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일(7/17) 태평양 연안의 휴양지 붕따우
띤양성에서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과 문화교류행사를 마치고, 하루 밤이 지났다. 아침에는 메콩강 주변을 산책하였다. 메콩강에는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쉼 없이 왔다 갔다 했다. 주민들은 강 주변에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였다.
골목길 코너에는 간단한 식사거리와 커피를 파는 카페가 많았다. 필자와 아내는 베트남 커피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 강가 카페에서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커피를 각각 한잔씩 시켰다. 약간 쓰지만 깊은 맛이 있는 커피가 좋았다. 두 잔에 1만동이었다. 베트남인은 노상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하이엔호텔 주변에서 아이스 커피는 한 잔에 1만동이었고, 광쭝소프트웨어시티 주변 식당에서는 1만 5천동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천정웅 교수가 급히 강가 식당으로 갔다. 아침에 하이 사무총장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아침 식사로 쌀국수를 시키고 이번 행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데 대하여 감사를 표했다. 띵양성 조국조선에 대한 후원금으로 200불을 전달하고 사무총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베트남에서는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문화가 있기에 접대를 할 때 과분할 정도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형편을 아는 사이에 대접만 받을 수 없기에 일단은 대접을 받고, 적당한 기회에 답례하는 것이 상호협력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이기에 손님은 대접을 받지만, 적당한 선물을 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했다. 객실에 여유가 없어서 VIP룸을 쓴 관계로 하루 밤에 50만동씩 이틀에 100만동을 지불하고 약간의 팁을 주었다. 베트남에서 호텔 팁은 하루에 2만동(약 1달러) 가량 준다고 했다.
베트남 비전트립 2일째부터 탔던 버스에 전체 단원의 짐을 싣고 붕따우로 향했다. 붕따우는 호치민시의 외곽을 경유하여 가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을 합하여 5시간 30분 가량 걸렸다. 베트남 고속도로는 저속도로에 가깝다. 승용차나 버스는 별로 많지 않고 오토바이와 화물차가 많고 도로에 비교하여 교통량이 많기 때문이다.
3시간 정도 달린 후에 휴게소에 들렸는데 중앙에 과일가게가 많았다. 두리안을 사서 즉석에서 먹고, 망고스텍을 3키로그램을 구입해서 2키로를 일행과 나누어 먹고, 나머지 1키로는 저녁에 먹기로 했다. 천정웅 박사는 초코파이를 사서 나누어주면서 ‘고향의 맛’을 느끼게 했고, 유원숙 선생은 베트남 과자(전병)를 사서 일행에게 맛을 보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붕땅우로 향했는데, 고속도로는 일직선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주변에 있는 논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논 가운데에는 군데군데 묘지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톨릭식 공동묘지가 있었다. 띤양성에서 호치민시를 거쳐 이곳까지 약 5시간 동안 산이 보이지 않았는데, 붕따우에 오니 산이 보였다. 다른 지역에 비교하여 성당이 많았고, 산 꼭대기에는 십자가나 예수상이 설치된 곳이 많았다.
사진 설명: 붕따우로 가는 고속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띤양성에서 붕따우까지 가는 5시간 정도의 거리에서 최초로 산을 볼 수 있었다.
오후 2시 30분 경에 붕따우에 도착하여 음식점에서 몇 가지 요리를 먹었다. 꼴뚜기 요리, 돼지 갈비 등은 맛이 좋았다. Sammy 호텔에 체크인 한 후 호텔로 찾아온 붕따우성 적십자사 총재(레 꽝 또왕) 일행을 면담하였다. 포스코가 붕따우성에서 의료봉사를 할 때 오덕 교수가 소개를 한 덕택으로 인사차 온 것이다. 현재 붕따우 지역에는 포스코의 큰 공장이 있고, 사회공헌 차원에서 의료봉사를 추진했는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아는 통역으로는 부족하고, 한국어를 아는 의사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는데 이는 사실상 봉사활동을 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조국전선의 도움을 받아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도움에 대한 인사를 하고, 천정웅 교수와 필자도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베트남에서는 서로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문화가 일반적인데, 이렇게 땜감(대면 관계)이 있어야 다음 일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덕 교수의 관계망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큰 도움을 받았고, 양국의 교류를 위해 필요한 인사들과 땜감도 많이 하였다.
