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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Lourdes) | |||
프랑스 남쪽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 산맥의 산록에 위치한 루르드는 1858년 2월 11일 이후 18회에 걸쳐 성모 마리아께서 벨라뎃다(1844-1878) 소녀에게 발현하신 후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유명해진 곳이다. 가브강이 흐르고 그 중간에는 살레섬이 있어서 강물을 두 갈래로 나누고 있지만, 그것이 다시 합류되는 곳에 큰 절벽이 있고 그 가운데 마사비엘(massabielle)이라고 부르는 동굴이 있다. 이 곳이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이다. 이스라엘 성지를 제외하고 현대에 가장 유명한 순레지로 꼽히고 있다. 해 마다 순례자가 늘어나 지금은 연중 4백만이 넘는 순례자들이 루르드를 찾고 있다. 1858년2월11일부터 7월16일까지 성모님께서 18번 벨라뎃다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의 발현 당시 벨라뎃다의 나이는 14세였다. 2월 18일 성모님은 세 번째 나타나셔서 벨라뎃다에게 2주간 동안 계속 동굴에 와달라고 부탁하시고 벨라뎃다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해주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모님의 이 약속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벨라뎃다 축일을 돌아가신 날짜가 아닌 이 날 2월 18일에 지낸다. 2월 24일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한 보속으로 무릎을 꿇고 걸으며 땅에 입맞추라 하셨다. 7월 16일 18번 째를 마지막으로 성모님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루르드는 세계 어느 순례지 보다 어머니 품에서 처럼 푸근하게 기도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성모님의 발현 이래 이 곳에서는 수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이 기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절룸발이가 목발을 버리게 되고 여러 가지 불치병이 깨끗이 낫는 기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동굴 벽에는 이들이 봉헌한 기적의 증거물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음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너무나 많아서 관리자들이 수시로 치우지만 금방 또 걸리곤 한다. 그러나 루르드의 참가운 가치는 이러한 외적인 기적 보다 내적인 기적에서 찾아야 한다. 20년 또는 30년 동안 얼어 붙었던 마음이 녹고 냉담자가 회두하고 근심이 쌓인 사람이 평화와 위로를 얻으며 기적을 바라고 왔던 사람들이 병이 오히려 더 심해져도 실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돌아가게 되는 곳이다. 성모님을 만나고 성모님의 위로를 안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 |||
◆ 루르드 전경 | |||
이 물을 흔히 기적수 또는 영적수라고 하는데 이 말은 적합하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속죄의 뜻으로 이 물을 마시고 또 씻으면 그 믿음과 회개하는 마음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지 이 물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수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이 때부터 이 조그마한 샘에서 매일 12만 2천 4백 리터의 물이 오늘 날까지 솟아오르고 있다. 벨라뎃다는 1866년 느베르 수녀회에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1879년 4월 16일 이 세상을 떠난 벨라뎃다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3년 12월 8일 역시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로써 벨라뎃다는 성인의 반열에 들 게 되었고 성모님께서 벨라뎃다에게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서 이다." 라고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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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비엘 동굴 | |||
