풀이를 달고서 사전의 한 줄을 차지할 만한 것 같은데 없다. 없는 건 없는 거고, 벌써 "딴따라"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중 음악쪽이다.
그런데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딴따라패" 하면 남의 깃대잡이 노릇 하는 사람까지 일컫게 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남의 행렬 앞장서서 삐빼거리면서 불고 치고 하는 축이라는 데서인지도 모른다.
"자네 아직도 딴따라팬가?"
악단에서 아직 나팔 부느냐는 물음은, 이와 같은 말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보통 아는 말에는 "풍각쟁이" 라는 것이 있다.일제 시대만 해도, 시골에 서커스단이 들어와, 예고하느라고 시내를 누비며 치고 불고 다닐 때, 갓 쓴 영감네들이 하는 소리는, "그 풍각쟁이 꽤나 구성지군그래!"였다. 본디, "풍각쟁이"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바탕 치고 불고 한 끝에 돈을 구걸하던 축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것이 나중에 이르러서는, 음악인 일반을 낮추어 일컬을 때에 쓰이게 되었다. 하기야 음악인이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터이니까, 풍각쟁이 그 말로써 어쩌면 업신여기는 뜻을 곁들이면서 썼던 것이리라. 그 "풍각쟁이"가 "딴따라"라는 신식말로 바뀐 것이다. "딴따라"는 서양말에서 온 것 같기도 하다.
영어의 tantara(탠태러)는 소리시늉말(擬聲語)이다. 나팔이나 피리소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또 그와 비슷하게 taratantara(태러탠태러)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 발음 기호대로 읽을 때 전자가 "탠태러"이고, 후자가 "태러탠태러"로 된다. 하지만, 우리말이 일제의 통치를 겪는 사이에 그들의 말을 통하여 심어진 것이 특히 외래어의 경우 많다고 할 것 같으면, 이 tantara와 taratantara도 그들이 그들 표준으로 발음하면서 악기의 소리를 나타낸다는 뜻에서 음악인을 가리키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 쓰기 시작한 것이므로 반드시 그 발음 기호대로 발음하는 것은 아니다.
아닌게아니라, tantara와 taratantara는 일본말로 외래어 표기를 할 경우, 지금 우리가 쓰는 "딴따라"에 비슷한 소리로 된다. 그래서 말인데, 가사 없이 곡으로만 부를 때 내는 소리 "딴따라딴……" 따위도, 근본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은상(李殷相) 작시(作詩)의 "성불사(成佛寺)의 밤"에는 "뎅그렁 울릴 제면 또 울릴까 맘졸이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노랫말과 같이 종소리의 경우 "뎅그렁" 또는 "댕그렁"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 선인들이 악기의 소리를 나타내는 데 있어 "딴따라" 비슷한 말을 쓴 것 같지 않다. 가령 "딩동뎅동……"은 가야금이었고, 피리소리는 "삐빼삐빼", 나팔소리는 "때때"·"따따", 북소리는 "둥둥" 같은 것이나 아니었던가. "딴따라"는 역시 코큰이 쪽의 말에 시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시늉소리(擬聲語)가 소리의 주인을 가리키게 발전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 이설(異說)이 제기될 여지는 있다지만, 우리말에서라면 "쓰르르쓰르르" 우는 쓰르라미에, "개골개골" 우는 개구리 따위를 예로 들어 볼 수도 있겠다.
*출처 : <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뜻밖에 큰 수나 행운이 생김'의 뜻이다.
골패(骨牌)나 투전(鬪錢) 따위의 노름에서 같은 패를 잡는 것을 '땡' 또는 '땡땡구리'라고 하며, 이럴 경우 상당히 높은 끗수에 해당하여 대개 상대방을 크게 이긴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어떤 일을 하는 데 충분한 정도가 되다'라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흔히 "그 집은 술값이 싸서 세 명이 만원이면 떡을 쳐"와 같은 말을 주고 받는다. 여기서 '떡을 친다'는 말은 원래 장사꾼이나 공사판 인부들이 은어 비슷하게 쓰던 말이다.