사진 설명: 붕따우성 적십자사 총재와 직원이 호텔로 찾아와서 상호협력방안을 논의하였다.
일행들은 해변가를 걷거나 사진을 찍고 놀았는데, 필자와 아내 그리고 김선평, 류지숙, 이정화 단원 등은 수영복을 챙겨서 바다에 뛰어들었다. 긴 해변은 부산 해운대의 두 세배 쯤 되었고, 모래가 매우 가늘어서 해수욕하기에 딱 좋았다. 파도가 조금 거칠었지만 물놀이를 하기에 참 좋았다. 필자는 파도에 밀려 모자를 잃어버릴 뻔 했는데 김선평 선생이 200미터 이상을 달려가서 건져냈다.
호텔에 들어가 샤워를 한 후에 바게트와 과일을 먹고, 술을 한 잔씩 한 후에 휴식을 취했다. 저녁 9시경에 일행들이 노래방으로 초대했지만, 오늘 밤은 일찍 쉬기로 했다. 11시쯤 잠에서 깨어나 길거리를 산책하다 바닷가에 있는 비취바에서 맥주를 한 병하고 들어왔다.
장모님이 전화를 몇 차례 하셨는데, 텔레비전에서 항공기 사고 뉴스를 본 후에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집에 있는 승재와 다울이도 잘 있다고 하지만, 집 생각이 절실하다.
[이용교 lyg29@hanmail.net 2009년 7월 17일 작성, 7월 24일 재정리]
** 이 보고서는 초안이고, 향후 더욱 수정보완 될 것이다. 따라서 참고는 하되 인용을 삼가하기 바란다. 부득이 인용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한국복지교육원 이용교 원장이 쓴 ‘제1회 베트남 봉사/문화활동 - 2009 Vision Trip 보고서(안)’ ”이라고 쓴 후에 인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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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7/18) 붕따우에서 역사 기행
아침에 해변가를 걷다가 호텔 체크아웃을 한 후에 아시아 최대 규모 예수상을 구경하고 한일관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발마사지 혹은 해변산책을 한 후에 호치민시 하이엔호텔에 묵었다.
아침 식사를 막 마쳤는데 붕따우성 조국전선 주석과 부주석이 호텔로 찾아왔다. 호텔식당에서 오덕 교수와 함께 맞이하여 지난번 포스코 의료봉사단 활동에 대해서 상호 감사드리고, 향후 협력방안을 협의하였다. 주로 부주석이 이야기하고 주석이 거드는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붕따우성에서 붕따우시민은 부유하지만 시 외곽에 있는 현민(주로 농촌과 어촌 주민)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의료지원, 집짓기, 교육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덕 교수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인이 지원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자, 주석과 부주석은 매우 좋다고 화답했다. 주석은 지난 15년간 1,000여채의 집을 ‘사랑의 집짓기’로 지었다고 하면서, 매우 의욕적으로 접근했다. 향후에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어제 붕따우성 적십자사 총재가 찾아오고, 오늘 조국전선 주석과 부주석이 찾아온 것은 오덕 교수가 의료봉사단을 연계시켜준 것에 대한감사의 성격이 크지만, 외부의 도움을 유치하여 현안을 해결하고자 하는 베트남 지도층의 열정으로 느껴졌다.
사진 설명: 붕타우성 조국전선의 주석(중앙), 부주석이 호텔로 찾아와서 향후 협력방안을 협의하였다.
붕따우성 조국전선 주석과 간담회를 한 후에 아내와 함께 바닷가로 갔다. 아내는 류지숙 선생과 함께 수영을 하고, 필자는 해변을 걸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과 수평선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설명: 붕따우의 해변은 해운대의 2~3배 가량 되었고, 모래가 고와서 해수욕장으로는 최상이었다.
오전 11시에 체크아웃을 하였다. 하루 밤 숙박비로 58만동을 지불하고 음료 등 4만원과 팁을 포함하여 64만동을 지불하였다. 본디 요금은 하루 밤에 80만동 가량 되는데 마이 씨 아버지의 소개와 봉사단이라는 이유로 할인을 받았다.
점심은 한국식당 한일관에서 먹기로 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예수상을 구경했다. 붕따우시 해안가에 있는 산 꼭대기에 예수상을 세운 것인데, 계단으로 쭉 이어졌다. 계단 중간에는 예수 제자들의 모습도 있고, 각종 조각이 있어서 사진찍기에 좋았다.
