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잠실교회(원광기 목사님)에서
월 1,000불씩 박은희 선교사를 후원해 주기로 했던 터라
3주기 추도예배도 의논할 겸
몇몇 디아스포라 운영위원들과 함께
잠실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잠실교회는 5호손 개롱역 근처에 있는데
마침
저희 교회 교인이 운영하는 공장이 그 근처에 있습니다.
제가 하늘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그 공장에서 한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했던 터라
오며가며
잠실교회를 여러 번 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잠실교회를 잘 아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잠실교회에서 모이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고는
지체없이
집사람에게 태워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방향감각에 대해서는
거의 백치에 가깝습니다.
열 번도 더 다녀온 길인데
아직도 입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앞으로 열 번은 더 다녀야 알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제가 방향감각이 어둡다고 하면
남들은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설명을 잘해야 가까스로 알아듣는 수준이 아니고
설명을 아무리 해도 못알아듣는 수준입니다.
남들은
대충 위치와 방향을 알고 찾아간다는데
저는
우회전하고 좌회전하는 골목까지
하나 하나 외야 겨우 찾아갑니다.
중간에 길을 하나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이태원 건너편, 용산동 2가, 남산 밑, 해방촌에 있는
은성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던 시절,
몇몇 친구들과
신당동에 있는 문화교회에서 약속이 있었습니다.
(당시 문화교회에는 이상준 "전도사"가 있을 때였습니다)
이상준 목사님은
지금은 평양노회 파주전원교회 담임으로 시무 중입니다.
당시 저의 집은
천호동 옆에 있는 풍납동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하다는듯이
교회에서 일단 집에 왔다가
다시 문화교회에 갔습니다.
대충 두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2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두 시간 걸려서 왔다고 하더군요.
(그때 송인도 전도사가 저를 심하게 구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거기에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다음에 또 그럴 기회가 있었으면
저는 당연히
집에 갔다가
집에서 문화교회에 갔을 텐데
지금은
집도 이사를 했고
시무하는 교회도 옮겼고
이상준 목사님도 교회를 옮겼기에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하여간
제가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모르는 길을 운전하는 것과
글씨 쓰는 것입니다.
(글 쓰는 것 말고 글씨 쓰는 것)
저는 어지간하면 글씨를 쓰지 않습니다.
제가 쓴 책이 몇 권 있는데
책에 저자 서명도 집사람이 했습니다.
제가 직접 펜을 잡을 때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카드로 결재할 때가 고작인데
그나마 사인이 할 때마다 달라집니다.
개롱역에서 변창배 목사님을 만나기로 하고
집사람에게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또 하나 문제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 때문에 불편한데
저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개롱역에서 변 목사님을 픽업하여
잠실교회에 갔습니다.
박종상 목사님은 먼저 와 있었고
강선형 목사님은 조금 늦었습니다.
원광기 목사님과 잠깐 말씀을 나눴는데
원 목사님은
다른 약속이 생겼다면서
먼저 자리를 뜨셨습니다.
오는 8월 25일(월) 오후 2시에
학교에서
원광기 목사님 설교로 3주기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조만간 변 목사님이 통지할 것입니다.
요컨대
영양가 있는 내용은 변 목사님이 맡았고
영양가 없는 내용은 제가 맡았습니다.
마침 잠실교회 부목사로 사역하시는 분이
총동문회 사무국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 분과 함께 갈비탕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지난 번, 울산에서도 그렇더니
이번에도 저는
별로 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왔습니다.
추도예배 준비를 위한 예비 모임을
조만간 천안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아마 천안에서도 역시 그럴 예정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박 목사님 차를 이용했습니다.
돌아오는 중에
제 집사람을 처음 본 변 목사님이
제 집사람의 미모를 칭찬하더군요.
그런 말을 들으면 조금 억울합니다.
십여 년 전, 학교에서도 누군가 저와 제 집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미녀와 야수"라고 하던데
(아마 송인도 목사님이 그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녀가 누구인지는 알겠지만
대체 야수는 누구란 말입니까?
집사람과 나는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단언하거니와
집사람 좋다고 따라다녔던 남학생보다
나 좋다고 따라다녔던 여학생이 훨씬 많았는데
아무도 안 믿어줍니다.
변 목사님도 안 믿었습니다.
목사가 목사 말을 못 믿으니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다시금 새롭습니다.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는지.....
하여간 오늘도
디아스포라 선교회를 핑계로
잘 놀고 잘 먹고 왔습니다.
아마 다음에는
천안에 다녀온 소식을 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막 들어와서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보내니
이번 메일은 지금까지 보냈던 메일 중에 가장 "따끈따끈한" 메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