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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기(禁忌) <최명숙 목사>
젊은 날, 숙성치 못한 이성이 비판으로만 민감했던 시절에는 성경말씀까지도 비판의 칼날을 서슴치 않았던 때가 내게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십계명을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라(do)'는 진취적인 명령보다는 온통 ’하지 말라(never)‘는 금기사항이었습니다.
십계명만 보더라도 4계명과 5계명을 제외한 여덟 계명이 모두 금기사항으로 되어있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포함하여 인류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뭔가를 시행하고 실현시키므로 이루어지는 것일텐데 하지말라는 금기사항에만 매어있음이 얼마나 답답하던지요.
그러나 내 성급한 이성이 세월의 비바람, 그리고 눈 내리는 추위와 뜨거운 열기에 여물어가다보니 이제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축복을 기원하는 새해를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복을 받는 기본적인 조건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는 금기사항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의 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에게도 그분은 그 땅에 들어가거든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과 함께 행해야 할 일들을 명하시고 계십니다.(신6:)
성경에 나오는 금기사항들을 떠올려보면. 원망, 불평, 시기, 두려움, 염려, 미움, 판단, 비판, 정죄, 불안, 자랑, 교만, 자긍, 의심 등등이 있고, 행해야 할 것으로는 소망, 사랑, 믿음, 겸손, 온유, 평안, 화목, 축복, 긍휼 등등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늘 무엇인가를 행하는 적극적인 행위보다 소극적인 금기사항이 먼저 나오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성향으로 인하여 잡초처럼 돋아나는 것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토양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원리가 어디 신(神)과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인가요, 신과 인간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진 관계이기에 신과의 관계란 곧 인간과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사람에게 불평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는 사람에게도 감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새벽기도나 수요예배 등도 열심히 나오면서 믿음이 성장해간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비록 그러지 못하더라도 그 많은 교회 중에서 우리 교회 성도가 되어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주니 고마워서 원망이나 불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 역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처럼 약한 사람을 아내로 맞아 내 연약함을 기쁘게 감당하며 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사랑을 해주니 고마워서 원망이나 불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식에서 주례사로 받은 내용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불평‘과 ’원망‘을 하지 말라던 금기사항이 기억납니다. 나는 그 순간 그 금기사항을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핵심적 조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원망이나 불평이 하고 싶을 때에 그 주례사의 금기사항을 생각하면 행복을 이루어가는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행복한 신앙의 삶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많이 이루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먼저 그분으로부터 받은 금기사항부터 차근히 지켜나가노라면 비록 어려운 여건이라 할지라도 행복한 신앙을 살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반면에 염려하는 마음들도 역시 사랑의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염려하는 마음보다는 축하하는 마음들이 확신과 힘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축하는 조용하게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면서 “힘들어도 이제 괜찮아요”하던 Y목사님의 짧은 축하 메시지였습니다. 그 짧은 한 마디가 얼마나 내 마음에 평안을 주던지요.
2005년 새해에는 진정한 축복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마음과 마음에서 따뜻한 감사가 빛처럼 꽃처럼 피어나 세상의 원망의 냉기와 불평의 어둠을 사르는 그런 눈부신 축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 2005. 1 - .
소 리
겨울 들어 지금껏 오지 않던 눈(雪)이 성탄절기도 지나고, 송구영신도 지난 입춘(立春)절
기에 늦은 눈이 되어 한꺼번에 내렸습니다.
꼭 이른 눈만이 눈이겠습니까? 늦은 눈도 그 신선함은 역시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하얀 눈꽃세상 속에 있노라면 눈(眼)조리개가 활짝 열리는 상쾌함을 느낍니다.
밤새 내려와 쌓인 무수한 설편(雪片)들은 푸른 새벽빛에 신비로운 생명력으로 숨을 쉬고 있는 듯, 올 겨울 늦눈은 반짝이며 스러져가는 안타까운 생명처럼 세상에 보낸 신비로운 선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보면서도 그 소리는 듣지 못하므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소리가 없기 때문은 아니지요. 어떤 시인은 눈의 소리를 ‘그윽하다’고 했는가 하면 어떤 시인은 ‘비단 옷자락을 사각거리는 여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릴 적,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깊은 밤에 눈밭에서 눈과 하나가 되어 눈을 감으면 ‘소리’가 지닌 음도(音度), 그 이전의 소리로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소리는 세상의 모든 잡음들이 없어진 소리의 진공상태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이삭이의 쌍둥이 동생인 ‘힘’과 ‘샘’이 교회에 나오는 날이면 예배당 안이 꽃이 핀 것처럼 환하고 훈훈해집니다.
어느새 앞니가 똑같이 두 개씩 난 녀석들이 앉고 기면서 한 주 한 주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교회 지체들의 관심과 시선을 받을 정도로 탐스럽고 귀엽습니다.
그런데다가 이제 낯을 가리는지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그만“앙~”하고 울어버리는데 그 모습이 더 귀여워서 사람들은 이 두 녀석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때, 시각장애를 가진 이삭이는 쌍둥이 동생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한쪽에서 혼자서 너무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고 있다가 귀여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와락 달려들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귀여운 동생들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삭이는 들을 수 있는 청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해서 동생들의 모습까지도 소리로 빨아들이려는 듯, 그렇게 귀를 기울이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기들의 모습을 보는 데만 열중하느라 울음소리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보지 못하는 이삭이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아기들의 소리를 혼자서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여운 쌍둥이 동생들, 그리고 사고로 시각장애를 가진 오빠 등으로 구성된 가족이지만 이삭의 동생 이다(초등학교 2년)의 눈에는 봄날 예쁜 날개를 나풀거리며 산으로 소풍을 가는 나비 가족과 같은 평화로움입니다.
