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 이길영
넓은 거실 중앙에서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웃고 있다. 햇빛을 못 받은 피부는 하얗고, 팔과 다리는 깡마른 채 반질반질 윤이 난다. 내 눈길이 노인을 모시고 있는 아들에게 머물렀다.
“어머님 돌보느라 무릎이 다 까졌습니다.”
“십삼 년째입니다.”
완전 와상 환자인 어머님 식사, 목욕 등의 수발은 모두 손수 한단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운동을 겸한 목욕을 시켜 드린다고 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이 남자. 한눈에도 귀티 풍기는 아름다운 부인이 옆에서 인사를 한다. 집안은 정돈되고 청결하여 반들반들하다. 백 평에 가까운 대형 아파트임에도 두 아이가 거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남자는 직업이 무엇일까? 물려받은 큰 재산으로 이렇게 사는 걸까?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 남자는 오십 대에 들어선 것 같다. 야무져 보이는 얼굴에 말도 참 잘한다. 노인장기요양 1등급 어르신의 재가 급여 중 방문목욕과 방문요양을 우리 기관에서 도와드리기로 그와 계약을 했다. 그 집을 나서면서 나는 어느 요양보호사를 보내야 할까 생각이 많았다. 어떤 요양보호사가 이렇게 성심껏, 깔끔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방문목욕이야 전문팀이 있으니 내가 덜 신경 쓰이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방문요양은 세 시간 이상은 서비스를 할 수가 없다. 장기요양 급여 부분에서 충족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고민 끝에 센스 있고 학력도 갖춘 요양보호사를 파견시켰다.
방문목욕 두 번 방문요양 열흘쯤에 그로부터 보내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그럴 것 같은 걱정이 사실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를 다시 찾았다. 혼자 어머니를 모시기는 너무 어려우니까 우리가 도움이 되도록 할 테니, 미흡하지만 보완해가며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십 년을 이렇게 모셨는데 앞으로 십 년은 못하겠느냐고 한다. 내 몸 좀 편하자고 도움받으려고 했는데 어머님을 소홀히 모시는 것 같아 맘이 편치 않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손길이 도통 맘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대화 중 그가 한의사인 것을 알았다. 어머님을 수발하고 오후에 출근해도 한의원이 아주 잘 된단다. 그리고 편찮은 할머니가 계시는 같은 공간 거실에서 공부하는데도 아이들 성적이 아주 뛰어나다 한다. 어머니는 그의 절대적 존재 신앙이구나 싶다. 몸이 부서져라 움직이는 그가 다시 혼자 어머니 수발을 한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단번에 그의 이름을 말하며 그 목소리에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다시 서비스 요청을 했고 대면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만난 지 일 년 만이다.
“작년 7월에 함께 한 중증 어르신은 돌아가신 분도 많고 가족들이 지쳐서 병원이나 시설로 가셨습니다. 더 좋아지신 분은 여기 어르신뿐입니다.”
“내가 한의사입니다. 더 좋아지시진 않았습니다. 더 나빠지진 않았지요.”
그는 어머니를 모실 기회를 늘려주심에 감사하다고 했다. 같은 말을 작년에 듣던 말과 지금 듣는 말의 감동은 다르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백여 명의 장기요양급여대상자 어르신과 많은 보호자를 만났고, 그간 돌아가신 어르신이 열댓 분이나 된다. 그간 나는 지나온 오십 년 삶 중에서 가장 길고 힘든 해를 보낸 것이다.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그를 다시 만나니 이제는 존경에 가까운 마음이 생긴다. 사실 지난해만 해도 굳이 저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는 무척 기쁘게 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의 십 분의 일도 못하는 나는 이렇게 지쳐 있는데 말이다. 그를 다시 만나 나는 새 힘을 얻는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는 복을 받고 있다. 반대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피폐한 삶을 사는 많은 사람을 보고 있다.
나도 장기요양대상자인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오래전 어머님이 건강하실 때다. 남편 친구분이 우리 집에 와서 뜬금없이 한 말이다.
“제수씨는 보험 들어서 걱정 없겠습니다.”
“보험이야 들었지만 무슨 보험요?”
“어머님 모시고 사니까 아이들이 보고 그대로 하지 않습니까?”
“저 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한 생각인데요. 훗날 아이들과 살지 않을 건데요.”
순간 느낌이 이상해서 고개를 들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는 사이라 속이야기를 그냥 했는데 ‘이 여자 착한 줄 알았더니 아니네.’하는 굳은 얼굴 표정이었다.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를 다시 만나면서 더욱 마음을 다잡는다. 유난히 잘하진 못해도 못하는 쪽에만 서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많은 어르신께 스킨십을 하고 정을 주면서 정작 우리 어머님께 대하는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죄송하다. 그러나 내가 어머님께 대하는 방법도 꼭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위한다고 드리는 음식의 종류도,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에 힘을 잃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방법도, 때론 남이 보기에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어르신 댁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가정을 볼 때가 있다. 따뜻한 맘을 함께 함에 감사하고 또 그들에게서 삶을 배운다.
‘잃어버림, 잊어버림’의 우리 부모님이 아닌 자녀이기를 소망해본다.
이 세상에서 효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녀는 별로 없을 것이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효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 온 우리나라에선 말할 것도 없다. 부모님을 잘 모신다는 개념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물질적인 안락함에 주안을 두고, 어떤 이는 안정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효는 불완전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마음이 함께하는 효가 으뜸이지 싶다.
(2009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