이 말은 어떤 일을 꾸미기 위해 생각이 맞는 사람끼리 서로 작당을 하는 것을 뜻하는 담합(談合)이라는 말과 고물 등을 묻힌 작은 떡을 뜻하는 단자(團子)의 일본식 발음이 서로 비슷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끼리 담합을 하면 웬만한 일은 쉽게 성사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떡을 친다는 말이 담합한다는 뜻을 지니게 되고, 담합을 하면 일이 쉽게 성사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입을 막으려고 나눠 주는 돈을 떡값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까닭에서 나온 말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 사전>
옛날 조선시대엔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꿰는 작은 고리, 즉 관자를 가지고 관직이나 계급을 표시했는데, 정3품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가진 사람(당상)은 금이나 옥으로 만든 관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당상 벼슬을 하는 사람의 망건에 있던 옥관자나 금관자도 당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떼 놓은 옥관자, 금관자는 좀이 먹거나 색이 변할 리 없고, 어디로 달아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염려가 없음"을 가리켜 "떼 놓은 당상"이라고 한답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아내'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 말에는 남성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여럿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말도 그 사람이 혼인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벼슬을 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가 부르는지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칭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를 지칭할 때, `남정네, 남진, 남편, 사나이, 총각` 등이 있고, 여자를 지칭할 때에는 `아내, 여편네, 마누라, 집사람, 계집, 부인, 처녀` 등 꽤나 많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는 대개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들을 아시는 분이 많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는 지금은 그 표기법도 달라져서 그 뜻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해`였지요. `안`은 `밖`의 반의어이고, `-해`는 `사람이나 물건을 말할 때 쓰이던 접미사`입니다. 그래서 그 뜻이 `안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안사람`이란 말을 쓰고 있지 않던 가요? 거기에 비해서 남자는 `바깥 사람, 바깥분, 바깥양반` 등으로 쓰이고요. `부부``를 `내외`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주지요.
`여편네`는 한자어이지요.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께서 혹시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가 아니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즉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의 설교에서 그렇게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자를 뜻하는 `남편`은 도저히 그 뜻을 해석할 수 없지요. `여편네`와 `남편`은 서로 대립되는 말입니다.
`마누라`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그것도 같은 지위나 연령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아내를 지칭할 때나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 하고 부를 때나,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예를 들면 `주인 마누라` 등) 쓰이고 있습니다.
원래 `마누라`는 `마노라`로 쓰이었는데, `노비가 상전을 부르는 칭호`로, 또는 `임금이나 왕후에게 대한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 선왕 마노라'처럼 마마와 혼용되어 쓰이던 극존칭어였습니다. 그러니까 높일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그리고 부르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지위가 낮은 사람이 그 웃사람을 `마누라`라고 부르거나 대통령이나 그 부인을 `마누라`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큰 싸움이 나거나 국가원수 모독죄로 붙잡혀 갈 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아내의 호칭으로 변화하였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조선왕조가 쇠퇴하면서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할 무렵, 늙은 부인 또는아내를 가리키는 낮춤말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남편을 `영감`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요. 원래 `영감`은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판사나 검사를 특히 `영감님`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원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남편보다도 아내를 더 높여서 불렀던 보양이지요? 남자는 기껏해야 `정삼품`으로 생각했는데, 아내는 `왕이나 왕비`로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해서 `마누라`와 `영감`은 대립어가 된 것입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마땅하다`는 "잘 어울리다, 알맞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따위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그 어감이 꼭 우리 고유어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이 단어에 한자가 있다고 한다면,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원래 `맛당하다`로 또는 `맛당하다`로 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맞다`의 어간 `맞-`에다가 이 `맞다`와 같은 뜻을 가진 한자 `당(마땅 당)`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우리 고유어에다가 같은 뜻을 가진 한자를 붙여서 만든 단어이지요.
이처럼 우리 고유어에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는 꽤나 있습니다. `굳건하다, 튼실하다, 익숙하다`등이 그러한 예들입니다.
`굳건하다`는 고유어인 `굳다`의 어간 `굳-`에 한자 `건`(굳셀 건)이 합쳐진 단어이고요, `튼실하다`는 `튼튼하다`의 `튼`에 한자 `실`(열매 실)이 합쳐져서 된 말이지요. 그리고 `익숙하다`도 `익다`의 `익-`에 한자 `숙`(익을 숙)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렇게 고유어에 고유어가 뜻을 같이 하는 한자가 붙어서 된 단어를 우리는 동의 중복으로 된 복합어라고 합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두창(痘瘡)' 전염성이 강하다는 뜻에서 이르는 말이다.
