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며 충청도 내륙 깊숙한 곳으로 가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예산을 거쳐 청양 금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음식들은 말 그대로 서민적인 것들이었다. 텔레비전의 음식소개 프로에 잘난 체하고 나서는 유명음식점들이 아니라 그저 길가는 길손들이 노정에서 가장 편안하게 5000원 남짓으로 한끼 식사를 푸짐하고 맛있게 즐기며, 더러는 가다가 만나는 동네 장날 장터에서 군것질도 하며 1박쯤의 여행을 즐기기엔 이번 나선 길처럼 풋풋한 곳이 없었던 듯싶다.
1. 예산에서 만난 제대로 된 청국장과 아욱국의 맛
최근 웰빙 광풍을 타고 급부상한 식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청국장이다. 맛도 맛이지만 암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하여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우유에 타서 마시기도 하고 진액이 난 청국장을 날로 샐러드처럼 먹기도 하면서 집에서 간단하게 청국장을 만드는 발효기가 불티나게 팔리곤 한다. 건강에 좋다니 너도나도 극찬하지만 사실 청국장은 특유의 냄새로 맛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같던 식품임에 분명하다. 소위 고린내, 즉 고려취(高麗臭)라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사람을 깔보던 말이 바로 이 청국장 또는 된장에서 나는 콤콤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냄새를 즐기는 민족이 어디 우리뿐이냐. 스위스사람과 당나귀를 치즈창고에 집어넣었더니 당나귀는 치즈 냄새에 질려 들어가자마자 발버둥을 치고 창고를 튀어나왔는데 스위스 친구는 구더기가 버글대는 치즈를 다 먹을 때까지 그 창고에 아예 눌러 붙어 살았다던가? 중국친구들도 두부를 썩혀 완전히 ‘덩’ 냄새가 나는 초두부 홍방 (紅方)을 아무런 불쾌감 없이 맛나게 먹고 있으면서 우리가 청국장찌개를 끓이면 살인적인 냄새니 어쩌니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안가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 청국장은 바로 고구려의 창작품이다. 일본에 넘어가 세계적인 건강식품이라 그들이 부르짖는 낫또(納豆)도 담징이 맷돌 누룩과 함께 일본에 전해준 고귀한 선물이었음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낫또가 청국장이고 그것이 고구려의 위대한 발명품인 온돌과 함께 세계적인 식품이 된 것이다. 발효음식의 천국인 한국에서 청국장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린다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에 청국장을 “대두를 잘 씻어 삶아서 고석(볏짚)에 싸서 따뜻하게 3일간을 두면 생진(生絲)이 난다”고 하였다.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1715년)에 ‘전국장(戰國醬)’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시장이란 전시(戰時)에 부식으로 시급히 단시간 제조 가능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전국장(戰國醬)’이라고도 한다. 또는 청나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해서 청국장(淸國醬)이라고도 하는 이 것은 메주콩을 12시간 이상 불린 뒤 푹 삶아 60℃ 정도로 식힌 다음 질그릇에 담고 짚으로 싸서 따뜻한 방에서 45℃ 정도를 유지해 두면 누룩곰팡이가 번식하여 발효물질로 변한다. 이때 볏짚이 지닌 균의 활성 여부에 따라 맛이 달라지게 되는데 콩이 잘 떴으면 마늘·생강·굵은 고춧가루·소금 등을 섞고 절구에 잠깐 찧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쓴다. 고기·두부·고추 등을 넣고 끓여서 찌개를 만든다.
청국장은 기실 주로 겨울철에 먹지만 좋은 음식이 무슨 계절을 가리랴. 예산에 접어들어 청국장을 잘하는 집을 찾아간 것은 그 근처에서 한국문인 인장박물관이라 하여 글쓰는 이들의 도장을 모아 박물관을 낸 소설가 이재인 선배의 강권이었다. 예산이 고향인 이재인 선배가 고향집에 인장박물관을 내고 하나 둘 그곳을 들리는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슬며시 서울까지 소문이 난 집이 바로 예산에서 부여 청양으로 가는 29번 국도 곁에 있는 양명식당이다. 뭐 요란할 것도 없는 수수한 그 집에 들어서자 늦은 점심을 먹는 기사 두세 사람이 식사 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그저 한정식의 국으로나 나올 아욱국을 정식으로 메뉴에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욱국. ‘가을 아욱국은 대문을 잠그고 먹는다.’, ‘가을 아욱국은 계집 내쫓고 먹는다.’, ‘아욱국 삼 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못 드나든다.’ 그만큼 아욱국은 맛이 있다는 말이다.
아욱국의 국물은 새우로 많이 쓴다. 그런데 그게 정답은 아니다. 멸치 국물로 빼기도하고 충청도식으로 올갱이 즉 다슬기로 만들기도 한다. 올갱이국이란 바로 아욱국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명식당에서는 북어로 국물을 내어 토장을 풀었다. 아욱은 원래 연한 줄기와 잎으로 국을 끓이는데 억센 것은 주물러 치대서 풋내를 빼고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아욱국과 청국장. 제철 제 음식으로 말하자면 이것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 만나야할 음식들이다. 그런데 뭘 먹겠다고 작심을 하고 나선길이 아니라서인지 우연히 여름의 초입에서 만난 이 음식이 제철에 먹는 제 맛에 비겨 한 10%정도 아쉽지만 한 상 가득 차려낸 텃밭에서 기른 밑반찬이 그 값을 하고도 남는다. 토요일 일요일에 가는 길이면 근처 문인 인장박물관에 들러 시인과 소설가들이 쓰던 도장, 전각의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도 있고 조금만 발품을 팔면 일각대문이 뚜렷한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 308호 국가 중요민속자료 198호인 홍성(洪城) 조응식가옥(趙應植)에 들러 우아한 한옥의 매력에 취해보는 것도 아욱국과 청국장 못지 않은 즐거움이다. 어찌 돼지처럼 밥만 먹으러 다닐 것인가.
