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수 좋은 날 (현진건)
▒ 작품 배경
<운수 좋은 날>은 1924년<개벽>에 발표된 현진건의 단편 소설로, 인력거꾼인 주인공 김첨지가 아침에 일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기까지 하루 동안의 일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에 보이는 김 첨지의 행과 불행의 명암 대비로 아이러니를 유발시키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 작품 해설
동소문 안의 가난한 인력거꾼 김 첨지는 중병에 걸린 아내가 약 한 첩도 못쓰고 죽어가는 어느날,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을 나간다. 이날 따라 비가 와서인지 벌이가 무척 좋아서 김 첨지는 마냥 기뻐한다. 그러나 행운이 계속되자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불안해지기도 한다. 저녁 무렵에 김첨지는 일을 끝내고 선술집에서 술을 마신 다음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설렁탕을 사 들고 귀가하지만 아내는 죽어 있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 추적 내리었다’고 묘사하는 이 소설의 서두에 보이는 ‘비’는 이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암시하는 자연적 배경 구실을 한다. 비가 내리는 음산한 분위기는 앞으로 김첨지가 겪게 될 불행을 암시한다. 비가 내리기 때문에 김 첨지는 보기 드물게 많은 수입을 올리는 행운을 누리지만, 그것이 아내의 죽음으로 이어져서 그의 불행은 한층 비극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 바로 김 첨지가 현재 처해 있는 삶의 양상이다. ‘달포’가 넘도록 앓아 누운 아내의 소원이 설렁탕 한 그릇 먹어 보는 것일 만큼 그는 가난한 것이다.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를 집에 홀로 남겨두고 김 첨지가 일터인 거리로 나선 건 식솔의 생계 때문이다.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했으면서도 그가 인력거를 끌고 거리로 나서는걸 보면, 그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 좀처럼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리로 나설 때부터 이미 김 첨지는 아내가 어쩌면 오늘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갖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행운 덕택에 김첨지는 생각지도 않았던 높은 수입을 올리게 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남대문 정거장’ 까지 가자는 학생을 맞이하면서 김 첨지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다. 남대문 정거장까지 인력거를 끌고 간다는 것은 그에 따른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지만, 동시에 아내가 있는 집과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첨지는 불안해진다. 거리에 나와 있으면서도 김 첨지의 의식은 아내가 있는 집과 그가 현재 있는 거리를 수시로 왕복하고 있다.
정거장에 도착해서 1원 50전의 인력거 삯을 받았을 때 김 첨지는 마치 자신이 ‘졸부나 된 듯이’ 기뻐한다. 하지만 그 같은 기쁨은 또다시 집에 있는 아내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져서 김 첨지는 그 돈을 ‘귀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절히 느끼’ 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의 시간이 짧았던 것처럼 그는 곧바로 ‘새로운 광명’ 이라도 찾듯이 정거장에서 다른 손님을 태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다. 끈질기게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아내에 대한 염려에서 오는 ‘피로’ 와 계속되는 수입에 대한 ‘광명’ 은 그의 의식 속에 다음과 같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니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 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인제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등걸이나 무엇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질팡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위의 인용문은 김 첨지의 심리적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금전적 수입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인력거를 끌고 있는 동안 김 첨지는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력거가 가벼워지면 그때마다 불길한 예감이 떠올라서 김 첨지는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김 첨지의 눈에 비친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흐리고 비오는 하늘’ 풍경은 그의 불길한 예감을 고조시키는 구실을 한다. 그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김 첨지는 일을 마친 다음에도 선뜻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 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 때문에 그는 선술집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고해서 그의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술에 취한 채 보여 주는 난폭한 행위는 그의 불안이 극에 달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김 첨지는 친구 치삼이에게 아내가 죽었다며 소리내어 울기도 하고, ‘생때같이 살아만 있다’ 며 어린애처럼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한다.
사실은 이 소설에서 술집 장면의 설정은 결말의 아이러니 효과를 반감시키는 역기능적 요소이기도 하다. 독자로 하여금 김 첨지의 아내의 죽음을 결말에 이르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 장면은 김 첨지라고 하는 당대 하층민의 삶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김 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이미 죽어 있고, 어린애만이 빈 젖을 빨고 있을 뿐이다.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장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 첨지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자, 김 첨지의 불행이 극에 달해 있는 부분이다. 이는 또한 김 첨지가 하루 종일 느끼던 불안의 실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 첨지의 비극적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운수 좋은 날>은 사건 전후의 명암, 또는 행과 불행의 상황 대립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적 구성을 보이고 있다. 제목 자체가 반어적이다. ‘운수 좋은 날’ 이 사실은 김 첨지에게 가장 ‘운수 나쁜 날’ 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이처럼 당대의 모순된 삶의 현실을 반어적 수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것은 문체의 측면이다. 김 첨지의 독백이나 대화에서 하층민의 어투나 욕설 등을 생생하게 살려 냄으로써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비어에 가까운 대화나 푸념도 노동 계층의 생활 감정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김 첨지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의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 첨지는 일제 강점기의 비참한 하층민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가 하루 동안 누린 행운은 결코 행운이 아니었다. 불안의 연속선상에서 맛본 행운이다.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예고하고 있다.
작가는 김 첨지를 통해서 일제 강점기에서의 하층민의 참상을 그려냄과 동시에 그러한 삶이 어떠한 우연이나 행운 혹은 운수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현진건의 단편 소설 대부분은 1인칭 서술 시점을 주로 채택하고 있는 데 반해, <운수 좋은 날>은 그 서술 시점을 3인칭으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주관적이고 자전적인 1인칭 서술 시점에서 벗어나 3인칭 서술 시점을 채택했다는 것은 당대의 사회나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 중심의 인물 설정과는 달리 하층의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관련하여 주목된다.
- 끝 -
출처 : 온라인속독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