마마라는 말은 왕을 일컬을 때 상감마마라고 하는 것처럼 최상의 존칭어이다. 그런데 이런 명칭을 두창이라는 질병에 붙인 것은 병을 옮기는 신에게 높임말을 씀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덜자는 주술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천연두를 '손님', 홍역을 '작은 손님' 등으로 부르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손님이라는 표현에는 질병을 높여 부르는 동시에, 질병을 옮기는 신이 손님처럼 돌아다니는 뜻이 포함되어있다.
이렇게 전여성이 강한 까닭에 '별성마마', '손님마마' 또는 '역신마마'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줄어서 그냥 마마가 된 것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성질이 못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에 죄 지은 사람의 목을 베는 사람을 망나니라고 불렀으며, 주로 중죄인 중에서 뽑아 썼다. 따라서 망나니는 으레 성질이 포악하고 인상이 험악한 삶이 그 구실을 담당하게 마련이었다.
이런 연유에서 생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망나니가 지금은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그 의미가 변하였다. 아울러 말이나 행동을 막되게 하는 것을 '망나니 짓'이라고 하기도 한다.
망나니의 어원은 '막 + 낳은 + 이'로 풀이할 수 있다. '막'은 '막되다'라는 뜻도 있고, '끝'이라는 뜻도 있다. 막되게 낳은 아이란 뜻에서 '망나니'가 갈라져 나왔다면 막둥이로 낳은 아이란 뜻에서는 '막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흔히 막내둥이가 망나니처럼 버릇없이 구는 것으로 보아서도 두 낱말의 어원이 같은 말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우리가 옷깃을 여미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고 할 때 쓰는 '매무새'라고 한다. 우리는 옷차림이나 맵시를 그냥 '매'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다른 명사에 붙은 접미사로 맵시나 생김새를 뜻하기도 한다.
'매무새'라는 말은 끈을 '맨다'는 뜻의 어근 '매'와 다발로 묶는다는 뜻의 어근 '뭇'이 결합할 때에
명사화 접미사가 결합하여 '매(結)+뭇(束)+애(接尾)>매무새'또는 '매+뭇+이>매무새'라는 어형을 이룬 것이다.
'바보, 멍청이'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마음이 검어서 챙겨서는 안 될 재물을 마구잡이로 챙기는 사람을 이르는 곁말이기도 하다.
목재, 석재 등을 자르거나 다듬기 위해 줄을 긋는 데 쓰는 도구로서 먹통이라는 것이 있다. 나무를 후벼 파서 두 개의 그릇 모양으로 만들고, 한 쪽엔 먹물에 적신 솜을 넣어 두고 다른 한 쪽엔 먹줄을 감아 놓아 그 줄이 먹그릇을 통해서 나오도록 되어 있다.
먹통이 지니고 있는 '까맣다'라는 이미지를 빌려다가 주로 말이 안 통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경멸할 때 쓴다. 또 한 가지 뜻은 사람의 마음이 검어서 남의 재물을 마구 챙기는 사람을 먹통이라고도 한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멍청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멍텅구리는 본디 바닷물고기 이름인데, 못생긴 데다가 굼뜨고 동작이 느려서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할 줄 모르기 때문에 판단력이 약하고 시비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지휘하여 일을 시키다'는 뜻이다.
목대는 멍에 양쪽 끝 구멍에 꿰어 소의 목 양쪽에 거는 가는 나무를 말하며, 아래는 어긋맞게 가슴걸이로 맨다. 목대를 잡고 소를 부리듯이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목대 잡아 일을 시키는 사람을 '목대잡이'라고 부른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공작새 깃털에 있는 '눈 모양의 과녁'을 가리켜 생긴 말이다
'언행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못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짐승의 한 태(胎)에서 나온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맨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한다. 무녀리는 비로소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의 '문열이(門+열+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제일 먼저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유난히 비실비실하고 몸이 허약하다고 한다. 이에 빗대어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사람을 목 뒤로 올려 태우다'의 뜻이다.
농악에서 여자 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사람 어깨 위에 올라 서서 아랫사람이 춤추는 대로 따라 추는 놀이가 있었는데, 이 때 어깨 위에 올라선 아이를 '무동(貿童)'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 태우는 것을 '무동 태우다'라고 하게 되었다.
