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희의 성탄 선물
성탄전야 9시 뉴스를 보고 있을 때 진동모드로 바꿔놓은 식탁위의 핸드폰이드르륵 드르륵소리를 냈다. 16년 전 쯤 브라질로 이민을 간 뒤 한 번도 통화해 본적 없던 외사촌 여동생 순희의 전화였다. 순희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6형제 중 제일 맏이였던 큰 외삼촌의 네 딸 중 셋째 딸이다. 나보다 한 학년 밑인 순희는 어린 시절 나와는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냈던 동생이다.
내 전화번호는 어찌 알았으며 무슨 바람이 불어 전화했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인터넷 까폐에서 우리 동기에게 물어서 내 전화번호를 확인 했다고 했다. 수십일 전인터넷이란 새로운 세상과 접하게 된 순희는 잠재 된 회기성의 본능에 의해 고국과 고향 생각이 났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의 까폐에 자기 가족사진을 올려놓고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기억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순희의 전화에 나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까폐에 들어가 보았다. 앨범 란을 클릭해보니 과연 그 곳엔 해변을 배경으로 한 순희의 가족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고국을 떠날 당시 두세 살 되던 순희의 딸아이는 어느새 예쁜 숙녀가 되었고 세월의 흔적이 묻은 순희가 후덕해 보이는 남편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태어나 20년 이상을 한국에서 살았기에 이미 김치와 된장냄새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배였을 그녀다. 비행기로 하루 반 정도 걸려야 도착되는 지구의 반대편에 산다고 해서 어찌 자신이 태어난 고국과 자랐던 고향을 잊을 수 있었겠는가. 영국시인 윌리엄 워즈워드가하늘의 무지개를 보노라면 내 가슴이 뛰노라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아마도 순희는 멀고 먼 이국에서대한민국이라는 단어만 봐도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까폐에서 발견한 제 1회 졸업식 사진(좌측 하단 머리 긴 여성이 어머니임)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던 날 김포 공항에서 눈물 흘리던 내게 순희는울긴 왜 우냐? 잘살려고 가는 건데…….라는 소리를 남기고 떠났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과연 억척스럽고 또순이 같던 순희가 상파울루에서 자리를 잡고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외가 식구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후 몇 년 주기로 외가 쪽의 셋째 오빠 가족이, 첫째 언니 가족이, 또 이모(순희의 고모)네가, 다음은 둘째 언니 가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브라질로 떠났다. 큰 외삼촌의 6자녀 중 이미 고인이 되신 두 오빠의 가족을 제외하곤 현재 전 4형제가 브라질을 제 2의 모국으로 삼고 정착한 셈이다.
옆집 사람과도 간단한 인사 외는 터놓고 지내지 못하는 콘크리트 문명에 젖어있는 나의 삭막한 도시 생활에 향수에 젖은 마술 같은 바람이 불었다. 바로 초등학교 인터넷 까폐 때문이다.
나와 순희가 다닌 초등학교는 오랫동안 어머니께서 교편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글오월이면 그리운 어머니란 나의 작품을 인터넷 까페 글방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순희가 겪었을 변화에 버금 갈 정도의 브라질발 기적 이 일어났다. 나를 아는 선후배, 나는 몰라도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선후배, 어머니보다 10여년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동생의 친구들 언니의 친구들……. 내가 올린 글 한편이 그들과 나 사이에 빠르게 인연의 연결 고리를 엮고 있었다.
어머니라는 매체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망각의 강물 위에 닫혀있던 기억상자들이 연이어 열리며 그 기억의 편린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듯했다. 덕분에 한 번도 기억해 보지 못한 채 수 십 년간 쌓여있던 어머니와의 대화 장면들까지 연꽃이 망울을 터뜨리듯 신기하게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거주하는 순희의 가족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의 전문학교를 나오고 20살까지 일본서 지내신 당대의 신여성이었다. 어느 날 교정에서 지진으로 땅이 움푹 파이고 수십 명의 친구들이 매몰되는 소름 끼친 광경을 목격한 뒤 하루빨리 일본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시고는 가족들을 설득하시기 시작하셨다했다.
