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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술 명의열전 벌침 놓는 박사님 서영기
의사야 의사가 되려고 의과대학을 갔으니 의사가 되었겠지만, 의과대
학도 가지 않고 의사도 아닌 사람이 병을 고치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 그리 되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지 궁금한 일이다.
더구나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를 의사도 아닌 사람이 잘 고치고 있다
면 의과대학은 쓸데없는 곳이고 의료제도도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가
되니 예삿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적지 않고, 따라서 제 정신 가진 나라는
그런 경우까지도 고려해서 이를 포괄할 수 있도록 의료제도를 유연하
게 만든다. 영국 같은 나라는 치료할 수 있는 자격에 아예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니,
세상살이에 대한 통찰에 있어서 역시 가장 세련된 나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모국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반면에 의료인의 자격을 의사만으로 딱 고정시켜 놓고 어떤 명
의가 있어도 의사 아니면 치료 못한다고 고집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야
말로 이치도 모르고 인생의 맛도 멋도 모르는 벽창호 단세포 같은 하
등동물 나라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나라도 있다. 어느 나라
인지 독자 여러분이 잘 알 것이다.
서영기(徐英機) 선생님은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러니 다음부터는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평생(33년간) 봉직하다가 2002년에
정년퇴직하신 분이다. 이 분이 교수 재직시절부터 해서 근 30년 가까운 세
월 동안 벌침으로 환자를 고치고 있는데, 그것도 병원에서 치료를
못하는 난치병 환자를 쓱쓱 고쳐내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어떤 병을 고쳤는지, 우선 그 분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대장암(직장암)을 고치다
어느 날 50여세 된 남자가 연구소에 찾아왔다. 20대의 딸이 동행했다.
일견하여 얼굴이 핼쑥하고 걷는 힘이 없고 쇠약한 몰골이 말이 아니어
서 위나 장이 나쁜 환자라고 직감하였다.
오게 된 연유를 물으니 2년 전에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프고 변을 볼
때마다 힘이 들고 변 줄기가 가늘어져 누기가 어려워지더니 얼마 후부
터는 선홍색의 피가 변에 묻어 나오면서 하복부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며칠 후에는 왼쪽 하복부 직장 위에 단단한 것이 만져지고, 그곳을 누
르면 아프고, 속으로는 둔통을 느끼게 되었다. 증세가 이상해서 병원
대장항문과를 찾아가서 2,3일 동안 검사를 하니 직장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어처구니없는 진단 결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수술을 해야만 산다는
의사의 말에 어떻게 할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
던 중 이웃 동네 친구로부터 ‘수술은 나중에 할 수도 있으니 벌침으
로 치료해보라’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진단 결과가 정확하게 나왔으니 진찰을 따로 해볼 것이 없어
프로폴리스를 복용하게 하고 하초의 관원, 중극, 대혁 등 4혈에 벌침
을 놓고 돌려보냈다. 이전에도 직장암 환자를 여러 명 고친 적이 있어
서 별로 어려운 치료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다음날은 수도, 귀래를 중심으로 6침을 직침하고, 3회째는 관원유, 방
광유, 백환유, 상료, 차료, 중료, 하료, 요유, 장강 등 15혈에 직침했
다. 프로폴리스를 계속 복용시키면서 침은 매일하되 하루는 하초부의
전체, 하루는 뒷면 엉덩이부분 전체를 침하면서 20여회 놓고 나니 효
과가 나기 시작했는지 통증도 없어지고 항문출혈도 없어져서 그 부위
가 개운해진다고 한다.
계속해서 20회를 더 맞고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암세포의 잔재가
조금 있을 뿐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프로폴리스를 복용
하면서 벌침을 1회에 거의 80침정도 맞아서 80여회 치료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완치상태라고 하기에 20여회를 더 맞고 모두 100여회 벌침으로 치료를 끝냈다.
그 후에도 염려가 되어 프로폴리스 액을 계속 복용하고 있는데, 3년이
지난 오늘도 정상인의 생활을 하고 있다.
위궤양을 고치다
환자는 58세 된 남자. 핏기 없는 얼굴에 아주 쇠약해 보이는 몰골로
교회 봉침센터에 들어서며 하는 말이 ‘저는 위궤양이 생긴지 15년이
됐는데 밥도 제대로 못먹고 거의 흰죽으로 때를 메꾸는데 아예 외식은
생각도 못한다’고 한다.
된 음식이나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2,30분간 배가 아파서 견디지
못하고 하루 종일 배가 불편하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근 10년이나 했
으니 더 무거운 병으로 전이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우선 벌침을 맞을 것을 권하여 앞면에 중완, 상완, 불용, 양문혈에 6
침을 하고, 위와 장 질환에 프로폴리스의 복용이 절대 효과를 낸다고
하여 이를 복용하게 하였다.