같은 뜻을 지닌 순 우리말로는 목 뒤로 말을 태우듯이 한다고 해서 생겨난 '목말 태우다'라는 말이 있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치마 속에 입는 짤막한 통치마'를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이 명절이나 잔치 그 밖의 예절 때에 주로 입는 옷으로 1,3,5,7의 홀수로 입는데, 이 수에 따라 삼합(三合) 무지기, 오합 무지기, 칠합 무지기, 연봉 무지기의 이름이 붙는다. 끝을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이며, 가장 긴 것이 무릎 아래에 이르고 차차 짧아지므로 다 입으면 무지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버들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를 뜻한다.
미루나무는 북미 원산으로 강변이나 밭둑 또는 촌락 부근에 풍치목으로 많이 심는 나무이다. 유럽 원산인 포플러와 비슷하나 그것에 비해 어린 가지에 날개줄이 있는 게 다르며, 가지도 다소 옆으로 퍼지며 자란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잎은 거의 세모진 알모양이고 가에 둔한 톱니가 있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며, 용도는 젓가락, 성냥개비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버들이라는 뜻엣 '미류(美柳)나무'라 했던 것이 차차 '미루나무'라는 발음이 일반화됨으로써 표준어 사정에서 '미류나무' 대신 '미루나무'로 바뀌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은하수'를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미리'는 옛말 "미르"에서 온 말인데, 용이란 뜻이다. "내"는 개울이나 시내를 뜻하고. 미리내는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하늘로 올라간 용이 살 만한 곳은 은하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은하수가 마치 강이나 시내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은하수를 "용이 사는 시내" 곧 미리내라고 부른 것이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요즈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미끄러져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원래는 미역국은 애기를 낳은 산모가 먹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해서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을까요? 아직까지 이 말의 원래 뜻은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있습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말은 원래 취직자리에서 떨어졌을 때를 속되게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도 유래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우리나라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그 "해산"(解散)이란 말이 아이를 낳는다는 "해산"(解産)과 말소리가 같아서, 해산(解産)할 때에 미역국을 먹는 풍속과 관련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은 "해산"(解散)당했다는 말의 은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취직자리가 떨어진 것과 시험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미역국을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출처 : <우리말 이야기>
꼬치꼬치 캐는 것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캔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조금쯤 끈질기고도 치밀한 느낌이 곁들여 있다. 하여간 뿌리를 캐도, 잔뿌리까지 깡그리 캐 버린다는 생각이다. 본디 '미주알'은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따라서 속 창자까지 살펴볼 정도로 꼬치꼬치 따지고 든다는 뜻이며, 고주알은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하여 덧붙인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무 뜻도 없는 말을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인 말에 '세월아 네월아'같은 말이 있다.
그런데 이 고주알에 대해서는, '고조(高祖)알->고주알'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곧, 고조할아비까지 캔다는 생각에서였으리라.
'앞으로 며느리 삼으려고 민머리인 채로 데려다가 기르는 계집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에 시집 안 간 처녀를 미리 데려다 기르며 일을 시키고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며느리를 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것을 '민며느리'라고 한다.
'민'이란 아무 꾸밈새나 덧붙여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접두어이다. 그리고 민며느리라고 하면 '민머리'인 채로 데려 온 처녀를 말한다. 민머리는 쪽을지지 아니한 머리를 뜻하므로 시집 안 간 처녀를 이르는 말이다.
*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잔소리를 늘어 놓다'는 뜻이다.
옛날에 쥐통(괴질-콜레라)이 돌아다닐 때에 귀신을 쫓는다 하여 바가지를 득득 문지르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듣기 싫다는 공통성으로 인해 흔히 아내가 남편에게 경제적 불평 따위를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손해 보다, 피해를 당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개화기 이후에 중국에서 '십인계(十人계)라는 놀음이 들어왔다. 이 놀음은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엎어 놓는다. 그리고 물주가 어느 수를 대면 그 수가 적힌 바가지에 돈을 댄 사람은 못 맞춘 사람의 돈을 모두 가지며, 손님이 못 맞출 때에는 물주가 다 가지게 된다.
