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세존사 인터넷 방송실입니다.
벌써 한 주가 지나고 새롭게 한 주가 시작하면서
오늘 10월이 다 갔네요. 10월 31일입니다.
내일이면 11월달이 되고 금년도도 두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쉽게 흘러가는데 오늘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과연 나는 이 세상을 내 의지대로 왔는가?
아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내 의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태어나고서가 또 문제인데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을 회고해서 보면
과연 이 세상에서 내가 내 의지대로, 살고 싶은대로 그런 삶을 살았을까?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각기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공부가 안되고,
또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크고 싶었지만 키가 커지지 않고,
또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또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지만 그렇게 만나지지 않고
그래서 이 세상은 어느 것 하나도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막강한 힘에 의해서, 그런 작용에 의해서 내가 여기가지 실려 온 것이 아닌가
마치 낙엽이 바람에 실려가듯이, 그렇게 표류하는 배처럼 살아 온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져 봅니다.
아마도 불자 뿐만 아니라, 방송을 듣는 모든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해 봤으리라
믿습니다만, 그럼 앞으로의 삶은 과연 내 의지대로 살 수 있을까?
그것도 장담 할 수 없지요.
지금까지 산 삶을 보더라도 내 의지대로 살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 뭐냐?
이것은 분명히 내 의지가 아닌 절대의 어떤 다른 힘이 존재한다.
그 절대의 어떤 다른 힘이 뭐냐?
그것을 부처님은 연기법이라고 설명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연법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그런 말이지요?
그러면 그 인연법을 우리들이 잘 알면 곧 나의 삶도 어느정도는 교정하면서 자기가
바라는 바 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오늘은 고봉 화상 선요서 두 번째 이지요?
지난번에 시작해서 마지막이 되겠는데 한번 봅시다 오늘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喬祖(교조): 그랬어요.
預西峰法席以來(예서봉법석이래)로 每(매) 抄集示徒法語之切於叅決者 名之曰禪要(초집시도법어지절어 참결자 명지왈선요)라하고, 그렇게 했거든요.
여기 교조라고 하는분이 뭐냐하면
교조는 홍교조를 얘기하지요?
교조는 법명입니다. 교조를 법명으로 썼는데 할애비조(祖) 자를 쓴 것을
저는 생각을 해 봤어요. 왜 고봉 화상께서 조(祖)자를 썼을까 하고요.
속가 상좌, 속가 제자, 불교를 믿는 모든 분들이 절에 다니면
자기가 다니는 절이나 큰스님이나 자기가 귀의한 스님의 제자이겠지만,
특별히 출가한 상좌나 또는 세속에 있어도 출가한 상좌처럼
법명을 주고 그런 연을 갖는 것을 세속, 속가상좌라고 그러지요?
이런 속가 제자에게 할애비조(祖)자를 써 준 것이 어떤 의미일까?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왕조를 보면 말이지요?
대가 다시 바뀔때 조(祖)자를 붙입니다.
그래서 태조하면 조선시대에 태조대왕 그러지요?
처음 나라를 열고 왕이 되면 태조라고 그럽니다. 최초로 크게 열었다.
그런 할아비 역할을 한다, 시조다 이 말이지요?
최초로 나라를 열을 시조다 그런 뜻에서 태조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종(宗)자를 붙입니다.
세종, 영종, 효종할 때 종이지요? 종(宗)자는 마루종자 이니까?
종묘사직의 가장 우두머리라고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종정이라고 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불교 종단에 가장 우두머리이다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지요?
조(祖) 자를 붙이면 세조 라던가, 인조 라던가,
인조반정 그러지요? 반정을 해서 나라의 대를 끊고 다른 대로 이어 갈 때
같은 씨족이라고 해도 다른 대를 이어갈 때 조(祖) 자를 붙이지요?
