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창작스튜디오의 현황과 실태
하제마을·쌈지·경안·가나아뜰리에를 중심으로
집중기획-문화냐 예술이냐 - 새로운 예술로 새로운 문화를
[ 예술창작환경 1 창작스튜디오 ] 창작환경 지원-왜 작업실 정책인가?
초기의 집단창작촌은 중앙정부의 제도적 장치나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
히 작가들 스스로에 의해, 보다 정확하게는 이 땅에서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그들의‘생존’문제와
결부되어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미술작가의 창작환경을 둘러싼 논의의 시작은 이런
상황인식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 이준희『월간미술』기자 culture art
사립 창작스튜디오로 손꼽을 수 있는 네 곳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Artist in Residence Program)’이라 일컬어지는 작가의 창작환경과 관계된‘제도적 장치’가 우리 미술계에서 형성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물론 이에 앞서 일부 작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 근교나 지방으로 작업실을 옮기기 시작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생활과 작업여건에 대한 열악한 실상은 이 글에서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과정을통해특정지역을근거로삼삼오오모여든작가들의작업공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른바 ‘집단 창작촌’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초기의 집단창작촌은 중앙정부의 제도적 장치나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작가들 스스로에 의해, 보다 정확하게는 이 땅에서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그들의‘생존’문제와 결부되어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미술작가의 창작환경을 둘러싼 논의의 시작은 이런 상황인식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국·공립 기관이 아닌 민간에 의해 먼저 시행된 사립 창작스튜디오의 시초는 1995년 경기도 파주에 설립된‘하제마을’로 볼 수 있다. 이어서 1998년 문을 연‘쌈지 창작스튜디오’와 2000년 영은미술관 개관과 함께 시작된 ‘경안 창작스튜디오’, 그리고 2002년 시작된 ‘가나아뜰리에’ 등을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사립 창작 스튜디오로 손꼽을 수 있다. 이런 사립창작스튜디오의 형성 과정과는 별도로 1997년 문예진흥원의 후원으로 강화와 논산에 있는 폐교를 임대해 창작공간으로 활용한 전례가 있기는 하나 그 활동이 상대적으로 미비했다. 또한 현재에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폐교를 활용한 작업공간이 있기는 하나 이 역시 대부분 작가가 개인적으로 임대해 사용하는 실정이므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사립창작 스튜디오 논의에서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하제마을
먼저, ‘하제마을’은 단순히 작업실이 모인‘집단 창작촌’의 개념을 넘어 작가가 아닌 제3자에 의해‘작가의 창작활동지원’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형성된 최초의‘사립 창작스튜디오’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하제마을의 존재는 이에 못지않게 순수 민간인의 자발적 지원으로 형성됐다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하제마을이 처음 설립된 1995년은 국내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나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전례나 관심도 없는 시기였고, 이런 상황에서 더군다나 미술계 인사도 아닌 개인이 사재를 털어 작가에게 작업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제마을이 있게끔 한 장본인은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약국을 경영해온 약사(藥師) 권창호 선생이다. 그는 지금까지도 작가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행정의 기본원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하제마을은 순수한 마음에서 아무 조건 없이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작가를 지원하는 설립자의 뜻을 충분히 헤아린 입주 작가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들은 강제적 규율과 명문화된 제도적 장치 없이도 설립자와 입주작가 사이의 인간적 신뢰와 배려를 통해 사립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에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제마을의 신규 입주 작가 선정은 기존 입주 작가의 추천과 설립자와의 면담으로 이뤄지며, 작가들은 개인작업 외에 자체적으로 정기적인 토론과 세미나를 진행하며 비정기적으로 오픈스튜디오 행사를 열고있다.
과거 하제마을을 거쳐 갔거나 현재 입주해 작업하고 있는 작가로는 김동찬(기획), 김승영(설치), 김창겸(설치), 김창호(동양화), 김미형(설치), 김성남(서양화), 김재홍(서양화), 신범상(조각),유근택(동양화),이병두(동양화),이필두(영상), 정종산(조각), 최홍선(도자), 곽경화(도자), 홍순명(설치), 이순종(설치/단기), 차기율(설치/단기), 유현미(설치/단기), 김태준(설치/초대), 임택(동양화), Alan van every(미국/단기PRM), Bernd halbherr(독일/레지던시PRM), 전은숙(인턴), 김숙희(인턴), 문수성(인턴), 김진(평면/단기PRM), 이승현(서양화/단기PRM), 유진상(평론), 김현주(단기PRM),박은선(설치), 송민철(독일/단기PRM),고충환(평론/단기PRM),이현열(동양화) , 정경희(서양화) 등이 있다.