생존하셨더라면 올해 81살이 되시는 어머니(11년 전 작고)는 당시 피아노를 치시고 외삼촌들은 바이올린을 켜고 사실 정도로 부유한 생활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미루어 볼 때 외할아버지는 상당한 재력가이셨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똑똑한 맏딸인 어머니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쏟으셨다했다. 한국행을 원하는 간절한 맏딸의 의견에 외할아버지는 마침내 동의하시기로 하셨지만 큰 외삼촌(순희의 아버지)은 가 본적은 없지만 척박할 것만 같은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기를 끝까지 반대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끈질긴 회유와 설득으로 결국은 가족 모두 한국 땅에 둥지를 튼 곳이, 외할아버지의 고향이며 또 내가 나서 자란 경상도의 한 마을이다.
태어나 20살까지 일본에서 지낸 어머니는 한국말을 하지 못하셨지만 총명하신 탓에 1년 남짓한 기간에 한국말을 통달 하셨다했다. 그러나 귀국한지 몇 년 안 되어 동족간의 참담한 전쟁인 6.25 동란을 맞으셨다한다. 그 당시의 신여성들이 야학을 운영하듯 어머니도 전란의 회오리 속에서 많은 문맹자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 어머니가 평생을 교단에 서게 된 계기가 된 일이다.
부유하고 편안했던 삶을 떨치고 귀국한 후 3년이나 지속된 참혹한 전쟁까지 겪었으니 매순간 순간 후회인들 없었으랴. 가족 모두를 고생길로 내 몬 것만 같아 죄책감도 많으셨으리라. 교편생활 중 인근의 부산과 마산으로 몇 차례 발령이 났지만 어머니는 도회지로의 전근을 번번이 거부하셨다했다. 아마도 그것은 외할머니를 비롯한 친정 피붙이와 떨어져 있어야 할 현실을 고려한, 즉 친정 식구들을 곁에서 돌봐야만 한다는 맏딸인 어머니 나름의 사죄에 가까운 애착 때문이지 않았나싶다.
그런 연유로 오랫동안 고향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탓인지 인터넷 상에서 유난히 어머니를 기억하는 제자들이 많았다. 고모가 누나가 또는 동생이 ....... 모두 어머니의 제자였다며 마치 어머니를 그 학교의 대명사처럼 떠 올리는 후배들도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순희의 전화 한 통으로 알게 된 초등학교의 까페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진한 고향 냄새가 났다. 또 하루에 몇 번씩 까폐를 방문할 때마다 신기함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시공을 초월한 그 공간에서 전국에 흩어진 많은 동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상파울루와 서울이라는 물리적인 거리가 실감나지 않는 공간에서 매일 순희와 정신적인 교감을 갖는다.
2008년 성탄절! 나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사는 외사촌 동생 순희에게 선물을 받았다. 순희가 나에게 준 성탄 선물은 내 어린 시절과 어머니와 동생과 동문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바로 정답고 그리운 추억의 밭이라 할 수 있는 초등학교 인터넷 까폐다.
2008년 12월 30일
첫댓글 며칠 전 브라질로 이민간 외사촌 여동생 순희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곳을 알게 되었지요. 여러분을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다른 어떤 까페보다도 이 곳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많다는 걸 보면 난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 초등학교 출신이 맞긴 맞는 것 같군요. 새해에는 모두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만사 형통하길 바랍니다.
여기서 보니 고향생각이 절로나네요 순희언니도 브라질가서 잘살고 보기가 좋네요 이상구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울 어머니랑 연세가 같은데 엄마는 팔순도 하고 친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선생님이 계셨드라면........