다음날 경문, 황유, 중극, 허리부분의 위유 등에 7침을 하고 3일째는
격유, 근축, 중추, 담유, 척중, 접골 등에 8침을 했다. 물론 위궤양이
기 때문에 위(胃)부분의 앞뒤를 침하는 것이 아시혈 용법이 되는 것이
다. 그런데 5일후에 와서 하는 말이 침과 프로폴리스를 복용했는데도 별 신통한 효과가 없다고 한다.
위통, 거북함이 있거나 음식을 먹었는데 팽만감 등이 있을 때 정제하
지 않은 프로폴리스 덩어리를 팥알만큼 떼어 납작하게 만들어 한번에
30알 정도씩 입에 넣고 물로 삼키면 먹은 지 약 15분 후에는 어떠한
증상도 조용히 가라앉고 뱃속이 시원한 느낌을 갖게 되며 소화가 촉진된다. 그래서 이 환자에게 프로폴리스 덩어리(봉교)를 주먹만큼 주면
서 하루에 한번 씩 보름 동안 복용하고 벌침은 날마다 빼지 말고 맞으라고 했다.
그 일주일 후에 와서 하는 말이, 음식을 먹어도 속이 편안하고 부대끼
지 않아 살 것 같다고 한다. 벌침을 계속 60여회를 맞고 프로폴리스
덩어리(봉교)를 20일 동안 하루에 30알씩 먹고 20일후부터는 프로폴리
스 액을 물에 타서 복용하게 했다. 그러고 나니 완전히 나은 것 같다고 한다.
(침점이 많으니 침놓는 순서는 상관없이 22혈을 3등분하여 하루에 7혈
씩 3일에 침하면 된다. 20여회정도 후에는 앞뒤로 나누어서 2회로 침
하고 40회 정도 후에는 위혈을 한꺼번에 침해도 무방하다)
피부암을 고치다
67세 된 노인이 하루는 전화로 문의를 한다. 엉덩이 밑 승부(承扶)혈
옆에 종기만큼 큰 부스럼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생각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피부암이라고 진단하더라는 것이다. 암이라는 충격에
한동안 걱정을 많이 했으나, 걱정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우리 연구소에 문의를 하게 된 것이다.
연구소에서 시키는 대로 벌침을 시작했으나, 내용을 모르는 가족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것이지 그까짓 벌침으로 치료되겠냐고 하는 반
발에 부딪쳐 한동안 벌침치료를 망설이다가 문득 수년 전에 이웃사람
이 피부암으로 죽은 것을 기억하며 병원에서도 암의 치료만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무책임하고 막연한 권고에 화도
나고 속도 상하여 어찌해야 할 것인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벌침을 시작함에 있어 우선 온몸에 혈액순환이 잘 되어 피가 맑아지도
록 담마진혈(두드러기혈)을 10여일간 사용하고, 다음부터는 암이 생긴
곳에 골고루 10혈침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30,40침씩 꽂게 되었다.
두드러기혈은 3일에 한 번씩 침하고, 환부는 매일 침하였다.
30회부터 암덩어리가 생긴 곳 중간 한곳에 10침씩하고 환부와 그 주위
에 골고루 침했다. 이와 같이 20여회를 침하고 나니 환부 중간에 구멍
이 뚫리면서 불그스레한 맑은 물이 나오고 그 속에는 희고 누른 고름
같은 암세포가 가득 차있다.
이와 같은 식으로 30여회를 더 침하니 환부가 흐트러지고 냄새도 나고
통증도 느끼기 시작한다. 벌독은 페니실린의 1,200배 항생작용을 하니
벌독이 환부에 들어가면 찔깃찔깃한 세포가 녹아 흡사 고름과 같이 흐
늘흐늘해진다. 그런데 흐늘흐늘해진 고름과 같은 것들을 부항을 붙여
빼내고 계속 환부에 침해서 3개월을 했는데도 환부만 커졌을 뿐 낫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는 벌침치료로 안되는 것이 아니냐
고 조바심을 내며 전화를 걸어온다.
이와 같이 60회를 더 치료하고서는 환부도 좁아지고 얕아졌다. 그때부
터 봉교(프로폴리스) 덩어리를 환부에 계속 붙이게 했다. 봉교가 암세
포에 닿으며 그 세포를 무력화해서 고름처럼 흐느적거리게 한다. 이때
부항을 붙여서 무력화된 세포를 빨아낸다.
계속 치료를 했는데, 당사자는 암이라는 충격이 너무 커서 양방 한방
의 여러 책을 찾아보았으나 어느 의학서적에도 피부암이 치료된다는
내용은 쓰여 있지 않아서 오직 벌침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그럭저럭 7개월 만에 완전 치료되었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치
료된 환부가 평평하지 않고 쭈글쭈글하게 아물었다는 것이다.
반신불수를 고치다
환자는 고향 친정집에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
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좋다는 약을 다 써 보았으나 낫지 않고,
침도 수개월 동안 맞았으나 이것도 차도가 없어 포기상태였다. 그러던
중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 벌침이 효과가 있다고 하니 치료해볼 생각으
로 찾아왔다.
