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문학16집수필>
집뱀
양 효 숙
오랜만에 친정으로 나들이를 갔다. 엄마 옷으로 갈아 입는데 뭔가를 더 찾으신다. 쓰다 남은 생리용품을 꺼내 놓으신다. 엄마에게도 폐경이 온 것이다.
나는 열 세살 때 초경을 했다. 엄마의 생리 팬티를 어설프게 입고 집밖 변소를 드나들었다. 붉은 노을이 질 무렵 엄마는 들녘에서 돌아왔다. 품을 팔고도 품삯을 받지 못한 채 돌아온 고단한 엄마가 밥상을 차렸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고 주무셨다. 할머니가 사람 속에는 포함되지만 더 이상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를 밀어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한 느낌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쥐가 많았다. 그래서 쥐구멍이 많았다. 우리 집이 쌀자루인양 뚫어대는 쥐들과 밥그릇 싸움을 한다. 배고픈 힘겨루기는 기싸움으로 변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쥐 잡듯이 하고 며느리는 앓는 소리를 하는 쥐를 잡는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날에 흙집의 들뜬 벽지를 타고 구렁이가 스르륵 들어왔다. 엄마는 쥐를 잡듯이 뱀을 잡았다. 붙박이장처럼 앉아 있던 할머니가 그 뱀을 보고 일어섰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엄마를 며느리라고 부르기보다는 ‘독한 년’이라고 부르며 스르륵 마당을 지나서 마실을 갔다.
엄마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만큼 정말 독했다. 밭일하는 엄마 발을 실수로 물고 간 독사는 독을 뿜어내면서 죽어갔다. 그 옆에서 부어 오른 발목을 붙들고 혼자 빨아내더니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엄마는 산에서도 고사리만 꺾지 않았다. 고사리처럼 고개를 들고 서있는 독사까지 꺾었다. 독사는 상처없이 잡혀서 허리가 부실한 아버지 몸이 되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아직도 소주에 담긴 독사들이 묻혀 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들린다. 독사의 독이 약이 될 수도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할머니는 뱀을 잡는 며느리보다 뱀을 더 무서워했다. 그래서 뱀을 잡은 며느리를 잡으려 들었다. 엄마에게 비빌 언덕은 친정이 아닌 교회였다. 뱀은 언제나 엄마에게 있어 교활한 존재에 불과했다. 지구를 어느 별의 감옥으로 표현한 사람들도 있는데, 감옥을 지키는 녀석으로 뱀을 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구렁이를 잡던 날밤에 혼자 시달렸다. 구렁이들이 스르륵거리는 소리에 에워싸였다. 그럴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며 싸웠단다.
집뱀이라고 불리는 구렁이를 잡은 죄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두고두고 후유증처럼 시달렸다. 며느리 잘못 들여서 집안이 망한다고 믿는 할머니와 소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천상을 향해 가는 할머니에게 귀가 어둡다는 이유로 누구나 소리를 질러야 했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소리를 질러 말하면 모든 상황이 오해로 엮인다. 시어머니에게 대든다는 누명을 쓰고 만다. 나는 중간에서 통역할 수 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발견한다.
엄마의 혼수부터 시작되는 할머니의 이야기 흐름과 논밭에서 몸이 부숴져라 일하는 엄마의 메시지를 읽는다. 엄마라는 사람은 할머니가 누운 자리에서 아기를 낳고 들녘에서 야생동물들처럼 산후조리를 했다.
집뱀이 잡힌 이후 우리 집 형편은 오히려 좋아졌다. 논밭이 생기고 좋은 씨를 선택해서 그곳에 뿌린다. 엄마의 눈물이 씨로 맺혀 떨어진다. 아쉽게도 치매에 걸려 며느리조차 뉘시냐고 묻는 할머니는 흥한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가셨다. 그 무렵 우리들도 도회지로 떠났다.
엄마는 동굴같았던 그 집을 헐어버렸다. 그리고 그 터에 새로운 집을 지었다. 구역예배 드리려고 오는 교인들 외에는 마실조차 오지 않았던 옛집이 한순간에 헐렸다. 들쑤시고 꿰맨 집에 미련을 두는 것은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추억까지 처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새 집에서 엄마는 새 사람들을 맞으셨다. 큰 며느리와 작은 며느리를 들이고 당신 사위도 직접 고르셨다. 외손자 태몽도 크게 꿔 주시고 용꿈이라고 기대가 많으시다. 놀라운 변화는 더 이상 뱀을 잡지 않았다. 그제서야 뱀이 무서워졌다는 말을 했다. 엄마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친정집을 지키는 집뱀은 엄마였다.
엄마는 아버지가 계셔도 언제나 바깥 사람으로 사셨다. 우리보다 먼저 눕고 아침이슬 머금은 풀처럼 일어나셨다. 어린 우리들이 엄마를 독차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항상 일을 하는 엄마 모습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불을 덮어주면서 자장가를 부르지도 않았고 동화책을 읽지도 않으셨다. 잠자고 일어나는 우리들의 볼을 사랑스럽게 부비면서 안지도 않았고 가끔씩 사랑한다고 속삭이지도 않았다. 그런 필름이 없어서 현상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결같이 불평하지 않았다. 그런 당신을 향해 우리는 두 팔을 벌릴 뿐이다. 억새풀처럼 살아야했던 어머니의 고단함을 껴안기 위함이다. 어미인 당신은 자식들 가슴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새로운 기운이 된다. 끈질기게 따라 다니는 버팀목이 있다면 당연히 엄마라는 사람이다.
시어머니 수발을 마지막까지 해드리고 그 옷가지들을 모두 태우지 않고 골라 입는 분이다. 허물처럼 벗어놓고 간 옷가지들이 할머니의 허물을 덮어준다. 어느새 할머니가 된 엄마는 손자들과 놀면서 천천히 괘도 이탈을 하는지도 모른다. 마당에 있는 코브라 수도꼭지에서 아이들이 물장난을 한다. 때마침 노을이 배경 그림인 듯 타오른다. 엄마는 ‘내가 늦복이 많구나’ 하신다.
정작 국어사전에는 집뱀이 없다. 집모기, 집비둘기, 집돼지, 집사, 집사람 등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