그런 것으로 봐서 고봉스님이 홍교조의 법명을 교조라고 붙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글 내용과 상관이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교조를 앞에 쓴 것은 홍교조가 스스로 서문을 쓰면서 자기가 자기 이름을
쓴 것은 만약 제가 서문을 쓸 때 “장산이 무엇 무엇을 하다” 하는 것처럼
여기의 의미는 “저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預西峰法席以來(예서봉법석이래)로, 예(預) 자는 미리預 자로,
그렇게 “오랫동안 ,옛날부터” 그런 의미를 갖고 있지요?
제가 서봉의 법석에 참여(참석)한 이 후에, 서봉의 법석이라는 것은
서봉에 계실 때, 그런 의미입니다.
서봉이라는 것은 서봉사 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서봉사에서 (법석) 법문을 시작할 때,
“지금 여기 다른 절에 있지만 과거 어느 절에 계실 때”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 이래로,“법석에 참여한 이후로” 그런 얘기지요?
스님께서 每(매)양 했는데, 每(매) 자는 여기 每 자 하나만 넣었지만
每(매)양 그랬는데 이 의미는 “스님께서는 每(매)양, 스님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고봉화상이라는 이름이 숨어 있지요.
“고봉화상께서는 每(매)양” 그러지요”
매양 쓰신 법어를 참구하고,
초집(抄集)이라는 것은 모으고, 초하다는 것은 쓴다는 뜻입니다.
필기하다 그런 예기지요?
초집(抄集)이라는 것은 “써서 모은” 그런 얘기지요.
써서 모은 법어를 참구하시고 초집시도법어지절어 참결자는
스님께서는 매번 저에게 가르키신 법어 가운데 참구하고 매번,
시도(示徒) 라는 것은 “여러 무리들에게 보여 주다”.
불교는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중(示衆) 이라고 했을 때는 보통 상단 법어를 시중(示衆)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법상에 올라가서 법문을 하시는 것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뭐와 같으냐? 석가모니부처님이 영축회상에서 가섭존자에게
연꽃을 들어 보이신 것처럼 이와같이 조사님께서도 법상에 올라가셔서 모든 그 모습을
연꽃을 들어 보여 주신 것처럼 보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보일 示 자를 쓰지요.
그래서 여기서 시(示) 자는 법어를 하신 의미를 얘기 합니다.
매번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법어 가운데 참구하고
참결자는 명지왈선요(名之曰禪要)라 한다 그랬어요
그 이름을 선요라고 하고 그랬어요
어떤 것을 선요라고 하냐하면, 그 전에까지는 선요가 없었지요?
禪要 (선요) 라는 것은 선의 요점이다 그런 뜻이지요.
그래서 선요라는 말이 그 전에는 없었는데 그러면 선이라는 것이 뭐냐?
여러분들께서 선에 대한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간략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의 수행 방법 가운데 몇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선정을 닦는 것,
하나는 교학을 닦는 것,
하나는 염불을 하는 것,
또하나는 주력이 있지요?
주력도 염불과 거의 같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패턴이지요 수행하는 방법이,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염불한다고 하면 말이지요? 좀 천시하고 하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염불하는 스님들이 누가 물으면 “나 염불만 합니다” 그렇게 말 안합니다.
참선한다고 해야 선객이라고 해서 좀 알아줄 것 같고, 근사할 것 같고,
나는 교학을 한다던가 이래야 뭐 멋 있어 보이지.
“나는 염불합니다” 하면 “나는 무식한 중” 이렇게 하시하기 때문에
염불하는 사람들이 들어 내놓고 염불을 못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 된 것이지요?
이 염불선, 염불 정진이라고 하는데,
염불이 사실상 스님들이 입만 열면 신도들에게 염불을 가르치잖아요. 염불하라고,
사실은 스님들도 염불을 하사면서도 염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를 잘 꺼려하지요.
그런데 염불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염불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되면 말씀 드리기로 하고요.
수행 방법 가운데 선정(禪定)이 있는데,
삼매에 들어 간다는 뜻이 있는데
선이라는 것이 뭐냐? 원효 스님이 주창한 구심주(九心住)라는 것이 있어요
(카페에 올려 놓았습니다,)
구차제정(九次第定)이 있고 사정(四定)·팔정(八定)등이 있고
이와같이 선정을 닦는데 원효 스님께서는 구심주를 주창하셨다.