이렇게 바가지에 적힌 수를 맞추지 못할 때에는 돈을 잃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을 '바가지 썼다'고 하게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우리 나라에 바둑이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라고 생각된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高句麗傳)의 "바둑과 투호(投壺) 놀이를 즐긴다"라는 기록이 있다. 「후주서」(後周書) 백제전(百濟傳)의 "투호·저포(樗蒲) 따위 놀이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바둑을 즐긴다"같은 기록들이 그를 말해 준다. 그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백제와 교류가 있은 뒤, 즉 삼국 시대 중기 이후가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바둑을 "奕"(혁)으로도 썼으나, 그것은 양자강(揚子江) 부근의 방언이었을 뿐 원래는 "위기"(圍棋)라고 썼던 것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排子"(배자)라는 글자로써 "바둑"을 나타냈다. "배자"는 화점 포석을 뜻하는데,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우리 고유의 포석 방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여기서의 "子"는 "돌" 또는 "독"의 뜻을 가졌고 거기에 "排"를 합치면 "배돌"·"배독"이 도는 것인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배돌→바돌→바독→바둑"같이 되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排子"라는 표기 시절에 벌써 "圍棋"라는 중국 표기에 대해 우리는 "배돌"같이 실제의 언어 생활을 했고 그 말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排子"라 썼다고 거꾸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법하다.
*출처:<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일을 돌봐 주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라지'는 원래 불교 용어로 절에서 영혼을 위하여 시식할 때에 시식법사가 앉아서 경문을 읽으면 그 다음의 경문을 받아서 읽는 사람 또는 그 시식을 거들어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무속에서는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등지의 무당 노래에서 으뜸 무당이 부르는 노래 사이사이에 뜻 없는 말로 받는 소리를 일컬어 바라지라고 하기도 한다.
그 후 바라지가 일상용어로 자리잡게 되면서 뒤에서 일을 돌봐 준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런 뜻에서 자식 바라지, 옥바라지, 뒷바라지 등의 말이 생기게 되었다.
#시식(施食) - 부모나 그 밖의 외로운 혼령을 위해 음식을 올리며 경전을 읽는 일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남에게 속거나 약속이 어그러지다'의 뜻이다.
'바람맞다'는 말은 원래 중풍에 걸린다는 뜻이며, 지금도 그렇게 많이 쓰고 있다. 한자어 중풍(中風)의 풍(風)이 바로 바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풍에 걸리면 사람의 육신이 마비되면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데서, 남으로부터 속거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했을 때의 손해나 허탈감을 중풍에 연결시켜서 '바람맞았다'고 하게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밥+보'에서 'ㅂ'이 탈락된 형태이다.
'보'는 울보, 겁보, 느림보와 같이 체언이나 어간의 끝에 붙어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바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여 현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나 멍청이를 가리키게 되었다.
같은 이치로 '밥통'이라는 속된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다른 견해도 있다.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를 '팔삭이'라고 하는데, '팔삭이→바시기→바(약칭)'으로 변화되어, '바'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보'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라고도 한다.
'양념하지 않고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자는 관청의 종을 말하며, 상전을 기다리면서 밖에서 고기 한 조각을 얻어 즉석에서 구워 먹은 데서 비롯한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썩 좋은 놋쇠를 부어 만든 좋은 그릇'을 가리키는 말이다.
품질이 좋은 놋쇠를 부어 낸 다음 다시 두드려서 만든 놋그릇을 흔히 방짜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져 나오는 그릇마다 밑바닥에 '방(方)'자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는 표시인 셈이다.
지금은 놋그릇을 뜻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확대되어 '매우 알차고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도둑 행세를 하거나 그런 근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있다. 지금은 산허리를 깎아 도로 포장을 하는 바람에 경사가 완만해지고 길 좌우에는 집들이 늘어서서 고개다운 느낌을 그다지 주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제법 험한 고갯길이었는데 여기를 버티고개라고 불렀다. 이 버티고개는 말죽거리를 거쳐 나룻배를 타고 서울로 들어서거나 반대로 남향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을 했다. 그런데 예전에 이 고개에는 행인들의 노자와 물건을 노리는 도둑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버티고개에 가 앉을 놈' 또는 '버티고개에 집 짓고 살 놈'이라고 하면 도둑 행세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갈마들어서'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관청 등을 지키거나 하는 일을 '번 선다' 또는 '번 든다'고 하였다. 지금의 숙직과 같은 제도하고 하겠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서로 교대도 해가며 번을 서곤 하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번번이(番番-)도 같은 이치에서 생겨난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중고품 노점시장. 원래는 프랑스 등 유럽 몇몇 군데에서 열리는 중고품 노점시장을 일컬었으나, 지금은 「만물시장」「개미시장」등 우리나라 전통 고물시장의 이름을 밀어내고 보통명사로 정차고딘 말이다. 프랑스어「마르쇼 퓌스(marchaux puces)」의 번역어다. 「marchaux」는 '시장', 「puces」는 '벼룩'의 뜻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시장의 이름에 하필「벼룩」이란 말이 붙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규태 선생은 1996년 5월 14일자 조선일보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고품이 모이다 보니 벼룩이 끓었고, 페스트가 유행했을 무렵 이곳이 전염원이었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싸구려 시장 인근에는 반드시 벼룩 서커스가 벌어지게 마련이기에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루이 14세 부부도 즐겼다고 하던 벼룩 서커스는 벼룩이 벼룩을 태운 인력거를 끌거나 창을 든 벼룩 소대를 행진시키거나, 벼룩으로 하여금 축구까지도 시키는 17세기 이래의 장터 구경거리였다."