처음 봉독의 적응을 실험하기 위해 벌 두 마리만 마비된 쪽 다리 관절
에 시침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음날도 환측에 벌 4마리를 시침
했지만 아프지도 붓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음 3회째부터는 합곡, 곡
지, 족삼리, 양능천, 삼음교에 직침하였다. 4회째에는 합곡, 곡지, 외
관, 족삼리, 양능천, 삼음교, 용천혈에 직침하였다. 5회째부터는 위
혈에 모두 직침하고, 하루는 팔관절에 2,3침, 하루는 다리관절에 2,3
침씩 모두 8~10침을 가침해 나갔다.
6회째도 위와 같이 침하고 승산, 곤륜에 가침하였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7회째에도 위와 같이 침하였다. 그 다음날 몸살이 났다고 하여 벌
침을 일시 중단하였다. 3일을 쉬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고 조금씩 움직일 수가 있다고 하면서 바깥출입을 할 정도로 좋아졌다.
벌침을 맞기 시작한지 한 달 쯤 지나서야 벌침이 몹시 아프다고 하여 격일로 시침해 나갔다. 그 전에는 따끔하기만 하고 별로 아픈 것을 모
른다고 하더니 이제는 점차적으로 통증을 느껴 시술하기에 곤란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120여회를 치료하고 나서 그전처럼 시장에도 다니고 마음대
로 활동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새 인생을 사는 느낌이
라고 하며 지금도 만날 때마다 감사를 표시한다.
신장염을 고치다
하루는 47,8세 된 여인이 남편과 함께 봉사센터에 찾아왔는데, 얼굴이
창백하여 병색이 완연하다. 침대에 눕게 하고 지실 부위와 장문(章門)
위를 압진하니 격통을 느끼고, 아랫배 양쪽에 단단한 덩어리가 있다.
혈압을 재어보니 210-160이다. 피로도 자주 오고, 고개돌림도 불편하
고, 가끔 심호흡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소변의 배출을 물어보니 단백이 있고 자주 보며 그때마다 양도 적고 잔뇨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상 제점을 검토하건대 만성 신장염에 틀림없다. 치료해 줄 것을 간청하기에 벌침을 천추, 격유, 간유, 비유, 위유, 심유, 지실, 척중,
삼음교, 태계에 발침해서 시술했다.
7회를 치료하니 어깨결림이 없어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배뇨회수도 반
감하고 요(尿) 배출이 순조로워졌다. 20회를 치료하고 나서 요단백도
없어지고 피로감도 거의 없다고 한다. 25회를 치료하고 나니 병증상이
완연히 없어졌으며 이후에도 15회 정도 더 받아 신장기능을 회복시켰
다. 장기간 치료를 요하므로 로얄제리와 프로폴리스를 복용하도록 권하고 치료를 마쳤다.
37,8세에 용모가 단정하고 언어가 명료함이 그 사람의 교양을 말해주
고 있다.
수인사가 끝단 다음에 하는 말이, 8년 전 산고(産苦)가 있었는데, 산
후조리를 잘못해서인지 늘 몸이 무지룩하며 무겁고 팔다리에 힘이 없
으며, 머리가 아프다가 허리도 아프고, 하복부가 늘 개운치 않으며 가
끔 동통을 느낄 때가 있고, 소변을 자주 보고 싶고 소변 볼 때 동통을
느끼고 7,8분 간격으로 뇨의를 일으킬 때가 많다고 한다.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별 쾌(快)하지도 않고 해서 계속 통원치료를 6
개월간이나 했으나 겨우 요의(尿意) 시간이 1시간 정도로 느려졌을 뿐
이다. 병원 처방대로 양약으로 살아왔는데, 위도 나빠지고, 약을 먹고
나면 그 때 몇 시간만 반짝하고, 월경은 순조로우나 4,5일에 1회씩 보
게 되는 변통(便痛)이 상습변비를 일으켜 더욱 괴롭힌다고 한다. 그리
고 배뇨시의 하복부 불쾌감이나 요도통은 별로 낫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여러 병원을 찾아 다녔으나 신통한 치료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진단을 해보니 하복부의 대혁, 중극, 곡골 부위에 압통이 심하고 대장
유, 소장유, 상․차․중․하료 부위에 압통이 강했다. 여러 가지를 고찰하
건대, 오줌을 자주 누고 싶은 것과 가끔 혈뇨가 비친 점, 산후조리의
부실로 맥박은 약하고 저혈압인 점, 이 모두가 만성방광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것이다.
첫날은 목뒤 1경추에서 7경추까지 5분간 광선을 쬐고 난 다음 중극과
대혁 양족에 직침으로 3침하고 돌려보냈다. 2일부터 상기 부위에 매일
50분씩 광선을 쬐고, 벌침은 2일째는 대거, 관원, 곡골 등에 4침하고
3일째 방광유, 상료, 중료 6침하고, 4일째는 신유, 지실, 대장유, 소
장유에 8침하고 나니 5일째는 하는 말이 한기도 그치고 그렇게도 차던
하복부가 훈훈해져서 기분도 명쾌하고 요(尿)의 빈수도 상당히 줄고
통증도 꽤 가셨다고 한다. 자각증상이 이러하니 치료된다는 느낌이 확
고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봉침점을 3부로 나누어 20회 하고 나니 자각증상의 90%는
치유된 것 같다고 한다. 12회를 더 치료하여 완치시키니 본인의 기쁨
은 말할 것도 없고 남편 되는 분은 뛸 듯이 기뻐했다.
