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시학>, 2007년 여름호.
그와 나 사이로 굽은 길 외 4편
노춘기
우물이 말하는 것 들어보셨는지, 어느 날.
그냥 몇 개의 문장이 머리 속에서
생겨났고, 나는 그것이
그의 것임을 의심할 수 없었고
그건 꿈속의 우물에서 내가 어떤
사내도 집어올리지 않았기 때문일지 몰라
다른 어떤 꿈도 꾸지 않았어
그와 나 사이에 길이 열린 건,
곧 그는 나, 라는 것. 우물이 속삭인
소리는 영원히 나의 소유물이야
어느 날, 나는, 우물 속에서 기어 나오고
우물 밑에서 내 디딤발을 붙들며
다시 내가 기어오르고, 그 밑에 또,
그 어느 날의 내가,
이끼 낀 손을 치켜들며
우물 밖으로 쓰러지는,
내 소유가 아닌 몸을 지켜보는 것이지
우물은 아주 깊고
우물은 치렁치렁한 물결로 가득하고
우물은 비린내 나는 짐승의 주둥이처럼
어떤 소리를 내지르지
우물이 말하는 것 들어보셨는지 그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물의 꼬리가 구름으로부터 곧게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는지 나는 구름의 꼬리를 꽉 쥐고
나는 그것을 둥글게 말았다가 잠시 뒤에 다시 폈다 한동안 잘 펴지지 않았다 손바닥에 검은 물때가 번들거렸다
변신
그의 등줄기에 햇빛이 새겨져 있다
불편한 듯 그는 잠시 눈살을 찌푸린다
젖힌 고개를 다시 세우는 그의 윤곽은 금속성이다
태양이 왼편에 있고 그의 시선이 오른편을 향했다
지나온 길이 빛을 내며 등뒤의 하늘을 가리켰다
손을 털며 그가 몸을 일으키자 어깨 위의 태양이 흘러내렸다
숲이 툭, 땅 밑으로 몸을 낮추었다
흐물흐물한 몇 개의 다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그의 몸 이쪽과 저쪽을 내다본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완전히 고개를 돌린 그의 배경이 흐릿하다
폭설처럼 그의 시선이 내 얼굴 위로 쏟아진다
흙길을 밟으며 천천히 이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가 온다 숲의 안 쪽에서 거리를 향하여
발밑이 축축하다 지면 아래로 낙엽이 지고 있다
버럭 소리치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두꺼운 커튼을 열어젖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누군가 틀림없이 그를 기다려야 했다
이 밤 아래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달리는 사람
여자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등뒤에 업힌 어둠에게
비명을 내지른다
골목을 걸어내려오던
사내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거리 편의점 앞 가로등이
흰 눈을 깜박거렸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린
교복 차림의 여자 아이가
뒤따르던 택시의 본넷 위로
몸을 던진다 쿵 쿵 쿵
늙은 남자가 잠결에 소파에서 굴러
거실 바닥에 거꾸로 세워진다
형광등이 팟 팟 소리를 내다가
검어진다 연기가 난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고, 시커먼 주둥이에서
시멘트 냄새가 울컥 치솟았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둘기가
은색 세단 앞유리를 뚫는다
가로등이 들쥐처럼 눈동자를 깜박거린다
심야의 DJ가 중얼거리는 문장들이
주유소 간판을 흔들며 지나간다
눈이 시퍼렇게 부푼 사내는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커튼을 치고
방안의 모든 전구을 환하게 밝힌다
창밖의 그들
유리는 차갑고 매끄러워서
이곳과 저곳의 사이를 메운다
내가 보기엔 너랑 나랑
내가 보기엔 너와 네 곁의 너와 다시 너와
내가 보기엔 그들 가운데의 그와 그 사이에
너는 왜 거기 서 있게 된 거지
텅텅 울리는 소리
몸이 흔들리는 소리
왜 빛나는 건 늘
거기 있는 걸까
거기 있는 게 늘
보이는 걸까
건너뛰는 건 없기로 했잖아
사랑합니다
괜찮아요
떨리는 손을 바라보는 자의 신음,
정적이 육체를 갉아먹으리라
약간의 차이를
두고 이곳과 저곳의
불빛이 흔들린다
전화벨이 울리고
너는 다시 여기에서 시작된다
물 아래의 몸
