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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북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두루미
우리는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꾸 해도 재미있는 것,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것 그것이 상품이 되고 돈이 되는 시대다. 음식도 맛있는 집이라면 거기가 어디든, 기다려야 하든 말든, 진짜를 즐기기 위해 겪는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내할 만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모든 지역 사회가 가치 있고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 문화적 자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방언은 문화적 산물이다. 그래서 방언 역시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가령 '근다고'와 '머덜라고' 같은 말장난 역시 참 재미있는 예이다. '붉은 우체통 편지 한 장 없네 / 근다고 편지 한 통 없냐 이 년아 / 붉은 우체통 청첩 한 장 뒹구네 / 머덜라고 보냈냐 이 년아'. 시의 형식을 빌린 장난 같은 이 말 역시 '근다고'와 '머덜라고'라는 방언 어휘의 맛을 살려 생각하면 그 정황 때문에 '추리닝스러운' 시적 화자의 처량함이 더 실감난다.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방언 차이를 소재로 하여 삼국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만든 '황산벌'이란 영화에서 신라군 첩자가 백제군의 '거시기' 때문에 벌이는 소동이라든가 신라군에 잠입한 백제군 첩자가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덜미를 잡히는 것 등도 방언이 주는 재미였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최양락의 '삼 김 퀴즈' 역시 방언 말투의 구사를 희화화하고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밖에도 방언 퀴즈 프로그램 '얼룩말'도 방언의 재미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최근의 영화들에서도 방언 사용의 빈도와 효과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 역시 방언이 현대 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한 예다.
판소리나 고대소설이 일대를 풍미한 문화의 주역이었던 까닭 역시 마찬가지다. 흥부와 놀부, 춘향이와 이도령, 방자와 향단 등이 장면 장면에서 들려주는 생생한 방언들 '하따, 그 놈의 양반, 넘의 규수 내방 편지는 머덜라고 볼라고 그런당가, 참, 그 놈의 양반', '나 나만 사는 디 사요. 아 남안(남원의 방언형) 산께 나만 산다고 그러지', '무단시 비암맹이로 고 방정맞은 셋바닥 조깨 날룽거리지좀 말어.', '나도 ?이 삭어 비어 문드러져서 바람 든 무시맹키로 쌔깜허당게.' 등 해학과 재치, 적확한 비유 등 전북 방언의 매력은 참 다양하다.
전북 방언은 지리적으로 여러 지역과 인접해 있지만 경상도와 충청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전라도 말로 싸잡아 넘기는 전라남도 말과도 역시 명백히 다르다. 아마도 '내버려 두다'라는 말을 남도 사람들은 '냅둬 부러.', 충청도 사람들은 '내비두어유우'로 한다면, 전북 사람들은 '내비둬, 내비두랑게' 정도의 차이를 보일 것 같다. 다른 지역에 비해 넓은 들녘과 온순한 바다 그리고 적당한 산야를 가져 넉넉한 인심과 풍류를 누릴 줄 알았던, 그러나 옳고 그름을 '까락까락' 따져야 할 때는 또 '솔찬헌' 사람들의 말인지라 전북 말에는 그 정도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담겨있다.
방언 사용의 백미는 진실함에 있다. 남의 눈치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가슴으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방언이 제 몫을 발휘할 수 있다. 건널 수 없는 마음의 벽을 허물며 눈물로 마주하는 부모와 자식의 만남, 인생의 출발점을 함께 했으나 세월을 건너뛴 '꾀복쟁이' 친구들과의 회포, 간절한 마음을 아끼고 접어두며 던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말 등에 방언이 있다. 방언을 '탯말', 어머니의 말 등으로 부르는 까닭 역시 모든 겉치레를 벗어버리고 가장 인간답게 만나야 할 그 자리에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방언은 모든 지역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문화유산이다. 방언은 촌스럽고 못 배운 사람들이 쓰는 몇몇 단어가 아니라 한 언어의 변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다른 지역과 차이를 보이는 말로 인식되지만 같은 지역 내에서도 사회적 요인에 따라서 말의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를 지역방언, 후자를 사회방언이라 부른다. 그래서 방언에는 자연·지리적 배경 위에서 사회·문화적 삶을 영위해 온 다양한 자취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 시대의 사람들이 일정한 공간 안에서 태어나고 사라졌으며 그 때마다 방언으로 배우고 생활하며 그것을 계승하고 유전해 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방언이 오래된 시간의 깊이를 가진 그 지역의 가장 기본적인 문화유산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소설가 최명희는 자신의 언어적 자산이며 정신의 고향이 바로 전라도 산천, 가락, 말이 베풀어준 음덕이라 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판소리와 한국 고대문학의 정수인 '춘향전', '흥부전' 등의 언어적 자산이 바로 전라북도 방언인 점에서 최명희의 고백은 전북 방언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화를 상품화 할 때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가 먼저 그 가치를 인식하고 생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삶과 괴리된 문화는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갖는 파급력 또한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언 역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그 생명력을 보장할 수 없으며 우리에게 버림받은 것을 남들이 좋아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답답한 가슴에 시원한 바람 같은 우리의 말을 아끼고 즐겨 그 말맛을 느끼며 사는 것이 우리가 우선해야 할 과제이다. 이를 위해 전라북도 말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기관이 설립돼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지역 말을 찾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전라북도는 서해 도서와 해안 지대, 서부 평야지대 그리고 동부 산간지대가 서로 상이한 문화적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각 지역의 자연, 생활 도구, 민속, 설화와 민담, 인물, 사상 등속에 남아있는 전통 문화 자원을 조사하고 거기서 사용되는 모든 방언 어휘를 표준어와 병기하되 표준어에 없는 어휘들은 그 자체로 표준어화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삶과 문화가 살아있는, 명실상부한 전라북도의 방언 사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기관을 통해, 새로 만들어지는 주소, 아파트, 길, 가게 이름 등에 방언 어휘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한번 지은 새주소, 아파트, 길, 가게 이름 등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지역 문화의 대표적 코드가 된다. 따라서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방식의 것으로는 이 지역의 문화적 독자성을 구가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라도 말밭 위에 꽃 핀 예술혼, 판소리, 고대소설, 현대소설, 시를 우리가 제대로 즐기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작품의 일부를 전라도 땅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기차, 버스, 택시 정류장처럼 자투리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곳에 전라도의 혼이 살아 있는 글들을 정기적으로 바꿔가며 전시해 주는 방안도 한 좋은 예이다. 그래서 전라도의 관문에 들어설 때 그리고 전라도 곳곳에서 이곳이 예술혼의 '꽃심'이로구나 하는 확실한 차별성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통문화의 도시 전주' 대신 '전통 문화의 꽃심, 전주'라든가, 전라도 톨게이트의 어딘가에 '욕봤소, 하이카나 재미지게 지내다 가시쇼잉'이라든가 등의 전라도 말들이 생활 곳곳에 살아 있게 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전통 문화의 '꽃심'을 지향하는 전주,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우리 땅에서조차 어정쩡한 서울 흉내 내기나 여타 지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방식을 지향하는 것은 제 집 마당에 묻힌 광맥을 버리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주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웨일즈의 카디프처럼 진정한 전통 문화의 '꽃심'이 되는 일차적 과제는 전라도의 혼과 전라도의 말을 회복하는 일에서부터일 것이다.
/김규남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대 국제교육교류원 한국어문화교육센터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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