1858년2월11일부터 7월16일까지 성모님께서 18번 벨라뎃다에게 이런 모습으로 발현하셨다. 성모님의 발현 당시 벨라뎃다의 나이는 14세였다. 2월 18일 성모님은 세 번째 나타나셔서 벨라뎃다에게 2주간 동안 계속 동굴에 와달라고 부탁하시고 벨라뎃다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주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모님의 이 약속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벨라뎃다 축일을 돌아가신 날짜가 아닌 이 날 2월 18일에 지낸다. 2월 24일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죄인들을 위한 보속으로 무릎을 꿇고 걸으며 땅에 입맞추라 하셨다. 7월 16일 18번 째를 마지막으로 성모님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지금 동굴 속에는 제대가 있고 이 제대에서는 연 중 내내 미사가 바쳐지고 동굴 앞에서는 신자들이 밤낮 없이 기도하며 순례자들이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들을 봉헌하는 뜻으로 봉헌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크기에 따라 값이 다르다. 24시간, 365일 촛불이 끄지지 않는다. 동굴 전체가 하나의 바위인데 순례자들의 손길에 닳아서 반질반질하다. 순례자들은 이 바위에 입마춤을 한다. 겸손과 경애의 표시로. <사진 위는 오늘의 동굴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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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성모께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 사이에 벨라뎃다 수비루에게 18번 나타나셨던 곳이다. 성모상은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던 바로 그 모습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성모님께서는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 라고 말씀하시면서 벨라뎃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려주셨다. 성모상 아래 자물쇠로 잠겨진 유리판 아래에는 1858년 2월 25일 아홉번째 발현당시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벨라뎃다가 땅을 파헤쳤을 때 솟았던 샘이 있다. 마사비엘 성모 동굴의 모습은 지금 대구시 남산동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관내에 있는 성모당의 모습과 흡사하다. 대구의 성모당은 루르드의 성모동굴을 모델로 하여 만든 것이다. | |||
◆ 원죄없이 잉태된 자의 대성당(無染始胎大聖堂) '한국의 성모' 자수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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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여기에 성당을 지어라" 고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지어진 것이며, 성당 제대는 성모님 발현 장소의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당 양쪽의 유리창은 발현 당시부터 1867년 루르드 성모상이 세워질 때까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좀 더 위쪽 유리창에는 태초부터 교황 비오9세가 「성모무염시태 」신비를 정식 교의로 발표하기까지의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대성당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커다란 대리석 판이 있는데, 여기에는 오랜 조사가 있은 후 루르드 성모님의 발현을 인정하는 따르브 주교의 사목교서가 새겨져 있다. 그 후 로랑스 주교는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실제로 벨라뎃다에게 나타나셨다"고 선언하였다. ◆ 지하성당 대성당 아래에는 제일 먼저 세워진 성당이 있다. 로랑스 주교는 벨라뎃다 생존 당시인 1866년 5월 19일 이 대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으며, 이 성당 건축을 위해서 일 할 때 벨라뎃다의 아버지도 그 작업에 종사하신 분들 중 한 분이었다. 이 성당 제대에는 늘 성체를 현시하여 신자들이 찬미와 조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로사리오 대성당 이 대성당은 성모님 발현 후 30년이 훨씬 지난 뒤에 완성되었는데 항상 묵주를 손에 들고 벨라뎃다에게 나타나신 동정 성모님을 위해 특별히 로사리오 대성당(묵주의 대성당, 매괴의 대성당)으로 봉헌되었다. 이 성당은 1901년에 축성되었고, 그리스 십자가의 형으로 지어진 내면은 묵주의 15현의를 뜻하는 작은 15개의 제대(성당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성당에서 순례자들이 성모님 신비에 대해 묵상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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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라뎃다 생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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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위 왼쪽) : 1858년 성모님의 발현 당시의 조그마한 마을 루르드의 모습. | |||
◆ 바트레스(Bartres) 마을 벨라뎃다의 집이 너무 가난하여 루르드에서 오리정도 떨어진 이웃 마을 유모집에서 잠시 살았다. 마을 어귀 오른 쪽 언덕에 양우리가 있다. 벨라뎃다는 갖난 아기 때 집이 가난하여 어머니 친구인 양모에게 와서 자랐다. 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어릴 때의 신세를 갚으라고 다시 양모집에 보내어 벨라뎃다는 농사 일을 거들고 양을 치다가 첫 영성체를 준비하기 위하여 루르드로 돌아왔을 때 성모발현을 보았다. 마을에는 양모의 집과 벨라뎃다가 다니던 성당이 옛 모습 그대로 있다. 양 우리 앞 언덕배기에 걸터 앉아 마을을 내려다 보면 벨라뎃다가 자연 속에서 누렷을 법한 평화로움을 지금도 맛 볼 수 있다. | |||