저녁 바람이 강을 건너고 있어 물 아래 물풀들을 가리키는 물살들 물소리들 그 부근에 내 육신이 누워 있어 그 자리에 물안개가 자욱했고 아무도 내가 누운 물밑을 바라보지 않았지
물위에 비친 저녁 숲이 길어지고 다시 이지러졌어 숲의 꽉 다문 입술 안에서 흙빛 깃털이 들썩거렸지 나는 다만 그 깃의 디테일에 마음이 끌렸는데 어느새 물비늘을 가르며 온통 수면을 뒤덮으며 깃털들이 돋아나 조금 따뜻하고 조금 더 어두워지는 물밑
수면 위의 매끈한 어둠 한 켠이 붉게 무너져 저쪽 굽이가 출렁거려 여기에선 태양마저도 아가미를 끔벅거려야 하지 이곳은 물밑이야 모두 물에 몸이 닿아 있지 당신을 닮은 물풀이 물살에 흔들려 당신이 흔들릴 때만 물살의 방향이 보이지 안녕 그런데 왜 이곳에서 당신을 보게 되는 거지
저 먹장 바닥에서부터 별이 떠오르는 중이야 눈앞에서 강이 끝나고 있어 돌이킬 수 없는 내리막이야 저 별을 향해 중얼거렸던 말들이 물 밖으로 비릿하게 튀어오르는 중이야 푸르스름한 바람이 시야를 뚫고 지나가고 있어 그게 보여
| 노춘기
1973년 경남 함양 출생 200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제2회 월하지역문학상 수상.
<서정시학 집중 조명 대담>
<대담>
맹문재 : 노 시인, 요즘 서로 보기가 힘드네요. 저와 마찬가지로 노 시인도 이리저리 바쁘지요. 200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뒤 2006년 ‘제2회 월하지역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나름대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그동안 써온 작품들을 정리해 ‘서정시학 시선’으로 출간할 예정에 있습니다. 시집 출간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을 계기로 더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길 기대해봅니다. 요즘의 생활은 어떤지요?
노춘기 : 오랜만에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하 비디오방에서 갓 나온 사람처럼 좀 눈이 부십니다. 앞으로 더 자주 뵙게 되겠지요. 요즘의 저는 말씀하신 대로 이곳 저곳에서 흩어진 몸을 추스르느라 좀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시집을 묶으면서 정말이지 이 한 권을 계기로 제 마음과 몸을 시에 꽉 붙들어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맹문재 : 누구나 첫 시집을 내게 되면 설렘이 있겠지요. 노 시인의 심정은 어떤지요? 첫 시집에서 특별히 추구하는 면이 있는지요?
노춘기 : 2003년에 등단하고, 작품을 발표하면서 제 관심이 과일맛 캔디처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게 아닌가, 좀 집중하는 지점이 없는 것이 아닌가,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첫 시집에 실릴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일정한 고리들이 꽤 단단하게 얽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입으로 시집의 주제나 목표를 밝힌다는 것이 좀 민망하지만 시집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 ‘가상의 기억’에 관한 것입니다. 기억이라는 게 약간의 노이즈와 빈틈을 갖고 있는 리콜의 과정이니까 그렇게 불러보고 싶습니다. 기억은 사실 자체일수 없다는 것이죠. 육체가 기록하고 있는 기억과 기억의 과정에서 다시 버전업되고, 리메이크되면서 다시 생산된 기억 사이의 충돌은 저에게 매우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최근에는 다른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시집에 실릴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게 되는 생각들은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맹문재 : 노 시인의 등단작 중 한 편인 「무수한 옆집 지붕들을 내려다보는 저녁」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허름한 동네로 보이는데, 시작(詩作) 의도를 듣고 싶네요.