일행이 올라간 시간대는 점심시간이어서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내려왔다. 예수상 주변에는 프랑스가 식민지 시절에 붕따우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대포가 2문이 있었다. 베트남은 독립되었지만 서양의 문화를 베트남에 강요한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했다.
사진 설명: 붕따우의 예수상 앞에서 이용교 교수와 천정웅 교수 가족
한일관에서 먹은 해물탕은 베트남에서 처음 먹은 한국음식이었다. 쌀밥과 한국식 반찬 그리고 해물탕이 맛깔스러웠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일부는 발마사지를 받았다. 한 시간에 14만동으로 호텔에서 18만동이었는데 조금 싼 가격이라고 하면서,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희망하지 않은 사람들은 해변가를 둘러보았다.
필자는 마이 씨와 함께 해변가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베트남 젊은이들의 생활과 베트남에 꼭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마이 씨는 가난한 가정은 학비가 없어서 대학조차 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장학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의 1년 등록금은 250만동인데, 이는 140불이고, 한화로 18만원 가량 된다. 한국 돈으로 학기당 등록금 9만원이 없어서 대학에 다니지 못한 젊은이가 많고, 특히 농촌지역에는 중고등학교도 진학하지 못하는 아동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베트남의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이 씨는 붕따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공부를 잘 한 학생들은 미국, 프랑스, 호주에 유학을 갔고, 나머지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붕따우 앞 바다에서는 원유가 생산되어 붕따우시민은 비교적 부유하다고 한다.
마이 씨가 오덕 교수님을 만난 것은 4개월 전인데, 오덕 교수님과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는 베트남에 어려운 이웃이 이렇게 많은 줄을 몰랐다고 한다. 붕따우시에는 일부 어부들은 어렵게 살고 있지만, 대부분 여유 있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이 씨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이고 어머니는 학교 교감으로 지역사회에서 유지이었다. 마이 씨의 꿈은 기업체를 경영하는 것이고 봉사재단을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라고 했는데, 당찬 자존심과 열정으로 볼 때 그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사지를 마친 일행과 함께 호치민시로 향했다. 어제 쉬었던 휴게소에서 망고스텍과 두리앙을 사고, 호치민시에 와서는 극장식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한 후에 하이엔호텔3에 묵었다. 지난 번에 묵은 호텔 바로 옆에 있었는데, 본관과 달리 새로 지은 집이어서 더 깨끗했다.
701호실에 짐을 풀고 천정웅 교수 방에서 간부들과 향후 일정과 준비상황을 점검하였다. Young Hope의 지원금을 학생에게는 35만동, 비학생에게는 20만동씩 지급하기로 하였다. 남은 일정 중에서 19일에는 일요일이므로 종교행사와 시내관광을 하고, 20일에는 오전에 공연을 하고 오후에는 쇼핑을 하며 저녁에 수료식을 갖기로 했다.
수료식에 대해서도 간부들과 협의하였는데, 수료식에는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봉사상, 문화상, 인기상 등 각종 수상자를 선정하고, 지도교수가 협의하여 공적이 큰 사람에게 감사장을 주기로 했다. 또한 베트남 대학생들이 뽑는 상도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베트남 비전트립을 정리하는 방안을 협의하였다. 아동청소년학아카데미, 한국복지교육원과 한베문화센터간에 ‘Young Bridge 푸른마을만들기’ 협약식을 맺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서 집 3채 건축비의 지원을 약속하며, 우선 협약식에서 1채 값인 700불을 현금으로 주자는 것이다. 700불의 조성은 Young Bridge가 사용하고 남은 금액 300불 가량을 내고, Young Hope가 200불을 지원하며, 나머지 금액은 천정웅 교수와 필자가 분담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아동청소년아카데미는 한국으로 유학 온 베트남대학생에게 학비와 용돈을 장학금 형식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용교 lyg29@hanmail.net 2009년 7월 18일 작성, 7월 24일 재정리]
** 이 보고서는 초안이고, 향후 더욱 수정보완 될 것이다. 따라서 참고는 하되 인용을 삼가하기 바란다. 부득이 인용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시민과 함께 꿈꾸는 복지공동체- 한국복지교육원 이용교 원장이 쓴 ‘제1회 베트남 봉사/문화활동 - 2009 Vision Trip 보고서(안)’ ”이라고 쓴 후에 인용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