쌈지 창작스튜디오
이처럼 하제마을이 개인에 의해 지원되는 소규모자립형 사립 창작스튜디오의 모델이라면, ‘쌈지 창작스튜디오’는 기업에서 지원하고 운영하는 보다 전문적인 사립 창작스튜디오의 전형이 되고 있다. 1998년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있던 쌈지의 구(舊)사옥에서 시작된 쌈지 창작스튜디오는 2000년 홍익대 근처에 전시장과 공연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 공간인 ‘쌈지스페이스’가 개관하면서 함께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엇보다 쌈지 창작스튜디오가 다른 사립창작스튜디오와 구별되는 특성은 첫째, 실험적인 성향의 젊은 작가와 외국인 작가를 대상으로 작업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작가들의 거주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작품발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젊고 유능한 작가를 대상으로 창작공간지원과 전시지원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창작스튜디오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성과를 미술계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1012평 규모의 스튜디오 9개로 구성된 쌈지 창작스튜디오는 1년간 입주해 작업하는 ‘개별 입주 작가’와 3개월 단위로 입주하는 ‘단기 거주 작가’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작가나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작가 및 외국인 작가를 위한‘단기 거주 작가’ 프로그램은 기존 쌈지 창작스튜디오가 지녔던 특성에 해외 미술가와의 네트워크 기능을 강화시킴으로써 국제 미술계에 한국의 젊은 미술을 소개하는 메카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1기작가로 참여 했던 고낙범, 김홍석, 박찬경, 손봉채, 이주요, 장영혜, 정서영, 홍순명을 비롯해 현재 입주해 있는 7기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쌈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간 작가 대부분은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가능성을 지닌 작가를 선정하고, 이들 작가간의 정보 교환과 공동체 의식을 자극하는 고도의 문화 마인드와 체계적인 작가 지원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쌈지’라는 기업의 마케팅전략이 미술과 만나 이룬 문화산업적 성과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경안창작스튜디오
그런가 하면 경기도 광주시에 자리 잡은 ‘경안창작스튜디오’는 지난 1992년 설립된 재단법인 대유문화재단이 재단창립 8년 만인 2000년 개관한 영은 미술관과 함께 출발했다. 무엇보다 경안창작스튜디오는 작업공간은 물론 입주작가를 위한 숙소와 식당, 도예공방, 세미나실 등 부대시설을 갖춤으로써 창작과 거주가 동시에 가능한 본격적 의미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개관 당시 미술계 안팎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그 의욕적인 출발에 비해 현재 경안 창작스튜디오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접근이 용이하지 못한 지리적 입지요건 외에도 이처럼 완벽하게 구축한 하드웨어를 지속적으로 꾸려나가야 할 실무주체의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재단 측의 소극적 지원 태도 등으로 파생된 시스템 부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단지 경안 창작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오너 개인의 막대한 영향력 아래 놓인 대다수 사립미술관이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한편 지금까지 5기에 이르는 경안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의 구성을 살펴보면, 원로작가와 현역교수 등이 포함된 폭넓은 연령층과 다양한 장르의 작가가 혼재되어 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작업공간과 거주에 대한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작가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미술관 측의 좀더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가나아뜰리에
이렇게 볼 때 2002년 설립된 ‘가나아뜰리에’는 영은미술관의 경안 창작스튜디오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국내 대표적 상업 화랑인 가나아트에서 운영하는 가나아뜰리에는 비영리 기관인 사립미술관과는 다르게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화랑에서 운영한다는 점에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종로구평창동에 자리한 가나아뜰리에는 입주 작가에게 30평정도의 작업공간이 주어진다. 1기 작가였던 고영훈, 반미령, 배병우, 사석원, 이동기, 임옥상, 유선태, 전병헌에 이어 고낙범, 김아타, 박영남, 박은선, 안규철, 양만기, 이상현, 하상림, 홍경택 등 9명의 작가가 2기 작가로 입주해 현재 작업하고 있다. 이들 입주 작가에게는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주체가 상업화랑인 만큼 그에상응하는 계약조건이 있겠으나, 자세한 내용은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처럼 상업화랑에서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이는 그만큼 한국 미술계의 지층이 두터워졌고 창작과 향유의 매개가 되는 화랑의 역할 또한 그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간략히 살펴본 네 군데 사립창작스튜디오는 개인과 기업 그리고 사립미술관과 상업 화랑이라는 각기 다른 주체에 의해 지원되고 있음을보여준다. 그리고 그 운영방식 또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국내 사립 창작스튜디오의 수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미비하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중앙정부차원의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개발과 지원이 절실함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http://www.kcaf.or.kr/zine/artspaper2005_04/02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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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제마을이 더더욱 발전하도록 노력하고 항상 미래를 위한 창작스튜디오가 되길 기원합니다.
사립 창작스튜디오 특성 분석을 잘 한것 같아.... 올해로 10년이... 작가의 독립적 창작성을 유지하며 하제마을 특성을 살릴수 있는 좋은 의견 개진 바랍니다.
오호 ^^
많이그립습니다. 너무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