노춘기 :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허름한 동네’라고 하셨는데, 좀 일반적인 지칭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일상적인 도시 공간, 특히 골목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것이구요. 이 작품도 골목을 ‘인간’의 관계와 삶이 유통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제 촉각에 닿는 사물로서의 외부 공간으로 호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등단 무렵에 옥탑방에 살고 있었는데, 그 때 바라본 주변의 풍경들과 그 풍경들에 주목하게 되는 시간의 인상을 포착하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맹문재 : 등단작의 또 다른 한 편인「가방은 큰 입을 가졌네」에 대해서도 역시 관심이 가네요. 작품의 창작 동기나 주제 등에 대해서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노춘기 : 가방은 개인적으로 애착을 많이 갖고 있는 사물입니다. 등단작이다보니, 다른 작품들에서는 되도록 소재로 삼지 않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가방이 저에게 던져주는 여러 가지 감각과 감정에 대해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사실은 어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었는데요,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좀더 제 내면의 풍경에 가깝게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맹문재 : 「무수한 옆집 지붕들을 내려다보는 저녁」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노 시인은 “붉은(다)” 시어들이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안개로부터 시작되는」「담쟁이 덩굴 밑에서 낙서가 자란다」「사과가 있는 정물」「톱니바퀴들의 숲」「붉은 옷」「어머니, 장다리꽃」「구멍의 깊이」 등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는지요?
노춘기 : 저도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붉은”이라는 수식어를 여러 차례 썼던 것 같습니다. 왠지 제 빈틈을 보는 것 같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붉은”이라는 말이 좀 육체적으로 느껴지고, 야생의 어떤 느낌을 저한테 주는 말이어서 그런 이미지가 필요한 시에서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맹문재 : 시어의 쓰임에서는 “어두운(어두워)” 또한 많습니다. 「무수한 옆집 지붕들을 내려다보는 저녁」「꽃잎에게 나는」「가방은 큰 입을 가졌네」「눈 감으면 어둠이다」「거미」「형광등의 시선」「오늘부터의 숲」「마릴린의 치마」「톱니바퀴들의 숲」「무수한 옆집 지붕들을 내려다보는 저녁」「華嚴神將 서슬을 치켜들고」 등에서 볼 수 있지요. 이러한 면에도 관심이 가네요.
노춘기 : 제가 “붉은” 만큼이나 자주 쓴 색이 블랙인 것 같습니다. “검다” “어둡다” “그늘” 등의 시어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색은 다르지만 앞서의 ‘붉은’에서 느껴지는 것과 유사한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시어의 선택이야 작품마다 소재나 주제, 느낌 등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만, 시집 원고를 앞에 놓고 보니 미확인의, 예측불가능한 공간이나 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 어둠의 색채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맹문재 : 작품들에는 “아버지” “어머니”도 상당히 등장하고 있네요. 노 시인의 가족에 대해서 듣고 싶네요.
