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호구, 대한민국 부모!!
글로벌 호구!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요?
견제와 균형의 예술이라는 외교를 형님 모시는 화끈한 두사부일체쯤으로 생각하는 이메가가
여기저기 딴 나라가서 찬밥이 된 형국을 보며 지어진 말입니다.
국내에선 욕해도 외국에 나가서 내 나라 국가원수가 저런 찬밥 취급을 당하면 부끄럽지요?
그렇다면 혹시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동출판계에서도 글로벌호구가 된 건 아시나요?
1990년데 중반까지도 한국의 아동서 시장은 영업조직을 가진 대형전집회사들의 독무대였습니다.
간간히 아동서를 내는 단행본 회사가 있었지만 거의 전집이 대세였던 시절입니다.
그런 아동서 시장에 시공사나 비룡사(민음사)가 뛰어들어 조금씩 단행본 아동서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년 정도 전의 일이니다. 이에 발맞추어 인터넷이란 새로운 도서 홍보 수단이 등장합니다.
막강한 영업력이 없어도 인터넷의 우호적 서평만으로도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 쉽게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어린이책 성격상 스테디셀러도 가능한, 그런 시절이 온 거죠.
시공사, 비룡소의 성공에 고무된 출판사들은 서둘러 아동서 디비젼을 만들어 속속 이 블루오션에 진출합니다.
일단 아동서 시장에 진출하면 어느정도 책 구색을 갖추고 회사 색깔을 만들어야 자사에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엄청난 양의 신간 아동서가 필요하게 된 거죠. 국내에는 아동서 전문 필자도
일러스트레이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부족한 부분은 외국도서들로 채워졌습니다.
한편, 전집 아동서 시장은 막강한 영업력이 사업의 관건이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아주 높았습니다.
기존의 웅진, 프뢰벨, 금성, 몬테소리 정도 외엔 별다른 메이저가 출연하기가 힘든 상황이였죠.
그러나 인터넷 덕분에 엄마들 사이에 마케팅만 잘 하고 책의 질만 좀 받쳐준다면 전집도 삽시간에
베스트샐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국의 그림 예쁜 그림책들 대충 모아서 창작 전집 하나 만들어
인터넷에 소문만 잘 내면 금새 회사 인지도도 높아지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된 겁니다.
예전에는 메이저 회사 영업사원들이 뒤로 내놓는 물건들을 할인판매나 하던 전집 총판들이 이런 상황에 편승해
싸면서도 엄마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창작전집들을 찾게 됩니다. 이런 수요에 적극 대응하면서 성장한 회사들이
헤밍웨이, 챠일드아카데미, 한국슈타이너 같은 회사들입니다. 더구나 푸름이 아빠 같은 자칭 전문가께서 양으로
승부 보는 독서영재 프로젝트까지 널리 홍보해주시니 아동서에 대한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상황이 됩니다.
물론 국내 필자와 일러스트레이터로는 감당이 안 되니 많은 책들(주로 창작 그림책)이 번역서로 충당이 되었겠지요.
각종 해외 아동서 전시회에 가면 한국 출판업자들이 우르륵 몰려와 싹쓸이 쇼핑하듯 창작 그림책들을 계약하기 시작했습니다.
번역하기 적합한 책인지, 작품성이 있는 건지, 번역 필터링에 대한 아무런 성찰도 없는 마구잡이 계약이 진행되기도 했답니다.
실제로 도서 전시회에서 상담을 약속하고 만나러 간 해외 출판사가 자기들 그림책을 모 출판사가 싹쓸이로 계약해 버렸으니
저랑은 상담할 필요가 없다고 돌아가라고 한 적도 있답니다. (으~그때 봤던 그 책이 전집으로 엮여 전문가님 이름 떡 박힌
책으로 나왔더군요.ㅎㅎㅎ) 한국출판사의 이 싹쓸이 쇼핑은 해외 출판사들의 화제가 되었고 놀라울만큼 쉽게 큰 계약 실적을
내주는 한국이 이들에겐 엘도라도 쯤으로 보였겠죠.
전세계 그림책의 블랙홀 코리아, 국제 아동서 시장의 든든한 재정지원자, 글로벌호구 대한민국....
이렇게 마구잡이로 계약된 책들이 과연 번역에 접합한 책인지, 혹은 굳이 번역서를 낼만큼 좋은 책인지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이 폭발적인 수요 덕에 묻혀버린 경향이 있습니다. 더불어 그들이 불과 몇 달만에 계획하고 집필해서
뚝딱 60권씩 80권씩 찍어내는 그 엄청난 양의 신간들(수학동화, 과학동화, 철학동화, 생활동화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쩝......)이
제대로 책 구실이나 하는 것들인지도 의문이 듭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적금 깨고, 돌반지 팔아 산 책들,
과연 그 책들이 정말 좋은 책들인지 카페 엄마의 대박 이야기만 듣지 말고 객관적인 눈을 가지고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당신도 글로벌 호구, 어린이책 시장의 든든한 재정지원자로 나서신건 아닐런지요?
늘 강조하고픈 말이지만, 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고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네....저도 지난날 그렇게 들인 전집 2질이 있습니다....유명책까페에서 소위 대박이라고 했던 전집 2질을.... 보지도 않고 샀습니다. 물론 아이는 잘 읽어주었습니다. 화려한 색채에 간결한 일러스트들.....그땐 아이가 좋아해주니 제맘에 내키지 않아도 그림이 맘에 안들고 글이 맘에 안들어도 그져....아이가 좋아하니 그냥 읽어줬습니다. 지금은 그 책들 솔직히 버리고 싶습니다...지나치게 화려한 그림들과 엉성하기 그지없는 번역들....보고있으면 화납니다. 어찌 이런책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만들어 낸건지.... 부모는 분명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