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를 드는 아이 >
작은 아들은 비보이다. 부모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길을 가려고 한다.
취미로만 춤을 추겠거니 했지, 본격적인 b-boy가 될 꺼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작은 아들은 2년 전부터 시내 청소년회관 연습실에 가서 춤을 연습했다.
아들이 추는 춤은 비보잉이다. 비보잉은 일반적으로 ‘브레이크 댄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비보인B-boying'은 비보이가 춤을 추는 행위’라는 의미다.
어느 날 느닷없이 본격적으로 비보이를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남편과 나는 할말을 잃었다.
취미로 하라며 달래고. 그 길은 정말 사회적 편견도 심하고. 현실적 측면에서 돈도 별로 벌 수 없는, 그래서 가족을 무양할 수도 없다며 끊임없는 설득을 하였다. 여러날 동안 귀가 닳도록 말을 해도 아들은 벌써 심지를 굳힌 듯 했다.
여름방학 때 프로팀 오디션이 있다며 신청을 했다. 아들은 우리의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해서 성공하겠다고. 되레 우리를 설득하려 들었다. 앞이 캄캄하고 어이가 없었다. 왜 그렇게 힘들고 고생스런 길로 가려는지…
그러나 남편과 나는 더 이상 아들을 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은 많은 망설임 끝에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야지 뭐. 대신 공부는 하면서 해야 돼. 알았지?” 반대가 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허락을 했다. 남편도 고민이 많았을 것 이다. 춤을 추겠다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어른들의 듯을 꺽지 못해 하고 싶었던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상처가 가슴에 남겨져 있기에…
프로팀 오디션을 무사히 치르고 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별로 실수도 하지 않았고, 반응들도 괜찮았다며 예감이 좋단다.
이틀 후 아들은 연습생으로 예비 합격하였다. 이제 다니던 학원도 당장 그만두어야 하고 매일 서울로 연습을 하러 다녀야 한다.
정말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공부는 저만치 제쳐두고 춤이 우선이 된 것이다.
첫날 연습을 갔다 온 아들의 말이 더 가관이다.
“무슨 팀이 3시간 밖에 연습을 안해”
어린 아이가 어디서 나오는 에너지인지 모르겠다. 저 열정이 공부였다면 하는 생각은 지극히 평범한 부모의 똑같은 바램일까.
며칠 후. 아들은 Etn방송에서 하는 ‘신한류원정대 비보이 showdown'이라는 프로그램의 오디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홍대 클럽에서 진행을 했는데 서울지리를 잘 모르는 아들을 데리고 그곳에 참석하게 되었다. 1대1일 베틀대회를 했는데 아들이 예선에 통과하게 되었다.
10명을 뽑아서 3주후에 다시 베틀대회를 거쳐 최종2명을 선정한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의 작가 분은 최연소 비보이면서 소질도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지껏 아들이 헛되이 시간을 보낸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뿌듯하였다.
요즘 3주 훈련과정을 촬영 하느라 아들은 3일째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다. 마지막 날이 돼서야 겨우 전화통화를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괜찮단다. 힘들어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들은 즐기는 모양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인데…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신나게 뛰어 노는 것만큼 좋아했다. 수영, 합기도, 스케이트, 축구, 육상 등 여러 운동을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될지라도 항상 즐기는 자세로 임했다. 그래서 결국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난이도가 높은 운동에 더 가까운 춤을 추게 되었나 보다. 뉴턴의 중력을 무시한 채 한 손으로 지구를 드는 아이… 그 아이가 아름다운 꿈을 활짝 펼 수 있는 세계의 무대에 꼭 설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춤꾼 팝핀현준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인간의 몸이 가장 아름답다. 얼굴과 판, 다리, 손, 발, 몸퉁이 각을 만들며 제각이 따로 움직임은 그의 춤을 보면 신체 움직임의 극한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는 음악과 하나가 돼 끝없이 다양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저와 제 춤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야 ‘양아치’로 인식되는 저희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 기울여 주죠. ‘댄서 출신으로도 저렇게 성공할 수 있구나’라며 춤추는 후배들의 자신감도 커지구요.” 초등학교 5학년 때 TV를 보며 또래 아이들처럼 브레이크 댄스를 따라하다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해하는 스스로를 발견했고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지금껏 달려왔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고는 그동안 대중적 인식이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비보이 팀들이 세계대회를 석권하는 바람에 언론과 대중들의 폭넓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하려거든 세계에서 손꼽히는 비보이가 되라고… 아들은 자신이 있단다. 팝핀현준 만큼 유명해졌으면 하는 게 남편과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 부상없이 비보이를 하는 동안, 열정을 잃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항상 주변인들에게 성실한 비보이로 비춰졌으면 한다.
아들은 이제 막 미지의 강에 발을 들여놓았다. 먼 훗날 아들은 스스로 힘들게 건너간 그 강을 뒤돌아 보며 후회 할 지도 모른다. 아니, 홀로 선택한 미래를 후회하지 않으려고 무수한 땀방울과 함께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아직도 아들이 선택한 비보이에 대한 구체적인 확실한 비전은 없다. 다만 아들이 춤을 추며 행복해하고 그 열정이 아들의 삶에 커다란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엄마로서 행복할 것 같다.
첫댓글 왕년 비보이였던 울 아들 생각이 나서 마음이 짠~. 메이, 계속 그대 아들 확실하게 뒷받침 해주삼.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덕분에 비보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슈. ~ 나도 한 번 지구를 든다면 모두 말리겠지^^
그 아이 지금 잘 나가고 있남요? 내 자식은 지가 뭐 영화만든다고 지금 초짜 영화 찍는데서 허드렛일 하고 있구만요
우리 아들은 지구를 업어주는 걸 좋아하던데( 방바닥에 누워 나처럼 몽상에 잘 빠지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