(나비 가족 - (장 이다) 나비 가족 나풀 나풀 / 아빠 나비가 훨 훨 / 엄마 나비가 훨 훨 / 오빠 나비가 훨 훨 / 누나 나비가 훨 훨 / 쌍둥이 나비가 훨 훨 / 나비 가족이 소풍을 가요 / 아빠 나비와 엄마 나비는 / 쌍둥이 나비를 데리고 가고 / 누나 나비는 / 오빠 나비를 데리고 가고 / 산에 도착했어요 / 아빠 나비 엄마 나비는 / 벌레를 먹고 / 오빠 나비 누나 나비는 / 꿀을 먹고 / 쌍둥이 나비는 우유를 먹어요.)
오빠 나비를 데리고 가는 누나 나비의 모습도 이다에게는 슬픔이나 아픔이 아닌 당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그들은 행복하기만한 나비 가족입니다.
세상적인 판단과 기준의 눈을 감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분주한 생활 속에서 정서가 순화되는 기쁨입니다.
늦눈이 내린지 불과 사나흘이 지났건만 어느새 대기는 봄기운을 담은 안개비로 젖어들고 있습니다. 그 젖은 대기 속에 귀를 기울이면 아스라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한포기 풀잎처럼 젖어드는 내 몸과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생명의 소리, 아 - 봄이 오고 있습니다.
- 2005. 2 - .
인 정(認定)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박봉으로 5남매를 기르시던 어머니는 쌀을 가마니로 들이지 못하고 늘 쌀가게에서 한, 두말씩 사들이셨습니다.
반면에 같은 시내에 살던 고모네는 고모부가 사업을 하여 생활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모네가 가마니 쌀을 들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할머니께서 “부럽니?”하고 물어보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시골에 내려가신 즉시 할머님은 며느리인 어머니에게 쌀가마니를 부쳐오셨는데 어머니는 그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서럽게 우셨습니다. 고생스러웠던 할머니의 일생이 슬퍼서라고 하셨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게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내 영혼과 인격적인 교감을 이루고 계신 분, 그분은 내 사역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한 인간의 소리까지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얼마 전 남편이 둘이 찍은 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방안 이곳저곳에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몇 개월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세미나라든가 사역자들의 모임에서도 요즘은 거의가 부부 커플로 참여하기 때문에 배경이 좋은 곳을 만나면 시끌덤벙 쌍쌍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부러운 건 아닌데도 왠지 어색해질 때가 있습니다.
친근한 동료가 있다고 해도 부부가 아닌 이상 단둘이 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 뿐더러 그 사진을 걸어둘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지요.
이미 많은 은혜를 받은 내 삶에 특별히 다른 바람은 없지만 나이가 든 탓인지 얼마 전에는 문득 ‘나는 평생 누군가 단둘이 사진을 찍는다거나 그 사진을 벽에 걸어두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순간 좀 쓸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에다 독백처럼 낙서를 올린 기억이 납니다. (결혼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나도 한번쯤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찍은 사진을 한 장 걸어두고 싶다. 결혼을 하는 이들이 부러운 건 아니지만 나도 커플링은 한번 껴보고 싶다.)
그건 기도제목도 아니었을 뿐더러 소원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냥 순간 부질없는 느낌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런 철없는 생각까지도 기도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내 장부를 지으신 하나님’(시139:13)이라는 고백처럼 내 생각을 아시고 내 기도와 숨소리까지 들으시는 그분을 의식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류이며 나의 삶속에서 그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을 받아야 할 우리가 그분을 인정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계신 그분을 인정하는 행위야말로 그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지요. 그러나 인정받기는 바라면서도 그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까닭에 아직도 하늘나라는 우리에게서 요원한지도 모릅니다.
그분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면 우리가 좀 온전치 못하더라도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을 받으면 우리의 기도가 모범적인 기도가 아니라도 그분은 판단하시지 않고 응답해주십니다.
우리의 생활과 바람들이 그분의 뜻에 비추어 볼 때 걸리지 않는 부분이 없겠지만 인정을 받게 되면 그것까지도 받아주시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말쌀이든 뒷 쌀이든 굶지 않고 먹으면 되지 무슨 욕심을 부리느냐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저 우리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즉시 가마니 쌀을 부쳐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네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순간이라도 그런 인간적인 사소한 생각을 하느냐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기도제목도 아닌 조건들을 생각지도 못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을 현실적으로 채워주신 사실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그분이 나를 인정하신다는 확신이며 이것이야말로 내 영혼 깊숙이 전율처럼 퍼져가는 절절한 기쁨입니다.
사랑은 판단이 아닙니다. 우리가 옳은 행동을 하면서 자긍하는 것 보다는 부족하더라도 그저 낮아져 그분의 품안에 들어가 안긴다면 세리의 기도를 인정하신 그분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분의 인정을 받는다면 우리의 삶은 고난 중에도 승리요. 죽음에서도 살림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직도 바람 끝은 차갑지만 마른가지에는 백목련의 햇솜 같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 2005. 3 - .
