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구간 종주기 제42구간 --2006년 04월
대관령(840)-선자령(1157)-노인봉(1338)-진고개(970) : 22km (4월16일 무박)
지난번 산행 때 오른쪽 무릎이 탈이 났었으니 당연히 이곳에 보호대를 해야 하지만 요는 왼쪽도 할지 말지가 망설여진다. 앞좌석에 계신 람보 형님을 얼른 보니 이분도 무릎보호대를 하셨는데 오른쪽만 그것도 바지 위로 하셨다. 역시 남자는 일반적으로 오른쪽이 약한가??..
하지만 나는 왼쪽 무릎도 보호대를 하기로 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이 왼쪽인데 이마저 탈이 나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잘 나갈 때 더 조심해야지... 겉옷 위로하기에는 아직 멋쩍고 해서 바지 속으로 두 무릎 모두 맨살에 보호대를 단단히? 감아 쌌다. 시계를 보니 이제 새벽 3시 반이다.
역시 새로 뚫린 영동고속도로가 빠르다. 대관령에 도착하니 3시 조금 지났다. 오늘 산행지도는 밤 12시에 양재 역에서 출발할 때 이미 받아놓았기 때문에 -역시 무박 산행답게? B4 용지 하나 가득 채우는 지도였다. 바로 지도를 꺼내보고 산악 대장님이 오늘 코스에 대하여 설명하시는데 도상 거리가 22km 이고 구간 중 70% 정도가 목장지대를 통과하리라고 하신다.
부지런히 걸으면 10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후미인 경우 오후 2시경에 진고개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신다. 시간상으로는 약간 여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요는 지난번에 탈이 났던 오른쪽 무릎이 얼마나 잘 버텨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무릎이 탈이 나서 이미 계획했던 산행 계획을 취소한 것이 처음이라 이래저래 걱정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잘 견뎌준 내 무릎에 고맙기도 하고 정형외과 전문의인 친구 말을 듣기 잘했구나 생각되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해온 중요한 취미중의 하나인 등산을 계속해도 되겠구나 하고 안도한 이번 산행이었다. 나무관세음...
3시 45분이다. 산행 코스에 대한 설명을 마친 대장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하신다. 여럿이 우르르 내려간다. 나도 덩달아 내려가서 화장실에 가서 간단한? 용무를 보고 돌아오니 삼삼오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출발을 한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출발할 때는 적당한 긴장감과 조금이라도 빨리 갈려는 조급한 마음 등등으로 묘한 스릴을 느낀다.
지난번 고루포기산 방향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국도를 가로질러 국사당 큰 바위 이정표를 끼고 돌아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달은 보름인데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있다. 선두 후미 구분이 없이 여럿이 같이 어우러져서 올라가는데 내 휴대폰 벨소리가 들린다. 이 산속에서 새벽 4시에 누가 내게 전화를 한걸까?? 갸우뚱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보니 대학 동료인 25회 이사장이다.
휴대폰을 받아보니 이사장 왈 화장실에서 약간 늦었는데-- 큰일을 보다보니??-- 나와 보니 아무도 없단다. 길도 보이지 않고 버스도 이미 출발했고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나도 처음 온 길인데 자세한 설명을 하려니 난감하여 얼른 옆에 계시는 대장님을 바꾸어 드렸다. 한참 통화한 후에 대장님이 다시 내려갔다 오겠다고 하신다. 하여튼 무박산행에서는 이런 식의 해프닝이 출발할 때 한두 번 일어난다. 요번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선자령 2km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오르니 4시 30분이다. 오른쪽으로-동쪽으로- 멀리 강릉시가지의 야경이 제법 화려하다. 이번 산행 중에 이정표 보기는 당분간 여기가 마지막 이였다. 다음 이정표는 오대산 국립공원 경내에 들어서서 노인봉 부근에서야 볼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안 것인데 여기서부터 노인봉까지는 출입 금지 구역이란다. 벌금이 50만원이고.. 그래서 있던 이정표도 다 없앤 모양이다. 누가 어떤 철차를 거쳐 입산금지구역으로 -그것도 기간을 영구적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입에서 저절로 쓴 소리가 나오곤 했다.. 이런 것도 법이라고 지켜야하나??
일출은 어디서 보아도 그 풍경이 좋다. 무박 산행시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코스는 더욱 좋은 것이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은근히 멋진 장면을 기대 했었는데 ... 그렇지만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오른쪽 동해바다를 부지런히 걸어가면서 힐끔힐끔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처음부터 불어 대는 세찬 바람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고 찬찬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오늘도 멋진 해돋이는 틀렸구나 하고 혀를 찼다. 멀리 동쪽으로 보이는 동해바다 수평선에 까만 가스?가 가득 끼여 있지 않은가.. 멋진 해돋이를 구경하려면 또 사진을 찍으려면 3대에 걸쳐 공을 쌓아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이 공이 부족한 모양이지??