갑상선염을 고치다
3년 전 어느 날 시모와 함께 30세쯤의 깡마른 젊은 부인이 교회 봉사
센터에 왔다. 눈에 띄는 대로 목을 쳐다보니 목 앞부분 양쪽에 2-3센
치 넓이로 나비형을 한 띠모양의 엷은 조직이 흡사 부어있는 것처럼
약 5센치 길이로 나와 있다. 직감으로 갑상선 환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젊은 부인이 하는 말이 4-5년 전 처녀시절부터 갑상선염이 생겨서
체중이 58kg에서 지금은 44kg으로 감소되었다고 한다. 식사는 예나 지
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하고 있는데도 체중의 감소는 물론, 조금만
움직이면 쉽게 피로를 느끼고, 특히 신경과민으로 사소한 일에도 흥분
되고 화가 나며, 그럴 때는 손가락이 떨려 식사할 때 숟가락을 놓칠
정도라고 한다.
이런 중에도 2년 전 아들을 낳고, 지금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 한다. 맥을 짚으니 부정맥인데 가늘고 약하게
뛰면서도 대중없이 일정치 않다. 저혈압이며 극심한 빈혈현상이라 툭
하면 어지럽고 현기증이 온다.
거궐혈을 압진하니 놀란 새가슴처럼 두근두근한다. 척추의 신도혈을
압진하니 자지러지게 아픔을 느낀다. 그 밑으로 지양과 영태를 누르니
마찬가지로 심한 통증을 느낀다. 이상 제점을 고찰하건대, 이 젊은 부
인은 갑상선 기능항진에서 오는 빈혈을 동반한 저혈압이다.
우선 조혈을 촉진하고 저혈압을 개선시키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봉산물인 화분을 복용케 하고, 용혈작용과 혈액순환을 원활케 하고 갑
상선호르몬의 과잉분비를 억제시키는 봉교액(프로폴리스)을 복용시키
고, 첫날 벌침은 갑상선 보조혈인 중완, 황유, 족삼리, 관원에 발침하
고, 2회째는 백회, 곡지, 대추, 합곡, 격유, 명문, 신유, 십칠추하에
침했다. 3회에는 목 앞부분을 발침해서 1센치 간격으로 누벼서 산침했
다.
이렇게 목 앞부분 전면에 3회 침하고, 위의 보조혈에 1회 침하여 모두
20회를 맞고 나니 목 앞부분에 종대한 부분이 다 없어지고 빈혈과 저
혈압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계속해서 25회를 더 침하여 전부 45회를 침했는데, 이때는 갑상선 기
능항진 증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이것으로 치료가 되었다고 단정하
고 침하는 것을 끝냈다.
또 자연식품인 화분과 프로폴리스, 로얄제리 복용으로 빈혈과 저혈압
도 거의 정상치가 되었으나 만약을 염려하여 3개월을 더 복용하게 했
다. 그 후 그녀는 치료 6개월 만에 시모와 함께 연구소에 찾아와서 사
의를 표하고 한보따리 선물을 두고 갔다.
동맥경화를 고치다
환자는 중소기업 사장이다. 부인과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왔는데,
외모상으로 인격과 지식을 갖춘 인물로 보인다. 후두부위에 순환장애
가 있어 항상 두중(頭重)이 심하고, 가끔 두통이 오면 머리를 들지 못
하고 한참 동안 의자에 기대어 진정시키고, 상열이 되면 정신이 착란
해서 그 동안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기억력 감퇴와
서사력 장애가 있는 것을 보니 신경쇠약증이 심하다.
요즘에는 이러한 환자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사회적 지위가 높고 책
임이 중한 자리와 회사 중역 같은 경영자에게 많이 생기는 병이다. 이
러한 환자는 대부분이 동맥경화에서 오기 때문에 진성의 신경쇠약이나
노이로제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 환자는 심(心), 간(肝), 위(胃) 등의 내
장의 장애를 치료하여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후두부의 순환장애를
대상으로 치료해야 되겠기에 천주, 풍부, 백회, 태양에 직침했다.
두 번째 와서 하는 말이, 잦은 피로와 기억력 감퇴, 권태감, 불면, 두
통, 두중, 후두부 열감이 심하다고 애소했다. 종합병원의 진단은 병이
라 할 수 없고 격무에 시달리는 일종의 노이로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주사와 약을 2개월에 걸쳐 사용해도 그때뿐이고 얼
마 후 다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2회에는 화개, 전중, 거궐, 신봉, 기문, 중완, 황유, 대거, 관원 등
13혈에 벌 7마리를 써서 침했다.