그런 얘기지요. 그래서 구심주를 살펴 보면
계(戒)를 청정하게 지킬 것,
의복과 음식에 부족함이 없을 것,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야 할 것,
모든 연(緣)이 되는 사무를 쉴 것,
그러니까 스님이 괜히 마을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던가
활을 들고 사냥하러 다닌다던가,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낚시하러 다닌다던가 그러면 안되겠지요
이런 모든 선행 조건을 맞춰서 수행에 이익되게 하는 것,
그것이 곧 구심주 입니다.
① 내주(內住;내면적인 십심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믿음과 통찰)
② 등주(等住;화엄경 십주에서 말하는 청정심과 평등심을 얻는 것)
③ 안주(安住;평안하게 됨)
④ 근주(近住;가까이 머무름인되 항상 불법(佛法)에 가까이 머무름)
⑤ 조순(調順;마음을 조절하여 평등성(평안)을 이룸)
⑥ 적정(寂靜;고요적정이 이뤄지고 불이(不二)이 법을 성취함)
⑦ 최극정(最極靜;지극히 고요함, 일체의 번뇌를 쉬는 것)
⑧ 전주일취(專住一趣;오로지 한 가지 길에 머무름)
여러 가지 다 잘 한다고하면 그 사람은 실제 다 잘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보면 여러 가지 다 잘한다는 사람은 실제 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가지를 잘해야 되어요.
⑨ 등지(等持住;한결같이 마음을 유지함)이다. 그랬어요
이것이 구심주인데 이것은 모두다 화엄경에서 가져온 좋은 말씀들입니다.
스님들이 일상삼매(一相三昧)라 하며 또는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이루고자하는
수행 과정들이 있지요?
다음 살펴보면
久欲與有志者(구욕여유지자)로 共之(공지)러니, 그랬습니다.
久는 오래 오래 그런 얘기인데,
구욕여유지자 라는 것은 “뜻이 있는 자와 오랫동안 더불어”그런 얘기입니다.
서봉사에서 뜻이 있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거기 있었다.
또는 참선 하는 사람들과 거기 있었다, 이런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한자는 우리나라 말 같지 않고, 물론 중국사람들은 읽으면 뜻이 통하겠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말이기 때문에 뜻 글자이기 때문에 새겨 봐야 됩니다.
之(공지)러니, 뜻이 통하는 사람들하고 “함께 있더니” 그런 얘기입니다
“하다가”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뜻이 있는 자들과 함께 하다가”
一日(일일)에 擧似姑蘇永中上人(거사고소영중상인)하니
一日 은 어떤날에, 어느날 그런 뜻입니다,
일일이라는 뜻은 열흘 속에 하루라던가, 일주일 속에 하루가 아니라
“ 어느날, 하루는 ” 그런 뜻이지요.
어느날 擧似姑蘇永中上人(거사고소영중상인)하니,
거사(擧似)는 “들은 것 같다,:”
고소(姑蘇)란 “ 고소산 ” 이름입니다.
영중(永中)이라는 것은 “영중사”라는 절이 있었고요
상인(上人) 은 스님을 상인이라고 합니다.
사람 위에 있다고 해서 상인이라고 하지요?
스님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상인, 대사,또는 화상, 또 선방에 계시면 선사, 선사의 높임말은 대선사,
또 종단에서 어른을 대종사, 이렇게 여러 가지로 스님을 부르는 이름이 있어요.
비구 스님들도 이름이 한가지가 아닙니다. 그냥 비구스님이 아닙니다
처음에 10계를 받으면 사미라고 그럽니다. 사미나 사미니 니 자가 붙으면 여자지요.
그 다음에 비구계 250계를 받거나 375계를 받으면 비구와 비구니가 되는데,
비구 비구니가 되면 다 되는 것이 아니어요, 비구 비구니 되는 것을 보통
정덕(正德)스님이라고 합니다. 다시 시험을 쳐야 됩니다.우리 조계종은,
시험쳐서 합격을 하고,
그러니까 출가한지 10년이 넘고 그러면 대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 대덕들께서” 통칭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요.