5시 49분에 해돋이가 시작 되었다. 춘분이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왜 이 시각일까? 아참 우리는 30분을 빨리? 가는 것이지 라는 생각이 났다. 정신없이 몇 컷을 누르고 또 눌렀다. 해돋이는 볼 때마다 신기로운 것이 왜 그렇게 빨리 해가 올라오는 것인지.... 조금 정신을 놓으면 벌써 훌쩍 올라와 버린다.
전문적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바다 일출에서 제일로 치는 “오메가”모양 일출은 기대도 못했지만-- 수평선상에 가스가 꽉 끼여 있는데다가 줄기차게 불어대는 세찬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있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몇 컷을 정신없이 누르고 또 앞으로 나갈 수밖에..
길은 훤하게 뚫려있다. 목장지대라 사방의 조망은 더 할 수 없이 좋고 간간이 서있는 풍력 발전기는 이곳이 외국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면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아침햇살을 받아 빨갛게 물든다.
풍경사진에는 특히 산악 사진은 아침 해가 뜨기 전후 약 한 시간 동안의 빛의 각도가 가장 사진빨?이 잘 받는 시각이라고 한다. 더구나 오늘은 하늘까지 어느 정도 파랗게 바쳐주지 않는가. 비록 세찬 바람에 가만히 서있기도 어려운 지경 이였지만 어찌 이 시각을 놓칠 수 있으리오. 바람을 맞아 가면서 좋은 풍경이 보일 때마다 가다가 찍고 또 찍었다.
목장지대를 거의 통과하고 나서 약간의 잡목이 우거진 곳에 왔다. 바람이 한결 잦아진 느낌이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물을 마시려고 수통을 꺼내니 입구가 얼어 있다. 혹 이럴 경우 얼어붙기 어렵게 하려고 주둥이가 큰 음료수 페트병으로 준비했는데 이것 역시 얼어붙어 이빨로 툭 쳐야 얼음이 깨졌다. 해발 1000 미터가 장난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줄기차게 불어대는 너무 세찬 바람 때문에 이것저것 다른 생각 없이 죽어라하고 걸어만 와서 그런지 내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지 알기도 어렵다. 동료 박점장 말로는 매봉을 지난 것 같다고 하는데 워낙 광활한 목초지역 인데다가 이정표까지 없으니 지형지물이나 지도상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적당한곳에서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을 다 먹을 때쯤에서 후미가 대장님과 같이 온다. 대장님 말씀이 현 위치가 매봉을 지나고 삼양목장을 지났다고 하신다. 시간은 아직 아침 8시가 안되었는데... 예정보다 빨리 온 것 같다. 이 또한 줄기차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춥고 힘들었지만 정신없이 빨리 온 것에 대하여는 감사를 해야 할까??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훤한 목초지대에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여기에 한 부부가 서로 사진을 찌어 주는 광경이 보기에 무척이나 좋다. 점점 오대산 국립공원 경계지대로 가까워지고 있다.
소황병산에 도착하니 8시 57분이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없다. 이정표를 세워두었으리라고 짐작되는 둥그런 기초 터만 황당하게 남아있고.. 참으로 보기가 좋지 않았다.
남서쪽으로는 황병산 정상의 시설물이 아련하게 보이고 북서쪽으로 대간의 잘 뻗어간 모습이 보인다. 멀리 노인봉의 훤한 바위 봉우리가 보이고. 이곳으로부터는 오대산 국립공원 지역이란다. 곳곳에 잡목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상으로 얼른 보니 소황병산에서 노인봉까지 봉우리가 얼추 다섯 개 정도 될 것 같다. 훤한 목초지대만 걸어오다가 잡목 숲으로 접어드니 이제부터 등산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주위 풍경이 새삼스럽다.
노인봉(1338m) 정상은 대간 주능선에서 약간 북쪽으로 벗어나 있었다. 노인봉에 오르니 10시 22분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와서 진고개 쪽으로 향하는데 후미가 대장과 같이 도착한다. 산악회총무님은 여기서부터 앞서간 선두팀과 부지런히 통화를 하면서 안전?한 하산길이 어딘지 상황을 체크하신다.
부지런히 하산하여 진고개 정상 휴게소까지 오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12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길가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펴고 점심을 겸하여 하산 막걸리를 한잔하는데 우리 람보 형님이 한 말씀하신다.
요번 코스를 우리 산악회 후미가 8시간 만에 끊은 것은 대단한 실력 향상이라고 칭찬하신다. 나는 속으로 세찬 바람이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너무 긴장하여 정신없이 걷기만 했으니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산행에서 가장 걱정했던 오른쪽 무릎이 절 견뎌준 것이 무엇보다도 고맙고 대견했다. “아.. 대간 종주를 끝까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이번 산행에서 얻은 제일 큰 수확 이였다. 나무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