노춘기 : “아버지”나 “어머니”는 저에게 특별한 호칭입니다. 어떻게 그 두 이름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가족이 시에서 등장하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 사실 좀 보편적인 의미로 환원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편입니다. 뭐, 어쩔 수 없는 측면 또한 있겠다는 생각도 하고는 있습니다. 다만, 그 감정이나 기억이나 그 시간이 고유한 사건으로 생생하게 재현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맹문재 : 「지숙이, 잊혀진 마을에서」는 실존인물로 보이는 “지숙이”가 등장하고 있네요. 좀더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노춘기 : 실존 인물이 맞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던 동네에서 아버지 친구의 딸이었는데요. 실존인물이긴 하지만, 시 속에서 암시되는 서사는 순전히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상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즉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요. 얼마 전에 어머니께 그때의 사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제 기억과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에 근거해서 작품을 수정할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어쨌든 기억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강력한 사실로 제 유년과 청소년기의 한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맹문재 : 작품들의 상당수가 상상력이 동원되어서 뛰어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시창작의 상상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노춘기 : 이해란 무엇일까요? 시 작품을 이해한다는 건 또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아마 그 의미를 언어화해서 문장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 이해가 된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제가 쓴 작품의 전부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작품들이 이해되는 것을 일정 정도 창작 목표의 차선으로 미루어버린 것들입니다. 다만 작품의 이미지나 어조, 단 하나의 비유를 통해서 어떤 인상이나 느낌이 전달되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시적인 상상력이란 인식의 전복과 언제나 함께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전복을 위한 전복에 그칠 뿐이라면, 정말 시창작 행위가 사적인 위안에 지나지 않겠지요. 저는 낯설고 기이한 이미지나 문장이 시에서 일으키는 충돌 속에 시인의 절박함이나 직관의 힘이 분명히 작동하고 있고 그것이 작품을 읽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근래 한국 시단에는 소위 ‘미래파’라고 지칭되는 새로운 시인의 등장과 그들의 활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 시인의 작품들도 그와 같은 성향을 띠는 것들을 다소 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의 시단에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들과의 영향관계가 있는지요?
노춘기 : 저는 그 지칭에 대해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지칭 아래에 거론된 시인들의 대부분을 매력적인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건 취향이나 견해의 영역과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좋은 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진 각자의 생각에 작동하는 전제의 문제가 되겠지요.
영향관계라면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라면 관계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제가 김수영이나 백석, 네루다를 좋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제가 읽어서 좋은 시라면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맹문재 : 「담쟁이 덩굴 밑에서 낙서가 자란다」 「그의 웃음」「빠른 사철나무길」「잘 기억나지 않는 나무」「눈 감으면 어둠이다」「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마릴린의 치마」「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어머니, 장다리꽃」 등의 작품에서 보듯이 시인의 작품에는 “기억”이 많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란 한 시인의 체험이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현재의 정신활동과 행동에 영향을 주지요. 기억이 노 시인의 창작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요?
노춘기 : 저에게 ‘기억’이라는 단어는 기억의 내용이 되는 체험과 그것을 복원시키며 호출하는 행위와 별다른 호출 없이 정신의 정점을 한 순간에 장악하는 어떤 힘, 이 세 가지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와 이어지는 것인데요. 위의 세 경우 모두 직전까지 ‘여기’에 없던 것이 의식의 표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저는 그 등장의 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즐긴다는 건, 비유하자면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깨물기보다 천천히 녹여먹는 태도와 가깝습니다. 저는 기억이 과거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의 현재의 내 감정과 그 배경에서 직접 움직이고 관계를 확장하는 상상력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저에게 ‘기억하기’의 작업은 ‘꿈꾸기’의 작업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과정은 일상의 의식 속에서 숨겨져 있거나 배제되었던 것을 확인하고 재발견하는 일입니다. 가끔은 즐겁고, 가끔은 공포스럽고, 가끔은 지독하게 밋밋한 것. 그게 바로 ‘나’이고, ‘시’라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조금은 어려운 질문일 수 있는데, 노 시인은 어떤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요? 좋은 시에 대한 기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네요.
노춘기 :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 저에게 좋은 시는 절박감, 필연적 이유를 갖고 있는 시입니다. 반대로 나쁜 시는 어떤 방향으로 읽어도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적어도 매너리즘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자기 부정의 시도가 살아 있는 창작행위라면 다 의미 있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 앞으로 시창작의 방향 혹은 관심 분야에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노춘기 : 시집의 원고를 묶는 동안, 이걸 마무리해야 다른 작품들, 다른 시어와 공간으로 좀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밝히고 싶은 제 계획은 좀 편한 몸으로 시를 밀어붙이는 일입니다. 근질근질하고 절박합니다.
맹문재 : 노 시인의 시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리저리 궁금한 점이 더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지요. 첫 시집 출간을 거듭 축하드리고 앞으로 더욱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