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고집불통’, ‘고집쟁이’, ‘고집불통이’, ‘벽창호’, ‘목곧이’ 등으로 부른다. ‘고집(固執)’을 포함하는 단어들이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나, ‘벽창호’나 ‘목곧이’가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이라고 한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복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
그런데 같은 단어 구조라 하더라도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일 때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띤다.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매우 억세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러한 비유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벽창우’가 비유적 의미로 쓰일 때는 ‘벽창우’보다는 ‘벽창호’로 더 많이 쓰인다. “벽창호 같다”라는 관용구의 ‘벽창호’가 바로 그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변하여 그 비유적 의미 기능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바뀐 데에는 아마 이것을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壁)’과 그러한 속성을 지닌 사람과의 연상이 ‘벽창우’를 ‘벽창호’로 바꾸게 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목곧이’는 ‘목 곧-’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목 곧-’은 신체 명사 ‘목’과 형용사 ‘곧-’이 결합한 구로 “억지가 세어 남에게 호락호락하게 굽히지 아니하다”의 의미이다. ‘목곧이’는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을 뜻한다. 항상 ‘목’을 세워 ‘목’이 곧은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쟁이일 것이다.
*출처:충북대학교, 조항범
'간접적으로 깨닫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릇이나 물건의 가장자리를 변죽이라고 한다. 변죽을 쳐서 그릇의 복판이 울리게 하듯이, 바로 집어 말을 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을 하여 눈치를 채게 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건방지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조선조 26대 고종 13년 병자년에 몹시 가물어서 방죽이 모두 말라 붙어, 건(乾) 방죽이 된 것을 발음이 비슷한 '건방지다'에 엇먹어 쓴 말이다.
병자년에 흉년이 들었다는 데서 생긴 속담으로 '병자년 까마귀 빈 뒷간 들여다보듯 한다'는 말도 있다. 혹시 무슨 일이 잘 될까 하여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자기가 한 일의 결과가 매우 뜻깊고 좋다'는 뜻이다.
'보람'은 원래 눈에 보이는 어떤 표적이나 잊지 않기 위해서, 또는 딴물건과 구별하기 위하여 두드러지게 하여 두는 표를 말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유형의 물체를 가리키던 것이 차차 마음 속에 느껴지는 어떤 흡족한 상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읽던 곳을 표시해 두기 위해 책갈피에 끼워 두는 줄이나 끈을 보람줄 또는 보람끈이라고도 한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애꾸눈이'를 놀리는 말이다.
애꾸눈이는 눈이 한 쪽밖에 없으므로 남들이 보는 것의 절반만 본다는 생각에서, 결국 정상인과 비교하여 한 달에 보름밖에는 못 본다는 뜻으로 붙인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산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 말기에는 곡식이나 돈을 바치고 벼슬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봉건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서민 계급 중에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벼슬자리를 사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이들을 일러 흔히 보리를 주고 벼슬을 샀다 하여 보리동지라고 조롱하곤 했다. 때로는 어리숙하고 무던한 사람을 일컫는 말도로 쓰인다.
보리동지를 '납속동지'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보리동지의 한자 숙어다.
# 동지 - 조선 시대 '지(知)'의 다음 가는 벼슬로 경연, 예문관, 춘추관, 의정부, 삼군부 등에 딸린 종2품에 해당하는 벼슬 이름이었으며, 나중에는 흔히 벼슬 없는 노인을 존칭하는 말로도 쓰였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복걸복'은 '복불복(福不福)'에서 온 말로, 발음상 와전된 말이다. 복불복(福不福) 은 말 그대로 유복(복있음)과 무복(복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것은 사람의 운수를 이르는 말로, 똑 같은 경우와 똑 같은 환경에서 여러 사람의 운이 각각 차이가 났을 때에 쓰는 말이다.