평안의 소리
황반석 목사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저희 베데스다교회를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매 엘리야의 손바닥 만한 구름 같은 삼백 삼십 평의 땅을 시작으로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지난 20여년동안 저희 최목사님을 사용하셔서 많은 기적과 은혜를 베푸시고 장애인에게는 소망을, 비장애인에게는 신앙의 도전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어느 한부분의 허전함은 역시 영과 육을 함께 치유할 수 있는 전인치유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공동체 모습을 마음 속에 소원을 두고 기도하며 계획하게 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넉넉히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최목사님과 저를 동역자로 부르셔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시고 새로운 사역을 맡겨주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십년 가까이 장애인 공동체에서 사역자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동안에 공동체 내부의 많은 문제점들과 장애인들이 인격적인 문제로 인해 받는 고통을 함께 나누며 내심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대에는 고령화로 인해 노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 들어 늙으면 누구나 장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희 부부는 ‘평안의 집’이 노인분들이든 장애인이든 다 함께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편지를 읽으시는 모든 성도님들과 형제, 자매님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저희 ‘평안의 집’에 신실한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땅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짐으로 인해 상처 받은 많은 영혼들이 이곳에 와서 쉼을 얻기를 바라고 육신적으로 힘들고 병든 사람들이 치유 받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저희 ‘평안의 집’이 이 시대에 모든 이들에게 칭송 받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새봄을 맞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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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의 편지는 황반석목사님의 편지로 올립니다.
목련이 이제야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사순절와 고난주간 동안 나무도 꽃망울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는가 봅니다.
저렇듯 찬연한 꽃망울을 터트리기까지 나무는 또 얼마나 모진 진통을 겪었을까요? 그래서 꽃은 향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산비탈 구석구석에 겨우내 녹지 않은 잔설처럼 우리들 가슴 구석구석에 풀리지 않은 앙금이, 아픔이, 슬픔이 있다면 잔설처럼 그렇게 녹아내리기를 소망합니다.
아직은 빈 들, 노인복지 시설부지로 매입을 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벳새다 들에 그분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그리하여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진정한 평안을 나누며 누리기를 소원하면서 - .
- 2005. 4.월의 봄볕 아래서 최명숙 목사 - .
사 랑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왔습니다. 이 여인을 잡아온 사람들이야 기세등등하고 살기등등했겠지만 이 여인은 여자로써 가장 치욕적인 죄목(주홍글씨)을 단 채 수치심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성적(性的)으로 개방된 시대라 하더라도 여자에게는 그런 스캔들만으로도 치명적인데 엄격한 율법시대였던 당시에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왔다고 하니 그 이상의 수치와 모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때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는 말씀으로 무리를 물리치신 후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는 말씀으로 여인을 돌려보냅니다.
도대체 이토록 멋지고 감동적인 그분의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지식? 지혜? 경험? 그러나 우리가 자랑하는 냉철한 논리와 이성까지도 능가하는 그분의 이러한 감동적인 모습 역시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 댓살 어린 시절, 아빠 품에 안겨서 따라 갔던 영화관에서 서부영화를 보던 중, 뿌연 말굽을 구르며 질주해 오는 말의 큰 머리가 스크린을 뚫고 그대로 내게 달려드는 것만 같아 겁에 질려 그만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린 일이 있습니다.
순간, 영화관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내게로 쏟아질 때, 이제는 스크린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길이 어린 마음에도 미안함과 두려움으로 겁이 났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표현과 함께 “괜찮다, 괜찮아, 오냐 오냐, 내 새끼야”하며 우는 나를 품에 꼭 안아 주셨는데 그 때의 아버지의 그 음성과 체온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어릴 때의 경험을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로부터 나는 최근에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내 사역의 여정 중, 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한계에 몰려 목회자로서 더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성도에게 교회를 옮기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거기에다 그 내용이 홈페이지에까지 오르고 익명으로 비판과 훈계의 말까지 올라오면서 한 순간에 나는 나쁜 목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 때부터는 이미 자책감이나 시시비비를 떠나 나는 마치 간음하다 붙들려 와서 돌로 치려는 군중 가운데 있는 여인처럼 온통 두렵고, 불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때, 대전엘 가셨다가 교회 일이 걱정되어서 하룻밤도 못 주무시고 밤에 돌아오셨다는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지만 내 마음을 아신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 괜찮아,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거라”는 아버지의 그 한 마디는 내게 천 마디의 훈계보다 더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서인지 나도 내 사랑하는 성도가 살아가면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괴로워할 때면 정죄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괜찮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거야,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라”는 말로 위로를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팔순을 훨씬 넘으신 내 아버지는 앞으로도 내 곁에 살아계시는 동안 설령 내가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짓고 세상이 모두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있더라도 “괜찮다, 이제는 그러지 말라”는 말로 품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나무는 그 둥치가 베임을 당해도 생명이 있는 한, 잘려진 밑둥치에서 다시 싹이 돋아납니다.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사6:13) 생명이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라면 남아 있는 그루터기를 통하여 더욱 든든하고 무성해지는 신비의 역사가 여리디 여린 오월의 새싹으로 돋아날 것을 믿습니다.
사랑은 햇살로, 단비로 내려 구석구석에서 살림의 사역을 감당하고, 나는 오늘도 살아갈수록 그분이 내 아버지가 되시는 이유를 깊이 깊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 2005. 5 - .