선희야! 아침 밥은 먹고 들어왔냐? 일찍도 들어왔구나. 어머니가 행복하게도 아직 살아계시는구나. 잘 해 드려라. 아들들은 세세하게 살갑지 못하기에 딸이 그 몫을 해야한단다. 수반 아지매 팔순! 마음으로나마 축한데이. 엄마 보걸랑 내가 안부 전한다고 전하거라. 최하로 100살까지는 사셔야 한다고도 전하거라. ㅎㅎㅎㅎㅎ
저도 12월 친구들 모임을 통해 이공간을 알게됐네요~~ 나름대로 친구들과 모임도 갖곤했지만 이공간은 까마득히 모르고잇었는데 요즘은 눈뜨고 눈 감기전엔 아니 낮시간에도 시간이 나면 들어와보곤 한답니다~ 멀리있어 얼굴을 못봐도 마치 한공간에 있는듯한 느낌에 날마다 새록 새록 정이 드는느낌이예요~~얼굴도 본적없ㅎ는 언냐도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더구나 이상구 선생님도 어느새 우리들 기억저편에 잊혀져가다가 여기오니 생생하니 떠오르네요~~
미야님! 참 예뿌던데....너무 예쀼던데 혹 성형한 얼굴은 아이제??? ㅋㅋㅋㅋㅋ 참 정겹고 좋구나. 조금만 다리를 놓으면 죄다 누구의 동생 누구의 언니 ... 들이니 말이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이쁜 모습 그대로 간직하며 살거라.
하이고 언냐~~ 성형햇음 실패작이죠~~~ㅋㅋ이런 성형도있나요~
사진보니 눈은 오드리햅번이구 코는 클레오파트라구 입술은 황진이구 얼굴형은 장미희구..... 성형 아니면 엄마 아빠의 제작 기술이 보통이 아니였나보다. ㅋㅋㅋㅋ
에구~~~언냐 그만 놀리세요~~~~~~~~~~ㅎㅎㅎ미야 엉덩이 깨지겟넹 소쿠리 비행기 타다가 추락~~ㅋㅋㅋ
이 공간이 없었다면 이상구 선생님을 기억속에 묻어 버릴뻔했네요. 선배님을 통해서 선생님에 대한것을 많이 알게됐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혜정 후배도 몰랐죠? 울 엄마가 한국에 20살에 오게 된 이유를.... 나도 잊고 있었어요. 여러분 때문에 옛 기억이 호롱불 밝혀지듯 되살아나더이다. 늘 행복하길....
지금 무자년의 마지막 시간, 겨우 7시간 정도 남겨두고 타임머신을 타고 37년전 과거로의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글 아름답습니다. 유년시절 감정 북받쳐 눈시울이 따갑습니다. 그시절 동심들이 그립습니다.
나도 짐 실내 골프 연습장서 운동하다 잠시 휴식함시롱 컴 앞에 있어유. 그만큼 삐꿈삐꿈하고 싶은 곳이 이곳이더라 이말이지유. 성환 후배 덕분이라우. 어디 살우? 서울 살면 미리 연락하고 함 놀러와요. 밥 사줄께....... ㅋㅋㅋ 밥 사줄 후배 많아서 우리 집 거덜나게 생겼넹. 그래도 좋아 좋아. 거지가 돼도 좋으니 오셔유.
선배님 ...이상구 선생님을 회고 할수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우리 아버지와 그리고 우리 6남매의 스승님 이시죠 그리고 함박꽃을 좋아하신건 아세요 우리집에 함박꽃이 많은걸 아시고 봄이오면 함박꽃 을 가져오게 하셔서 화병에 곷아두곤 하셨어요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춘화님 반가와요. 울 엄마가 정말 함박꽃을 좋아하셨을 거에요. 이제 생각해보니 우리 집 화단에도 함박꽃을 많이 심었었어요. 어느땐 어디서 얻어오기도 했는데 그럼 그때 얻어 온 함박꽃이 춘화님 집에 것일 수도 있겠당. 이렇게 엄마의 제자들이 많으니 엄만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고마워요.
언니야! 고모도 하늘나라에서 사랑하셨던 제자들 다 보고 계실꺼야 그치 이 까페 덕분에 언니 요즘 신났지 그리고 언니야 예날 너거집 화단에 함박꼿 무지하게 많았다 .