이와같이 스님을 부르는 이름들이 여러가지로 많습니다
“영중사의 스님들과 함께 했으니”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영중사 스님이 홀연히 만났다, 함께 했다” 그런 얘기입니다.
欣然欲 募緣鋟梓(흔연욕 모연침재)하고
흔연욕 “흔쾌히 기쁘게” 그런 뜻입니다.
“이런 것(자기가 쓴 선요)을 영중사 스님께 보였더니” 그런 얘기입니다.
이 일을 아주 기뻐하며 흔연욕하며 모연침재하고,
침재는 “뭘 나무에다 새긴다” 그런 뜻입니다, 새길침 자와 나무재 자입니다.
나무에다 무엇을 새기는 것,
여러분들 팔만대장경 봤을 것입니다.
나무에다 글자 새겼지요? 그것을 침재목 그러지요. 글자를 새긴다.
그래서 침재해서, 흔연히 묘연해서, 여러 인연들을 모아서 침재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인연 가지고 안되니까
책을 내는데 돈이 많이 들잖아요.
종이도 사야되고, 나무도 구해야 되고, 조각하는 사람도 구해야 되고,
그렇게 해서 책을 만드는 과정이 옛날에는 아주 힘이 듭니다.
요즈음도 책 만드는 과정이 힘이 듭니다만 아주 힘들어요.
그렇게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까
인연을 모은다 그런 뜻이어요.
요즈음은 화주책이라고 해서 화주 돌리는 것을 인연 모음,
그래서 모연집, 모연문, 그러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였더니 책을 모아서 펴 내시려고 하였더니 하고
且俾喬祖(차비교조)로 爲之序(위지서)하라하야늘, 그랬어요.
이렇게 보였더니 이 일을 아주 기뻐하며 저로 하여금 선요의 앞 글을
쓰게 하였습니다. 선요의 서문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서문을 쓴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내가 서문을 쓴 것은 내 맘대로 쓴 것이 아니라
영중사 스님께서 서문을 쓰라고 했다 이말입니다.
영중사 상인 (스님)이 누구냐? 고봉 스님의 제자인 지현(智現)스님을
일컬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현스님이
“거사님께서 서문을 써 주십시오” 그렇게 얘기했다는 말이지요.
喬祖 旣已承命(교조 기이승명)하고,
나는 이미 승명하고, 받들어서 이었다, 허락했다 그런 얘기지요.
그 부탁을 받들었으나 다시 그분에게, 그 분이 누구지요? 영중사 스님,
復告之曰師(복고지왈사)의 別有一要語 在綱領外( 별유일요어 재강령외)하야
복고지왈사(復告之曰師)는 노사에게는 따로 긴요이 할말이 있는데
별유일요어(別有一要語)라, 노사께서는 왈사의 사는 고봉화상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스승께서 별도로 긴요한 말씀이 하나 있다” 이말입니다.
그것이 뭐냐?
재강령외(在綱領外)라 하야, 강령외 하야, 강령 밖에 있다.
옷깃과 옷이랑 옷깃이랑 그물이랑, 그물줄이랑, 벼리랑, 그물망이랑 이렇게
말씀 드렸지요?
그런데 강령, 강령 밖에 있다 했어요.
그 말씀이 어디 있느냐?
내가 아무리 글을 쓰고 조사 스님의 어록을 다 기록해서 만들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조사 스님게서 말씀하신 그 말씀은 강령 밖에 있다. 저 밖에 있다 말이지요
여기 뒷구절 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藏之虛空骨中(장지허공골중)하니, 그랬어요
강령이 허공 밖에 있는데, 그 강령이 어디에 있느냐?
그 강령이 허공 밖 뼛속에 숨겨져 있기에, 그랬어요
허공 골조, 허공의 뼈, 허공에 뼈가 있다고 가정을 하고
뼈가 있다면 그 속에 숨겨져 있다.
