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용식물] 도깨비바늘 – 관절염에 소염작용… 황색포도상구균 억제작용도
며칠 전에 사돈댁의 부음(訃音)을 듣고 문상(問喪)을 하고자 부랴부랴 고속버스에 올랐다. 바깥은 맹추위로 오가는 이들의 종종걸음으로 바쁘다. 지난밤에 살짝 내린 눈은 미끄럼을 더한다. 오후에는 서해지방에 폭설주의 예보가 내린 상태다. 날씨예보를 확인하듯 우중충한 하늘엔 눈발이 오락가락이다. 다행히 찻길은 지장이 없다.
오랜만에 타보는 서울행 고속버스다. 차창엔 김이 서려 뿌연하니 바깥 풍경이 희미하다. 이번 주에 이미 많은 눈이 내린 상태다. 지나치는 들판엔 눈 천지다. 을씨년스러운 논 가운데엔 겨울철 소먹이로 볏짚을 돌돌 말아 팽개쳐진 사료덩이가 군데군데 뒹굴고 있다. 요즘은 저런 모습도 흔히 보는 풍경이다.
연세가 많아 돌아가셨다니 자연사일 것이다. 심란한 마음이 지나치는 풍경만큼이나 어수선하다. 그렇게 가고오고 이어져 온 삶이 오늘의 나가 아닐까 싶다. 서울은 확실히 추위도 더하다. 장갑에 목도리로 중무장을 한 채 혼잡한 거리를 헤매다 겨우 찾은 장례식장은 산자락 아래로 한산하다. 울타리를 따라 지나치는 와중에도 풀섶에 눈이 간다.
병원 울타리의 측백나무 사이로 말라빠진 줄기 끝에 사방팔방으로 찌를 듯이 긴 침을 달고 도깨비바늘이 서 있다.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풀이지만 도심 속에서 이 풀을 보기란 쉽지 않다. 이미 생명을 다하고 누군가의 접촉으로 그 바늘 같은 씨앗이 어디론가 옮겨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허리춤은 될 듯한 키가 이런 환경에선 사람에 붙어 옮기는 것이 제격이다. 그렇다고 다른 동물이 올 리는 만무다. 하필 한갓진 장례식장 울타리에 서 있으니 어느 세월에 본래 임무를 다할 것인지, 한 겨울에도 마른 줄기에 붙은 씨앗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풀의 번식력이 감탄스럽다.
이 풀은 산이나 들을 다니다 보면 그 씨앗이 언제 붙었는지 모르게 몸에 붙는다. 다른 야생화처럼 솜털을 달고 훨훨 날아 스스로 종자를 번식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나 사람에게 붙어서 이동하며 씨앗을 퍼뜨린다. 도깨비처럼 어느새 달라붙어 옮겨 다닌다는 뜻으로 이름이 도깨비바늘이라 했지 싶다.
도깨비바늘은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산이나 들에서 잘 자란다. 키는 일 미터 정도 자라며 줄기는 네모지다. 잎은 마주 나고 양면에 털이 다소 있으며 깃꼴로 갈라진다. 갈라진 조각은 달걀 모양 또는 긴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톱니가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꽃은 설상화(舌狀花)로 가지 끝과 줄기 끝에서 8∼10월에 노란색으로 핀다. 열매는 수과(瘦果)로 길이 2㎝ 가량의 가시 모양이며, 끝에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다른 물체나 동물의 몸에 잘 달라붙는다. 봄철에 어린잎은 나물로 식용한다.
한방 자료에 따르면 이 도깨비바늘의 지상부를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채취하여 말린 것을 귀침초(鬼針草)라 하여 약재로 쓴다. 알칼로이드, 탄닌, 사포닌 등의 성분이 들어 있고, 관절염에 소염작용이 현저한 약리성이 있으며, 황색포도상구균의 억제작용도 보인다. 그 효능으로는 열을 내리고 어혈(瘀血)을 풀면서 부기를 빼준다. 위장염, 이질, 복통 등에 쓰이며, 간염, 급성신우신염에도 달여 먹으면 치료효과가 있다.
술에 담가 먹으면 백반병 치료 효과
민간요법으로는 소염 효과가 좋아서 벌레에 물렸을 때 생즙을 환부에 바르면 나았다. 또한 도깨비바늘 꽃을 따서 술에 담가 먹으면 백반병(白斑病)이 진행되지 않는 효과가 있다. 자료에 의하면 도깨비바늘 꽃에 있는 성분이 항산화 기능, 간(肝) 보호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찮은 잡초지만 아주 유용한 약용식물이다.
도깨비는 사전적 의미로 우리나라의 민간 전설에서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잡된 귀신의 하나다. 신통술(神通術)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을 하기도 한다. 어릴 적 그림에서 보았던 도깨비는 사람 형상을 했지만 머리에 뿔이 나고 요술(妖術)을 부리는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소원(所願)을 이루어 준다는 도깨비방망이의 마력에 상상력을 쏟아 부었던 추억이 아련하다. 독특한 씨앗 번식 방법으로 도깨비란 이름이 들어간 재미는 풀이다.
어린 날 정신없이 산이나 들판을 헤매고 나면, 그 씨앗이 어느 틈인가 바지가랭이에 다닥다닥 붙어 떼어내기도 귀찮은 풀이었다. 손으로 털어내기라도 하면 바늘 끝이 살을 찌르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 적 이 풀을 도둑놈가시로도 불렀다. 씨앗 끄트머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또 그 끝은 갈고리 형태로 생겨 어느 물체든지 닿기만 하면 달라붙는다.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몰래 살며시 다가와 스치는 물건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이동번식을 하니 영리하기 그지없는 식물이다.
하찮은 풀 한포기지만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또 그 활용 방법을 배우니 어찌 미물(微物)이라 얕볼 수 있겠는가. 약용식물의 형태와 그 효능을 공부하며 오히려 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비단 도깨비바늘이란 풀에서만은 아니다. 세상 온갖 만물이 존재하는 이치와 그 의미를 인간이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자손(子孫)들이 오가는 문상객을 맞느라 바쁘다. 영정 속의 인물도 하나하나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내려 보며 인사를 한다. 누구도 이 길에서 이 길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철 지난 겨울에 도깨비바늘이 울타리 밑에서 수분이 다 빠진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이어갈 생명의 씨앗을 매달고 있는 것이다. 영정 속 망인(亡人)의 모습과 자손들의 모습에서도 생명과 생명의 끈을 보게 된다. 이 자리는 바로 그 생명의 씨앗이 전해지는 시간인 셈이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본다. 눈발이 거세진다. 도깨비바늘은 그런 날씨에도 제 자리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인내심으로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새 생명의 보금자리를. 측백나무 너머 뿌연 운무(雲霧) 사이로 아차산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소천(召天)하시는 망인의 명복을 빌며 저승에서 또 한 생명의 씨앗이 피어나길 소망해 본다.
출처 : 금강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