언니 선희가 누고 태수동생?
우리 바로 앞집에서 좌로 한집 건너 수반아지매 막내딸! 그 뭐시냐. 웃담에 새미있제. 새미근방에 사는 석자언니 동생. ㅋㅋㅋ 웃담. 새미!!!! 오랫만에 써보는 말이다. 근데 태수는 두열이 사촌 아니가? 태수는 아니다.
언니야 지금은 이 남진이가 그 화단을 지키고 있다 아이가..........ㅎㅎ보고잡~데이.........^^*
언니야~나도 다시한번 엄마를 생각 해보게 된다.요즘 잊고 있었던 울엄마..........ㅠㅠ 맘에서 지워진것도 아닌데~미안하다 ~언니야 ㅋㅎ 언니글을 읽다보면 눈시울이 적셔져서 잘 안읽을려고 하는데 오늘 선희언니가 얘길해서 들어와봤더니~~~~~~~~ 울언니 문인답다~역시 남의 맘을 흔들어 놓을수 있는힘이 강하다. 우리 언니라서가 아니라 너무 존경스러운 우리 문남선씨~~ 이제 절대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언니가 원하는 작품들 하나 하나 만들어 가길바래~ 책을 읽어도 울언니가 쓴글이 최고더라 ㅎㅎ 언니야~ 엄마에 대한 일을 윗글을 읽고 알은것도 있다. 엄마가 20살 까지 한국말을 못했다는거........
선희가 얘기했냐? 워따매 소문도 빠르네. 니는 어려서 아직 엄마에 대해 모른는게 많을거다. 이곳에서나마. 내 글 읽어보렴. 네가 모르는 언니도 또 알게 될거야. ㅎㅎㅎㅎㅎ 늘 건강하고 열심히 살고....
알써 언니야~몸도 좋지 않은데 지금 까지 잠도 안자고........ㅠㅠ난 될수있음 언니글 모든걸 천천히 읽는다. 왠지 알어........??너무 감동을 먹어버리니깐 감동 적게 먹으려고 ㅋㅋ나만 감동 먹는게 아니라 언니글 진짜 잘쓴다. 많은 사람들이 동요가 될거야.오늘 선희언니 수반아짐보러 왔어 ㅎㅎ그래서 얘기 들어가지고 가입했다. 선희언니가 순대랑 떡볶이 사가지고 와서 잘먹었다 ㅎㅎ정말 맛있더라~언니야 빨리자라.....^_-
남진아 잘 먹었다니 고마워 그래도 언니글이 너무 감동을 주니 까 하나도 안 빠뜨리고 잘 보곤해 너희집 화초랑 너무 보기 좋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개는 넘 불쌍했고 잘 키워 이번주 토요일에 시골가서 만나자
오랫만이네. 선희야! 그래도 내 글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와 닿은다니 다행이구나.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이 자신과 잠시라도 함께하며 짧은 글 한편에서도 작은 메세지를 얻어가면 그 자체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단다. 혹 아는 언니 글이라 그런 것 아니니? ㅎㅎㅎㅎ
토요일 지나고 일요일이 지나도 안오네 ㅋㅋㅋㅋㅋㅋㅋ 언니야~우울증 앓던개가 강아지를 낳았어 네마리씩이나.......언니야 자주보고 살았음 좋겠다.
옴마야! 집구석에만 처박혀 살던 띠띠가 왠 강아지를 낳아? 갸 밖에 안 나갔잖냐? 근데 네마리 다 어떡하냐? 니가 다 키우지 못할텐데... 그렇다고 다 키울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아무나 주면 갸들 딴 집가서 구박 받을텐데....... 새끼 낳지말게하고 키우지 그랬냐? 어쩌냐? 암튼 구박 안 받는 집에 줘라.
인공수정 한겨 ㅎㅎㅎ 밖에도 안나간대며 언놈이 야밤에 담 뛰어넘어온거 아녀ㅎㅎㅎㅎㅎ 남진아 강아지 많이 사랑해주는집에 입양 해야해 알앗지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