이 뭡니까? “문자 밖에 있다” 그런 얘기 입니다.
“ 언어 밖에 있다”
선요에 쓰여져 있는 법문은 선사께서 말씀 하셨지만 실제는
저 언어 밖에 있다.
우리가 보통 신문을 읽을 때 행간을 읽으라고 하지요?
신문을 읽으면 글 쓴 것은 알겠는데, 알똥말똥한데
글 내용 가운데 그 실제 담고자 하는 것은 그 속에 있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선사의 마음도 저 허공 골 속에 있다” 그런 얘기입니다
兄欲鋟(형욕침)하고 그랬어요.
형이 책을 만들고, 침은 새길 침인데 여기서는 책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형이 새기고” 그런 뜻입니다
我欲序(아욕서)하오니,
나는 서를 달고자 하니, 서를 쓰고자 하니
皆不能(개불능)일쌔,
다 능하지 못하다, “할 수 없다 ”그런 얘기지요.
앞 글을 쓰고자 하나 다 보일 수 없다 그런 얘기입니다
“내가 서문을 쓰고자해도 우리 스승의 뜻을 내가 다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 뜻으로
개불능일새 그런 얘기입니다
尙俟他日(상사타일)에 更作一番揭露(갱작일번게로)하노라,
훗날에, 바라던대 뒷날 다시한번 그 내용을 올바로 들어 낼 것을 기약하며 봅시다 라고
말 하였노라, 일번게로, 갱작, 다시한번 짓는다, 내가 정말 일순간에 돈오 했다면
그 뜻을 밝혀서 들어 낼 것입니다.
거사님께서 쓰신 내용이 서문이 정말 기가 막혀요.
제일 마지막을 한번 볼까요?
至元甲午重九日 天目叅學直翁 (지원갑오중구일 천목참학직옹)洪喬祖 謹書 (홍교조 근서) 그랬지요?
지원 이라는 것은 옛날에는 연호가 있었지요?
갑오년 (1294) 重九日 하면 重월을 9월이라고 해요.
重九日 그러면 9월9일입니다. 천목이란 천목산을 말하고
천목산에서 참학이란 공부했다는 뜻입니다.
공부한 직옹 홍교조가 삼가 글을 쓰다.
그래서 천목참학지공 그랬지요?
홍교조 근서, 홍교조가 글을 쓰다 그랬어요.
무슨 뜻인지 잘 아시겠지요?
한문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한문 글자 하나 하나가 옥편 있는대로 새기는 글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글자도 있고, 글자 내용 속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달리 담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낯설고 낯설어도 시간이 흘러서 2-3 개월정도 흐르다 보면
한자가 전혀 낯설지 않고 경전이나 조사 어록은 한자를 봐야 더 잘 들어나는 것 같고
그 뜻을 잘 알수 있는 것은 이제 한문이 많이 익숙해졌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장산 합장.
고맙습니다. 다경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불하세요 .....() 오늘도 새벽잠 설치셨겠습니다.그래두 건강은 꼭 챙기셔야 하네요......천수도 어제는 로봇합체 하듯이 생방송 녹음 붙이기 하여 올린다구 신경 좀 썼네요.스님께서도 뒷부분은 다시 녹음하셨나보드라구요 ㅎㅎ 스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어제 방송 상태가 부족했기에 일찍 서둘러서 녹취 올렸습니다. ()
고맙습니다. 다경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불하세요 .....() 오늘도 새벽잠 설치셨겠습니다.그래두 건강은 꼭 챙기셔야 하네요......천수도 어제는 로봇합체 하듯이 생방송 녹음 붙이기 하여 올린다구 신경 좀 썼네요.스님께서도 뒷부분은 다시 녹음하셨나보드라구요 ㅎㅎ 스님 감사합니다.
다경님! 수고 하셨습니다. _()_
藏之虛空骨中(장지허공골중)하니...선사의 마음도 저 허공 골 속에 있다... 다경님!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