3회는 신주, 심유, 격유, 간유, 신유, 혈압점, 견정, 운문, 천종, 대
무 등 18혈에 침하고, 4회는 상지의 곡지, 수삼리, 신문, 합곡, 하지
의 족삼리, 삼음교, 용천 등의 혈에 침했다. 5회부터는 이상의 혈을
전부(前部) 후부(後部)로 나누어 매일같이 치료했다.
위와 같이 15회를 침하고 물으니 두통과 상열감, 상지 하지의 비감(脾
感=저리는 느낌)이 거의 없어지고 이제는 견딜만하다는 것이다. 여기
에 용혈작용이 강한 프로폴리스 액을 복용시키면서 30여회를 침하고
치료를 끝냈다.
통풍을 고치다
어느 날 환자의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이는 45세이고 환경
과 가정형편도 좋은 편이며 전에도 10여일간 아픈 적이 있었는데,
진통제만 먹고 모면했다고 한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 갑자
기 4,5일 전부터 무릎마디
가 아프고 두 다리 발가락 마디가 아파서 꼼짝을 못한다는 것이
다.
그래서 한의사에게 왕진을 받았는데, 류마티스 관절염의 시초라 하여 한약을 한제 지어다가 다려먹고 있는데, 진
통은 조금도 안되고 오히려 더 심하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며 묻
는다.
환자를 보니 건강하고 비대한 편이며 튼튼한 골격이 소도 잡을 만
큼 튼튼해 보였다. 한의사의 진단 결과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말
을 듣고 증세가 비슷함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
하게 느낀 것은 6개월 전에 10여일간 아픈 적이 있었고 그 후 6
개월 동안을 전혀 아프지 않다가 갑자기 통증이 심해서 거동을 못
한다는 점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이 병은 류마티스가 아니라는 생
각을 하게 되었다.
순환계 병은 몸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찰과 맥진
만으로는 병명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다. 환자의 증상을 다 듣고
이리저리 종합해서 생각한 끝에, 그 전에 아픈 적이 있었는데 6개
월 동안 괜찮다가 통증이 다시 시작되어 거동하기가 어렵다는 점,
열을 재어 보니 39.5도가 되고 평소에 술을 많이 먹고 육식을 많
이 한다는 점, 소변을 자주 보고 양이 적다는 점을 종합하여 보니
이것은 류마티스가 아니고 통풍이라 단정했다.
그래서 당신의 병은 통풍이라고 말해주고 벌침으로 60-70회 치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했다. 소개한 친구 분이 훌륭하고 신용이
있는 분이라 믿고 치료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백회, 천주, 대추, 심유, 격유, 신유에 발침해서 치료
하고, 2일째는 지실, 몸 전면의 인형, 전중, 거궐, 중완, 황유,
관원, 중극, 대혁에 침하고, 3일째는 몸 후면의 백회, 천주, 풍
부, 대추, 심유, 격유, 간유, 신유, 족삼리, 태계에 역시 발침했
다.
4일째는 역시 전면의 인형, 전중, 거궐, 황유, 중국, 관원, 대
혁, 족삼리, 삼음교, 태계, 용천, 혈압점 환부에 발침으로 시침
했다. 5일째 놓고 6일째 아침에 전화가 왔는데, 아침부터 통증이
씻은 듯이 없어졌으니 치료가 된 것이 아니냐며 침은 그만 맞겠다
는 것이다. 진통이 되었어도 60회 정도 맞아야 완치된다고 하니
반신반의하면서 “깨끗이 낫는다니 어디 해 봅시다” 하며 사무실
에 나와서 격일제로 벌침을 맞았다.
10일째부터는 직침으로 서서히 바꾸면서 60여회를 침하고 끝냈다. 3년
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풍의 발작이 없으니 완치된 것이다. 봉산물로는
프로폴리스, 로얄제리를 복용하면 치료기간도 단축되고 재발을 방지하
는데 큰 도움이 된다. 봉침은 압통점은 어떤 병이든 꼭 놓아야 하는
것이다.
요통과 디스크를 고치다
벌침을 놓게 된지 몇 년 안 되어서 이다. 사관학교에 재직 중일 때인데 아침에 45세 된 환자가 찾아왔다. 증세를 듣기 전에
그 환자가 들어오는 태도가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고 의자에도 앉지 못하고, 허리에 통증이 심하니까 양쪽 손을 먼저 의자에
대어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의자에 대며 앉았다. 삔 허리거나 디스크에서 오는 통증을 감당하지 못하여서 저렇게 고
통을 당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말을 듣고 보니 약 3년 전에 허리를 다쳤는데, 침을 수십 회 맞고 한약을 먹었으며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해서 나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조기축구회에서 축구를 하고 와서 아침식사를 하고 일어나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혹시
나 나을까 하고 하루를 지냈는데, 점점 더 아파서 먼저 침을 맞던 곳에 가서 침을 20일 맞아도 차도가 없었고, 약을 먹고 병
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했으나 차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침구사도 더 이상 고칠 수 없다고 치료를 포기하고, 물리치료를
해도 지압을 해도 금침을 30개나 맞아도 차도가 없었다고 했다.