바람이 불면
바다를 끼고 있어서인지 이곳은 유난히도 바람이 많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실내에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정도로 체질적으로 바람이 맞지 않는 나의 선택 이전부터 나는 이 지역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반응을 떠나서도 예로부터 ‘바람’이라는 뉘앙스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거나, ‘바람이 났다’ ‘치맛바람’ ‘춤바람’ ‘바람을 맞았다’라는 등 정상적인 생활에서 잘못된 이탈을 바람이라는 말로 표현해왔습니다.
이러한 좋지 않은 뉘앙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람으로 피해를 당해오면서도 우리는 물을 이용한서 물레방아는 있지만 바람을 이용한 풍차는 없습니다.
바람 속에 살면서도 늘 “바람이 싫어‘를 입에 달고 지내는 내가 오늘 햇살 아래서 이름 없는 풀꽃들이 피었다 져버린 자리에 작은 풀씨들이 하얀 솜털로 준비를 하고 날아가고자 한껏 부풀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 때, 바람이 휙~불자 그것들은 폭발이라도 하듯 공중으로 뿌옇게 흩어져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바람은 바람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풀씨들이 기다리던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비록 씨 판에서 떨어져 나가는 아픔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모든 것을 맡긴 채 평안하게 비전을 안고 날아갑니다.
가끔 찾아오는 집사님 한 분이 있었는데 그 집사님은 올 때마다 기도해주기를 원했으며 꼭 기도를 받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집사님의 사업체와 가정에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기를 기도를 하다가 혹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이겨나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를 덧붙여 기도했는데 그 집사님은 서운한 표정으로 “목사님,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를 해 주셔야지요”하더니 그 후로는 다시 오질 않았습니다.
항해를 하면서 풍랑이 이는 것을, 인생길을 가면서 환란의 바람이 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생이 아무런 일렁임도 없이 늘 잔잔한 수면 같다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라는 찬송도 없었을 것이요, 수많은 성경 말씀으로 승리의 위로를 받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연(鳶)은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없기에 바람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손에 줄을 잡고 연의 얼굴에 바람을 맞게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다가오는 바람을 타는 신나는 인생을 살 수 없을까요? 불어오는 바람을 우리를 일으키는 탄력으로 받아 더욱 역동적으로 힘있는 삶이 될 수는 없을까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예수의 평안은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혀지는 상황에서도 고물을 베고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는 평안이었습니다.
그 평안을 오히려 깨뜨리며 아우성치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고 하셨습니다.(막4:40)
오늘 우리의 믿음은 바람 부는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풀씨처럼 빈 마음으로 풀풀 날 수 있는 평안인가요?
연(嚥)처럼 바람을 타고 높이 솟구쳐 올라 폭풍 속에서도 불꽃같은 고요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요?
참으로 우리가 가진 믿음의 힘이란 무엇인가요?
- 2005. 6 - .
가만히 서서 기다리라
초여름의 신록은 그 생명력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만합니다. 그것은 성하(盛夏)의 짙푸른 녹음이 따르지 못하는 눈부심이기에 가난해도 부요로움이요, 보이지 않아도 잡은 것이요, 절망도 소망이요, 곤고한 현실도 행복으로 마치 이 땅에서의 천국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사역 초기, 그 막막했던 시절은 힘들고 어려웠
던만큼이나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이요, 은혜의 체험이 되어 내 신앙사역의 풍성한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작은 부스러기 체험들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재가 장애인의 생활처소 겸 예배처소를 마련하기 위한 일일찻집 장소를 물색하고 다니던 18년 전 겨울, 계단이 없으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갖춘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좀 괜찮다 싶은 곳은 휠체어나 목발 등으로 카펫트가 상할까봐서 안 빌려주기도 하고, 연탄난로를 사용하는 초라한 장소라도 대여료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적당하다 싶은 장소를 겨우 찾아내어 다음날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와서 이제 알맞은 장소를 찾았으니 꼭 그곳에서 하게 해주시기를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빌려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한단 말인가? 장소 사정으로 계획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지체들과 함께 걱정을 하다가 나는 갑자기 답답한 상황에서 객기라도 부리듯이 “victory 관광호텔 커피숍을 교섭해 볼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 커피숍은 당시 군산에서 가장 품위 있는 유일한 호텔 커피숍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지체들은 어이없어 하면서 “보통 다방도 이렇게 어려운데 그런 곳이 빌려주겠느냐”고 하면서 실현성 없는 말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해보겠노라고 했습니다.
직접 찾아가지도 않고 전화로 담당자와 교섭을 했는데 뜻밖에도 담당자가 선선히 대여를 그것도 봉사차원에서 깜짝 놀랄 만큼 싼 값으로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다른 장소의 반값이기에 나는 내 귀가 의심스러워 금액을 다시 확인하고 나서 그 행운을 놓칠새라 당장에 달려가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거기에다가 차(茶) 재료까지 싸게 구입해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때, 하나님은 결코 무심치 않으시며 오히려 우리가 제한된 현실 속에서 원하는 최소한도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두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14년 전에는 장애를 가진 자매를 맞선을 보게 했는데 사실 등이 나온 것 외에는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는 우리 자매를 상대방의 아버지는 저건 분명히 유전이어서 이담에 자식을 낳아도 그런 자식을 낳는다며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노발대발 반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아들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 장애인데도 말입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억울하게 죄인 취급을 당하는 자매가 안쓰럽고 상대에게 막 화가 나 장애의 경중을 비교하며 따져보고 싶은 분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그 자매는 우리 교회 지체 중 비장애인 형제와 결혼을 했으며 건강하고 예쁜 딸이 12살 소녀로, 집안의 꿈나무로 지금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매가 그 일을 잊은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문득 옛날에 선 본 그 형제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결혼을 안하고 있는 그 형제에게 자기 딸을 보여주며 인사를 시키는 그녀의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그 때의 그 아픔이, 그 한(恨)이 조금은 풀렸을까요?