◆ 옛 감방 - 까쇼 (Le Cacho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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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날 사람들이 벨라뎃다에게 "성모님께서 왜 당신에게 나타나셨느냐?"라고 물었을 때 벨라뎃다는 "성모님께서 저 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난해야 성모님을 뵈올 수 있다면 우리는 가난을 택할까? 아니면 성모님 뵈옵기를 포기 할까? 오늘날 이곳은 시가지 한가운데가 되었다. | |||
◆ 장관을 이루는 야간 촛불행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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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행렬은 동굴 앞에서 촛불을 들고 묵주의 기도를 끝내고 성체거동과 같은 코스로 진행된다. 루르드 순례에서 아름답고 감격적인 순례행사 중 하나이다. | |||
동굴에서는 매일 오후 3시에 성체강복식이 있다. 루르드에서는 모든 행사에 병자와 장애인들에게 앞좌석을 내어준다. 하절기 순례자가 많을 때에는 매일 오후 4시 30분에 동굴 앞에서 시작하여 광장을 돌아 묵주의 성당 앞에서 성체강복으로 끝난다. | |||
1986년 가을, 순례시즌이 끝난 10월말 쯤이었다. 성모동굴 앞에서 오후 3시 성체강복식에 참례하려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적어서 한적한 기분이 감돌았다. 시간이 다되어갈 무렵 머리가 새하얀 노부부가 수레에 아들인 듯한 젊은 남자를 싣고 왔다. 그 젊은 남자는 동굴 앞에 가까이 오자 팔을 비틀면서 괴성을 크게 질러댔다. 뇌성마비인 듯 했다. 성체강복 때 맨 앞줄의 환자들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성체를 모시고 가까이 가서 강복을 해 주었다. 이때 그 젊은 이는 또 괴성을 질렀다. 혹시 기적이라도 일어나려나 호기심을 가지고 나는 지켜보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체강복을 마치고 순례자들이 흩어져갔다. 성모동굴을 떠나가는 그 젊은이와 노부부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실망하지나 않았을까 걱정을 하면서.... 그런데 그들의 얼굴에는 실망은커녕 기쁨과 평화의 모습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언제나 갈등과 부족함으로 가득찬 내 모습과 비교해 볼 때 그들이 얼마나 더 행복한가! 루르드의 가치는 육체적 병의 치유보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랜 냉담으로 마음이 차고 굳어있던 사람들이 루르드에서 봄 눈 녹듯이 회개하고 고백신부를 찾을 때 이것이 바로 루르드의 기적의 은사가 아니겠는가?! | |||
성녀 벨라뎃다의 시신은 방부처리를 하여 기념성당에 모셨다. | |||
◆ 루르드의 주변 순례 관광 | |||
1991년 1월 12일 주일 미사를 마치고 옥실리움 Center에 초대를 받아 우아한 프랑스 요리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어 음식도 가지각색으로 다양했다. 점심 후 미카엘라 자매님의 운전으로 차로 1시간 30분 가량 피레네 산 속 Gavarnic 산까지 드라이브를 했다. 거대한 절벽이 마치 병풍과 같이 늘어서 있어 겨울에는 어름 절벽이 된다. 떠날 때는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구름이 끼고 눈발리 날려 산 정상과 빙벽은 멀리서 바라보고 만족해야 했다. 양수산나 선생, 박세레나 선생의 안내로 눈내리던 날 골롬바와 함께 이곳 찻집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낭만을 즐기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 |||
결론적으로 루르드를 순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루르드는 관광할 곳이 아니라 순례할 곳이라는 말이다. 하루 이틀 잠시 들러 이곳 저곳 둘러보고 돌아와서 루르드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처럼 시간과 금전을 아껴 성지순례를 나서기 때문에 한 나라라도 더 다녀야 되고 한 도시라도 더 구경해야 만족하게 된다. 물론 처음 가는 분들에게 이것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생활에서 근검절약하게 되면 몇 해마다 한번 쯤은 외국여행을 나설 수 있는 분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럴 경우에는 루르드에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머물면서 순례다운 순례를 한번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성모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시는데는 다 뜻이 있을 것이다. 결코 눈에 보이는 기적을 바라지 말고 마음의 기적, 신심의 은총을 구하면서 순례를 해 보면 참으로 큰 평화와 기쁨을 얻을 것이다. 나의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좀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성모님은 결코 자신을 들어내시지 않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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