환자는 벌침으로 꼭 치료가 되느냐고 묻기에 치료된다고 하였더니 하도 많이 속아서 믿을 수가 없다고 하며 한 번 더 속아보
자고 하면서 벌침을 맞기로 결심했다고 하였다.
첫날은 약하게 놓고 그 다음부터는 조금씩 강하게 놓기 시작해서 10일이 경과하니 허리가 부드러워지고 통증이 반으로 줄었다
고 했다. 보통 완치는 50일 정도 치료하면 되는데, 중증이라 100일로 치료가 되었다.
찾아왔다. 인사가 끝난 다음에 하는 말이 “소장님, 부끄러운 말씀입
니다만, 저는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소변을 볼 때 오줌줄기가 힘이 없
고 소변 양이 적을 뿐 아니라, 소변을 보고나면 또 보고 싶지만 소변
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소변이 나올 때는 항상 방광부위가 뻐근하여
고통을 느낌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또 가끔 소변에 약간씩이나마 피가 섞여 나온다고 고통을 호소했
다. 성력(性力)을 물으니 부인을 가까이 한 지 7~8년 정도 되며 그때
부터는 전혀 여자를 모른다고 한다.
환자는 그 후로 전국의 유명하다는 병원의 비뇨기과를 찾아다녔으나
신통한 치료가 되지 않아 4-5년 전부터는 치료를 포기하고 살았다고
한다. 남에게 말 못할 고통 중에 있다가 우연히 친구로부터 봉침에 대
한 권유를 받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잘 오셨습니다. 그럼 벌침 치료를 받아보시겠습니까?” 하니 “저와
같은 경우에 얼마나 맞으면 치료가 되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혈압
을 재어보니 180-125이고 맥박은 88을 기록했다. 압진을 하니 하복부
전반에 통증을 느끼고, 허리에서는 17추하 압통을 크게 느끼며 고통을
호소했다. 어깨가 늘 저리고 두통도 자주 온다고 했다.
여러 징후를 관찰한 결과, 이분은 만성 전립선염으로 더 이상 방치하
면 요폐(尿閉)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선생님의 경우, 40~50회
정도 벌침시술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니 환자는 “낫기만 하면 몇
백번이라도 시술을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벌침을 40여회 시침하자 전립선염이 호전됨은 물론 잃었던 정력까지
회복되었다. 50여회의 시술로 일단 치료를 끝낸 뒤 봉산물 복용을 계
속 권하였다.
벌침과의 자연스러운 인연
해군사관학교
에 재직하고 있던 1980년 12월경의 일이다. 교직원 중에 중풍으로 팔을 못 쓰는 분이 있었다. 보기에 하도 안타까워서 불러서 봉침
으로 치료해보겠다고 말하고는 놓기 시작했는데 15회 정도 맞으니 굳
은 것이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4~5개월 만에 마비가 풀리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그때부터 소문이 나면서 환자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전까지 벌침을 놓아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
다고 한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벌침을 바로 놓을 수가 있었어
요?”하고 놀라서 물었다.
사는 곳 주변에 아카시아 나무가 너무 많아서 취미로 양봉을 하고 있
었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맨 처음 취직한 직장이 농업은행이었는데,
지점장이 양봉을 몇 통 하고 있었던 것이 양봉을 만난 계기였다. 대구
동아양봉원에서 나오는 인쇄물에 봉침 사례가 실려서 자주 읽게 된 것
이 봉침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지식으로 봉침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고생하는 동료 직원을
보자 측은함과 안타까움에 실행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처음에는 환자의 마비된 팔에 그냥 놓았다. 그런데도 효과가 생기는
것을 체험한 것을 계기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에도 놓아
보고 실험도 해보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3년간 고생하
다가 돌아가셨는데, 본인이 직접 병 수발을 하면서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것을 체험하고는 본격적으로 봉침 공부에 나섰다.
운명으로 타고난 의술
그런데 양봉을 하고 있었다거나 글을 통하여 읽고 봉침에 관한 다소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로는 봉침을 감히(?) 하게 된 운명에 대
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그 운명적인 단서를 포착하고자 질문
을 계속한 결과, 마침내 그 해답을 찾았다.
박사님의 부친은 평생 침술을 하고 약초도 조제해서 사람들의 병을 고
쳐주고 사셨는데, 침이 그렇게 잘 들었다고 한다. 박사님은 어릴 때부
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것이다. 나병 환자들도 많이 와서 집에 진을
치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러니 병을 고쳐주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
으로 몸과 의식에 배어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부친의 의료자질과 치병의 심성 또한 박사님에게 유전적으로
대물림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해 오신 것을 기억하며... 공부를
했다”고 박사님 스스로도 말씀하신다. 바로 그것이 지식과 생각만으
로도 대뜸 벌침을 놓게 한 자질이고 힘이다.