우리가 현상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라도 성급하게 낙심하지 말고 기다려 볼 일입니다. 현상만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말고 그분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질 일입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기적처럼 인도하신 하나님이 왜 지금은 도무지 건널 수 없는 망망한 홍해로, 그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도하셨느냐고 원망하지 말일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뒤로는 이집트 병사들에게 쫓기게까지 하여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을 만드시느냐고 원망하지 말일입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과 지옥의 삶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과 현상만을 바라보는 삶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절망과 고통의 나락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은 천국이요, 좋아보이는 여건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삶은 지옥입니다.
시편 23편은 천국의 삶에 대한 다윗의 고백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일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천국이 아닐까요?
홍해 앞에서 원망하며 울부짖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14:13-
낙심하지 말고 기다릴 일입니다. 가슴이 찢어져 쓰리고 아픈 자리에 계속 칼질이 가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눈이 짓무를 때까지라도 기다릴 일입니다.
잠자리 떼 낮게 나는 여름날, 7월 장마에 젖은 녹색 대기가 삶에 지친 기갈한 영혼을 소생시키고, 사랑하는 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여름비에 젖은 감나무 잎사귀로 살아나는 저녁입니다.
- 2005. 7 - .
아픔이 생명이라면
지금은 그분의 나의 하늘이지만 어릴 적 나의 하늘은 지금 푸르름이 생명으로 출렁거리는 이 성하(盛夏)의 계절에 노환으로 쇠잔하여 누워계시는 아버지였습니다.
어린 날, 아버지는 우리들의 모든 요구들을 물을 흡수하는 솜처럼 받아주며 보살펴주시던 내 하늘로서 지금은 제각기 나름대로 삶을 살기에 한 번 모이기도 어렵지만 그 때 우리는 그 하늘 밑에서 햇빛과 이슬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하루 중 몸이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그 하늘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유년기에 동생은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시청 청사 건물에서 종일 미끄럼 등을 타면 놀았습니다.
나는 뒷산에 올라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그 태극기가 꽂힌 붉은 벽돌건물을 바라볼 때면 그 붉은 건물 자체가 마치 아버지라도 되는 양 연줄처럼 팽팽하게 잡아끄는 느낌이 들어 목이 터지라고 “아빠!”를 불러대기도 했습니다.
따분한 날이면 언니는 엄마 몰래 나와 동생을 데리고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직장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얀 남방셔츠를 입은 아버지는 책상 앞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계셨는데 나와 동생에게 “아빠!”를 부르라고 시켜놓고 언니는 문 뒤에 숨었습니다.
우리는 언니가 시키는 대로 큰 소리로 “아빠!”를 불렀고, 아버지는 일하다가 깜짝 놀라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왜 왔느냐고 나무라지도 않고 우리를 안고 가게에 가서 과자와 장난감 등을 한 아름 사서 안겨 보내셨습니다. 온전히 큰 하늘인 하늘 아버지 이전에 아버지는 우리의 하늘이었습니다.
충남 홍성에 있는 ‘그림이 있는 정원(Gallery in Garden)'라는 인공수목원(人工樹木園)엘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1,300여종의 진기한 각종 식물들로 끊임없이 펼쳐진 5,000평의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30여 년 전부터 경추를 다쳐 전신마비가 된 아들을 위하여 아버지가 정성스레 가꾸어온 정원으로 아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과 함께 곳곳마다 휠체어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장애인의 낙원이었습니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아들이 답답할 때면 산책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게 해주기 위해 마련해왔다는 아버지 임진호씨의 아들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정원 구석구석마다 깃들어 있었습니다.
자식으로 인한 아픔이 이토록 아름다운 낙원을 만들게 하여 아들과 같이 장애를 가진 많은 이들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 나는 산위에 올라가 외치지 않아도 내 깊은 심령의 소원을 다 아시고 작은 신음까지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온전한 큰 하늘 밑에 살고 있지만 나 때문에 가슴으로 평생 통증을 겪으시다가 지금은 육신의 고통을 겪고 계시는 아버지의 통증이 나의 아픔이 되고 있습니다.
늘 이러저러한 아픔을 느끼며 사는 게 나의 삶이지만 요즘 들어 온통 아픔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중에 오랜만에 조카 녀석 남기(초등학교 4년)를 만났습니다.
자폐증세로 내 아프디 아픈 눈물의 기도를 먹어온 녀석이 이제는 아주 의젓하게 식사를 하면서 제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상적인 아이와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내 가슴 한 쪽에 수년 동안 아프게 박혀있던 못 하나가 드디어 스르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 아픔이 치유되는 걸 느꼈습니다.
무르익어가는 여름, 마당에 나가 보면 여기 저기 심어놓은 호박이 이리 저리 줄기를 뻗고 있습니다. 그 줄기가 저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이 호박 줄기 하나도 역시 우리의 삶처럼 아픔의 삶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씨앗을 터치는 아픔으로 시작하여 싹이 트고 꽃을 피우는 아픔과 지는 아픔, 그리고 열매를 맺는 아픔에 이어 열매를 딸 때의 아픔, 그 뿐만이 아니라 잎사귀를 딸 때의 아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보면 기쁨의 이면에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지만 아픔은 우리를 낮아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 나의 아픔은 강단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눈물로 적시며 기도하게 하고, 예수의 가시 박힌 머리를 심장 깊이 끌어안을 정도로 그분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아픔을 느끼는 그 자체가 내가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내 뜨거운 눈물은 생명의 줄기 세포와도 같아서 아픔과 더불어 소생의 역사도 있을 것을 믿습니다.