'장님'을 일컫는 말
봉사는 원래 조선조 때 관상감, 전옥서, 사역원 등에 딸린 종8품의 낮은 벼슬 이름이다. 그런데 이 봉사 직책에 장님들이 많이 기용되었기 때문에 그 후 벼슬 이름이 그냥 장님을 뜻하는 말로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부대고기를 넣어서 끓인 찌개'
해방 직후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미군들에게 보급되는 물자가 민간으로 많이 유출되었다. 그 중에서 미군 부대에서 먹다 남거나 몰래 빼낸 고기를 부대고기라고 부르고, 그 부대고기로 끓인 찌개를 부대찌개라고 했다.
'매우 급히 서두르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이야 불이야'가 줄어서 된 말이다. 즉 불이 났다고 소리치면서 내달리듯이 매우 급한 일로 서두를 때 쓰는 말이다. '부리나케'라는 말도 같은 이치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에 불씨가 귀할 때 부시를 쳐서 불을 일으키는데 빨리 쳐야 불이 일어나는 데서 생긴 말이다. '부리나케'는 '불이 나게'가 바뀐 말이다. 즉, '불(火)+이(토씨) +나(出)-게'의 구조를 가진다.
'뜻밖에 많은 재물을 얻다'는 뜻이다.
부엉이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자기 집으로 가져다 두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엉이 집을 지어서 저절로 많은 물건을 얻게 되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쓸데없고 공연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대장간에서는 쇠붙이를 만들 때, 강하고 단단한 쇠를 얻기 위해서 쇠를 불에 달구었다 물에 담갔다 하기를 여러 번 했답니다. 횟수가 많을수록 더욱 단단한 쇠가 만들어졌지요. 그러나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물렁물렁하고 금세 휘어지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지요. 이래서 "불질없다"가 변해서 된 "부질없다"라는 말은 공연히 쓸모없는 짓을 했을 때 쓰는 말이 되었다.
*출처:<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자주 들락거림'을 뜻하는 말이다.
'베틀에 북 드나들 듯'이 줄어서 된 말이다. 북은 베틀에 딸린 중요한 부속품의 하나다. 씨실의 꾸리를 넣고 북바늘로 고정시켜 날의 틈으로 왔다갔다하게 하여, 씨를 풀어 주어 피륙이 짜지게 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배같이 생긴 나무통이다.
베를 짜기 위해 북이 부지런히 드나느는 것에 빗대어 사람이 자주 들락거릴 때 쓰는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남의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북어는 먼 함경도에서 동해와 황해를 휘돌아 오고 수량이 많아서 아무리 빨리 팔아도 대여섯 달은 족히 걸렸다. 그래서 북어를 싣고 온 화물주는 자신이 지정한 객주에게 판매를 위탁하고 그 판매 대금이 걷힐 때까지 몇 달이고 그 집에서 머물렀다. 북어를 넘겨주고 난 다음부터 화물주는 하릴없이 돈 받을 날만 기다리면 되었기 때문에 남의 집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갑자기, 걷잡을 수 없게, 느닷없이'의 뜻을 지닌 말이다.
낱말 분석을 해 보면 '불 + 현 + 듯'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혀다'는 '켜다'의 옛말이다. 따라서 불을 켜면 갑자기 환해지듯이 어떤 일이나 생각이 느닷없이 이루어질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힘든 일을 할 때 쏟아지는 땀'을 이르는 말이다.
비지를 만들기 위해 콩을 갈아서 헝겊에 싸서 짤 때 나오는 콩물처럼 많이 흘리는 땀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 다음 맷돌 따위로 갈아 번철에 부쳐 전병처럼 부쳐 만든 음식'이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로는 최세진이 쓴 <박통사언해>에 "병저"의 중국식 발음인 "빙져"에서 빈대떡이 나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빈대떡은 본디 기름에 부친 고기를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올려놓을 때 밑받침용으로 쓴 음식인데, 그 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어 빈자(貧者)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정동을 빈대가 많다고 하여 빈댓골이라 하였는데 그 곳에 빈자떡 장수가 많아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던져 주었다고도 한다.
*출처:<우리말의 나이를 아십니까>
'사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다'의 뜻이다.
남이 날리는 연 줄을 긴 장대나 돌멩이를 맨 실로 걸어 당겨서 중간에서 빼앗는 짓을 '뺑줄'이라고 한 데서 생겨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