여기에 주마가편 격으로 작용한 것이 박사님의 화학 지식이다. 벌독은
화학적인 물질이어서 본인의 전공지식이 이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용하
는 것을 남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한 것이다. 박사님은 이 대목에서
“굉장히 남달리 이해가 빨랐다”고 강조하신다.
다른 사람에게서 봉침을 배운 것은 1999년도에 서울 총신대학교 사회
교육원에서 송기춘 교수가 지도하는 6개월간의 봉침 과정을 이수한 것
이 전부라고 하니, 그때가지 근 20년을 책으로만 읽고 스스로 연구하
고 터득하면서 수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는 말인 셈이다. 특별
한 소질과 능력이라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해서 소문이 나고 환자들이 많이 몰려오는 것과 본인의 봉
침 공부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치료 실력을 상승시켰다. 삼군사관
학교 체육대회에 해군사관학교 대표로 나가는 선수들의 치료도 박사님
의 몫이었다.
명의의 자질
그러나 이러한 것들만으로 박사님을 명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명의열전에 이름이 올라가려면 ‘과연 명의구나’하고 탄복할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그 필요조건이 무엇인가? 지금이나 앞으로나 민중의술의 명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서 이 점은 반드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되므로 널리 민중의료계의 동의를 받아서 표준으로 정립되기 바란다.
병을 잘 고쳐야 함은 첫 번째이고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병을 잘 고치는 것이 그냥 기술만 터득해서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의술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마음과 몸의 통합체이
고 전 우주와 관계를 맺으면서 작은 우주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전체성을 통찰하는 지혜가 없으면 치료의 기술 또
한 한계가 뻔하다. 기술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지혜와 동반하는 것이다.
지혜를 얻으려면 마음이 맑고 발라야(正) 한다. 이것이 명의의 두 번째 조건이다. 돈 욕심, 명예 욕심, 세력 욕심 같은 사욕
(邪慾)이 없고, 오로지 생명을 살리는 데에 가치와 보람을 두고 있어야 한다. 맑고 발라야 바른 기운이 나와서 상대방의 기운
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우주의 좋은 기운과 파장이 일치되어 큰 기운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지혜가 생긴다.
어떤 경지 이상에 올라있어야 한다. 그 경지는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의술세계로서 그것을 통
하여 치료의 효과가 상당히 확인되는 것이라야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가 명의의 세 번째 조건이 아닐까 싶
다.
박사님은 의술을 하는 자세가 매우 맑고 진지하다.
치료를 해 오면서 의서를 많이 보았는데, 그대로 해도 치료가 안 되는
것들이 더러 있어서 “이것이 아니다”는 실감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치료한 환자에 대하여 저녁에 집에서 반드
시 치료내용을 정리하면서 되새긴다. 그렇게 하다보면 경락 순서를 틀
리게 하였거나 다른 경락으로 들어간 것들이 나오기도 한단다.
환자를 놓고 엄청나게 기도를 많이 하신다.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가
지고 계신데, 특히 새벽기도에서 ‘신들릴 정도로’ 기도를 하신다.
그렇게 하면 어떤 영감이 오고, 그 뒤에 그 환자를 만나면 환자도
‘꿈에 선생님이 보인다’고 하는 등 감응이 오는 것을 참 많이 느낀
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치료효과가 대단히 좋다고 한다. 이 부분을
박사님은 “남들은 잘 이해를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영혼의 세계, 본성의 세계에서 사람은 모두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경지에서 치료의 힘을 받고 그 힘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면
틀린 것일까? 그렇다면 박사님은 진지한 기도를 통하여 치료의 근원적
인 힘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박사님은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직장 따라 내려와 40년을 살고 있는
경남 진해에 ‘토라봉침연구소’라는 개인 연구실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산에 있는 민중의술살리기국민운동 부산경남연합 봉사실로 매주 3일
간 출근하여 무료 봉사를 하시는데, 올 때도 항상 “하느님, 천사에게
명하셔서 저와 동행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빠짐없이 기도한다.
이러한 신앙의 힘, 영적 힘으로 치료하니 치료가 잘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박사님이 하라는 대로 끝까지 응해주는 환자는 다 고쳤다.
중이염으로 서울, 부산 등지의 병원에서 세 번을 수술하고도 끝내 낫
지 않아 치료를 포기하고 있던 선박회사 사장은 민중의술 사무실에서
박사님을 만나 봉침으로 효과를 보자 치료를 확신하게 되었고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까지 다 데리고 오게 되었다.
박사님이 치료해준 간암 환자는 현재 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복수가 차고 완전히 끝난 상태의 대장암 환자를 치료해서 한동안 더
살게 했다. 위암으로 복수가 차고 3개월밖에 못산다고 모두가 포기한
처녀를 6개월간의 벌침만으로 살려냈다. 지금까지 3만 5천여 명을 치
료하였으니, 의사들도 그리 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환자들이 밤이고 새벽이고 가릴 것 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가족
들의 생활에 지장이 많아 할 수 없이 조그만 연구실을 따로 내었는데,
병원에서 치료되는 사람들은 오지 말고 안 되는 사람들만 오라고 하는
데도, 아침 9시에 연구실에 나가면 환자들은 7시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단다. 병원에서 못 고친 환자들이 벌침을 맞아 보고 몸이 변화되니
까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는 것이다.