한 여름 무더위와 같은 이 아픔이 시련처럼 지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33:3)는 그분의 소리처럼 언젠가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기쁨과 환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순간이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으로 내게 올 것을 믿기에 오늘 나는 눈물 속에서도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준비하는 확신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2005. 8 - .
산소(酸素)
내 설교나 글이 감동적이라거나 은혜를 받았다는 말도 더할 수 없이 듣기 좋고 신명나는 말이지만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새 힘이 난다는 말 역시 한 인간으로서 신명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욕심 아닌 소망을 하나 가져본다면 모든 생물에게 꼭 필요한 산소(酸素)처럼 누구에게든 그렇게 산소 같은 존재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 역시 본의 아니게 독소(毒素)처럼 공해를 끼치며 살아가기도 하는 안타까운 존재임을 스스로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산소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갖는 건 늘 내게 산소 역할을 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에도 늘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예배를 드리는 지체들... “오늘은 목사님이 힘 있게 보여서 참 좋다”라며 밝은 내 모습을 보기 좋아하는 교우들의 마음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어떤 경우에도 새 힘을 내게 해줍니다.
밤마다 지하 ‘쉼터’에 불이 켜지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탁구나 인터넷 등을 하면서 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도 내게는 보람이요 기쁨입니다.
언젠가 그들이 불건전 사이트 동영상물을 컴퓨터에 올려놓았다고 펄펄 뛰던 강민 형제는 손짓 발짓으로 그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으로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몽골인인 그들의 글로 ‘주의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번역해서 컴퓨터 앞에다가 걸어 놓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주의를 받으면서 지하 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그들은 청소까지는 안하더라도 여름 내 선풍기나 전등을 켜놓고 가는 일도 없이 깔끔하게 사용하고 가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교회 관리를 열심히 하던 조집사님 가정이 시내로 거처를 옮긴 후, 새로운 생활공동체 가족을 보내주시고 잡초제거 등 교회관리를 그 성격처럼 시원스럽게 하는 모습 또한 산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고로 뇌를 다쳐 목발을 짚고 겨우 걷는 종훈이는 예배시간에 황목사님 곁에 앉아 웃으면서 자꾸 얼굴을 어깨에 대기도 하고, 머리로 가슴을 파고들기도 하면서 열심히 애정어린 스킨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황목사님에게 종훈이가 왜 그러는 거냐고 묻자 집에 데려다 줄 때 집 앞에 계단이 있기에 엎어줬더니 아마 친밀감을 느껴서 그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서로 생각이 달라 말다툼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내 외출용 저고리를 정성스레 다림질해주거나, 예쁜 잠옷을 사가지고 와서 나한테 맞도록 같은 빛깔 실을 꼼꼼히 골라서 바느질해 주는 남편의 모습 역시 산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산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기에 내가 오늘도 숨 쉬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수(汚水)를 정화시키는 미나리나 연꽃처럼 모든 것을 산소로 느끼며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 산소가 되는 길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걱정 근심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체내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막막한 인생 문제가 천근 무게로 짓눌러올 때면 작은 가슴이 미여질 정도로 큰 숨을 몰아쉬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어떤 여건에서도 살아계신 그분이 공급하시는 산소로 숨 쉬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뜨겁고 긴 여름이라는 강을 땀 흘리며 허우적허우적 건너와 맞는 9월은 얼핏 불어오는 바람 한줄기에도 여름내 누적되었던 땀내 나는 흔적이 씻겨지고 일상이 새로운 감각으로 살아납니다.
같은 계절을 수없이 살아왔건만 계절은 맞을 때마다 늘 처음처럼 새롭고 신선합니다.
자연은 그렇게 한가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하면서도 할 일을 다 하고 있는데 우리는 늘 바쁘다면서 주위에 모든 여유로움을 빼앗아가는 공해역할을 하면서도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생명력인 그 분 안에서 한줄기 산소로 살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 2005. 9 - .
근 본
모든 가전제품들의 전원이 꺼진 정적 그 이전의 소리로, 꽃과 잎 그 이전의 나무의 모습으로, 구름 그 이전의 하늘로, 솟구치고 흐르는 그 이전의 깊은 물빛으로 가을은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을에는 시야를 가리는 부수적인 것들을 헤치고 삶 그 이전의 자세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마을의 55년의 전통을 가진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20여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곳에 살면서도 멀리 시내에 있는 학교까지 아이들을 전학시켜 다니게 할 정도로 유난을 떠는 욕심 많은 이들도 있지만 그러나 이 학교는 나름대로 들꽃처럼 존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 학교에서 발간한 신문을 받아 본 적이 있는데 편집을 맡은 젊은 여선생님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한 아이 한 아이마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빛깔과 향기를 뽑아내어 사진과 함께 정성껏 실었습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 선생님들과는 달리 전교생 모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의 교육을 통해 그들은 오히려 존경스런 교사의 표상으로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질 것입니다.