2. 청양을 거쳐 금산으로 가는 길
예산을 넘어 콩밭 매는 아낙네가 사는 칠갑산 허리를 질러가는 길에 청양이 있다. 맵기로 유명한 청양 고추와 구기자가 그곳 특산물이다. 금산을 가기 위해 청양을 지나다 그곳 장날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기웃기웃 거리며 장터를 어슬렁거리는 한가로움에다가 제철의 앵두며 오디를 사들고 하나씩 집어먹으며 시장을 돌다가 무화과 나무묘목을 두어 그루 사들고 시장구석에 찐빵집에 들러 만두 두 개와 찐빵 세 개를 집어먹고 마늘에 청양고추 가루, 마른 표고 뭐 그런 것들을 사서 챙기고 청양을 떠났다. 가을에 들렀으면 어김없이 이곳 특산인 칠갑산 구기자를 사들였을 것이다. 금산으로 향하며 문득 가을에 들리는 길이 이곳이구나 생각했다. 아욱국도 그러려니와 구기자를 생각하니 한철 이르게 찾은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대전에서 머들령을 지나 금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버즘나무 가로수 터널이 유독 아름답다.
저녁노을을 뒤로하고 금산에 도착했다. 십년 전인가 이곳 금산인삼축제를 평가하러 출장을 온 일이 있는데 그때 먹었던 멸치국물에 무청김치로 끓여 시래기 해장국이 생각이 나서 터미널근처 그 집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도리 없이 택시기사양반들에게 찾아가 전후사정을 설명했더니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열댓 명의 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알려준 집이 영광식당이었다. 그리고 한마디 충고를 해주는데 늦가을 또는 겨울에 먹을 음식을 초여름에 찾느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야밤에 해장국을 찾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집 동태찌개 좋아요’ 라는 충고였다. 그 역시 초여름에 먹을 음식이 아님이 분명한 것이었다. 영광식당에 들어서자 10년전 아침 해장국을 내주던 주인할머니가 어김없이 주방을 지키고 있었다. 옛 기억을 되살려 밤새 먹은 술에 쓰린 속을 달래며 아침에 먹던 무청김치 시래기 해장국 이야기를 건네자 “그걸 제대로 맛보려면 늦가을이나 겨울에 와야지요” 하며 정말 먹고 싶다면 내일 아침 만들어 주겠노라 했다.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음식들은 죄다 제철 모르고 찾아다닌 꼴이었다. 여하튼 10000원짜리 동태찌개를 시켰다.
예전 집에 손님이라도 오실 양이면 어김없이 동태 한 마리를 사다가 무를 썰어 넣어 자작자작 얼큰하게 끓여내던 동태찌개. 국물을 흥건히 잡으면 동태국이 되는 그 평범한 음식. 이즈음이야 비싸도 일본에서 수입한 생태를 넣어 끓이는 생태찌개를 먹어야 마치 맛을 아는 식도락가처럼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언 동태를 썰어 넣어 은근히 끓이며 밑에 깔린 무가 단맛을 내며 흐무러져서 동태보다 더 맛있게 익은 뒤 맛이 잘든 무와 동태살을 한 덩이 발라 밥에 비벼 먹던 깊은 맛이야 얇삽한 생태 맛에 비할 바 아니다. 주인 할머니는 늦은 저녁손님에게 짜증내지 않고 섬벙 섬벙 썰어 냄비에 넣고 고추 다대기를 풀어 그 옛날 동태찌개를 준비했고 술손님이 아니니 백반차림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 백반을 오랜만에 받은 것이
다. 내가 중, 고등학교 다닐 무렵 부잣집 녀석들만 도시락에 반찬으로 담아오던 분홍색 쏘시지, 달걀부침에 어린애 손바닥만한 조기 두마리. 무짱아치 무침에 멸치 볶음 도저히 반주 한 병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푸짐한 반찬들이 차려지고 한소끔 끓여낸 동태찌개 한 냄비가 올라왔다. 지금 나는 내자와 함께 한 이십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 그 반찬 그 찌개를 먹고 있는 것이다. 나박나박 썰어 밑에 깔아놓은 무가 흐무러지게 익어 단맛을 국물에 보탤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첫 숟갈을 뜬 조밥 한 공기. 역시 터미널의 기사양반들이 전해 준 정보는 정확했다. 내일 아침에 들리면 철은 아니라 군내가 조금 나지만 묵은 무청김치가 조금 남은 것이 있으니 시래기 해장국을 끓여 주마고 하시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늦가을에 반드시 다시 들리겠어요”’ 라고 대답했다. 여하튼 이번 먹을거리 여행은 철을 모르고 나선 것이 분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