봉사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에 150~200명을 ‘미친 듯이’ 치료한
다고 하신다. 하루 종일 그렇게 하고 나면 등어리에 노란 땀이 나는
데, 이는 무리하고 있다는 징표이지만 자신을 보고 온 환자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하신다. 대신 그 보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게다가,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처지이면서도 진해에서 부산까지
일주일에 3일을 손수 차를 몰고 와서 봉사를 하는데, 그에 소요되는
교통비 ․ 벌값 등 월 70~80만원의 비용이 부담스럽지만, 봉사는 여유
가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런 것 따지면 못하는 것이고, 맡았으면 책임져야 할뿐, 말이 필요
없다고 하신다.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목소리만 크고 말만 많
은 잡새 인간들에 대한 경종이다.
벌독의 효과는 48시간을 지속하니까 한 번 맞고 48시간 이내에 다시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시간이면 틀림없이 그 자리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한다. 이
것이 박사님의 신념이고 철칙이다. 그래서 적어도 2일에 한번은 봉사
함으로써, 일주일에 한번 씩 봉사하겠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환자들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환자가 많이 온
다고 해서 소홀해지면 안된다.”
세상에 어느 의자(醫子)가 이렇게 철저할 수 있는가? 떼돈을 버는 의
사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면허증도 없이 처벌의 위험 하에 놓여 있는
한 자연의료인이 보수도 안 받고 이렇게 철저한 사명감으로 하고 있습
니다, 하느님! 그러면서도 정작 박사님은 항상 담담하다. 말없이 실천
할 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도 않는다. 얼굴에는 평온하고 선한 기
운이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이렇듯 정성을 다하니 환자들이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1개월
정도면 박사님의 말을 믿는다고 한다. 어찌 이런 분을 명의라고 하지
않겠는가!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어 교회마다 15~20명씩 봉침요원으로 봉사하게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지만, 환자들에게서는 한 번도
시비를 당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기자, 경찰, 한의사들이 고발한다
고 위협을 한 적은 있지만, 박사님의 소신은 확고하다.
“나는 잡혀 들어가도 나와서 또 할 것이다. 고발해봐라. 나는 여기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중풍, 치매 하나 못 고치면서 말이야.”
어머니가 3년 동안 치매로 투병하는 동안 손수 병수발을 하였으나 끝
내 못 고치고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서 본격적으로 의술의 길로 들어
섰는데, 그 한이 맺히신 것 같다.
잘 고치는 것이 진짜 의술이니, 생명 앞에 거짓말 못한다. 이것이 자
연의 법, 하늘의 법이니 위축될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다. 인간의 법은
생명과 하늘법 아래 초라할 뿐이니, 대도를 가는 데 두려워하고 거리
낄 것이 무엇인가! 듣는 사람도 신이 나고 힘이 생긴다. 박수를 보낸
다. 마침내 우리는 진리와 정의로 승리할 것이니, 박사님, 힘을 내십
시오!
의술 공부도 끊임없이 하신다.
중국 요녕성 중의대의 사체부검반에 한번 다녀 왔는데, 한번 더 갈 예
정이고, 약초 공부를 하여 조약도 보조적으로 활용해 볼 계획이라고
하신다. 102살의 신의, 장병두 할아버지가 지금도 끊임없이 의술을 연
구하신다더니, 뛰어난 의술 뒤에는 역시 반드시 그런 노력이 있고, 명
의일수록 더 노력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 민족, 민중의술의 명의가 어떻게 생겨나고 전파되고 전수되는지,
그 정신이 어떠한 것인지, 박사님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 자연스러움, 무리도 부작용도 없음,
특별히 복잡하고 긴 교육제도도 필요 없음, 돈도 들지 않
음, 자본도 시설도 필요 없음, 어느 누구도 항의하지 않음,
자질이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음, 병원과 한의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을 거의 살려 냄, 자발적이고 보람에 함으로 진정
한 의도가 빛남, 타고난 자질을 살림... 이 무한한 가치, 아름다운 정
경, 그것이 우리 백성들이 수천 년 가꾸고 물려온 의도(醫道)의 뜰이
다.
그 아름다운 뜰을 유린하고 폐쇄하고, 그 곳에 비싼 돈과 고통스러운
기계장치와 거대한 인공의 건물을 세워서 고치지도 못하는 가짜 의술
로 장난치며 백성을 조롱하고 우리 의도의 얼을 짓밟는 자들은 누구인
가?
박사님 같은 분들이 계시어 민족 민중의술은 맥을 잃지 않고 이어
져 간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이어 갈 것이다. 그들이
그 길을 쉽고 즐겁게 갈 수 있도록 우리는 길을 닦고 있는 것이
다.
열심히 닦자. 만고에 빛날 길이 이 길이다. 생명의 길, 하늘의
길, 보람의 길이다. 박사님께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리자.