요즘 주일학교를 관여하다 보니 아이들을 새롭게 보는 눈이 떠지면서 한아이 한 아이가 참으로 사랑스럽고 소중하기만합니다.
차를 타고 내릴 때마다 누가 처음에 타고, 그 다음에는 누가 타며, 맨 마지막으로는 누가 타는지, 또 예배를 마치고 갈 때는 누가 맨 처음에 내리고 그 다음에는 누가 내리는 지를 계속 묻는 기훈이,
개구쟁이 기훈이의 뒤에서 예배를 드리는 내내 손가락을 갈고리같이 만들어서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고 기훈이 뒷머리를 아프게 훑어 내리는 종훈이,
황목사님이 화이트 보드에 그림을 그리며 그림 성경이야기로 집중시키지 않았더라면 아마 기훈이의 뒷머리 두피는 벗겨졌을 지도 모릅니다.
헌금 시간만 되면 헌금위원으로 다른 아이를 지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헌금바구니를 뺏어들고 예배당을 돌아다니다가 바닥에 놓고 주저앉아 빨갛고 작은 제 지갑에서 헌금할 돈을 꺼내서 반드시 헌금을 하는 올해 네 살이 되는 영이,
설교 시간에 대답을 잘하는 단정하고 곱게 생긴 은영이 등등.. 모두가 사랑스러운데, 사춘기를 맞아 이제 마악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은지에게 주니어 사이즈 브라를 입혀 보낼 때면 마치 딸을 키우는 것 같은 뿌듯함까지 느끼게 됩니다.
비록 다른 교회에 비해 적은 목회를 하고 있을지라도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나타나는 현상보다는 근본이 중요합니다. 잎과 꽃은 현상이지만 나무의 둥치와 뿌리는 근본이지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근본의 변화야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셨을 것입니다.(요3:3)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그분의 소중한 존재 그 이전에, 천하보다 귀한 심령 그 이전에, 한 덩이 진흙에 불과하지요.
무엇인가 기여하는 삶이기전에 그 보다 더 큰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지요.
새벽기도를 마치면 숲 기운을 마시며 산책을 하는 게 일과인데 문득 휠체어 바퀴가 돌아가는 노면(路面)에 무수하게 깔린 작은 점들이 모두 달팽이 새끼들임을 보는 순간 심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휠체어 바퀴로 저토록 깍지를 등에 업고 꼬물거리며 기어 다니는 어린 달팽이들을 내가 짓부수고 다녔단 말인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투명할 정도로 아른거리는 아기 달팽이들의 집이 무참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어 어쩔 수 없이 바퀴 밑으로부터 달팽이들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나’라는 존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희생에 의해 존재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소멸하고 생성하는 자연의 순환바퀴 속에서,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십자가 희생에 의해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 말로 지식의 근본(잠1:7)이라는 말씀처럼 이 가을에는 차라리 화려한 단풍보다는 한그루 프라타나스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옷을 벗으며 내 근본인 거친 나무 둥치를 오랜만에 쓰다듬어보고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뿌리까지 깊이깊이 느끼면서 그 속에 깃든 그분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하늘도 물도 투명하게 속가슴을 드러내고, 대기마저 태초의 맑음으로 가득한 이 가을에 - .
- 2005. 10 - .
생명의 순환 고리
이번 가을에는 몇 날을 공동체 가족들과 함께 그동안 여기 저기 묵혀두었던 폐품들을 소각시켰습니다.
음식물 찌꺼기는 늘 땅에 묻고 있지만 소각시켜야 할 쓰레기들도 찾아 모아 놓으니 만만치가 않습니다.
불길 속에, 연기 속에 주변을 어수선하게 하던 잡동사니들이 한 줌 재로 변했고, 그 재는 밭에 깔려져 흙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변이 정리될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내년 봄에 농사를 지을 밭에 양분과 흙으로까지 보탬이 되어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각시키거나 묻을 수 없는 쓰레기는 크기에 따라 돈을 얹어서 버려지는데 돈이 든다는 사실보다는 우리의 몸까지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질서 속에서 그러한 순환 고리가 끊어진 느낌이 들어 늘 개운치가 않습니다.
핵,방사 폐기물 유치문제에 대한 찬,반이 요즘에는 어디를 가나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나도 찬성이나 반대 중 한 쪽을 지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편하겠는데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는 입장이 곤혹스럽기만 합니다.
거기에다가 여론조사를 한다면서 수차례나 전화로 찬,반을 물어올 때는 답변할 마음이 도무지 내키지 않아 내게도 그런 권리는 있을 것 같아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나 역시 환경보호! 라면 극구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반대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애향심으로 이 지역은 안 된다고 한다면 결국 이 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는 유치해도 된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요.
