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화) 오전 10시 반 쯤, 밴쿠버 모텔을 빠져 나와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본격적인 여행길로 접어들었다.
벤쿠버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동부쪽으로 달리다 보면 아담한 관광마을인 호프(Hope)가 여행자들의 발을 잡아당긴다. 대개 점심을 먹거나 기름을 채우기 위해 이 마을에 들러는 경우가 많다. 나그네들에겐 매우 기쁨이 되고 희망을 준다는 의미에서 이 마을의 이름을 호프라 정했을까? 여하튼 3면이 높은 산에 에워싸여 있고 서남쪽으로는 후레져(Fraser) 강이 흐르는 정겨운 산간 도시이다.
호프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1번 고속도로와 3번 고속도로 그리고 5번 코카할라 고속도로가 이 마을을 경유하며, 후레져강을 건너 7번 고속도로를 만나기도 한다. 예전에는 모든 차량이 호프를 꼭 거치게 되었으나 코카할라 하이웨이가 생기고 나서는 쉽게 지나치기도 하는데 그 유명한 후레져 계곡을 보려면 호프 시내를 거쳐야만 한다. 풍광이 뛰어나 실버스테르 스탤론이 주연한 람보영화를 찍은 곳이고, 좋은 수석밭이 있어서 이민 온 한인들이 자주 눈독을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어디를 가나 끌어모으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니 어찌 후레져 강의 멋진 돌들을 그냥 두랴.
고속도로 얘기가 나와서 참고로 말하자면, 캐나다엔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게 없다. 기름을 채우거나 밥을 먹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근처 마을로 가야한다. 이 점 하나는 매우 불편한 점이다. 그 대신 매우 마음에 드는 장점은 고속도로 통행료라는 게 없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통행료를 매기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더더구나 캐나다는 휘발유 값이 한국의 약 반 값이다. 특이한 점은 경유나 휘발유나 값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웬만한 차는 다 휘발유다. 우리 나라도 대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휘발유 값을 내려 경유와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휘발유에 세금을 잔뜩 매겨 결과적으로 경유를 권장하는 정책을 펴니 참 이상한 나라이다. 그리고 캐나다는 록키산맥을 제외하고는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입장료를 내라고 하는 경우가 없다. 이래 저래 캐나다는 서민들이 살기엔 정말 좋은 나라인 것 같다.
호프 시내와 주변의 주택가를 어슬렁 거리며 둘러 본 다음 그곳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1번 고속도로를 따라 20분쯤 더 가니 예일이라는 조그마한 동리를 만나게 된다. 옛날에는 금광으로 유명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그 예일에서 북쪽으로 달려 계곡을 끼고 7개의 터널을 지나면 <Hell's Gate>,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지옥의 문'이 나타난다. 호프에서 45분 쯤 되는 거리다. 그 입구에서 사진 한 컷을 찍은 후 Airtram이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을 건너는데 계곡 아래에는 정말 무시무시한 급류가 여기 저기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급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을 심혈을 기울여 알아들은 단어 몇 개로 대충 종합해 보니, 이 계곡 물이 이토록 급류로 소용돌이치는 이유는 나이아가라보다 더 많은 수량을 갖고 흘러내려 오다 갑자기 여기서 33m 폭의 좁은 계곡을 통과하려니 당연히 물이 서로 뒤엉키고 용솟음치며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하튼 추락하면 누구도 살아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헬스 게이트를 뒤로 하고 계속 차를 몰아 약 3시간 정도를 달려 가니 갑자기 주위 풍광이 사막 경치로 변하며 그 풍부하던 산들의 수목이 사라져 버리면서 캐쉬크릭이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이 지역이 사막화 현상을 보이는 이유는 이 지역이 주위의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형이라 비와 눈이 거의 없어 메말라 그렇다는 것이다. 여하튼 캐나다의 울창한 수림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연출이라 사뭇 재미있기만 하다.
여기서 또 1박을 하기로 마음 먹고 캐쉬크릭 안에서 모텔을 찾으니 여기 저기 많은 모텔들이 보이는데 그 중에서 제일 경관이 좋은 모텔을 찾아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동양인 부부가 나를 반긴다. 설마 한국인이랴 싶어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방을 주문한 뒤 혼잣말로 "더럽게 비싸네!" 했더니 유창한 영어로 말하던 그 주인남자가 "한국인이냐?"며 반색을 하기에 황~당했지만 덕분에 반 값(그래도 5만원을 줬다)에 방을 구했다. 부산 남천동에서 살다 10년 전에 가족 모두를 데리고 이곳에 이민 와 지금은 50대 중반이 되어 버린 이 부부는 "한국이 그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립긴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싫다고 한다. 한국은 사람 살기에 힘든 땅이라며, 뉴스를 통해 보고 듣는 한국의 정치풍토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희망이 없다면서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이 글의 맨 위에 있는 헬스 게이트 사진을 클릭해 보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