숨 쉬고 있는 이 지구라는 몸 어느 한곳이 병들면 다른 곳인들 온전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날이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는 이 지역에 요즘 길을 가다 보면 눈에 띄게 문을 닫은 점포들이 블랙홀(black holl)처럼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이렇게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편으로 핵,방사 폐기물 유치를 찬성한다지만 아무리 당분간은 해(害)가 없다 하더라도 소화 시킬 수 없는 음식물을 뱃속에 넣어두고 있는 땅이 언제까지 건강 상태가 좋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서글픈 우리와 함께 땅도 고통하며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2-
옛날에 유전(油田)을 가진 나라들이 물이 귀해서 음료수보다 비싼 물을 사 먹는다는 이야기를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로 신기하게 들었는데 기름도 안 나오는 이 땅에서 우리는 오염으로 인하여 지금 물까지 사 먹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되어가는 모든 일들이 그분의 장중(掌中)에 있지만 그러나 자꾸만 끊어져가는 생명의 순환고리들을 안고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건지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도 그 형상 안에서 소화시킬 수 없는 ‘죄’라는 이물질(異物質)을 안고 곤고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으로 인하여 그분과 틈이 생겨 멀어지게 되고, 담이 되어 가로막히지 않습니까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2)
그러나 그러한 이물질이 제거될 때 실패를 딛고, 허물을 용서 받고, 거역한 길에서 순종의 길로 돌아올 때 그리하여 그 틈이 메워지고, 담이 무너질 때는 막혔던 봇물처럼 생명의 역사, 소생의 역사가 더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때 넘어졌던 당신의 백성을 다시 세우신 그분의 약속처럼 말입니다.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2:9)
음식물 쓰레기는 묻고, 가연성 쓰레기는 태워 뿌려 덮은 흙 위에 남편은 오늘 멋지게 삽을 푹 꽂아놓고, 석양 아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내게 옛날에 보았다는 영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을 이야기해줍니다
아,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모두 땅이 소화할 수 있는 것들로 흙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흙을 기름지게 가꾸고 먹거리들이 자라게 하여 자연과 더불어 단순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요?
그러다가 오늘처럼 가끔은 영화 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흙에다 삽을 푹! 꽂아 놓을 줄 아는 사치도 한번 씩 부려보면서 말입니다.
- 2005. 11 - .
죽 음
하늘빛을 가득 안고 숨 쉬는 넓은 호수를 돌아 겨울햇살이 금가루로 부서지는 그곳에 아버지는 한 시대의 고단한 역사를 접고 고요히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는 통증도, 답답함도, 기쁨도, 염려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다사다난했던 과거도, 미래의 계획도 없습니다.
시신을 입관하는 과정에서 본 아버지의 6척 단신은 83년간의 격동의 세월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흔적도 없이 그저 희고 단아하셨습니다.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너 시신이 되신 아버지는 몸을 닦아도, 옮겨놓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거즈로 입안을 닦을 때에도 입술은 물건처럼 이쪽저쪽으로 젖혀진 채로여서 큰 핀셋으로 정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수의를 입히고, 이쪽저쪽으로 감싸고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말라는 듯이 온몸을 꽁꽁 묶고 동여매어 관속에 넣고 못을 쾅쾅! 박아도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만주로, 광복 후에 귀국하여 금융계로, 행정계로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아버지는 6,25 동란을 서울에서 맞으셨습니다.
서울에서 여러 날을 걸어 고향인 김제까지 오시면서 귓전에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총탄과 파편 사이를 거반 죽은 상태로 목숨을 포기한 채 걸어오신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정리해야 할 직장 일 때문에 아내와 첫돌을 앞둔 딸을 먼저 피난을 보내고 서울에 혼자 몇 날을 머무는 동안 아버지는 아기의 옷을 꺼내 냄새를 맡으며 우셨다고 했습니다.
여러 날을 걸어 저물녘에 지칠 대로 지쳐 고향에 도착했을 때, 저 아래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고향집이 보이자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산마루로 올라오는 어머니를 보자 그렇게 반가웠다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후로도 4.19와 5.16의 격동의 시대를, 험난한 시련의 시대를 가난 속에서 오직 가정을 지키고 자녀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힘겹게 살아오신 아버지는 젊은 날, 우리의 눈에 변화를 싫어하는 기성세대의 전형이었습니다.
시내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다시 시내로 이사를 할 때에도 아버지는 늘 무조건 반대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 텃밭과 아늑한 집에서 생활하시면서부터는 전원생활을 좋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시내 아파트로 이사해야 할 때에도 역시 반대로 어머니와 다투셨지만 이사 후에는 교통도 편하고, 생활하기도 편하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을 때에도 예수를 믿고 천국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 하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시고도 혼자 그 길을 기시는 게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어머니에게 같이 가자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한시도 헤어져 있지 못하시던 그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는 어떻게 가셨을까요?
평화로운 표정으로 숨은 거두셨지만 눈가에 한 줄기 짧은 눈물을 흘리고 가신 아버지께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도 변화를 싫어하셨던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나시는 것도 썩 내키지 않으셨겠지만 일단 가보시면 참 잘 왔다고 하실 거예요. 아버지, 천국은 아프지만, 힘들지만 죽음의 강을 넘어서만 가는 곳이랍니다.”라고,
그렇습니다. 천국은 죽음의 강을 건너야만이 갈 수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이 죽어질 때만이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 천국의 평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건넜던 홍해나 요단강은 죽음의 강이었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물로 벽을 이루고 있는 그 바다 속을 믿음으로 들어간 그 자체가 세상 적으로는 죽음의 행위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늘 새해는 가나안(천국)이기를 소망합니다. 아직도 용해되지 못한 아집과 무너뜨리지 못한 교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탐욕에 매어있으면서도 새해는 ‘가나안’일거라는 착각을 합니다.
오늘 내가 죽이지 못하여 아직도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탐욕과, 교만과, 아집들이 이스라엘이 멸하지 못했던 가나안 족속들처럼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우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우리 눈에 가시가’(수23:12,13) 될 것인데 새해라고 해서 어떻게 천국이 되겠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몸처럼 저렇듯 온전히 죽어야만 가는 곳을 말입니다.
- 2005. 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